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29강(민24:15-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1. 12. 11:35

민수기 강해 제129(24:15-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35()

 

선지자 발람은 훗날 이스라엘이 주변국의 백성들을 정복하면서 모압과 에돔까지 정벌한다고 예언하고 있음(24:15-29).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인 에돔, 장조카 롯의 후손들인 모압과 암몬을 일체 침략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여호와의 뜻은 어째서 변경이 되고 있는가?(2:4-6, 9, 19, 22:2-6)

 

본문에서 선지자 발람이 모압 왕에게 전달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예언은 그 내용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로, 어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될 수 있는지를 먼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24:15-16);

1)    첫째,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여(24:2) 발람처럼 영적으로 눈뜬 소경의 신세를 면한 자입니다(24:15).

2)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전파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성취가 있는 자입니다(24:16a).

3)    셋째, 전능하신 하나님을 환상 가운데 만나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자입니다(24:16b).

4)    넷째,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어 살아감으로써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그 창조의 능력에 눈을 뜬 자입니다(24:16c).

(2)  둘째로, 선지자들에게 계시와 예언의 말씀을 주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라고 하는 지시대명사로 지칭하고 있습니다(24:17a).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는 ①첫째, 먼 훗날에 이 세상에 오십니다. ②둘째, 야곱에게서 나타나는 별입니다. 야곱에게는 12아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레위가 있습니다. 레위의 딸 가운데 마리아가 있으며 그 몸을 빌려서 메시아가 이 세상에 성육신하게 됩니다(1:5, 30-38). 그의 의붓아버지는 다윗의 후손인 목수 요셉입니다(1:18-25).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야곱의 자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로, 야곱의 후손 가운데서 하나의 별이 나타나서 온 세상을 비추게 되는데 그 전에 이스라엘에서 한 사람의 통치자가 나타나서 주변국들을 정복하는 역사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24:17b).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 베들레헴에서 야곱의 후손으로서 태어나실 때에 메시아의 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2:1-12). 동방박사들이 그 별을 따라서 먼 길을 찾아옵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보고서 예물을 드리고 경배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3:13-17).

2)    둘째, 훗날 이 세상에 오시는 만민구원의 메시아를 미리 흉내를 내게 되는 것이 다윗의 별입니다. 그는 선민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그리스도 예수가 아닙니다. 다윗은 오직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만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변의 적들을 평정하고 선민의 제국을 이 세상에 건설하기 위하여 온 사람입니다. 다윗이 바로 유다 지파에서 나타난 이스라엘 제국의 건설자이며 그 통치자입니다. 그 사실을 발람이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24:17).

(4)  넷째로, 에돔과 모압 등에 대해서는 일찍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은 모두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거나 장조카인 롯의 후손들이므로 일체 침범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2:4-6, 9, 19) 그 명령에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24:17-18). 과연 그러한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 요인이 무엇일까요?(22:2-6)

1)    첫째, 그 이유는 에돔과 모압과 암몬 등이 그들의 이웃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망하게 하고자 우상문화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버리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진작부터 모압 왕 발락에게서 다음과 같이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 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 먹으리로다 하니, 그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 편에 거주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22:2-6).

2)    둘째, 그러한 사정의 변화가 발생하자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이 정책을 변경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찌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29-30).

(5)  다섯째로, 야곱에서 나타난 주권자는 이 세상의 남은 자들을 모두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24:19). 그가 누구일까요?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는 권한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사실을 그의 복음서에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1-29).

2)    둘째,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사도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십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24:15);

(1)  아람 출신의 선지자 발람이 고향으로 떠나기 전에 모압 왕에게 장래 모압 왕국 및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를 예언으로 말해주고자 합니다(24:14). 그와 같이 브올의 아들인 발람이 미래지사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영적으로 눈뜬 소경이었으나 지금은 영안(靈眼, 영적인 눈)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24:15). 어째서 그러한 변화가 발생한 것일까요?

