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27강(민24:6-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1. 11. 03:00

민수기 강해 제127(24:6-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32()

 

선지자 발람이 브올 산에서 하나님의 영의 감동으로 선포하고 있는 예언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이 어떻게 들어 있는가?(24:6-9)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에 대하여 선지자 발람이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거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아름다운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1)    첫째, 배산임수(背山臨水,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서 바람을 막아 주고 그 앞에는 내와 강이 흘러 물걱정이 없는 복지를 말함)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니 그 거처와 부락들이 보기에 아름답다는 것입니다(24:5-6a).

2)    둘째, 여호와께서 건축자재로 백향목을 주시고 부패를 방지하도록 침향목을 주시니 그것으로 집을 짓고 또한 성전을 짓고서 살고 있는 선민들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24:6b).

(2)  둘째로, 여호와의 축복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넘쳐서 그들이 주변국들에게 여호와의 신앙을 전파하며 내침하는 적들을 출애굽 당시 아말렉 족속을 물리쳤듯이 그렇게 여호와의 도움으로 크게 징계할 것입니다(24:7).

(3)  셋째로, 애굽 제국의 황제인 바로를 굴복시키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 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호자가 되시므로 이 땅에서는 이스라엘을 대적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24:8).

(4)  넷째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지만 반대로 저주하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돌아갈 것입니다(24:9). 그러므로 선지자 발람의 예언의 결론은 이스라엘 자손을 저주하려고 하지를 말고 그들을 축복하면서 평화공존을 모색하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의 진언(陳言, 높은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드리는 것)을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으로 모압 왕 발락에게 전해 주고 있는 자가 선지자 발람입니다. 따라서 발람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고 발락 왕이 모세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친선을 도모한다면 그 나라가 오래가겠지만 그 반대로 적대적인 관계로 발전한다면 모압의 장래는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지자 발람의 예언의 결론은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3).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끝까지 살아가게 됨으로써 그가 가는 곳마다 이방 땅에 여호와의 복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그가 여호와의 신앙을 버리고 살아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에 여호와의 선지자로 신실하게 살아가지 아니하게 된다면 여호와의 축복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유추를 해보자면, 고향으로 돌아가던 선지자 발람이(24:25) 다시 남하하여 모압과 미디안의 장로들에게 많은 대가를 받고서 이스라엘 장정들을 영적으로 타락시키는 묘책을 알려준 것으로 보입니다; “아름다운 모압과 미디안의 여인들을 싯딤으로 보내어 우상인 바알 신을 섬기는 벧브올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을 초대하십시오. 이스라엘 남자들이 바알을 섬기는 여사제들과 혼음을 하게 되면 성적인 타락이 영적인 타락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25:1-3).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쇠퇴하게 될 것입니다”(25:4-5, 9). 그것이 이름하여 발람의 꾀, 교훈, 또는 발람의 유혹으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31:16, 1:11, 2: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24: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24:6a);

1)    선지자 발람은 느보 산과 싯딤 사이에 있는 브올 산에서 싯딤 모압 광야에 넓게 진을 펴고 있는 이스라엘 12지파의 모습을 보고서 여호와의 영의 감동을 받아 지금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23:28, 24:2-3). 그러므로 그의 예언 가운데에는 당연하게 훗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훌륭한 거주지를 마련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2)    마치 환상처럼 그가 투시하고 있는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의 주거지의 모습이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24:6a)라고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주거지는 가나안 땅의 산지가 아니라 그 기슭에 해당하는 골짜기에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을 뒤의 높은 산들이 바람을 막아 주고 있어 따뜻합니다. 그리고 그 마을 앞에는 내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물은 식수로도 사용이 되고 농업용수로도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언제나 마르지 않는 강이 마을 앞에서 흐르고 있으니 얼마나 살기가 좋은지 모릅니다. 마치 그 옛날 에덴동산과 같이 아름다운 풍경입니다”(24:6a, 2:10).

(2)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24:6b);

1)    그렇게 좋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습이 무엇과 같을까요? 선지자 발람은 예언을 통하여 그 모습이 마치 백향목이나 침향목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4:6b). 여기서 백향목은 중동 땅에서 가장 좋은 목재입니다. 그 나무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자 솔로몬 대왕이 두로 왕 히람의 협조를 구하고 있을 정도입니다(왕상5:6, 8).

