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72강(민33:14-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2. 13. 16:29

민수기 강해 제172(33:14-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424()

 

여호와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째서 미디안 변경 르비딤 광야 호렙 산으로 부르시는가?(3:1, 12) 그곳에서 그들이 당한 일은 무엇이며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에게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17-18) 그리고 어째서 호렙 산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를 선포하지 아니하고 시내 산으로 옮겨서 선포하고 있는가?(33:14-16, 19:4-6)

 

모세는 본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행로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알루스를 떠나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더라.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진을 치고, 시내 광야를 떠나 기브롯핫다아와에 진을 치고”(33:14-16).

그렇지만 그 간단한 행선지에는 엄청난 사건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 점을 먼저 살펴보기 위하여  다음 세가지 질문을 하고 그 답을 구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여호와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째서 미디안 변경 르비딤 광야 호렙 산으로 부르시는가?(3:1, 12) 미디안 땅에서 제사장 이드로의 큰 사위가 되어 양치기 생활을 하고 있던 모세는 미디안의 서쪽 변경 르비딤 광야 호렙 산에서 불꽃 가운데 그를 부르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3:1-6). 그곳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맡게 됩니다(3:7-8). 그렇지만 일단 출애굽에 성공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호렙 산으로 다시 와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는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3:9-12).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무래도 애굽제국에서 100년 이상 대를 이어가면서 노예생활을 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광야에서 살아가고 있는 미디안 족속의 삶을 배우라고 조치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어가는 나라는 애굽과 같은 제국적인 것이 아니라(8-11, 7:10-13) 미디안의 부족국가와 같은 부족연맹이 될 것임을 여호와께서 벌써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31:7-8). 실제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12지파라고 하는 12개의 부족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1:19-46). 그리고 여호와의 명령으로 12지파 별로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하게 되자 그 사령관들은 마치 부족국가의 왕과 같은 지휘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2:4, 6, 8, 31:4-6, 32:1-5).

(2)  둘째, 르비딤 광야에서 그들이 당한 일은 무엇이며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에게서 배운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17-18)

1)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라비아 반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미디안 땅 르비딤 광야 호렙 산에 도착할 때까지 엄청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오아시스가 있는 수에즈 만 홍해 가에서부터 신(Sin) 광야와 수르 광야 남부에 들어서고 다시 바란 광야와 시내 광야 사이 거친 땅(Alush)을 횡단하느라고 큰 고생을 한 끝에 마침내 르비딤 광야에 도착한 것입니다(33:10-14a).

2)    그런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물이 없는 땅입니다(33:14b, 17:1). 백성들이 여호와를 원망하고 모세에게 물을 내라고 독촉한 끝에 호렙 산 암반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17:2-6). 그들은 여호와께서 기적적으로 물을 솟아나게 해주면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계속 섬길 것이지만 만약에 그리하지 아니하시면 여호와신앙을 떠나겠다고 강압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시험하고 있는 백성들의 나쁜 습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쁜 습성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가 있을지 그 점을 계명과 규례를 주고서 한번 지켜보고자 하십니다(17:7, 15:25-26).

3)    (Zin) 광야와 바란 광야의 약탈자인 아말렉 족속들이 르비딤 광야까지 추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빈틈을 노리고 습격을 합니다(17:8). 그 모습을 보고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두 팔을 높이 들게 하고 신위적으로 여호수아의 이스라엘 군대를 사용하여 아말렉 족속을 격퇴하십니다(17:9-13).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보따리를 털려고 하는 아말렉 족속과 같은 약탈자는 여호와께서 앞으로 철저하게 응징하시겠다고 이른바 여호와 닛시의 선언을 르비딤 광야 호렙 산 앞에서 하십니다(17:14-16).

4)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가 호렙 산 아래 르비딤 광야에 진을 치고 있는 사위 모세를 방문합니다(18:1, 5). 미디안 처가로 진작 돌려보낸 모세의 처자식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18:2-4). 그러나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인 사위 모세에게 특청(特請, 특별한 요청)이 있어서 온 것입니다(18:12). 르비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의 무법자 아말렉 족속을 물리쳤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서(17:13) 미디안 족속들이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8:11).