(2)  그 연유는 발람이 브올 산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하면서 멀리 펼쳐져 있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진지를 내려다 보고 있는 도중에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미래지사를 볼 수 있도록 해주셨기 때문입니다(24:1-3). 그러한 상세한 배경설명을 생략한 채 여기서 선지자 발람은 단지 자신처럼 육신의 안목 때문에 평소 감기어 있던 영안이 하나님의 은혜로 열리게 되면 예언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24:15).

둘째로,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24:16);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24:16a);

1)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여 영안이 바로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들은 말씀의 뜻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전파할 수 있을 때에 영안이 열리게 됩니다(24:16aa). 예를 들면, 초대교회에 있어서 집사 스데반이 그러합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전파하니, 이른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6:8-10).

2)    발람이 그 말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신비에 대하여 지식적으로도 알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24:16ab). 그와 같은 경우를 훗날 예수님의 사례를 참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12세가 되었을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랍비들과 함께 앉아서 히브리정경의 말씀을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2:46-50). 하지만 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서 그가 공생애를 시작한 것은 나이 30세쯤 되었을 때입니다(3:23)”.

3)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며 스스로 연구하여 하나님의 복음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그 깨달음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으로 설명해주는데 있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지성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24:16ab)라는 말속에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24:16b);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공부와 연구만 오래 많이 한다고 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에 대하여 영안이 열릴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임재를 하셔야만 합니다. 그 결과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세계와 인간의 미래를 보게 되는 영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환상 가운데 만난 모세(3:1-5), 이사야(6:1-9), 에스겔(1:1-2:2) 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3)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24:16c);

1)    여호와 하나님을 환상 가운데 만나서 선지자가 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선지서를 남긴 선지자는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선지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항상 임재를 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영의 내주 역사하심을 계속 경험하게 될까요? 그 비결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24:16c).

2)    여기서 엎드린다고 하는 것은 선지자가 주인이신 여호와 앞에 종의 자세로서 신앙생활을 계속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다고 하여 함부로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전파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자신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서 그 뜻을 다시 물어야만 합니다(17:7-10, 22:39-43). 그렇게 종의 자세로 엎드려서 주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어 나갈 때에 영적인 눈이 감기지 아니하고 계속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24:17);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24:17a);

1)    브올 산에서 선지자 발람이 멀리 북쪽에 펼쳐져 있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진지와 그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여호와의 성막을 바라보고 있습니다(24:1-2). 그때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예언을 하게 됩니다(24:3). 발람에게 여호와의 계시의 말씀이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계시의 말씀을 발람에게 주고 있는 자가 누구일까요? 그 정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계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한 마디로,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모든 계시의 내용은 성자(聖子, son of God)이신 그리스도의 소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발람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듣고 있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의미에서 본문에서의 그리스도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24:17aa). 그리고 발람의 예언 가운데에서는 당장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두가지 담겨 있습니다(24:17ab); ①하나는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발람의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가까운 미래도 아닙니다. 상당히 먼 미래에 오신다고 하는 예언입니다. 실제로 발람은 주전 15세기의 인물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로부터 14백년 이상이 지난 시점입니다. ②또 하나는 메시아의 성육신을 증거하고 있는 그 별은 야곱에게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입니다(2:2, 10). 그것은 그리스도가 야곱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은 야곱의 셋째 아들인 레위의 자손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이 세상에 태어나십니다(1:30-36).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아들로 호적에 올리고 있는 자는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의 자손인 목수 요셉입니다(1:18-25, 2:1-7). 

(2)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24:17b);

1)    모압 왕 발락의 관심사는 먼 훗날에 구원자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그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몇 십년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과 모압의 백성들 사이에 어떠한 일이 발생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입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선지자 발람이 이제부터 그 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시작합니다;

2)    첫째,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을 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되는 때는 그들에게서 강력한 하나의 통치왕조가 성립이 되는 때라는 것입니다(24:17b).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왕정을 실시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일종의 신정국가이므로 여호와가 그들의 왕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여호와를 대리하여 모세가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2지파가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1:1-16).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게 되면 통치의 규를 독점적으로 차지하게 되는 왕조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 왕조의 왕들이 모압과 전쟁을 벌일 것이며 모압을 점령할 것이라고 하는 발람의 예언입니다.  

