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12강(민21:21-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1. 3. 00:28

민수기 강해 제112(21:21-2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214()

 

이스라엘이 아바림 산지에서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길을 빌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데 그것은 조용히 지나가겠다고 하는 의도인가? 아니면 전쟁을 하자고 하는 의도인가?(21:21-24)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웃나라의 왕에게 차도(借道, 길을 빌리는 것) 요청을 한 경우가 두 번 있다는 사실을 민수기 제20장과 제21장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두 번의 경우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출애굽 제401월경 가데스 바네아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에 모세는 동편에 있는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왕의 대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20:14-17). 에돔 땅의 허리를 지나고 있는 왕의 대로는 사해 동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압의 남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편하고도 빠른 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얻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하여 광야생활 40년 마지막 해에 가나안 네게브 지역이 가까운 가데스 바네아까지 올라온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째서 신(zin) 광야를 넘어서 가나안의 네게브 지역으로 바로 북진을 하지 아니하고 느닷없이 에돔의 중간을 가로지르고 있는 왕의 대로를 빌려서 사해의 동쪽으로 이동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일까요?

(2)  둘째로, 그 해답을 얻어야만 모세가 에돔의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요청하고 있는 바 왕의 대로를 빌리자고 하는 차도의 요청이 진실로 그러한 뜻인지 아니면 다른 흉계가 숨어 있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 해답의 실마리는 민수기가 아니고 신명기 제2-3장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 동안이라. 이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2:13-15),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2:24), “우리가 더불어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고자 하는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의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넘기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3:1-3).

(3)  풀이를 해보자면, 여호와께서는 북진을 허용하신 것이 아니라 동진하여 사해와 요단 강 동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아모리 족속들의 땅을 먼저 정벌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돔 왕에게 모세가 요청하고 있는 차도의 건은 순수하게 액면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6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는 24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나라의 중심부를 통과하는 것을 허용할 만큼 어리석은  왕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에돔 왕은 단숨에 허무맹랑한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고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필사적으로 그 길목을 틀어막고 있습니다(20:18, 20). 일촉즉발의 순간에 여호와께서 주시는 말씀이 아브라함의 자손 또는 친척들이 살고 있는 에돔, 모압, 암몬 족속의 땅을 일체 침범을 하지 말고 오로지 아모리 족속의 땅 만을 정복하라는 것입니다(2:2-12, 18-22). 그 결과 모세는 불만이 가득한 백성들을 이끌고 참으로 먼 길을 돌아서 에돔 족속들이 살고 있는 세일 산맥 160km를 우회하고 있습니다(20:21, 21:4-5).

(4)  셋째로, 모세가 아모리 족속의 땅을 정벌하기 위하여 채비를 갖추고자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아바림 산지에 도착하고 있습니다(21:20). 그곳은 산악지역이지만 군사적으로는 공수(攻守, 공격과 수비) 양면으로 편리한 지역입니다. 아르논 강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하류 북면에 높은 산지 아바림이 있고 그곳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느보 산입니다(21:20). 느보 산에서 굽어 보면, 아르논 강 남쪽에는 모압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아모리 족속 헤스본 왕 시혼의 땅이 보입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가나안 땅이 모두 눈에 들어옵니다(34:1-3). 그러므로 그 산맥에서는 파수병과 정찰병을 사용하여 적진을 탐색하기에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5)  넷째로, 이제 모세는 이스라엘 군대를 정비하고 아모리 족속에 대한 공격준비를 마치고 있습니다. 그때 모세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갑자기 아모리 왕 시혼에게 차도의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21:21-22). 그것은 민수기 제20장에서 에돔의 왕에게 요청한 내용과 같은 것이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돔 왕에 대한 차도의 요청은 순수한 의도이지만 본문에 기록이 되고 있는 아모리 시혼 왕에 대한 차도의 요청은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정당한 빌미를 모세가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제40년 초에 모세와 아론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여호와께 기도하여 북진을 하지 말고 동진하여 사해와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아모리 족속들의 땅을 먼저 점령하도록 하라고 하는 여호와의 명령을 벌써 얻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아모리 시혼 왕에게 전쟁을 개시하도록 빌미를 제공해야만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손자병법의 교훈처럼 싸우지 않고 항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으로 모세가 자신의 이름을 빼고 전체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시혼 왕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그들의  길을 빌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21:21-22). 시혼 왕은 양자 간에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항복을 하거나 전군을 동원하여 필사적으로 전쟁에 임하는 것입니다. 시혼 왕의 선택은 당연히 후자입니다(21:23-2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스라엘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 길로만 지나가리이다 하나”(21:21-2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21:21-22a);