5)    한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함께 살 수가 없는 것처럼 언젠가 미디안 땅에서 이스라엘 족속과 미디안 족속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미디안 백성들이 망하게 될 것이 우려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조용히 미디안 땅을 떠나 달라고 하는 장인 이드로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모세는 여호와께 여쭈어 보고서 허락을 하시면 미디안 땅을 백성들과 함께 떠나겠다고 답변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편안하게 미디안 족속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18:27).

6)    모세는 출애굽기 제18장에서 그가 장인 이드로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모세하고만 말을 하십니다(4:15-17, 19:19-21, 20:18-19).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모세가 듣고서 그것을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율법은 하나님 말씀의 취지를 100% 그대로 담아 낼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의 뜻을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의 말로 전부 설명한다고 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의 취지인데 그것을 백성들은 제 나름대로 서로 이기적으로 해석을 하고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율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백성들이 서로 다툼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서로 율법을 자기중심적으로 그리고 이기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기 때문에 다툼은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7)    그러한 다툼을 소송으로 해결하고자 백성들이 모두 모세를 찾아오고 있습니다(18:14). 그 때문에 모세는 하루 종일 재판을 하기에 너무나 바쁘고 피곤합니다(18:13).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가 사위인 모세에게 중요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등의 관료체제를 갖추고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서 소소한 소송을 전부 맡기라고 권고합니다”(18:19-23). 한 마디로, 관료제를 도입함으로써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행정 및 사법체제를 갖추도록 하라는 것입니다(18:24-26). 그것은 정치 제도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 12지파가 하나의 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 자신이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선포함으로써 신정국가의 입법 및 법률체계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제는 행정과 사법조직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미디안 르비딤 광야 호렙 산에서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의 신정국가의 모습을 서서히 갖추어 나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호렙 산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를 선포하지 아니하시고 시나이 반도 시내 산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옮겨서 그곳에서 선포하고 계시는가?(33:14-16, 19:4-6)

1)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가 호렙 산으로 사위인 모세를 찾아와서 요청한 내용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군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이드로의 우려가 사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음을 아시고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회군을 하라고 지시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들은 르비딤 광야를 떠나서 길을 돌이켜 시내 광야로 들어옵니다(19:1-2). 구체적으로, 모세는 여호와의 허락을 얻어 호렙 산에서 떠나 아카바 만 홍해 가를 타고서 남하하여 시나이 반도 시내 광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나이 반도 남쪽 꼭지점에 해당하는 시내 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곳은 강한 시내 광야의 바람이 바닷바람을 만나 휘몰아치고 있는 높은 지대이며 척박한 곳이므로 다른 유목민들이 별로 찾아오지 아니하는 황량한 곳입니다.

2)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자 산 정상에 강림을 하시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19:9-16).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정국가의 법률이 되도록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가르쳐 주시며(19:7-8) 이제는 그 율법을 지극정성으로 준수하도록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내 산 정상에 빽빽한 구름 가운데 두려운 모습으로 여호와께서 친히 임재하시는 것입니다(19:16-19).

3)    그 모습을 보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조건 모세가 전해주는 여호와의 말씀을 자신들의 율법으로 받아 들이고 그대로 실천하겠다고 맹세를 거듭하고 있습니다(20:18-19, 24:3-8). 그렇게 하여 시내 산 앞에서 인류 최초의 제사장나라가 출범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제사장나라의 의미는 두가지로 보입니다; ①하나는 이스라엘 자손들 모두가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택 받은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②또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이방인들이 속죄할 수 있도록 그 제사를 드려주는 자들이 제사장나라의 백성들입니다(19:4-6).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이 그대로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기에 훗날 그들의 나라가 이방인들에 의하여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12:39-4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알루스를 떠나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더라”(33:14);

