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32강(민25:6-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1. 15. 02:55

민수기 강해 제132(25:6-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38()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어떤 사람을 어떠한 방법으로 미디안 여인과 함께 처리하였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으며 여호와께서는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소멸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돌이키고 비느하스의 가문에 큰 축복을 주시는가?(25:6-13)

 

언뜻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대목입니다. 아론의 대제사장직을 계승하고 있는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회막 문 앞에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온 이스라엘 청년의 뒤를 뒤쫓아가서 은밀하게 그 집에서 단숨에 창으로 두 사람을 척살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서서히 쇠퇴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지상에서 완전히 소멸시켜버리려고 하시던 계획을 도중에 취소하신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비느하스의 가문에 영원히 대제사장의 직무를 맡기신다는 축복까지 주시고 계십니다.

어째서 그러한 결정을 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깊은 이유를 찾아보기 위하여 먼저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첫째로, 때는 모세의 명령으로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이 바알브올에게 개인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을 색출하여 죽이고 있는 비상 시기입니다(25:5). 이스라엘 12지파의 진중에서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정네들 가운데 많은 수가 브올 산에 은밀하게 올라가서 바알 신을 섬기고 여사제들과 혼음을 한 사실이 발각이 되어서 처형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전염병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급속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한쪽에서는 인민재판이 진행되고 또 한편에서는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기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여호와께서 계시는 회막 앞으로 달려 나와서 부디 살려 달라고 통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25:6a).

(2)  둘째로, 그러한 시기에 한 젊은이가 겁도 없이 미디안 여인을 동반하여 그 회막 앞 집회에 참석을 하고 있습니다(25:6b). 아무도 그 젊은이를 제지를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청년은 물론 그 이방여인도 젊지만 높은 신분의 사람들입니다(25:14-15). 그 모습을 보고서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창을 쥐고서 은밀하게 그 두사람의 뒤를 따라갑니다. 자신들의 장막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비느하스가 단숨에 두 사람을 창으로 척살하고 맙니다(25:7-8a). 그것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살인 행위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를 않습니다(25:11-13).

(3)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살인의 동기를 보고 계십니다. 비느하스의 마음속에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 그렇게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인지를 먼저 판단하십니다(삼상2:30, 16:7). 그 결과 비느하스의 행동이 여호와 보시기에는 정당하며 칭찬할 만하다고 평가를 하신 것입니다. 그 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이방여인들의 유혹 때문에 바알 신을 섬긴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색출이 되어 인민재판을 통하여 죽임을 당하고 있는 비상시국입니다. 동시에 여호와의 진노로 진중에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참상을 보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여호와께 부디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25:6). 그런데 그 장소에 이스라엘의 유력한 가문의 젊은 족장이 미디안 여인을 대동하고서 감히 참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의 신분을 보고서 아무도 제지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25:14). 그 모습을 보고서 비느하스가 거룩한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25:11). 여호와 앞에서는 세상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일합니다. 그런데 힘없는 백성들만 처벌의 대상이 되고 힘이 있는 자는 버젓이 치외법권을 가진 특수층이라고 과시를 하고 있는 것이 여호와 앞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2)    둘째, 비느하스는 그를 인민재판으로 시끄럽게 처벌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조용하게 그자를 징계하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은밀하게 창을 가지고 그 뒤를 추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들의 장막에 들어가자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창으로 척살을 하고 있습니다(25:7-8). 그 이유는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하여 그 사람을 죽이고 싶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 역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두 사람을 죽인 책임을 자신이 지더라도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율법의 적용 앞에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작업이 여호와 앞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3)    셋째, 비느하스의 방법이 굉장히 과격합니다. 과연 여호와께서 그러한 과격한  심판의 권한을 비느하스 개인에게 주신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모세가 적고 있는 본문의 내용 가운데 비느하스의 처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가 다음과 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천명이었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25:8b-13). 한마디로, 모세가 레위인으로 하여금 칼을 가지고 금송아지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라고 하여 3천명을 죽임으로써 여호와께 속죄의 계기를 마련한 경우와 흡사하다고 하겠습니다(32:25-2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25:6);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회막 문에서 울 때에”(25:6a);