(3)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24:17c);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왕조를 이루게 되면 그 힘은 모압 정도를 정복하는데 그치지 아니한다고 발람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점령할 것입니다. 창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중동 땅을 중심으로 하여 셋의 자손들이 사방으로 뻗어가고 있습니다(4:25-26, 5:3-6:2). 그들의 땅을 모두 점령하는 대 영웅이 이스라엘의 왕조에서 나타난다고 하는 예언입니다. 아무래도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 제국 시대를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넷째로,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24:18-1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24:18);

1)    선지자 발람이 에돔을 이스라엘의 원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세오경에 나타나고 있는 표현과는 정반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신명기에서 에돔을 이스라엘의 동족이라고 부르십니다(2:4-5). 그리고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장조카인 롯의 자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9, 19).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동족인 에돔 족속과 전쟁을 해서는 안되며 아브라함의 친척의 자손인 모압과 암몬과도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모세는 민수기에서 에돔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0:14).

2)    참고로, 그러한 기록을 첨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며 이르되, 당신이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20:14), “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2:4-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2: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2:19).

3)    그런데 훗날 모압과 암몬 그리고 에돔이 먼저 이스라엘 12지파를 침략하면서 괴롭히기를 시작합니다. 200년이 넘는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12지파가 주변국들의 침략에 엄청나게 고난을 당한 시기입니다. 그러한 시기가 지나게 되면 대 사사 사무엘의 시대에 들어와서 상황이 달라지기를 시작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동족이며 친척의 후손들이라고 하여 사정을 봐주지를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상문화를 이스라엘에 퍼뜨리고 영적으로 타락을 시키는데 앞장을 서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상 제2장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찌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29-30).

3)    그와 같은 여호와의 정책의 변화의 조짐은 모압 왕 발락에게서 벌써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버리신다면 전쟁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낼 궁리에 여념이 없습니다(22:6, 11, 24:10).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세를 보인다면 언제라도 전쟁에 돌입하고자 하는 발락 왕입니다. 그리고 훗날 선지자 발람이 묘한 꾀를 제공해오자 그것을 채택하여 미디안의 장로들과 함께 바알 우상문화를 교묘하게 이스라엘 진영에 퍼뜨리게 됩니다(25:1-3, 31:16). 그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이스라엘 군대에게 미디안 땅을 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31:1-2).

(2)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24:19);

1)    이스라엘 왕국과 모압 왕국 사이의 사활을 건 전투,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러 주변국들을 정벌하여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일 등이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어느 왕국이 전쟁을 통하여 주변국을 점령하고 패권을 행사한다고 하면 그것은 선민의 나라이든지 아니면 이방인의 나라이든지 그 통치의 형태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정복자들은 피정복민의 재산을 착취하고 조공을 받으며 고혈을 빨면서 호화사치를 누릴 따름입니다. 세월이 흘러서 그들의 관계가 역전이 된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행태가 반복이 될 따름입니다.

2)    그러므로 그러한 피의 역사와 착취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청산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타나고 있는 선지자 발람의 예언이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24:19)라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게 되면 하나님이 공의의 정신을 실현할 것이므로 그와 같이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인류의 역사는 멸절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그러한 예언은 선지자 이사야의 기록에서도 다음과 같이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11:4-6).

결론적으로, 선지자 발람의 예언의 의미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영적으로 어떠한 상태에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예언을 할 수가 있는지에 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2)  둘째, 선민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타락시키고자 하는 주변국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철퇴를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3)  셋째, 어느 나라이든지 강대국이 되어 약한 나라를 착취하는 것은 선민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별로 다르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그러한 역사의 반복은 끝이 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피곤한 역사의 반복에 휩싸이지 마시고 그리스도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그 제자로 힘써 일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