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31강(눅3:7-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1. 13. 02:50

누가복음 강해 제31(3:7-10)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6 4()

 

선지자의 맥을 잇고 있는 세례 요한의 현실진단미래예언그리고 구원을 얻는 방법의 선포에 대하여(3:7-10)

 

본문에서 의사 누가가 요약하고 있는 세례 요한의 말씀선포는 전통적인 선지자들의 말씀선포의 3요소를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①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의 타락상②다가오는 심판③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약속 등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경우에는 심판과 구원의 권세를 동시에 가지시고 이 세상에 나타나시는 메시아의 오심이 너무나 임박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말씀선포가 더욱 긴급하며 강력합니다;

(1)  첫째선민 유대인들의 하나님신앙에 대한 세례 요한의 현실진단이 그러합니다한 마디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3:7a).

(2)  둘째하나님의 진노가 너무나 임박하고 있다는 미래예언입니다도끼가 나무뿌리에 이미 놓여있다는 비유인 것입니다(3:7b, 9).

(3)  셋째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이제 말로만 회개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그러므로 회개의 증거를 당장 행동의 변화로 보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3:8, 10).

이제부터 본문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면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3:7); 세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구절입니다①첫째많은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몰려와서 침례를 받고자 했다는 것입니다②둘째세례 요한은 그들이 하나님신앙을 상실하고 사탄의 종 노릇을 하고 있다고 질타하고 있습니다③셋째그대로 살면 장차 올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3:7a); 이미 설명을 드린 그대로 많은 백성들이 세례 요한에게 몰려오고 있습니다그들은 수백 년 만에 나타난 귀한 선지자를 만나고 구원을 얻는 방법을 알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3:7a). 요단 강가에서는 정식 침례를 베풀고 베다니’와 같은 강변의 마을에서는(1:28, 여기서의 베다니’는 나사로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 동쪽 오리 길에 있는 근교도시 베다니’와 다름11:18) 간단한 물 세례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2)    그런데 그의 복음서에서 의사 누가는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선지자와 잘 드러나지 아니하고 있는 선지자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흔히 주전 420년경의 선지자 말라기 이후 세례 요한이 요단 강가에 나타날 때까지 선지자가 없던 중간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유대인들이 수백 년 만에 그들의 땅에 처음 나타난 선지자 요한을 만나려고 요단 강가로 많이들 나아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3)    하지만 그것은 본토 유대인들의 생각이고 헬라파 유대인에 속하는 의사 누가의 생각은 다릅니다그는 이미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를 메시아로 사람들에게 소개한 노인 시므온과 안나를 선지자로 보고 있습니다(2:25-27, 36). 그 이유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메시아의 오심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25-38). 그것은 공식적으로 메시아를 백성들에게 소개하는 세례 요한의 역할과 동일한 것입니다.

4)    그와 같은 의사 누가의 입장은 호렙 산에서 선지자 엘리야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왜냐하면하나님께서는 우상문화에 깊이 빠져있는 이스라엘 왕국에서 놀랍게도 결코 바알에게 굴복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사람 7천명의 의인을 남겨놓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왕상19:18). 그들은 엘리야와 달리 숨어 있는 선지자들입니다그 중의 한 사람이 공식적으로 엘리야 선지자의 뒤를 잇는 엘리사라고 하겠습니다(왕상19:16, 21).

5)    그와 같은 관점을 지니고 있기에 의사 누가는 훗날 그가 저술한 사도행전에서 과감하게 바나바와 바울을 사도’라고 지칭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4:1, 3). 그 결과 초대교회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후속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약 의사 누가가 용기를 가지고 먼저 그 두 사람의 선교일꾼을 사도’라고 부르지 아니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그들을 사도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2)  독사의 자식들아(3:7b); 그런데 세례 요한은 다른 선지자들과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몰려들고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엄청난 독설을 퍼붓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여기서 독사의 자식들아(3:7b)라고 질책하고 있는 것은 백성들에 대한 굉장한 모독행위입니다상대방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선민들입니다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들을 향하여 감히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사탄의 백성이라고 일갈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창세기 제3장을 보면아담부부를 타락시키고 있는 원흉이 바로 사탄의 화신인 뱀입니다(3:1-7). 그 뱀의 독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고 왜곡하여 아담부부를 미혹하며 그들의 욕심을 충동질하고 있습니다그 결과 아담부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게 되어 이 세상에 원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3)    결국 사탄의 화신인 뱀의 독으로 말미암아 아담부부와 그 자손들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더 이상 얻지 못하고 죽음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인류를 죄와 사망의 법에 들어가도록 만든 장본인이 독사와 같은 사탄임을 뻔히 알고 있는 세례 요한이 백성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3:7b). 그것은 한 마디로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먼 길을 걸어서 찾아온 백성들을 내어 쫓는 일종의 문전박대(門前薄待)와 같은 것입니다.

