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31강(민25: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1. 14. 00:01

민수기 강해 제131(25: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37()

 

모압 광야 싯딤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닥치고 있는 영적인 타락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가? 그리고 당장 더 이상의 타락을 막기 위하여 여호와의 처방은 어떻게 주어지고 있는가?(25:1-5)

 

아르논 강 북쪽에서부터 얍복 시내를 건너 계속 북상하여 갈릴리 호수 동편에 있는 바산 왕국까지 모두 정복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남하를 하여 모압 광야로 불리고 있는 싯딤 지역에 한달 이상 머물고 있습니다(25:1a). 모세는 그곳에서 적어도 다음 두가지 작업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1)  첫째로, 출애굽 제40년 마지막 달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향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전에 자신의 후계자를 세우고 백성들과 함께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벌할 수 있도록 후계체제를 갖추어 주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도 새로운 후계자를 중심으로 군부의 지휘체계를 마련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작업에 한달 이상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로, 요단 강 동편 지역에서 아모리 두 왕국을 점령했습니다; 이제는 그 땅에 이스라엘 어느 지파가 살아야만 하는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1)    첫째,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어느 지파가 요단 강 동편 지역에 살고자 할까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의 절반의 지파가 자신들에게 그 땅을 배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32:2-5, 33, 39-42).

2)    둘째, 그렇다면 그 지파의 군대를 빼고서 요단 강을 건너가야 하는 것일까요? 모세는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께서 주시겠다고 애초에 약속하신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그러므로 12지파의 군대가 모두 서토(西土, 서쪽의 땅)를 점령하는 것이 옳습니다.

3)    셋째, 그에 따라 요단 강 동편의 땅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그 두 지파 반의 군대도 가나안 땅 정복에 참여하여야 합니다(32:6-15, 20-23). 그리고 그 두 지파 반의 백성들은 모두 아모리 족속에게서 받은 성읍에 거주하도록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32:16-19, 24-27, 33). 그러한 작업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세가 분주하게 정무를 처리하고 있는 도중에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백성들 가운데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창세기 제6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6:2-3).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자손들 특히 그 가운데 남정네들이 모압의 여성들이 은밀하게 유혹을 하자 바알을 섬기는 축제에 참석을 하고 있습니다(25:2). 농사의 신인 바알에 대하여 제사를 드린 다음에 모압 여인들과 미디안 여인들이 여사제가 되어 참석한 이스라엘 남자들과 혼음을 즐기고 있습니다(25:1b, 3a).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행사라고 미화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키는 음란의 역사입니다. 마침내 여호와의 진노를 불러오고 맙니다(25:3-5).

그 내용의 자초지종을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살펴봄으로써 다음과 같이 밝혀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또한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25: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25:1);

1)    싯딤의 위치가 특이합니다(25:1a). 염해와 요단 강이 만나는 지점의 동편이 싯딤입니다. 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광야의 이름이 여전히 모압 광야로 불리고 있습니다(24:1). 그 광야의 주인이 벌써 두번이나 바뀌고 있습니다. 아모리 족속들이 모압 사람들을 아르논 강 이남으로 밀어내고서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이제는 모세의 이스라엘 군대가 시혼 왕국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싯딤의 광야는 모압 광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광야에 유목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일부 미디안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모압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싯딤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브올 산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 신령한 산에 바알의 산당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시리아와 애굽 사이에 무역을 하는 대상들이 요단 강 동편에 있는 왕의 대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큰 도시인 세겜과 여리고에 물건을 팔기 위해서 두곳에서 요단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하나는 길르앗 지역입니다. 얍복 시내가 요단 강을 만나고 있는 그곳에서 서쪽 가나안 지역으로 넘어가면 그 북쪽에 가장 큰 도시 세겜이 있습니다(33:17-18).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상단의 일부가 그 옛날 야곱의 시대에 요셉을 노예로 사서 애굽에 판 적이 있습니다(37:17, 28). 또 하나는 싯딤에서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에 들러서 물품을 파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싯딤에서 소금을 사서 여리고에서 팔기도 하는 것입니다.

3)    돈이 많은 대상들이 지나고 있는 길목에는 위락시설과 점집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자연히 몸을 파는 여인들이 몰려들고 우상문화가 기승을 부리게 됩니다. 요단 강 하류 동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싯딤도 본래 그러한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다고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원주민들의 우상문화와 향락문화에 물들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25:1b). 그 음란문화의 만연과 종교적인 타락의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인위적인 음모의 냄새가 짙게 풍기고 있습니다. 과연 그 음모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25:2);

1)    여기서 그 여자들’(25:2a)은 앞에 나온 모압 여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25:1). 그리고 자기 신들’(25:2b)은 모압 사람들의 주신인 바알을 위시한 여러 신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아세라목상이 있습니다(왕하17:16). 지역에 따라서는 아스다롯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여신입니다(왕상11:5). 바알 신이 주신이면서 남신이기 때문에 그 아내가 되는 미의 신을 만들고 있으며 그 신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페니키아에서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아세라 목상을 많이 만들어 수출하였는데 그것을 수입하여 그리스에서는 그 미의 여신의 이름을 비너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모압 사람들이 그모스신을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으며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때로는 인신제사까지 바치고 있습니다(21:29, 왕상11:7, 왕하3:27).

