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5강(눅1:57-6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1. 3. 08:36

누가복음 강해 제15(1:57-63)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5 19()

 

제사장 사가랴의 뒤를 이을 것인가아니면 선지자 엘리야의 뒤를 이을 것인가?(1:57-63)

 

의사 누가는 그가 발로 뛰면서 직접 수집한 자료를 가지고 역사적인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1:3). 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란 나사렛 예수의 탄생과 그 생애입니다그리고 그가 규명하고자 하는 사실은 나사렛 예수가 과연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의사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가 이 세상에 나오기 이전에 그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저술과 공식적인 보고서들이 더러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2). 하지만 누가가 보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있습니다그것이 무엇일까요그것은 현장검증과 고증의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누가는 자신이 사건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자료를 수집하고자 열심입니다.

의사 누가는 자신이 직접 수집한 증거와 자료들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깊이 있게 묵상하고 있습니다그 결과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단계에서부터 나름대로 독특한 해석을 얻게 됩니다그리고 자신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그러한 특이한 사실에 대하여 의사 누가는 아주 간략하게 복음서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1:3-4).

오늘의 본문은 그러한 의사 누가의 복음서의 특이성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대목에 해당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제사장 사가랴의 부부가 늘그막에 처음으로 그것도 기적적으로 얻고 있는 아들에 대하여 자신들의 혈통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를 결코 원하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1:59-63).

그 뜻을 새겨보자면사가랴의 뒤를 잇는 단순한 혈통적인 의미의 제사장이 아니라 그보다는 자신들의 아들 요한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어 예언하신 그 사명을 감당해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1:15-17). 사가랴 부부는 아들 요한이 장차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과 이 땅에 오시는 구속자 메시아에게로 돌이키는데 기여하는 마치 그 옛날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풀이를 해보자면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외면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방 신을 섬기고 현세적인 복을 얻기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는 이른바 영적으로 캄캄한 이 세상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빛을 던져주기를 그들은 아들 요한의 생애를 바치면서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한 맥락에서사가랴 부부는 본문에서 혈통적인 선민만의 구원사상을 넘어서고 있으며메시아를 보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온 세상구원의 뜻을 이미 따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본문에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이웃 친족이 주께서 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1:57-58); 마리아가 돌아가고 얼마가 지난 시점일까요그리고 이웃과 친족들이 어째서 더 크게 축하를 해주고 있는 것일까요?

(1)  평생 불임여성이었던 늙은 여인 엘리사벳이 기적적으로 그 몸이 치유되고 회복이 되어서 남편인 제사장 사가랴의 씨를 잉태하게 됩니다그녀는 이웃 보기에 민망해서 5달 동안 집에서만 숨어서 지내고 있습니다(1:24). 그런데 임신한지 6달에 접어들자 갑자기 친족인 처녀 마리아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1:36, 40).

(2)  처녀 마리아가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으로 혼자서 아기를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1:30-38). 그 순간 엘리사벳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복중의 아기가 기뻐서 뛰놀고 있습니다(1:41). 그리고 자신의 입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언의 말씀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바야흐로 누구나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미 처녀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1:42).

(3)  3달쯤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친족인 처녀 마리아가 드디어 자기집으로 돌아갔습니다(1:56). 그리고 2달이 더 지나가 마침내 산달이 다가오고 있습니다엘리사벳은 더 이상 집안에서 숨어만 지낼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열 달을 엘리사벳의 복중에서 자라고 있던 아들이 태어나고자 몸부림을 치면서 엄청난 산통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래서 급히 산파를 불러서 무사히 아들을 출산하게 됩니다(1:57). 그 소식을 듣게 된 이웃과 친족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늙은 사가랴와 불임인 부인 사이에서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이 늘그막에 기적적으로 탄생을 했으니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그들 부부에게 크게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1:58).

둘째로,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그들이 이르되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1:59-61); 출생한 이스라엘의 사내아기는 모두 율법에 따라 8일이 되면 할례를 받아야만 합니다(17:12). 이웃과 친족들이 몰려와서 할례의식을 경건하게 행하고 있습니다그 자리에서 벙어리 신세가 되어 있는 제사장 사가랴를 대신하여 친족들이 아들 이름을 제사장 사가랴의 뒤를 잇도록 역시 사가랴(그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는 것임)로 정하자고 제안을 합니다(1:59). 그러나 산모인 엘리사벳이 극구 반대를 합니다아들의 이름을 요한(그 뜻은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임)으로 한다는 것입니다(1:60). 친족들이 선뜻 동의를 하지 못합니다그 이유는 제사장의 이름자로는 요한’을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1:61).

셋째로,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그가 서판을 달라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1:62-63); 그래서 친족들이 부득이 아기의 아버지인 제사장 사가랴의 의사를 타진하게 됩니다;

(1)  친족들이 제스처를 사용하여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벙어리 신세가 되어 있는 제사장 사가랴에게 묻습니다(1:62). 그때 사가랴가 서판(書板글을 쓸 수 있는 나무판)에 아들의 이름자를 적게 됩니다놀랍게도 자신의 제사장의 혈통을 잇는 사가랴’라는 이름을 버리고 있습니다.

(2)  그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그 사명을 다하라는 뜻으로 요한’이라는 이름을 선택해주고 있습니다(1:63). 그것은 제사장 사가랴가 자신의 후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메시아의 나라 곧 새로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세상을 만드시는데 기꺼이 바치겠다고 하는 큰 결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그 사실을 믿고 회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죄 사함을 의미하는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그때부터 죄인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말씀의 뜻을 실천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면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떳떳하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됩니다(22:28-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시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자 육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태반입니다그러한 자들에게 의사 누가는 사가랴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부부는 늘그막에 하나님의 긍휼로 기적적으로 얻은 그 귀한 아들을 자신들의 육신적인 후사를 잇는데 결코 사용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여호와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목적을 이루는데 기여하는 아들로 사용해달라고 그 인생을 바치고 있습니다의사 누가는 그 장면을 기록하면서 모든 성도들에게 부디 사가랴 부부와 같은 결단으로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 글을 읽으시면서 의사 누가의 말과 같이 결단하고(1:61-63), 사도 바울의 권면과 같이 자신의 거듭난 인생을 영적인 산 제물로 드리는 인생으로(12:1-2살아가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