1)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가 모세입니다. 그는 세속적인 왕의 칭호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있을 뿐 사실 그가 지니고 있는 지위와 권위는 왕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국의 왕에게 사신을 보낼 때에는 최고지도자인 모세의 이름으로 파견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파견했을 때 모세가 보낸 것으로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20:14). 그때에도 사절 파견의 목적은 에돔 땅의 왕의 대로를 자신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는 것입니다(20:17).

2)    그런데 본문에서는 모세가 고의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빼고 사신을 보내고 있는 당사자가 그냥 이스라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1:21). 그 이유는 순수한 의도로 왕의 대로를 빌려 달라고 사신을 파견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21:22a). 이미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아모리 족속 헤스본의 왕 시혼의 영토를 군사력으로 점령하여도 좋다고 하는 허락을 받아 놓고 있는 모세입니다(2:24). 그러므로 길을 빌려 달라고 하는 것은 그저 전쟁선포를 쉽게 하고 전쟁의 명분을 얻기 위한 일종의 요식행위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약은 꾀가 숨어 있는 행동이므로 모세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서 기록상 자신의 이름을 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 길로만 지나가리이다 하나”(21:22b);

1)    이스라엘의 사신이 헤스본 왕 시혼에게 전하고 있는 말에 의하면 그것은 굉장히 신사적이고 불온한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왕의 대로를 사용하도록 허락을 해주신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길만 사용할 뿐 주변의 땅이나 농작물에 전혀 피해를 입히지 아니하겠다고 하는 철석같은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2)    심지어 그 더운 날에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아모리의 영토를 지나가겠다고 천명하고 있으니 그것은 실현가능성이 아예 없는 헛된 약속이며 미사여구에 불과합니다. 그와 같은 외교적인 술사와 교언영색(巧言令色, 간사한 말과 꾸미는 얼굴색)의 이면에는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60만 대군이 몰려오는데 자국의 가장 큰 군사적인 대로를 그냥 무방비로 사용하도록 허가해주는 나라는 지상에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하면 그 나라는 이미 항복의사를 표명한 것이며 스스로 속국이 되겠다고 하는 결의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의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21:23);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의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21:23a);

1)    역사적으로 아모리 족속은 한때 동방으로 진출하여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한 적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전투적이며 무사(武士)를 숭상하는 족속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왕인 시혼이 굴욕적인 요구를 강요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사신들에게 꼬리를 내리고 긍정적인 답변을 할 리가 없습니다. 그는 즉시 무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묵살하고서 그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기 위하여 전군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2)    마침 그 시기가 이스라엘 달력에 따르면 출애굽 제406월경입니다. 세일 산맥의 허리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호르 산에서 대제사장 아론이 죽은 때가 51일이며 한달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곡을 하고 난 후이기 때문입니다(20:22-29, 33:38-39). 그러므로 태양력으로는 9월 추수기입니다.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투를 농토나 성읍에서 벌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혼 왕은 군사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멀리 광야로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2)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21:23b);

1)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아바림 산지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 산지의 북동쪽에는 아모리 왕 시혼의 수도인 헤스본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시혼 왕은 전군을 동원하고 더 많은 백성들을 후방에 배치하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웅거해 있는 아바림 산지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습니다. 산지 가까이에 광야가 있으며 이스라엘 군대가 지키고 있는 첫 요새지가 야하스입니다.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에 야하스는 아르논 강 북쪽 광야에 있는 지명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2)    그곳을 시혼 왕이 용감한 군사들을 이끌고 선제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혼 왕이 선제공격을 하도록 모세가 전략적으로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적의 선제공격이 먼저 있었고 그에 따라 어쩔 수가 없어서 자위권(自衛權,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권리)을 발동하였다고 하는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이기에 그러한 정당한 명분을 먼저 찾고 있는 모세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21:24);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21:24a);