1)    모세의 회막 안에는 여호와를 섬기는 성막이 건립이 되어 있습니다. 성막의 지성소에는 여호와께서 임재하여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앞에 살려 달라고 간청하기 위하여 속속 회막 앞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살려 달라고 여호와께 매달리는 이유는 두가지 때문입니다;

2)    첫째,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모압 여인들과 미디안 여인들의 유혹을 받아 브올 산에 은밀하게 올라가서 바알 신을 섬기는 제사에 참여하고 여사제들과 혼음을 즐겼기 때문입니다(25:1-2). 그 때문에 이스라엘 지파의 수령들이 참형을 당하고 그 시신이 장대에 달려 있습니다(25:3-4). 그리고 모세의 명령으로 재판관들이 바알 신을 섬긴 자들을 색출하여 인민재판에 회부하고 있습니다(25:5). 따라서 백성들이 부디 여호와께서는 진노를 거두시고 형제들을 죽음에서 살려 달라고 울면서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3)    둘째,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육신의 정욕을 쫓아 바알 신을 섬기고 이방여인들과 혼음을 하였기에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의 질투가 엄청난 진노를 초래하고 있습니다(20:3-5, 25:11). 그 때문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이스라엘 진영을 휩쓸고 있습니다(25:8-9). 죽음의 그림자가 이스라엘 12지파 백성들에게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여호와의 전이 있는 회막 앞으로 몰려와서 부디 용서하여 달라고 빌면서 통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25:6b);

1)    이스라엘 남자들이 바알 신을 섬기고 이방여인들과 제멋대로 몸을 섞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참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25:1-5, 8-11). 그 때문에 지금 회막 문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려와서 모세와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부디 여호와께 중보의 기도를 드려서 더 이상 백성들이 죽는 것을 면하게 해달라고 눈물로써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25:6a). 그러한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아니하는 일이 하나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가 정장을 한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당당하게 회중 가운데로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25:6b).

2)    그 남자는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사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이 시므온 지파의 족장이며 그 미디안 여인도 미디안 족장의 딸이므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서는 자신들을 해칠 수 있는 자가 없다고 자신을 하고 있습니다(25:14-15). 그 자의 위세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를 못하고 있을 정도입니다(25:6).

(3)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25:6c); 광야생활 40년을 지내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질서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나 12지파별로 모입니다. 그리고 12지파별로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파의 형제들 가운데 줄을 서고 있을 때에 가장 안전합니다(10:28). 방금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회막 앞 집회에 참석을 하고 있는 그 이스라엘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신분이 시므온 지파의 족장이기 때문에 형제들이 있는 그 지파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25:6c, 14).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모세가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온 그 자를 체포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시므온 지파에 대한 도전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는 그 자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둘째로,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천명이었더라”(25:7-9);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25:7);

1)    6개월 전에 초대 대제사장 아론이 호르 산에서 123세로 향년을 맞이하고 그 예복을 3남인 엘르아살이 물려 받았습니다(20:25-29, 33:38-39). 아론의 장남과 차남은 여호와께 다른 향불을 사용하다가 일찍이 죽고 말았습니다(10:1-2). 그러므로 3남인 엘르아살이 맏이 구실을 하고 있으며(3:4) 부친 아론의 뒤를 이어서 율법에 따라 대제사장이 된 것입니다(29:29). 그러므로 비느하스는 현직 대제사장의 아들입니다. 대제사장의 아들로서 30세가 되면 위임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됩니다(4:23).

2)    그런데 제사장 비느하스라고 하는 표현이 아직 없는 것으로 보아 비느하스는 20대의 청년으로 보입니다. 비느하스는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에서 레위인 청년들을 지휘하면서 성막을 지키고 최고지도자인 모세와 대제사장인 부친을 호위하는 친위대의 간부로 보입니다(3:38).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병기를 회막 무기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비느하스는 은밀하게 무기고에서 창을 들고 와서 그 문제의 사나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시므온 지파의 백성들에게 앉아 있던 그 자가 회막 앞을 벗어나고자 하는 광경을 비느하스가 보고서 그 뒤를 따르고자 합니다(25:7).

