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73강(민33:17-3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2. 13. 16:31

민수기 강해 제173(33:17-3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425()

 

출애굽 제26월경으로 보이는 가데스 바네아 반역사건의 장소를 모세는 어째서 이스라엘의 여정의 기록에 있어서 생략을 하고 있는가?(33:17-18) 그렇다면 출애굽 제40년 정월에 다시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할 때까지의 광야생활의 노정 17개 진친 곳의 의미는 무엇이며 다시 가데스 바네아를 찾은 때에는 어째서 그 지명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가?(33:19-36)

 

모세는 민수기 제33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출애굽 여정을 기록하면서 진을 친 곳의 지명 41개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지명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번째 10군데 진친 곳; (고센 땅 라암셋을 출발하여)à 숙곳(목축거주지)à 에담(광야시작)à 믹돌(바위 망대)à 마라(쓴 물)à 엘림(오아시스)à 홍해 가(물 많은 곳)à (Sin) 광야à 돕가(두드림, 간구)à 알루스(물만 있으면 빵을 구움)à 르비딤(호렙 산이 있는 광야, 쉬면서 머문 곳)

(2)  두번째 10군데 진친 곳; (르비딤을 떠나)à 시내 광야à 기브롯핫다아와(탐욕의 무덤)à 하세롯(나병에 걸린 미리암)à 릿마(가데스 입구)à 림몬베레스à 립나(흰색, 라반으로 봄, 1:1)à 릿사à 그헬라다à 세벨 산(경쾌하게 나팔을 분 아름다운 산)à 하라다

(3)  세번째 10군데 진친 곳; (하라다를 떠나)à 막헬롯à 다핫à 데라à 밋가à 하스모나(헤스몬의 다른 이름)à 모세롯(모세라의 복수형)à 브네야아간(야아간의 아들들)à 홀하깃갓à 욧바다(강이 많다)à 아브로나

(4)  네번째 11군데 진친 곳; (아브로나를 떠나) 에시온 게벨(아카바만의 입구)à 가데스(Zin 광야)à 호르 산(에돔 땅 변경)à 살모나à 부논à 오봇à 이예아바람(모압 변경, 이임으로도 불림)à 디본갓à 알몬디블라다임à 아바림 산(느보 앞)à 모압 평지(여리고 맞은 편 요단 강가, 진영이 벧여시못에서 아벨싯딤까지 펼쳐짐)

그 가운데 오늘의 본문은 하세롯에서부터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고 또한 광야생활 38년을 한 다음에 다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를 때까지의 기록을 한번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그 기록의 특징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10정탐꾼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사건이 발생한 지역 가데스 바네아의 이름이 처음의 기록에서는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처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바란 광야와 신(Zin) 광야 접경에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가 당시의 이스라엘 달력으로 출애굽 제26월경으로 보입니다(10:11, 13:20). 240만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진영이 처음 진을 친 릿마에서부터 멀리 가데스 바네아까지 펼쳐진 것으로 일부 학자들이 보고 있습니다(13:26, 33:18). 모세는 이스라엘 12지파 60만의 대군을 이끌고 바야흐로 북진하여 가나안 남부 네게브 지역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1:19-21).

2)    그런데 12지파의 사령관들이 신중론을 제기합니다. 일단 정탐꾼을 먼저 보내어 가나안 땅의 지형과 군사력을 파악한 다음에 정복전쟁에 나서자고 하는 것입니다(1:22). 모세는 여호와의 허락을 얻어서 12정탐꾼을 파견합니다(1:23-24, 13:17-20). 그들이 40일 동안 정찰을 마치고 가데스 바네아에 있는 모세의 본진으로 돌아와서 정탐보고를 합니다(13:25-26). 그런데 그 의견이 ’2:10’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3)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적들이 비록 신체가 장대하고 강해 보이지만 여호와의 약속을 믿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북진을 하자고 주장합니다(13:30, 14:6-9). 그러나 나머지 10정탐꾼은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 아니라 소출이 별로 나지 아니하는 박토라고 악평을 하면서 거인족이 살고 있는 그 땅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정복할 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13:31-33). 그 설명을 듣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에 빠집니다(14:1).

