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63강(민31:42-4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2. 7. 10:20

민수기 강해 제163(31:42-4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413()

 

원정군이 끌고 온 미디안 포로와 전리품의 절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여호와께 바치고 있는 양이 얼마이며 그것을 레위인에게 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31:42-47)

 

 

성공적으로 미디안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군대는 많은 포로와 전리품을 가지고 왔습니다(31:7-12).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개선을 하자 모세는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더불어 이스라엘 12지파의 지도자들을 대동하고 영접을 합니다(31:13).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앞에서 원정군들은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하고 수많은 포로와 전리품을 획득하여 개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미디안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군대의 지휘관들에게 진노하고 있습니다(31:14). 그 이유는 그들이 끌고 온 포로들 가운데 장차 화근이 될 수 있는 자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①첫째, 미디안의 사내아이들은 자라서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모의 복수를 하고자 할 것입니다. ②둘째, 미디안의 부녀자들은 죽은 남편과 가장의 원수를 갚고자 획책할 것입니다.

 특히 미디안 여인들은 바알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25:1-3, 16-18). 바알을 섬기면서 혼음을 즐기고 있는 부녀자들입니다. 그러한 음란한 우상문화가 그녀들을 통하여 다시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전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따라서 그들을 모두 척살하고 오로지 미디안 처녀들만 살려 두라고 모세가 원정군의 지휘관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31:16-18).   

모세는 여호와의 율법에 따라 원정군을 일주일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 바깥에 머물게 하면서 철저하게 청결의 과정을 거치게 합니다(31:19-20). 목욕재계를 하며 모든 의복을 빨래하여 입고 그들의 것과 포로 및 전리품은 전부 불이나 물로 그 부정을 씻어내어야 합니다(31:19-24). 그 과정을 대제사장 엘르아살이 제사장들을 동원하여 전부 감독하고 있습니다(31:21).

그리고 모세는 그 전쟁이 여호와의 전쟁임을 원정군들에게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60만 대군 가운데 단지 2%에 불과한 12,000명의 정예 기마병을 원정군으로 편성하여 미디안 5부족국가를 친 것입니다(31:3-8). 그것은 당시 이스라엘 자손 정도의 백성을 가진 미디안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땅을 정벌하고 그들을 초토화시킨 기적과 같은 승리의 전쟁입니다.

그러한 대승의 역사는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더구나 그 전쟁으로 전사한 이스라엘 원정군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투를 치르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서 생존자들을 점검한 결과 그 사실을 알고서 지휘관들이 경악을 하고 있습니다(31:48-49). 따라서 그들은 전쟁의 승리도 그들이 획득한 포로 및 전리품도 모두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면목이 없어진 지휘관들은 병사들이 개인적으로 전장에서 차지한 금붙이를 모아서 여호와께 바치고 있습니다(31:49-54). 그렇지만 영안(靈眼)이 열려 있는 모세는 진작에 그 전쟁이 여호와의 은혜로 대승을 거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명령을 받아서 포로 및 전리품의 분배를 하나님의 뜻대로 시행하고 있습니다(31:25-31).

그 가운데 주요한 점은 다음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포로 및 전리품의 절반을 12지파의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원정군이 분배 받고 있는 포로와 가축 가운데 500분의 1을 여호와께 거제물로 바치고 있으며 일반백성들의 경우에는 그 50분의 1을 바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두가지 사항을 조금 더 살펴봅니다;

(1)  첫째, 일반백성은 직접 전투에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원정군이 절반, 일반백성들이 절반, 그렇게 포로 및 전리품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여호와께서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는 두가지의 권능을 행사하고 계십니다;

1)    하나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서 전투에 나서는 자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세상적으로 그 수가 많고 무기체계가 우수하여 승리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양쪽이 모두 여호와의 말씀과 뜻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약육강식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때에는 세상적으로 강한 쪽이 승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정예병을 선발하여 그 말씀 그대로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에 나서게 되면 여호와 닛시의 역사가(17:15) 재현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①메소포타미아 다국적군과 벌인 아브라함의 전투(14:13-20), ②여호수아를 앞세워 아말렉과 벌인 모세의 전투(17:8-16), ③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요단 강 동편 아모리 두 왕국을 정복한 전쟁(21:24-35, 2:24, 3:2), ④그리고 여호와의 명령으로 미디안을 친 전투(31:1-12) 등이 모두 그러한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하나님의 전쟁으로 얻은 포로와 전리품은 모두 여호와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모든 백성들에게 그 혜택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렇지만 직접 목숨을 걸고 그 전투에 참여한 군사와 그러하지 아니한 백성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참전용사에게는 전체의 절반을 주고 그 수가 엄청나게 많은 일반백성에게는 그 나머지 절반이 돌아가게 됩니다(31:25-27).