2)    침향목은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에 사용하는 침향을 만드는 재료입니다. 시신의 부패를 막고 역겨운 냄새를 향내로 바꾸어 주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침향이 필요합니다(19:39). 그것은 값비싼 재료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세상의 부패를 막고 거룩한 향기를 풍기는 침향목과 같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백향목과 같은 기둥들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그의 왕아각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흥왕하리로다”(24:7);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24:7a);

1)    고대 농업사회에 있어서 물은 생명수와 같습니다. 백성들이 식수로 사용하고 농민들이 농업용수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목축업자들은 물이 있어야 초지와 광야에서 가축을 키울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물이 풍부한 땅이라고 하는 생산기반이 갖추어져야 백성들이 풍년을 구가하면서 강가에서 문명의 꽃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창세기 제2장에서는 세상의 문명을 발생시키는 큰 강들의 수원지가 에덴동산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10-14).

2)    그와 같이 중요한 강물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그 땅에서부터 발원이 되고 있다고 선지자 발람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24:7aa). 그것은 마치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 좌정하여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와서 강을 이루고 그 강가의 모든 생물을 살리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22:1-2).

3)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온 세상에 두가지의 이익을 주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세상적인 풍요이며 ②또 하나는 영적인 충만입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물통에서 물이 넘쳐서 이웃나라의 강물이 되고 있다고 이미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미치고 있는 영적인 생명살림의 복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구원의 복음이라는 씨앗으로(8:11) 그들의 강줄기를 따라 퍼져 나가는 것으로(11:1)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씨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24:7a).

(2)  그의 왕아각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흥왕하리로다”(24:7b);

1)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그 말씀대로 백성들을 지도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능력의 지팡이를 모세에게 맡겨서(4:17) 바로를 굴복시키시고 홍해를 가르시며 또한 전쟁에서 승리를 얻도록 역사하십니다.

2)    실제로 갓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의 무법자인 아말렉 족속들이 기습공격을 했다가 대패(大敗, 크게 패함)를 한 적이 있습니다(17:8-13).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한 이스라엘 장정들이 거둔 승리가 아니라 모세가 산에 올라 여호와를 향하여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두 팔을 높이 들자 기적적인 승전이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한 아말렉 왕 아각은 영원히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24:7ba). 그것이여호와 닛시의 의미입니다;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17:16). 아말렉 족속 뿐만이 아닙니다.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든 이방나라들이 패망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흥왕(興旺, 흥하고 왕성해짐)할 것입니다(24:7bb).

셋째로,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의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24:8);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24:8a);

1)    모세와 아론이 처음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를 알현하고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바로는 코웃음을 쳤습니다(5:1-2). 노예로 전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호신이 여호와라고 하니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애굽인들의 황제인 바로 자신의 상대가 도저히 되지를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수호신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섭리자라고 하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그 결과 여호와의 명령에 불응하는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여호와의 진노로 10가지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애굽제국의 모든 신들도 여호와의 진노 앞에 벌벌 떨 따름입니다(12:12). 그와 같은 역사를 선지자 발람이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24:8a);

(2)  그의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24:8b);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십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 안에 머물러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만 하면 승전은 그들의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을 침범하는 적들은 다음 3가지의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24:8b); ①첫째, 그들의 나라가 이스라엘에 의하여 망하게 됩니다(21:3, 35). ②둘째, 그들의 왕들이 잡혀서 이스라엘에 의하여 능지처참을 당하게 됩니다(삼상15:33). ③셋째, 이스라엘의 군대를 피하여 도망을 치지만 날아오는 화살에 죽임을 당할 뿐입니다(21:24, 32).

넷째로,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24:9);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24:9a);

1)    중동 땅에서 들판을 지배하는 짐승이 수사자와 암사자입니다. 훗날 사사시대에 단 지파의 영웅 삼손이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인 이야기는 유명합니다(14:6). 삼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그러한 능력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 있어서는 여전히 들판의 지배자는 사자들입니다. 그들은 천적이 없으므로 느긋합니다. 눕고 싶으면 아무데서나 눕고 앉아서 쉬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2)    그렇게 느긋하게 있지만 암사자와 수사자에게 감히 도전하거나 시비를 걸 수 있는 짐승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스스로 움직이며 이 세상에서 대적할 자가 없는 하나님이시므로 그 칭호가 여호와’(I am who I am)입니다(3:14).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합니다. 감히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적들을 박살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압 왕이 멋모르고 이스라엘을 대적하고자 하는 행위는 자살행위와도 같은 것임을 선지자 발람이 여기서 지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24:9b);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의 언약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대로 승계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언약 가운데 엄청난 보호하심의 은혜를 창세기 제12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3). 그 약속의 말씀이 지금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지자 발람이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압 왕 발락은 헛된 꿈에서 빨리 깨어나야만 합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 발람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머물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 대적할 나라나 민족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향락과 풍요에 취해버리자 그 앞날이 암담하게 변하고 맙니다(8:12-20, 29:18-21).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심령 속에 내부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제 뜻대로 소원성취를 하고자 마치 우상을 섬기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종으로 삼게 되면 그때부터 여호와의 진노 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주님의 모범을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온몸으로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