4)    여호와의 헛된 약속에 속았다고 말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불신임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서 되돌아가자고 합니다(14:2-4). 그것은 여호와를 불신하고 그 능력을 의지하지 아니한 불신앙의 죄입니다. 따라서 10정탐꾼이 여호와의 재앙으로 죽게 되고 20세 이상 기성세대는 일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모두 광야생활 40년을 기한으로 죽게 되는 심판을 받고 맙니다(14:26-38). 그와 같은 이스라엘의 반역사건과 여호와의 심판이 발생한 장소가 바로 가데스 바네아입니다(13:26, 1:19). 그러므로 그 장소를 모세는 의도적으로 건너 뛰고 있습니다(33:17-19, 12:16, 14:25). 그 대신에 먼저 진을 친 곳 릿마의 지명만을 살려 놓고 있습니다(33:18).

5)    그러한 모세의 지명의 의도적인 생략은 다베라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는 살리고 다베라는 생략하고 마는 것입니다(33:16-17). ‘다베라에서는 백성들이 여호와께 악한 말로 직접 원망을 늘어놓고 있습니다(11:1a, 3). 따라서 그 자리에서 불심판이 임하고 있습니다(11:1b). 다행히 모세의 기도로 불이 꺼지고 있지만 그것은 엄중한 경고입니다(11:2).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고기가 먹고 싶다고 백성들이 징징거리며 울던 장소가 기브롯 핫다아와입니다(11:4-6, 10). 그래서 메추라기 고기를 얻어 먹다가 재앙이 임한 곳입니다(11:33-34). 그렇지만 불심판을 당한 곳은 아니기 때문에 모세가 그 장소를 다시 열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33:16).

(2)  둘째, 다시 광야로 들어가서 20세 이상 기성세대가 모두 죽기까지 38년을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동안에 진친 장소 17군데 가운데 그 장소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두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1)    하나는 지리적인 설명입니다. 광야 또는 사막이라고 하는 곳은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입니다. 사람이 살지 아니하므로 지명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필요에 따라 이름을 붙여 놓았다가 나중에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후세에 그 장소를 다시 찾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2)    또 하나는 영적인 설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유형(流刑, 형벌을 받아 떠도는 것)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의 흔적은 기억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지워져 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의 반역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전체 광야생활이 40년에 이르게 되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의 판결이 있은 때가 출애굽 제26월경입니다(1:1, 13:20). 그러므로  38년 이상을 광야에서 떠돌면서 기성세대가 전멸을 하게 됩니다(2:14-16). 그 불행한 역사 가운데 오래 진친 장소를 모세가 열거하고 있습니다(33:19-34). 자신들은 그 장소를 알고 있지만 훗날 자손들은 그 장소를 알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 흔적을 지워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만, 에시온게벨의 위치는 알고 있습니다(33:36). 그곳은 아카바 만이 시작이 되는 지점이며 훗날 솔로몬의 조선소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왕상9:26). 모세는 38년이 지나자 출애굽 제40년 정월에 이스라엘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가데스 바네아로 다시 북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33:35-36, 14:25, 20:1)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기브롯핫다아와를 떠나 하세롯에 진을 치고, 하세롯을 떠나 릿마에 진을 치고, 릿마를 떠나 림몬베레스에 진을 치고”(33:17-19);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기브롯핫다아와를 떠나 하세롯에 진을 치고”(33:17);

1)    기브롯핫다아와탐욕의 무덤으로 불리고 있습니다(33:17, 11:34).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가 먹고 싶어서 울기 시작한 장소입니다(11:10).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못난 행동을 보인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함께 행진을 하고 있는 이방족속들이 탐욕의 누룩을 퍼뜨렸기 때문에 전염이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4).