(2)  둘째, 어째서 원정군은 500분의 1을 여호와께 바치고 일반백성들은 그 10배인 50분의 1을 바쳐야 하는 것일까요?

1)    그 이유는 직접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에 대해서는 그 공로를 인정하여 많이 주고자 하시며 적게 여호와께 바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단지 그 참전용사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동족이기 때문에 그 전리품을 나누고 있는 일반백성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10배를 여호와께 바치도록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2)    요컨대, 더 쉽게 얻은 재물이므로 더 많이 여호와께 바치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전용사의 경우에는 500분의 1조를 바치고(31:28) 일반백성의 경우에는 50분의 1조를 바칩니다(31:30a). 그것을 여호와께서는 대제사장 엘르아살을 통하여 각각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나누어 주고 계십니다(31:29, 30b).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모세가 전쟁에 나갔던 자에게서 나누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절반, 곧 회중이 받은 절반은 양이 337,500 마리요, 소가 36,000 마리요, 나귀가 3500 마리요, 사람이 16,000이라”(31:42-4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가 전쟁에 나갔던 자에게서 나누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절반”(31:42);

1)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에 참여한 용사들이 얻은 것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절반을 나누어서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31:42).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서 미디안 족속과 전쟁을 쳐서 얻은 그 귀중한 포로와 전리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나누어 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나눌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는 힘은 무엇이며 그 명분은 과연 무엇일까요?

2)    첫째, 그 힘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이기에 그 말씀을 거역하게 되면 반역이 되는 것입니다(31:25-28). 여호와께 반역하면 간단하게 이 세상의 목숨을 잃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10:28). 따라서 피조물인 인간은 그 명령에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

3)    둘째,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의 제시가 있기를 여호와 하나님께 원하고 있습니다. 그 명분을 여호와께서 제시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그 전쟁은 그들의 힘에 의하여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미디안의 5부족을 치신 것입니다”(31:3, 7-8).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원정군은 단지 그 이삭줍기에 참여한데 불과합니다(31:9-12, 4:35-37).

4)    참고로, 그것이 진실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나게 됩니다. 그들이 개선하여 군사의 수를 점검합니다. 한 사람의 전사자도 없이 12,000명이 그대로 생존하고 있습니다(31:5, 49). 지휘관들이 경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힘으로 승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이 착복한 것 가운데 금붙이를 모두 거두어서 여호와께 바치면서 잘못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31:48-54). 

(2)  곧 회중이 받은 절반은 양이 337,500 마리요, 소가 36,000 마리요, 나귀가 3500 마리요, 사람이 16,000이라”(31:43-46); 원정에 참여한 용사들이 받은 포로의 수가 16,000명입니다(31:40). 그리고 전리품이 가축으로서 양이 337,500 마리이고, 소가 36,000 마리이며, 나귀가 3500 마리입니다(31:36-39). 모세는 이스라엘 12지파 백성들이 받은 것도 참전용사들이 받은 것과 똑 같은 양이라고 여기서 그 수치를 적고 있습니다. 제시한 수치가 꼭 같은 것이므로 틀림이 없습니다(31:43-46).

둘째로,이스라엘 자손의 그 절반에서 모세가 사람이나 짐승의 50분의 1을 취하여 여호와의 장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았더라”(31:47);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그 절반에서 모세가 사람이나 짐승의 50분의 1을 취하여 여호와의 장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었으니”(31:47a);

1)    여기서는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참전용사의 경우에는 500분의 1을 여호와께 거제물로 바쳤는데 일반백성의 경우에는 어째서 그 10배인 50분의 1을 여호와께 바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께 바치는 예물이나 제물은 모두 모세가 대제사장인 엘르아살에게 주어 그것을 엘르아살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올바른 수순입니다. 그래야 대제사장이 레위인까지 잘 통솔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일반백성이 바친 거제물에 대해서는 마치 모세가 직접 레위인에게 준 것처럼 기록이 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2)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벌써 모두(冒頭, 서론 격인 앞머리의 글)에서 상세하게 설명을 한 바가 있습니다. 그 요지는 아무리 여호와께서 신위적인 능력으로 다 이겨 놓으신 전쟁에 이스라엘 원정군이 참전한다고 하더라도 전투에 나서는 용사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고한 용사들이 전리품을 많이 얻을 수 있도록 여호와께는 전체의 절반을 주고 또한 거제물을 500분의 1로 조금만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일반백성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몫이 적으며 여호와께 참전용사에 비하여 10배나 바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수고하지 아니하고 얻은 재물에 대해서는 여호와께 많이 바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입니다(4:37-38, 14:20).  

