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36강(눅3:23-3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1. 16. 14:50

누가복음 강해 제36(3:23-38)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6 9()

 

의사 누가가 발굴하여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 족보의 특징(3:23-38)

 

의사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의 특징이 본문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생생한 정보를 가감 없이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목수 요셉의 족보가 그러합니다조상 가운데 왕의 이름은 오직 다윗뿐입니다(3:31). 나머지 조상들은 전부 왕의 이름이 아닙니다어째서 그러한 각색을 하고 있는 은둔자의 족보를 지니고 있는 집안일까요?

(2)  둘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정체성이 세례 요한과 많은 사람들 앞에 하늘로부터 공식적으로 선포가 되고 나자(3:22그 다음에 의사 누가는 곧바로 예수님의 또 다른 정체성으로서 의붓아버지 목수 요셉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3:23-38). 그것은 예수가 사람의 아들’로 의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와 같은 절묘한 배치는 사람의 지혜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과연 어떠한 의미를 전해주고자 하는 것일까요?

(3)  셋째마태복음 제1장에 수록이 되어 있는 목수 요셉의 족보와는 완전히 기술의 방법을 달리하고 있습니다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족보가 아니고 그 반대이기 때문입니다목수 요셉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조상에게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특이한 족보입니다그렇게 올라가서 어디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일까요마치 야곱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간 것처럼 하나님이 계시는 그곳에 닿고 있습니다(28:12-13, 3:38).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4)  넷째마태복음 제1장의 다윗의 족보는 이방여인 4사람의 이름이 그 조상으로 등재가 되어 있어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릅니다그런데 의사 누가는 이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습니다그 대신에 그가 전해주고자 하는 더 큰 은혜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상과 같은 의사 누가의 기록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다음과 같이 탐구를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목수 요셉의 족보는 은둔자의 족보일 수밖에 없습니다그렇게 족보를 각색하여 이웃사람들에게 말해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속사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주전 586년에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합니다(왕하25:1-7). 왕족 및 대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유다의 백성들이 대부분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북송이 되고 맙니다그런데 주전 539년에 바사의 고레스 왕이 메대와 연합하여 신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림으로써 기적적으로 유대인들이 자유를 얻게 됩니다(1:1-4).

(2)  그들 가운데 일부가 예루살렘과 고토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고 제2성전시대를 살게 됩니다그들의 지도자가 처음에는 다윗의 왕손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의 후계자인 예수아입니다(2:1-2, 3:2). 하지만 100년 남짓 세월이 지나자 느헤미아 총독의 종교개혁이 무위로 돌아가고 세속적인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백성을 잘못 인도하여 하나님신앙이 쇠퇴하게 되고 맙니다(13:7, 28).

(3)  그 후 주전 142년부터 주전 63년까지 단지 80년 동안 레위 인들의 하스모니안 왕조가 예루살렘과 가나안 땅을 지배하지만 그 외의 기간에는 외세 강대국의 지배가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그리고 다윗의 왕조는 다시는 성립이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그러한 상황이므로 다윗의 후손들은 자신들이 왕족이라는 사실을 숨기면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꼭꼭 숨어서 지내고 있습니다.

(4)  특히 다윗 왕가의 직계로 그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는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의 후손인 목수 요셉의 집안은 더욱 먼 변방 갈릴리의 산골마을로 은밀하게 숨어들어서 살고 있습니다이웃에게는 자신들의 족보를 고쳐서 내보이고 있습니다오로지 왕의 이름으로는 다윗만이 남아 있습니다(3:31). 그리고 왕이 아니므로 중시조인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의 이름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습니다(3:27).

(5)  기타의 조상들은 다윗 왕가의 왕이었지만 모두 그 이름을 버리고 방계 또는 가상의 이름을 기록해두고 있습니다(3:28-31). 그와 같은 특이한 족보를 의사 누가가 어떻게 수집하여 이렇게 등재를 하고 있을까요그것은 두 가지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습니다①첫째의사 누가는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 당시의 증인들을 만나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습니다특히 그는 예수님의 생애에 대하여 그 근원부터 추적을 하고자 결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1:3). 그러므로 의사 누가가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의 산골마을 나사렛을 방문하여 여러 증인을 만나고 다양한 증언을 청취한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②둘째의사 누가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가 진실인지 아닌지를 따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6)  그는 특별한 정보수집훈련을 받고서 시리아총독부로부터 유대인들의 땅으로 밀파된 사람으로 보입니다(1:3-4, 1:1). 따라서 의사 누가는 전문적으로 자료의 객관성과 타당성을 검토한 다음에 글 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입니다그의 판단으로는 그가 나사렛에서 수집한 목수 요셉의 족보가 확실한 것입니다왜냐하면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그렇게 위작(僞作가짜로 꾸며서 만듦)한 족보를 내세우고 있으니 그들이 정통 다윗 왕가의 후손임에 틀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로서 여인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고 있습니다(3:15, 1:34-35). 그렇지만 그 사실을 믿어줄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따라서 고대가부장사회에서 사람의 아들로 의제(擬制법률적으로 그렇게 간주가 되는 것)가 되고 있습니다;

(1)  그 방법이 어머니 마리아의 정혼자인 목수 요셉의 족보에 편입이 되는 것입니다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자가 목수 요셉을 방문하여 그를 설득하게 됩니다(1:18-25). 그리고 목수 요셉은 때마침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낳은 예수를 자신의 장자로 곧바로 호적에 올리게 됩니다(2:1-7, 21-22).