2)    출애굽 당시에 애굽에 살고 있던 많은 이방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행동을 함께 했습니다(12:38). 그들은 출애굽 초창기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나와 함께 메추라기를 진 바깥에 보내어 주어서 그것으로 고기 맛을 보았습니다(16:13-14). 그런데 만나는 매일같이 내리고 있지만 메추라기는 공급이 끊어진 것입니다(33:6-9). 그렇게 여러 달이 흘러가자 그 옛날의 고기 맛이 그리운 것입니다.

3)    이방민족은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처지인지라 모세에게 별로 발언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충동하여 고기가 먹고 싶다고 지도자들에게 말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한 원초적인 욕구는 유혹과 충동에 약한 법입니다(3:6).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떼를 쓰면서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도 그 옛날 애굽 시절이 좋았다고 하는 억지를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11:5-10). 그것을 여호와께서는 악한 탐욕으로 보십니다(11:10). 따라서 메추라기를 주고서 그것을 먹고 있는 동안에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11:33). 그 결과 주모자들이 죽고 그 자리에 탐욕의 무덤이 생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때부터 그 지명을 기브롯핫다아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3:17, 11:34).

(2)  하세롯을 떠나 릿마에 진을 치고”(33:18);

1)    하세롯에서는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것 때문에 친형인 아론과 누나인 미리암이 들고 일어납니다(33:17, 12:1-2, 16). 모세는 일찍이 애굽의 황궁에서 제국의 상속녀인 핫셉수트 공주의 양아들로 자라났기 때문에 다민족 문화에 익숙합니다(2:5, 10, 7:21-22). 애굽인과 구스인이 같은 애굽제국의 구성원들이므로 모세는 별로 거부감이 없습니다.

2)    그러므로 모세는 미디안 족속인 십보라와 결혼도 쉽게 하고 이제는 구스 여인을 취한 것입니다(2:21, 12:1).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의 혈통의 순수성을 중시하고 있는 대제사장 아론이나 여선지자인 미리암이 볼 때에는 이상한 행동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선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는 불합격이라고 그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최고지도자의 자격과 선지자로서의 자질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입니다(12:1-2).

3)    그와 같은 혈통지상주의 사상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판단하실까요? 아론과 미리암의 생각과 달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두둔하십니다(12:6-9). 따라서 민족지상주의 사상과 여호와의 만민구원사상과는 애초부터 상당한 간격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여기서 엿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1:12-13).

4)    여호와의 진노로 분쟁의 책임을 지고서 연장자인 미리암이 나병에 걸리고 맙니다(12:10). 여호와께서는 미리암이 일주일간 격리를 당한 후에 비로소 그 수치를 벗고 나병에서 나음을 얻도록 조치하십니다(12:14). 따라서 일주일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세롯을 출발하여 다시 북상을 하여 바란 광야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12:16).

(3)  릿마를 떠나 림몬베레스에 진을 치고”(33:19);

1)    그 유명한 장소 가데스 바네아바란 광야(Zin) 광야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세롯에서 북상을 하고 있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데스 바네아에 진을 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하세롯을 떠나 릿마에 진을 치고, 릿마를 떠나 림몬베레스에 진을 치고”(33:18-19)라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릿마림몬베레스사이에 들어가야 할 장소인 가네스 바네아인데 모세가 의도적으로 생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래서 학자들은 릿마가데스 바네아의 옛날 지명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240만명이나 되는 백성이므로 릿마에서부터 진을 쳐서 그것이 가데스 바네아까지 펼쳐져 있었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을 하고 있는 가설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세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신 그 장소 가데스 바네아를 가능하면 건너 뛰고 싶은 것입니다.

3)    모세는 그러한 심판이 그의 동족들에게 다시는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간구하면서 가능하면 그 지명을 머리속에서 지우고 싶어합니다. 그 대신에 그는 38년 후에 그 다음 세대를 이끌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와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라고 하겠습니다.

4)    참고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40일 이상 체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땅으로 12정탐꾼을 밀파하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40일간이나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10정탐꾼의 반역사건이 발생하고 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북진하지를 못하고 남하를 하게 됩니다.