(1)  여기서 알루스’(Alush)는 특정한 하나의 지점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Sin) 광야와 수르 광야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돕가(33:13, 시내 산 북서쪽 75km지점)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 땅 서쪽 변경인 르비딤 광야에 이를 때까지의 지명이 모두 알루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거친 광야에는 지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 광야와 시내 광야 사이의 척박하고도 황량한 지역을 통과하면서 가끔 물이 있는 곳을 만나면 그곳에 일단 진을 치고 빵을 구워 먹었는데 그러한 지점 42개를 통칭하여 하나의 지명인 알루스로 부르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르비딤 광야의 위치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가설이 있습니다; ①하나는 출애굽기 제3장과 제17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호렙 산이 자리를 잡고 있는 그곳이 르비딤 광야이며 그곳은 모세가 미디안 제사장인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몰고 다녔던 미디안 서쪽 변경의 광야로 보는 것입니다(3:1, 17:1, 6). ②또 하나는 호렙 산과 시내 산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서 시내 광야의 일부를 떼어서 르비딤 광야로 특정하는 경우입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출애굽기 제19장의 설명에 있어서 자체 모순을 지니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3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19:1-2). 두가지를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라암셋에서 시나이 반도 시내 산까지 오는 데는 아무리 천천히 이동을 해도 한달이 걸리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2달이나 걸렸다고 모세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먼 곳 예를 들면 미디안 땅에 다녀서 온 것이 맞습니다.

2)    둘째, 시내 광야에 시내 산이 위치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르비딤 광야의 호렙 산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땅 변경에 있는 호렙 산을 자주 양떼를 몰고서 40년 동안이나 다닌 양치기 출신인데 호렙 산과 시내 산을 혼동할 리가 없습니다.

(3)  호렙 산이 자리를 잡고 있는 르비딤 광야는 황량하고 척박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없는 그 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꽃 가운데 임재를 하시는 것입니다(3:2-3). 모세가 양떼를 몰고 다니던 그 시절에는 호렙 산 앞에 가축에게 먹일 물이 있었는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도착을 했더니 그곳에 물이 없습니다(33:14). 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240만명이나 되는 백성들 그리고 그 이상의 수를 헤아리는 가축들에게 한꺼번에 먹일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곳에 오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일약 오아시스가 전개가 될 것으로 상상을 했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실망과 불평이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믿지 못하겠다고 원망하는 백성들의 말이 그 도를 넘고 있습니다.

(4)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호렙 산 아래 반석에서 모세를 시켜서 백성들에게 큰 샘물이 터지도록 기적을 베풀어 주시면서 므리바맛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십니다(17:6-7a). 그 의미는 다툼시험입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세운 지도자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물을 주시는지 아니 주시는지를 시험하였듯이(17:7b) 이제는 하나님께서도 백성들이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여 계명과 율법을 잘 지키는지를 시험하겠다고 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15:25-26). 그리고 믿지 아니하는 백성들과 다투어 지금부터는 여호와의 시험을 통과하는 선민이나 성도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있으며 장차 오아시스와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여 들이겠다고 하시는 두려운 말씀으로 풀이가 됩니다(15:26-27).   

둘째로,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진을 치고”(33:15);

(1)  르비딤 광야와 시내 광야가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르비딤 광야에 있는 호렙 산과 시내 광야에 위치하고 있는 시내 산은 다른 것입니다. 르비딤 광야가 미디안 땅 서쪽에 있다고 한다면 시내 광야는 시나이 반도 중앙과 남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시나이 반도 남쪽 꼭지점에 시내 산이 높이 솟아 있으며 그 정상에서는 광야의 바람과 홍해의 바람이 맞부딪치므로 그 굉음이 대단한 곳입니다(19:16).

(2)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르비딤 광야 호렙 산으로 인도하여 갔습니다(3:12, 17:1, 6). 그곳에서 미디안의 제사장인 장인 이드로의 방문도 받고 처자식도 만나게 됩니다(18:1-5). 그러나 미디안 족속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황야의 무법자인 아말렉 족속을 거뜬하게 물리친 강력한 이스라엘 자손 240만명이 가까운 르비딤 광야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으니 밤에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17:8-16).

(3)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 땅을 차지하겠다고 나서면 막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디안의 왕들은 모세의 장인인 제사장 이드로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모세에게 그 사정을 말하고 부디 그곳을 떠나 달라고 요청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18:11-12, 31:8). 모세는 여호와의 허락을 구하여 백성들을 데리고 르비딤 광야를 떠나고 있습니다(33:15a). 구체적으로, 에시온 게벨을 거쳐 아카바 만 서쪽 해안을 타고 내려가서 시내 광야 시내 산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33:15b).

