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16강(민22:7-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1. 4. 17:12

민수기 강해 제116(22:7-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218(주일)

 

모압 왕과 미디안 왕이 공식적으로 반() 이스라엘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군사적인 협력을 하지 아니하는 대신에 그들은 장로들을 앞세워서 다른 방법으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무엇이며 어째서 그러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는가?(22:7-14)

 

모압 왕의 이름이 발락’(Balak)인데 그는 십볼’(Zippor)의 아들입니다(22:4). 그 이름의 뜻을 풀이해보면, 발락은 약탈자라는 의미이고 십볼은 작은 새입니다. 일반적으로 왕의 이름으로는 작은 새를 의미하고 있는 십볼과 같은 약한 이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발락은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한 자가 아닙니다.

발락은 그의 아버지가 왕이 아닌데 어떻게 모압의 왕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당대에 용사였으며 약탈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왕이 된 자입니다. 모압에서는 에돔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힘이 있는 자가 왕이 되는 전통이 강합니다(36:31-39). 그러므로 자신의 이름 값을 훌륭하게 한 자가 발락입니다.

발락은 남의 것을 빼앗아 살았지 자신의 것을 빼앗겨 본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아모리 족속의 한 족장인 시혼이 쳐들어와서 그의 왕국을 공격했습니다. 모압 왕인 발락은 도저히 시혼의 군대를 이길 수가 없어서 북쪽의 땅을 내주고 아르논 강 이남으로 후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북쪽 헤스본을 중심으로 하는 아르논 강 이북의 땅에 족장 시혼이 스스로 왕이 되고 아모리 남 왕국을 건설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모압 왕 발락은 다시 그 땅을 회복하기 위하여 절치부심(切齒腐心)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르논 강 이북지역에서 큰 변화가 발생합니다. 40년 전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영도 아래 여호와의 도움으로 아모리 족속 시혼 왕국을 멸망시켜버린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북쪽에 있는 또다른 아모리 족속의 왕국인 바산으로 도망을 친 시혼 왕의 잔당을 추격하던 모세의 군대가 바산 왕국의 수도 에드레이마저 함락시키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제 아모리인들의 남 왕국인 시혼 왕국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북 왕국인 바산 왕국마저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자신의 꿈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모세가 군대를 끌고서 남하하여 아르논 강이 그렇게 멀지 아니한 여리고 맞은 편 싯딤에 주둔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 그 동편에 있는 암몬이나 그 남쪽에 있는 모압을 공격할지 모르는 위기상황입니다. 그래서 모압 왕은 모세의 세력을 막아 내기 위하여 먼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반() 이스라엘 연합전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웃나라 암몬도 미디안도 미온적입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모세와 이스라엘 군대와 전쟁을 하자고 나섰다가 잘못되면 자신들의 왕국이 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압의 왕 발락은 이제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용한 무당을 찾아서 복채를 많이 주고 이스라엘에게 복이 아니라 저주를 주도록 여호와께 크게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용한 무당이 특히 여호와 하나님과 잘 통하고 있다고 하는 선지자가 어디에 있을까요? 모압과 가까운 나라에는 없습니다. 640km나 멀리 떨어진 북쪽 곧 북부 시리아 아람 왕국의 브돌(Pethor, 꿈의 해석이라는 뜻)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발람(Balaam)입니다. 그의 명성이 동방인 메소포타미아는 물론 서방인 모압과 미디안에까지 자자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발람이 살고 있는 브돌은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거점도시인 갈그미스의 남방 20km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지역은 유프라테스 강을 이용한 교역이 활발한 지점이며 역사적으로 그 옛날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개척한 하란으로 짐작이 됩니다(11:31-32).

그리고 창세기 제24장에서는 데라의 차남인 나홀이 하란 땅을 상속 받아 그곳에 자신의 이름으로 나홀 성’(city of Nahor)을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24:10). 따라서 그곳에서는 여호와를 섬기는 집안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발람의 아버지의 이름 브올’(Beor)이 횃불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그 집안은 브돌을 밝히고 있는 신앙을 가진 집안 곧 여호와를 잘 섬기고 있는 선지자의 집안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러한 유명한 선지자 집안의 출신인 발람이 과연 많은 복채를 받고서 모압 왕의 뜻대로 움직일까요? 그것이 본문과 그 다음 민수기 기록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발람’(Balaam)의 의미가 무당 또는 탐닉자입니다. 그러므로 발람은 여호와의 선지자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탐욕을 쫓아서 무당처럼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 유의하여 본문과 그 다음 내용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모압 왕은 모압의 장로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향 아래에 있는 미디안 장로들 몇 사람을 사신으로 발람에게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22:7). 그 의미는 국제적인 큰 소망이 담겨 있는 일이므로 부디 협조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모압 장로들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숙하니라”(22:7-8);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압 장로들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22:7);

1)    모압 왕 발락의 말을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살고 있는 선지자 발람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그의 사절들이 640km나 되는 먼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하루에 30km씩 진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20일 이상이 걸리는 참으로 먼 길입니다.

2)    그들은 발락의 군대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발람에게 전달하는 모압 왕의 복채와 점괘를 부탁하는 친서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길가는 도중에 도적들에게 탈취를 당하면 안되는 중요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호위병의 경호를 받으면서 먼 길을 가고 있습니다.

3)    모세는 모압 왕의 사신으로 선지자 발람을 만나러 떠나고 있는 자들은 그 구성원이 두 종류라고 적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모압의 장로들입니다. ②또 하나는 미디안의 장로들입니다. 모압은 사해 동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미디안은 그 남방 아라비아 반도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두나라 사이에는 에돔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압과 미디안은 지리적으로 바로 이웃하고 있는 처지가 아닌 것입니다.