(3)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3:7c); 세례 요한의 독설은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독사의 자식으로 살다가 임박한 진노 가운데 멸망을 당하지 아니하고 왜 자기를 찾아오고 있느냐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7c).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물러가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왜 그럴까요그 이유는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와 나라의 형편을 생각해보아도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구원이 절실합니다수백 년 만에 공식적으로 백성들 앞에 나타난 선지자 세례 요한이 아니면 누가 그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겠습니까그래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모두들 세례 요한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3:8); 세례 요한은 동족인 선민들이 하나님의 구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①하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②또 하나는 선민의 기득권을 내세우지 말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3:8a);

1)    말로써만 회개를 하는 것은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반드시 행동의 변화로 어떠한 회개를 했는지를 하나님과 사람 앞에 보여주어야만 합니다왜냐하면사람의 말은 그다지 신용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의 차이점이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시며 그 말씀대로 실천하시는 능력자이시지만 피조물인 사람은 그러한 신실함과 능력이 애초부터 부족한 존재입니다.

2)    가치관과 행동의 변화로 자신이 확실하게 회개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그것은 메시아가 오시는 때가 임박했기 때문입니다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습니다심판주이시며 동시에 구원주이신 메시아가 오시면 그 분은 백성들을 마치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그렇게 오른쪽과 왼쪽으로 분류하실 것입니다(25:31-33, 46). 회개의 증거를 보여주는 자는 순종하는 양으로 분류하여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반대로말로만 회개를 하고 아무런 행동의 변화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자는 염소로 분류가 되어 영벌에 들어가는 왼쪽으로 인도가 되고 말 것입니다.

(2)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3:8b); 선민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그것은 자신들이 혈통적으로 선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은 보장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1)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아브라함처럼 할례를 받고 있다는 것이 구원의 증거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태초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2:7땅에 널려 있는 흔한 돌을 가지고 사람을 창조하지 못하실 이유가 없습니다(3:8b).

2)    하나님께서는 흔한 돌을 사용하더라도 얼마든지 선민을 만들어내실 수가 있습니다그렇다면 무엇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관건이 될까요그것은 혈통적인 선민이라는 족보가 아니고 선민의 표징인 할례도 아닙니다오로지 이기적인 선민사상과 현세구복적인 우상문화를 청산하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3)    백성들이 모든 피조물을 살리고 돌보기 위하여 이제부터라도 헌신하고 희생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그것이 열매를 맺는 회개입니다(3:8a).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며 구원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는 것입니다그러한 삶이 쉽지 아니한 것이기에 그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3:9); 메시아의 오심이 어느 정도로 가까운 것일까요?

(1)  세례 요한은 자신 있게 백성들에게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나무를 찍기 위하여 나무꾼이 도끼를 나무뿌리에 놓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차비가 끝나고 있다는 것입니다(3:9 의역). 그러므로 구원을 얻기 원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우물쭈물하거나 우왕좌왕할 시간이 없습니다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곧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2)  선민의 기득권도 내려놓고 현세적인 복에 집착하지도 말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선민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모두 동일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전부 구원의 대상이라고 하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며 성도들이 좋은 열매를 맺는 방법입니다그러한 열매를 맺는 성도는 메시아가 오시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넷째로, 무리가 물어 이르되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3:10); 세례 요한은 자신의 설명이 상당히 추상적임을 알고 있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요한의 설명을 들은 백성들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좀더 구체적인 말씀을 해달라는 것입니다(3:10). 회개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변화된 삶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인생살이인지를 설명 듣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본문말씀 다음에는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나타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심판이 아니라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신앙생활의 비결에 대하여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메시아는 진심으로 회개를 한 자인지 아니면 말로써만 회개를 한 척 하는 자인지를 구별하기 위하여 반드시 그 행동의 변화를 지켜보신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말로써만 신앙생활을 영위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행동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2)  둘째선민의 기득권과 현세적인 복에 집착하는 신앙의 모습을 청산해야만 합니다구체적으로마치 선민들처럼 자신들이 아니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 뜻을 펼 수가 없다고 하는 오만과 편견을 버려야만 합니다그리고 자신의 현안문제를 해결해주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서 소원성취를 해줄 능력이 없다면 하나님이라도 믿고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고방식을 버려야만 합니다.

(3)  끝으로하나님의 뜻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결코 이기적인 선민우월사상이나 선민구원사상을 만족시켜주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그리고 영생구원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현세적인 복에만 매달리고 있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시지도 않습니다.

  위와 같은 취지의 말씀을 세례 요한이 동족인 선민들에게 주지시켜주기 위하여 본문에서 극단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그렇지만 그 속에는 동족을 사랑하고 모두 구원하고 싶어하는 선지자 요한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그러한 요한의 마음을 저와 여러분들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아무쪼록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아끼지 아니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