2)    모압의 여인들이 바알 신과 아세라 여신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일 때에 이스라엘 남자들을 은밀하게 초대를 하고 있습니다(25:2c). 브올 산 바알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 다음에는 모압 여자들이 여사제가 되고 제사에 참여한 남자들과 산에서 잠자리를 함께합니다(25:1). 그것은 다산(多産, 소출과 생산이 많은 것)을 위한 축제라는 의미로 혼음(混淫, 서로 상대를 바꾸어 가면서 음욕을 불태우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는 절차입니다. 그러므로 피가 뜨거운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바알 신을 섬기는 제사에 참석을 하고 이어서 여사제와의 육체의 향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3)    그것은 성적인 타락이며 동시에 종교적인 타락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이방여인들과 즐기는 재미에 자신도 모르게 여호와신앙이 사라지고 육신의 탐욕과 정욕이 자신을 지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가 여호와의 진노를 불러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아래에 들어가고 맙니다(25:3-5). 그와 같은 사실을 모압의 왕과 신하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22:6, 31:16). 왜냐하면, 선지자 발람이 다시 남하하여(24:25) 미디안 족속과 함께 머물면서 모압 왕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고서 많은 재물을 얻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31:8, 16, 1:11, 2:14).   

둘째로,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25:3);

(1)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자꾸만 모압 여인들의 은밀한 유혹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밤마다 진지를 벗어나서 브올 산에 올라가 바알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여사제들과 혼음을 즐기고 있습니다(25:3a). 그들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브올의 신 바알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적인 타락이며 선민이 영적으로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선택하여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진노하시며 심판을 하고자 하십니다(25:3b).

(2)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들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창세기 제6장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 아들들과 같습니다(6:2a). 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세상 여인들의 육신의 아름다움을 보고서 밤새도록 쾌락의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6:3b, 25:1). 그 옛날 노아의 시대에 그러한 영적인 타락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패역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십니다(6:3-8). 동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심판의 원리가 똑 같습니다. 모압 여인들과 몸을 섞으며 바알 신을 섬기고 있는 육신화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쓸어버리고자 하십니다(25:3).

셋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25:4-5);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25:4);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영적으로 타락하여 모압 여인들과 함께 혼음을 하면서 바알 신을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을 심판하고자 하십니다. 그 옛날 노아의 시대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육신화된 삶에 탐닉하고 있는 그들이므로 홍수심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아 홍수 이후에 무지개 언약에 의하여 다른 방법으로 심판할 것이라고 이미 선포하신 바가 있으시기에(8:21, 9:11-17) 그 심판의 방법이 다음과 같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25:4).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2)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부 대상으로 하여 한꺼번에 심판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한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로 극소수만을 선택하여 강력하게 처벌하시고 나머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주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백성의 수령들만을 잡아서 교수형에 처하고 그 시신을 태양을 향하여 높이 매달고 있습니다(25:4a). 백성들이 태양 아래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그들의 두목들의 모습을 보고서 다시는 같은 죄를 범하지 아니하게 하고자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둘째, 교수형에 처하고 그 시신을 장대에 높이 매달아 햇빛 아래서 모든 백성들이 보도록 한 것은 그래도 자비로운 처형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경우에는 산 사람을 십자가에 매달고 태양 앞에 세워서 서서히 고통 가운데 죽어가도록 만든 극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고난 가운데 남의 죄를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 이름하여 대속의 죽음입니다. 그러한 처참한 죽음이 자신의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를 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의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는 그것을 보고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진노를 거두고 계시는 것입니다(25:4b).

(2)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25:5);

1)    일단 백성들을 대신하여 그 두목인 수령들만을 잡아서 처형을 하고 그 시신을 햇빛 아래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장대에 높이 매달아 놓고 있습니다. 그 처참한 모습을 올려다 보는 백성들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적인 타락과 영적인 타락이라고 하는 누룩의 퍼져 나감을 급하게 차단하고자 하는 처방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는 일찍이 브올 산에 올라가서 은밀하게 바알 신을 섬기고 육신적인 쾌락을 맛본 자들이 아직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다른 누룩과 같습니다. 그들도 색출하여 처형을 하여야 누룩의 퍼짐을 온전히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차원에서 모세가 자신의 수하인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18:25-26) 강력하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25:5).

2)    여기서 한가지 깨달을 수 있는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벌백계로 두목들을 모두 죽이고 그 시신을 높이 매달아 두었다고 하여 여호와의 심판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25:5의역). 일반백성들 가운데 많은 젊은이들이 피가 뜨거워서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에 대한 처벌이 없이 그냥 넘어간다고 하면 또다른 시행착오가 발생할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대속의 희생을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여호와께 고백하면서 철저하게 회개를 하지 아니하는 이상 그 죄악에 대한 개인적인 처벌은 여전히 냉혹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대충 회개하는 시늉을 하고서 똑 같은 죄악을 범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진심으로 회개를 하고 똑 같은 죄를 범하지 아니하도록 성령님을 모시고 영적인 삶, 복음전파의 삶에 매진을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처벌과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브올 산에서 열리고 있는 바알 신을 위한 제사와 그 축제의 유혹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싯딤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유혹하여 은밀하게 브올 산에 올라 바알을 섬기고 여사제들과 혼음을 즐기도록 만드는데 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인 쾌락이 이스라엘 잔영을 덮치면서 선민들의 여호와신앙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일찍이 선지자 발람이 모압 왕의 요청을 받아 브올 산에게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하시는 여호와의 신탁을 얻기를 그토록 고대하였지만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참으로 모압의 여인들은 그 일을 너무나 쉽게 성사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만큼 육신적인 유혹과 성적인 유혹이 무서운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 누룩을 제거하기 위하여 두 단계로 조치를 하십니다; ①첫째, 백성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수령들을 처형하고 그 시신을 높이 매달고 있습니다. ②둘째, 브올 산에 올라가서 바알 신을 섬긴 자들을 일일이 색출하여 처형을 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대속의 은혜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철저한 회개를 하고 시행착오를 범하지 아니하는 영적인 삶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본문의 내용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영적인 삶에 더욱 정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