5)    남하를 하여 처음 진을 친 곳이 바로 림몬베레스라고 하겠습니다. 아쉽게도 그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에시온게벨로 들어가는 길목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진작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14:25).

둘째로,림몬베레스를 떠나 립나에 진을 치고, 립나를 떠나 릿사에 진을 치고, 릿사를 떠나 그헬라다에 진을 치고, 그헬라다를 떠나 세벨 산에 진을 치고 세벨 산을 떠나 하라다에 진을 치고”(33:20-24);

(1)  에시온 게벨에서 시내 산에 이르는 바닷가의 길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천히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14:25). 어차피 출애굽 40년 동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기성세대가 전부 광야에서 향년을 맞이하도록 여호와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14:28-38). 그러므로 그들의 유배지가 바로 광야입니다. 그에 따라 그들은 광야 가운데에서도 바닷가 지역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나이 반도 중앙은 거친 광야이지만 아카바 만과 수에즈 만은 홍해이기 때문에 풀이 잘 자리고 물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로 해안가를 계속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렇게 38년 동안을 지내는 동안에 17개의 지명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에시온게벨을 제외하고 나면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지명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두(冒頭)에서 두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1)    하나는 사막이나 광야에서는 사람들이 살 수가 없으므로 그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생활을 하게 된 경우에 있어서는 그 지역의 특징을 가지고 임시로 지명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광야를 떠나버리고 나면 다시 이름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생을 한 지역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불순종의 흔적은 별로 좋아하시지 아니하신다고 하겠습니다.

(3)  참고로, 여기서 립나’(Libnah)세벨(Shepher) 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립나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용어의 의미가 흰빛이기 때문에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라반’(Laban. 1:1)과 같은 장소로 보고 있습니다. 에시온 게벨과 시내 산 사이에 그 땅에서 흰빛이 나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찾아보면 립나’(Libnah)의 위치가 짐작이 될 것도 같습니다.

2)    세벨’(Shepher)의 의미는 아름다움, 또는 경쾌한 나팔등이라고 합니다. ‘세벨 산의 위치에 대해서는 시내 광야 홍해 가에 있다고도 하고 혹자는 아라비아 광야에 있다고도 하는데 여전히 자세하게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광야에서 유형(流刑)의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있고 경쾌하게 나팔소리가 울리는 기쁜 날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고난의 연속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영적으로는 살아볼 만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제나 끝까지 함께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하라다를 떠나 막헬롯에 진을 치고, 막헬롯을 떠나 다핫에 진을 치고, 다핫을 떠나 데라에 진을 치고, 데라를 떠나 밋가에 진을 치고, 밋가를 떠나 하스모나에 진을 치고, 하스모나를 떠나 모세롯에 진을 치고, 모세롯을 떠나 브네야아간에 진을 치고, 브네야아간을 떠나 홀하깃갓에 진을 치고, 홀하깃갓을 떠나 욧바다에 진을 치고”(33:25-33);

(1)  10개 정도의 지명을 모세가 나열하고 있지만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 지명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임시로 붙인 이름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지도를 그려서 그 위치를 남겨두지 아니하고 있기에 오늘날 그 장소를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2)  그렇지만 그들은 그 지형의 특징을 보고서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흥미로운 지명 몇 가지를 차제에 살펴봅니다;