(2)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25:8);

1)    그 남자는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서 자신의 뒤를 밟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심을 하고서 시므온 지파의 진영으로 오자 자신의 막사를 찾아서 그 미디안 여인과 함께 들어갑니다. 여기서 한국어 성경은 그 남자의 장막을 막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번역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남자는 시므온 지파의 족장의 한 사람이므로 일반백성들의 장막보다는 훨씬 넓고 큰 것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종의 병영의 간부용 막사와 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2)    비느하스는 그 사람의 장막으로 들어서자 마자 창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6개월간 아모리 족속들과의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21:34-35). 따라서 그의 창솜씨는 날카롭기가 그지 없습니다. 별로 시간적인 간격을 두지 아니하고 두 사람의 배를 꿰뚫고 있습니다. 비느하스는 그 두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다만 그는 이스라엘의 군인으로서 여호와의 뜻을 받들어 아모리 족속들과 전투를 수행했으며 여기서도 미디안 여인을 취하고 이방의 신을 섬기고 있는 패역한 자를 척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과 명령에 따른 것이므로 주저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3)    그와 같은 비느하스의 심중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여다보십니다. 십계명에 따르면 창을 들고서 장막에 들어가 두 사람을 죽인다고 하는 것은 살인죄를 범한 것입니다(20:13). 그러나 그 의도가 모세의 명령에 따라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과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한 이방 여인들을 죽인 것이기에 영적인 전쟁의 일환으로 간주가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남자의 신분이 높아서 모세조차 함부로 처형을 하라고 명령하지를 못하고 있는데 비느하스가 은밀하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심판을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살인죄의 책임을 누가 지게 되는 것일까요? 비느하스가 대신 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25:13). 그와 같은 각오로 여호와의 뜻을 실천한 것이기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창궐하고 있는 전염병을 그치게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5:8).

(3)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천명이었더라”(25:9); 이스라엘 자손들은 약 240만명으로 추정이 됩니다(12:37, 1:46). 그 가운데 전염병으로 죽은 수가 24천명입니다. 그러므로 인구의 1%가 여호와의 진노로 전염병에 의하여 죽은 것입니다. 만약 비느하스가 그 살인의 죄과를 자신이 지고자 결심하고서 그 시므온 지파의 족장과 미디안 족장의 딸을 한꺼번에 죽이지 아니했다고 하면 여호와께서는 전염병의 전파를 막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셋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25:10-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25:10-11a);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    첫째,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순전하게 여호와를 전심으로 섬기고자 하는 그 마음에 의지하여 큰 일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미디안의 우상을 따르며 미디안 여인을 취한 시므온의 족장 하나를 그 여인과 함께 은밀하게 척살했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십계명의 규정에 따르게 되면 그것 역시 살인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우상을 미워하는 여호와의 질투심에 의지하여(20:5) 결행한 것이기에 달리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3)    셋째, 그러나 살인죄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전쟁에서 적들을 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역사 가운데 어떻게 보응하실까요?(32:34)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양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절실하다고 하겠습니다(1:29).

(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25:11b);

1)    시므온의 족장의 한 사람인 그 자가 감히 미디안 여인까지 대동을 하고서 여호와께서 계시는 회막 앞까지 출입을 하고 있습니다. 미디안 지파는 자신들의 족장이므로 형제로서 보호를 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지파 사이의 분란을 원하지 아니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내려다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십니다.

2)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그 두 사람을 뒤따라가서 은밀하게 척살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여호와께서는 스스로의 진노를 거두고 계십니다.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마음을 알고서 행동을 하였기에 그 의로운 행위를 높이 산다는 말씀이십니다.