셋째로,시내 광야를 떠나 기브롯핫다아와에 진을 치고”(33:16);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르비딤 광야 호렙 산이 아니라 이제는 시내 광야 시내 산에 강림하십니다(19:9, 16-19). 시내 산 정상으로 모세를 불러서 여호와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의 형식으로 전달을 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19:20-25, 20:18-21, 24:15-18).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이방인들에게 창조주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그들의 속죄와 구원을 위하여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의 일원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19:4-6).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고 선민의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그러므로 시내 산 앞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를 시작한 것입니다(24:3-8). 그리고 여호와를 그들 백성의 진중에 모시기 위하여 성막을 건설합니다(25:1-9). 그 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한해가 저물고 있습니다(40:17). 따라서 그들이 시내 산을 떠나 북쪽의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진을 시작한 것은 출애굽 제2년 정월이라고 하겠습니다(40:34-38).

(3)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출애굽 제 221일에 시내 광야 북단에 도착하고 있습니다(1:1). 그곳에서 여호와의 명령으로 12지파 별로 독자적인 군대를 조직하고 그 지휘관으로서 지파별로 한 사람씩의 사령관을 결정하고 있습니다(1:4-19). 그러한 조치로 말미암아 이제 이스라엘 12지파는 마치 12개의 부족국가와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2:3-32). 그렇게 12개의 부족국가 12군단을 갖춘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출애굽 제2220일부터 북쪽으로 행진을 다시 시작하여 바란 광야로 들어갑니다(10:11-12).

(4)  백성들은 도중에 여호와를 원망하다가 다베라에서 여호와의 불이 진중에 떨어지는 재앙을 만나고 있습니다(11:1-3). 그리고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는 함께 행진을 하고 있지만(12:38) 매우 탐욕적인 이방 족속의 유혹을 받아 고기를 달라고 여호와께 부르짖은 결과 메추라기 고기를 얻어 먹지만 그 대신에 큰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11:34a). 따라서 기브롯 핫다아와의 뜻이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하였더라”(11:34b)입니다. 시내 산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온 길에 대해서는 모세가 여기서 간단하게 한 구절로 적고 있습니다; “시내 광야를 떠나 기브롯핫다아와에 진을 치고”(33:16). 한 마디로, 시내 광야를 떠나 바란 광야 초입 기브롯 핫다와와에 진을 쳤는데 그 장소가 가장 인상적이라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민수기 제10장에서는 모세가 출애굽 제2220일에 시내 광야 북부를 출발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란 광야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10:11-12). 그리고 그곳에서 다베라의 불 재앙과 기브롯 핫다아와의 탐욕의 재앙을 만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1:1-3, 33-34).

다시 행진하여 하세롯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구스 여인을 취한 모세를 비방하는 미리암이 나병에 걸렸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12:1, 10, 16). 하세롯을 떠나 비로소 바란 광야에 진을 치게 되었다고 적고 있는 것입니다(12:16). 그 때문에 하세롯에 이르기까지 전부 시내 광야에 속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으며 실제로 대부분의 출애굽 행로를 나타내는 지도도 그렇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모세가 시내 광야를 떠나 기브롯 핫다아와에 진을 친 것만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내 광야에서 발생한 수많은 일들과 사건들을 생략하고 또한 다베라의 사건마저 생략하여 건너 뛰고 있는 기록입니다. 어째서 모세는 여기서 그렇게 간략한 기록만 남기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갈수록 그에게 별로 시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향년을 앞두고 있는 모세의 마음의 긴박함을 본문에서 엿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흔히 고목에서 꽃이 핀다고 합니다. 그 말과 같이 마지막 향년 한달을 남겨두고 모세는 실로 대단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민수기 후반의 기록이 그러하고 그의 신명기 기록이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한 사실을 훗날 80대의 노인 사도 요한에게서도 엿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에서 제4복음서와 요한서신들 그리고 계시록을 적어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남기고자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을 위하여 마지막 분초를 다투는 헌신의 모습을 보이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시내 광야에서 바란 광야에 이르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