(2)  그런데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예수가 감쪽같이 다윗 대왕의 후손인 목수 요셉의 장자로 등재가 됨으로써(3:23훗날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왜냐하면이스라엘 자손들이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와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해줄 메시아를 오랜 세월 학수고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들의 소망을 예수님은 도저히 그대로 이루어줄 수가 없습니다그 이유는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이방인을 심판하고 선민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를 모두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4)  그것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진리입니다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전심전력으로 이루어드리고자 하는데 그를 따르고 있는 유대인들은 자꾸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들인 자신들에게 현세적인 복을 우선적으로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10:35-45, 1:6).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애 과정에서 마음속 고통과 정치적 갈등이 점점 커져나가게 됩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목수 요셉의 족보가 조상에게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마침내 아담에게 다다르게 되고 결국에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닿고 있습니다그러한 신기한 족보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첫째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그 족보의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세속적으로 시조 누구로부터 중시조 누구를 거쳐서 자신에게 이르고 있는 그와 같은 사람의 족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달라지게 됩니다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인 자는 조상에서 자손에게 이르고 있는 그 세대의 개념과 역사적인 시간의 기록을 뛰어넘게 됩니다왜냐하면성도가 믿고 있는 영이신 하나님의 세계는 시공간의 지배를 절대적으로 받고 있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세속적인 족보상에 있는 이름의 그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주로 믿게 되면 그 순간 사람의 족보를 떠나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되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그 운명이 바뀌게 되고 맙니다(21:27).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는 새로운 족보인 생명책에 등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2)  둘째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담의 원죄를 청산하고 다시 영생의 하나님과 동거하며 동행할 수가 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고 난 후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을 하게 됩니다(16:21, 28:1-10).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원죄를 청산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육신을 산 제물로 바친 예수님을 부활 승천시켜 하나님나라의 대제사장으로 삼고 계십니다(4:14-16, 6:20, 7:24-28). 그리고 그리스도처럼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동일한 부활과 승천의 영광을 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22:28-30, 14:1-3, 고전15:20-24). 이에 따라 원죄를 범하기 전에 아담부부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거하며 동행하던 그 에덴동산이 마치 하나님나라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3:19-20, 11:4-9, 21:1-7, 22:1-5).

(3)  셋째하나님에게까지 닿기 위하여 야곱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성화의 과정이 인생 가운데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은 거듭난 인생을 살아간 자입니다;

1)   애초의 야곱은 형의 장자의 권한과 축복을 부러워하여 둘째인 자신이 그것을 차지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던 인물입니다(25:29-34, 27:18-30). 그 때문에 형 에서를 피하여 집을 떠나게 된 야곱이 벧엘의 들판에서 비박을 하게 됩니다그날 밤 꿈속에서 하늘로 통하는 사닥다리를 보게 됩니다(28:12). 그 사다리 끝에서 자신을 부르고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28:13-16). 그때부터 야곱의 인생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바라는 인생으로 바뀌기를 시작합니다(28:17-22).

2)   마침내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면서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신앙으로 극복한 위대한 인물이라는 칭호 이스라엘’을 얻게 됩니다(32:28, 35:10). 그 다음에는 다소의 시행착오를 거치지만 결국 야곱은 위대한 하나님의 대 족장 이스라엘’의 인생을 살다가(46:1-4, 47:7-10, 29-31, 48:19-22믿음의 조상들이 안치되어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됩니다(49:28-33).

3)   그와 같은 야곱의 인생역정이 바로 성화의 과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죽어서라도 구원자 메시아를 만나서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위대한 이스라엘의 생애입니다그러한 생애를 많은 믿음의 열조들이 다같이 보여주고 있다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의 장인 제11장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11:13-16). 요컨대그들이 희구하던 인생을 고맙게도 그리스도를 만나서 벌써 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우리 성도들이라고 하겠습니다(3:3-158:1-18, 12:1-2, 고전6:19-20).

넷째로, 이방여인 4명은 선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모시고 살기 위하여 동족을 버리고 유다 지파로 시집을 오고 있습니다(1:3-6). 하지만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인 성도들은 다릅니다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주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하나님을 믿고서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선민만의 구원을 부르짖고 있는 선민의 울타리가 전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성도들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다가 선민과 이방인의 구별과 차별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예수님은 두 가지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①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35). ②또 하나는 사람의 아들 곧 요셉의 아들입니다(3:23). 예수님에게 있어서 어느 신분과 정체성이 더 소중한 것일까요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그러므로 그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상에서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고 있습니다(19:30).

그렇지만 예수님은 의붓아버지 목수 요셉의 은공을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장자로 인정하고 다윗의 족보에 등재를 해준 고마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처형장으로 내몰고 있는 유다의 백성들에 대해서도 모르고 한 일이므로 부디 용서해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23:34).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족보와 정체성은 무엇일까요이 땅에서 한시적으로 사용하고 나면 반드시 훨훨 벗어버리고 가야만 하는 그 육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사람의 정체성과 그 족보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그보다는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다가 하나님나라로 들어가서 누리게 되는 그 영생이 더 중요합니다.

요컨대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사람의 아들이라는 정체성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아무쪼록 그와 같은 우선순위를 명심하고서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영생을 추구하며 살아가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