1)     데라는 아브라함의 아버지의 이름자를 따온 지명입니다. 족장인 데라는 북부 시리아에서 좋은 땅을 발견하고 그 지역에 도시개발을 하느라고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있습니다(11:31).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땅이므로 데라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황량한 시내 광야라고 하더라도 다 못쓰는 땅은 아닙니다. 비록 일부에 그치고 있지만 족장 데라가 탐낼 만큼 좋은 땅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240만명 이스라엘 족속들이 충분히 쉬면서 경작을 할 수가 있는 넓은 땅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2)    하스모나하스몬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러한 지명은 가나안 땅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카비 혁명의 결과 살아 남은 유일한 아들 시몬이 주전 142년경 자신의 고향의 이름을 따서 하스모니안 왕가를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스몬의 이름 자가 모세 시대에 광야에서 지명으로 벌써 사용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3)    모세롯모세라의 복수형이라고 합니다. 모세와 어떤 관련이 있기에 그러한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두가지로 풀이를 해볼 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모세라에서 모세의 형인 아론이 죽었다고 신명기 제10장 제6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라호르 산을 의미합니다(33:38-39, 10:6). 광야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족속이 살고 있는 세일 산맥 근방에도 갔을 수가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모세를 돕는 관료를 젊은 세대로 많이 교체를 한 장소가 모세라일 수도 있습니다. 38년 광야생활 가운데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많이 죽었습니다. 새로운 모세의 관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4)    브네야아간야아간의 아들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용어는 역시 신명기 제10장 제6절에서 말하고 있는 브에롯 브네야아간의 지명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야아간의 아들들이 여러 우물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광야생활 가운데 큰 공을 세운 것입니다.

5)    욧바다강이 많다는 뜻입니다. 강물이 많이 흐르고 있는 좋은 지역을 말합니다. 마치 엘림과 같은 오아시스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떠돌다가 또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15:27). 유배생활 가운데에서도 여호와의 보살핌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넷째로,욧바다를 떠나 아브로나에 진을 치고, 아브로나를 떠나 에시온게벨에 진을 치고, 에시온게벨을 떠나 신(Zin) 광야 곧 가데스에 진을 치고”(33:34-36);

(1)  시나이 반도나 아라비아 반도는 그 중앙이 광야이며 황량합니다. 사막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안 가는 여전히 좋은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4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떠돈 지역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주로 해안 가라고 하겠습니다.

(2)  이제 모세는 출애굽 제39년쯤이 되자 아카바 만을 타고서 북동쪽으로 이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욧바다아브로나를 거쳐서 아카바 만의 입구인 에시온게벨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음식과 물을 많이 준비한 다음에 드디어 북서쪽으로 행진하여 바란 광야에 들어갑니다.

(3)  바란 광야가 끝나는 지점에 가데스 바네아가 있는데 그곳에 진을 넓게 치고 있습니다. 눈앞에는 바위산과 많은 돌들이 있는 척박한 (Zin) 광야입니다. 그 광야롤 통과하여 북진을 하면 가나안의 남부 메마른 지역 네게브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지역에는 38년 전에 자신들을 격퇴한 아말렉 족속과 가나안 족속이 살고 있습니다(14:43-45). 모세는 가데스에서 군대를 재정비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칠까 궁리를 하게 됩니다(21:1-3).

결론적으로, 민수기 제13장의 기록에 의하면 분명히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정탐꾼들이 돌아오기를 40일간이나 백성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13:17-20, 25-26). 그렇게 오랫동안 체류를 했으며 10정탐꾼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가데스 바네아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모세가 그 장소를 건너뛰고 있는 것일까요?(33:17-19)

그 고의적인 생략에 대해서는 모세가 다베라라고 하는 지명을 생략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하겠습니다(11:1-3). 백성들이 감히 불경하게도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직접 비방하고 불신한 그러한 사건이 발생한 곳에 대해서는 엄청난 저주의 장소이므로 그 이름조차 거론하고 싶지가 아니한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65:17).

다만 38년 후에 모세는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가데스 바네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호르마 전투에서 승리를 얻게 됩니다(21:1-3). 그것은 명예의 회복입니다. 따라서 그때에는 가데스 바네아의 지명을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33:36). 그러한 맥락에서 하나님말씀의 초점은 죄와 타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원의 회복과 구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같은 지명이라도 그 시기에 따라서 그렇게 의미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죄인이 회개함으로써 의인이 되었으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복음사역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출애굽 여정; 다만 르비딤 광야의 위치는 호렙 산이 있는 미디안 땅 곧 아라비아 반도 서북부라고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