4)    그런데 미디안의 장로들이 어째서 모압의 장로들과 함께 모압 왕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모압 왕과 개인적으로 몇몇 미디안의 장로들이 평소에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모압의 장로들과 함께 모압 왕의 명령에 따라 선지자 발람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전하고 있는 내용은 모압 뿐만 아니라 미디안에게도 중요한 국제적인 현안 문제라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5)    만약 그러한 외교적인 격식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여기서 미디안의 장로들은 다른 의미로 동원이 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모압의 장로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을 오고 가는 미디안 대상들과 그 장로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 먼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야곱의 아들인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는데 있어서 그 미디안의 대상들이 등장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37:28). 그들 대상들이 모압의 영토인 왕의 대로를 많이 이용하고 있으므로 자연히 모압 왕 발락과는 평소에 친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모압 왕과 그 사신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22:8a); 그 먼 서남방의 나라 모압에서 온 귀중한 손님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고 있는 모압 왕 발락의 말의 의미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 부탁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저주하게 해 달라고 하는 엄청난 요청입니다. 쉽게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따라서 선지자 발람은 여호와께 기도를 드리고 그 신탁을 받아 보고자 합니다. 적어도 하룻밤이 걸릴 것이므로 모압 왕의 사절들에게 자신의 집에서 일박을 하도록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숙하니라”(22:8b); 분명히 모압 왕 발락의 말을 선지자 발람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출발한 사람들은 두 종류입니다. 모압의 장로들과 미디안의 장로들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선지자 발람의 집에 유숙을 하고서 다음날 신탁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모압의 귀족들입니다. 미디안의 장로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들은 아무래도 모압 왕의 공식적인 사절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 오가면서 무역을 하고 있는 대상들입니다. 그들이 모압의 귀족인 장로들을 멀리 유프라테스 강 상류 브돌에 살고 있는 선지자 발람에게 안내를 해준 것입니다.

둘째로,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22:9-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22:9);

1)    하나님께서는 영이십니다(1:2, 4:24). 그러므로 피조물과 달리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역사하십니다. 그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알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를 피조물들이 감히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전지전능성을 지니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에게 친히 그 음성으로 말씀을 걸어 오실 때에는 참으로 그 질문이 독특하십니다.

2)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①첫째,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3:9). 여호와께서는 나무 뒤에 그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과 그 이유까지 벌써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답변을 듣기 위하여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②둘째,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4:9).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아무도 모르게 살해하고 그 시신을 땅에 깊이 묻어버린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가인의 자수를 받기 위하여 그렇게 묻고 계신 것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압 왕의 사절들이 어째서 선지자 발람을 찾아 왔는지 벌써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22:9)고 발람에게 묻고 계십니다. 그 의미는 내가 이미 알고 있지만 네 입으로 직접 정직하게 그리고 소상하게 설명하는 것을 듣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는 말씀임을 선지자 발람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2)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22:10-11); 발람은 여호와께서 벌써 모든 일을 알고 계신다고 믿고 있으므로 그의 보고와 설명이 다음과 같이 정직합니다;

1)    첫째, 모압 왕 발락이 자신에게 사신을 보내어 왔으며 그들이 하룻밤 유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사절들의 말에 따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의 수가 참으로 많으며 모압의 주위에 넘쳐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셋째, 안보상의 위기를 느낀 모압 왕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여호와의 허락을 얻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압 왕이 약화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멀리 쫓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22:12-13);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22:12);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모압으로 가지 말라고 지시하십니다. 그리고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십니다. 그 신탁의 말씀을 들은 발람이 어떻게 처신을 할까요?

(2)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22:13); 발람은 여호와를 잘 섬기는 선지자다운 처신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그대로 그는 발락의 귀족들과 함께 모압 왕에게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므로 자신은 모압으로 갈 수가 없으니 그런 줄 알고 되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이제 발락의 귀족들은 아무런 소득이 없이 다시 640km 먼 길을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넷째로,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전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22:14); 40여일 만에 선지자 발람을 방문하기 위하여 유프라테스 강 상류 브돌로 떠난 사절단이 모압 왕에게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선지자 발람이 여호와께 기도하여 신탁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면서 동행을 거절하였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모압 왕 발락이 자신의 계획을 포기할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끈질긴 발락의 유혹이 선지자 발람에게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모압의 왕 발락은 결코 아둔한 자가 아닙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 시대의 그랄 왕 아비멜렉처럼 아주 세상적으로 지혜가 뛰어난 자입니다. 왜냐하면,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의 승승장구의 비결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22-23, 26:28-2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베푸시는 그 호의를 저주로 바꾸어 버릴 수만 있다면 승리는 모압 왕 자신의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귀족들에게 두둑한 복채를 주어서 그 먼 길 브돌까지 여호와를 섬기는 선지자 발람을 찾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발락의 꾀는 쉽게 성사가 되지를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결코 선민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내리고 싶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지자 발람이 여호와의 신탁을 정확하게 모압의 귀족들에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모압의 왕은 포기하지 아니하고 계속 재물과 권력으로 선지자 발람을 유혹합니다. 과연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는 3,400년 전 모세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그 의미는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수호신이나 우상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는 자가 발락이며 그는 재물을 많이 주면 선지자 발람도 자신의 도구인 무당으로 삼을 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한 유혹과 덫을 선지자 발람이 과연 끝까지 물리칠 수가 있을까요? 오늘날 성도들에게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묻고 계십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아무쪼록 본문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고 현실에 적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