3)    두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모세가 일반백성들이 여호와께 바친 거제물을 직접 레위인들에게 나누어 준 것으로 표현이 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모두 대제사장인 엘르아살의 통제와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3:5-10). 따라서 계통적으로 보자면, 신정국가의 최고지도자인 모세가 백성들이 바친 예물이나 제물을 모두 대제사장인 엘르아살에게 주어서 원칙대로 사용을 하거나 분배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서는 그 간단한 표현 곧 엘르아살을 통하여라고 하는 구절을 생략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가지로 보입니다; 하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하기 때문에 문장을 간소화하기 위하여 그러한 문구를 적지 아니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모세가 레위인을 다른 용도로 부리고 있기 때문에 모세가 직접 레위인들에게 몫을 주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4)    참고로, 같은 취지를 담고 있는 구절로 보이지만 제29절과 제30절을 비교해보면 상당히 다릅니다. 참전용사들이 바치는 거제물은 여호와께서 모세가 대제사장인 엘르아살에게 주도록 말씀하시고(31:29) 일반백성들이 바친 거제물에 대해서는 모세가 레위인에게 주도록 명문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1:30). 그렇다면 레위인들에 대한 영향력이 대제사장인 엘르아살보다 최고지도자인 모세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레위인들이 맡고 있는 성막의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필요로 하고 있는 제물을 손질하고 성물의 소모품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성막을 분해하여 운반하고 또한 조립하여 건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명령을 받아서 평소에 실시하고 있는 레위인들의 임무입니다(4:19, 28, 33).

5)    그런데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레위인들은 성막을 경비하고 최고지도자인 모세를 경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3:38-39). 그들은 마치 모세의 친위부대와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일반백성들이 얻은 전리품의 50분의 1조를 거제물로 거두어서 형식적으로 제사장들이 여호와께 거제로 바치는 의식만 치르고 곧바로 모세가 직접 레위인들에게 배분하는 것으로 조치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이고 있는 레위인들에 대하여 격려를 아끼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도록 항상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레위인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사촌인 고라의 반역사건의 와중에서도(16:8-11, 32) 모세가 고라의 아들들을 살려 준 것으로 보입니다(26:11).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았더라”(31:47b);

1)    미디안과의 전쟁의 결과 얻은 포로와 각종 전리품의 배분에 관하여 모세는 여호와의 지침을 듣고서 그대로 시행을 했다고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31:25, 31, 41, 47). 모세가 모든 분배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른 것이며 자신은 그대로 실시했을 뿐이라고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31:47b). 그것은 두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지시사항을 하나도 어기지 아니하고 신앙 양심에 비추어서 그대로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포로 및 전리품의 배분의 건에 대하여 떳떳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포로 및 전리품의 배분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논공행상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공을 다투고 더 많은 몫을 얻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 결과 분배가 끝난 다음에는 반드시 뒷말이 있기 마련입니다.

2)    그 대표적인 경우가 누구는 전리품의 상당부분을 내놓지 아니하고 착복을 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모세도 그것이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미디안 5부족국가를 쳐부수고 미디안의 5왕과 귀족들을 모두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족과 귀족들이 지니고 있던 엄청난 보화와 귀금속에 대한 행방이 묘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대승을 거두고 개선을 한 원정군을 문초하여 따질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여호와께 말씀 드리지를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군부가 얻은 금은보화와 기타 적들의 병장기와 군수물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을 아니하신 것일까요? 아무래도 그 답은 가나안 땅을 정벌해야만 하는 막중한 중대사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에 군부의 위로와 격려를 위하여 그리고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의 사기진작과 동기부여를 위하여 그 정도의 개인적인 취득은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31:50, 53).

결론적으로, 모세는 자신의 친위부대 역할을 하고 있는 레위인들의 몫을 챙겨주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5부족국가를 쳐부수고 5왕과 많은 귀족들을 죽이고 돌아온 원정부대가 아무런 금은보화와 패물을 전리품과 공물로 내놓지 아니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모세는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일단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서 포로 및 전리품의 배분이 원만하게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록에는 이스라엘 12지파 사이에 그리고 군부와 일반백성들 사이에 갈등과 알력을 피하고자 하는 모세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눈이 밝으시고 사람들의 마음속을 통찰하시는 여호와께서는 성도들의 회개를 통하여 잘못된 것을 시정하고자 하십니다. 과연 어떠한 후속조치가 뒤따르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다음 번 강해의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글자와 문장 사이에 들어 있는 당시의 상황과 하나님의 메시지에 민감하신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