3)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느하스의 의로운 격분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고 그 때문에 온 백성들에게 만연이 되고 있는 전염병 심판을 멈춘다고 말해주라고 하십니다. 비느하스의 희생적인 의분과 결행을 귀하게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소멸시켜버리고자 하신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그와 같은 사례가 시내 산 위에서 모세의 경우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동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면서 모세는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시고 그들을 대신 용서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2:32).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시는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1:29, 3:13-1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대속의 삶을 귀하게 보시고 백성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시는 것입니다.  

넷째로,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25:12-13);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25:12-13a);

1)    비느하스는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여호와의 질투에 의지하여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 자를 처벌한 자입니다. 여호와만을 섬기는 것이 이스라엘이 사는 길이며 온세상에 여호와의 구원의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관건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비느하스의 신앙을 계승하는 그의 후손들에게 여호와께서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영원히 계승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언약이 과연 역사 가운데 어떻게 성취가 되고 있는 것일까요?

2)    첫째, 다윗대왕의 시대가 되면 두 사람의 대제사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다말의 후손으로서 대제사장이 된 아비아달입니다(삼상22:20, 삼하20:25). 또 한 사람의 대제사장은 엘르아살의 뒤를 이은 비느하스의 후손인 사독입니다(삼하20:25). 그런데 아비아달은 군부의 실력자 요압과 함께 다윗대왕 말기에 왕자 아도니아를 신왕으로 옹립합니다(왕상1:7). 그것은 솔로몬 왕자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하는 다윗대왕의 뜻에 어긋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대왕은 친위대장 브나야 및 대제사장 사독에게 부탁하여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아도니아의 반역을 평정하게 합니다(왕상1:32-53). 그 결과 아도니아의 반역은 실패하고 대제사장은 사독의 후손으로만 임명하게 되는 전통이 생겨나게 됩니다(왕상2:26-27, 44:15).

3)    둘째, 평화의 언약과 영원한 제사장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가 되며 그 제자들에 의하여 승계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베드로는 훗날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4)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비느하스의 집안과는 어떠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가요? 의사 누가가 추적하고 있는 복음서의 자료에 의하면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가 초대 대제사장인 아론의 후손입니다(1:5, 36). 마리아가 엘르아살의 후손인지 아니면 이다말의 후손인지는 분명하지 아니하지만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인 사가랴 및 그의 아내인 엘리사벳과는 친족입니다. 그러므로 비느하스의 후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5)    참고로 아비야 반열은 24반차에 있어서 8번째입니다(대상24:10). 그렇지만 그 조상이 사독인지 아니면 아비아달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조상을 엘르아살과 이다말 형제로 나누게 되면 그 비중이 16:8’이 되므로(대상24:4) 아무래도 엘르아살의 후손일 가능성이 2배나 된다고 하겠습니다.

(2)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25:13b); 모세는 하나님을 위한 질투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속죄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이 세상에 구원과 속죄의 은혜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해석을 해보면,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을 섬기는 신앙, 나아가서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앙은 일체 백성의 속죄와 구원의 효과를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신앙은 오로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게 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없으며 속죄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소멸의 운명이 될 따름입니다. 그와 같은 분명한 메시지가 비느하스의 거사 가운데 숨어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비느하스는 자신이 동족을 해치는 잘못을 범한다고 하더라도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이방여인과 몸을 섞고 있는 이스라엘의 한 족장을 척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비느하스의 분노가 개인적인 원한관계가 아니라 순전한 여호와의 질투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하십니다.

나아가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우상문화를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청산하고자 하는 비느하스의 거사가 여호와의 마음에 들었기에 전염병의 재앙을 거두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직분을 앞으로 비느하스의 후손인 사독의 가문에게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실제로 솔로몬 시대부터 비느하스의 후손인 사독의 가문에서만 대제사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전통 이외에 더 큰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왕같은 제사장인 성도들은 비느하스와 같은 거룩한 분노를 느끼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속죄의 길과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고 하는 진리를 파수하여야 합니다. 그 진리를 훼손하면서 우상문화와 영합하고 있는 일체의 행위를 청산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기본적인 신앙에 신실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대제사장의 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