1)    아모리 왕 시혼이 격노하여 전군을 이끌고 광야로 나아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모세와 이스라엘 군대입니다. 그들은 겁도 없이 시혼 왕이 야하스의 이스라엘 진지를 먼저 공격하는 것을 보고서 쾌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위권을 발동하여 정당한 전쟁을 수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야하스 인근에 숨겨 두었던 군사를 총동원하여 사면팔방에서 아모리 군대를 포위하고서 격파하기를 시작합니다. 적의 주력군을 쳐부수고 나니 나머지 아모리의 군사들은 도망하기에 급급합니다. 모세와 사령관들은 조금의 틈도 주지 아니하고 아예 빠른 말과 발걸음이 빠른 군사들을 앞세워서 추격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2)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21:24b); 시혼 왕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엄청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기왕에 여호와께서는 헤스본에 수도를 두고 있는 아모리 족속 시혼 왕의 모든 영토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기로 결정하신 바가 있습니다(2:24-25). 따라서 한두 달 만에 사해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아르논 강에서부터 요단 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얍복 강까지 이르는 아모리 족속의 땅을 전부 점령하게 됩니다. 얍복 강 유역에는 서편에 아모리 족속의 땅이 있고 그 동편에는 암몬 족속의 땅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암몬 족속의 땅은 일체 침범하지 아니하고 아모리 족속의 뒤를 쫓아서 북벌만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21:24c); 단 몇 달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헤스본에 근거를 두고 있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 땅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얍복 강 동편의 암몬 자손들은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혼 왕을 도와서 함께 이스라엘 군대를 협공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성읍을 지키기 위하여 성문의 빗장을 굳게 잠그고 견고하게 수성(守城, 성을 지키는 것)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모세는 보기 좋게 여기서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21:24c)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친척인 롯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모압과 암몬의 땅을 일체 침범하지 말라고 명령하셨기에 그 지시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견고하게 준수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2:9, 19, 21:24c).

결론적으로, 출애굽 제4051일에 호르 산에서 대제사장 아론이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조카인 제사장 엘르아살과 함께 형 아론을 모시고 그 높은 호르 산에 올라가서 형이 죽자 그 대제사장의 예복을 벗겨서 엘르아살에게 입혀주고 하산을 하는 모세의 마음이 무겁고도 바쁩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1)  첫째, 자신도 광야생활 40년의 형벌이 끝나고 있는 금년에 향년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내년에 요단 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들어가는 최고지도자는 모세 자신이 아닙니다. 자신의 시대는 금년 남아 있는 6개월 동안에 끝나게 됩니다. 그는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미완의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2)  둘째, 이제 남아 있는 반년의 세월 동안에 무언가 마지막 결실을 맺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마음이 바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까운 북벌의 통로 네게브 지역과 헤브론 이북의 점령을 불허하고 계십니다. 헤브론에 살고 있는 아낙 자손에 대하여 공포를 느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곳으로 인도하고 싶지가 아니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 요단 강 동쪽의 아모리 족속의 땅을 먼저 점령한 다음에 기회를 보아 요단 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차례대로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할 수만 있으면 그가 죽기 전에 요단 강 동편에 있는 아모리 두 왕, 헤스본 왕 시혼의 영토와 바산 왕 옥의 영토를 전부 정복하여 동족들에게 최소한의 기업이라도 나누어 주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전쟁준비에 마음이 바쁜 것입니다.

그 결과 출애굽 제40년 태양력으로 9월경에 사해 동북쪽 아바림 산지에 도착한 모세는 아모리 왕 시혼을 전쟁마당으로 빨리 끌어내기 위하여 묘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몇 달 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에돔의 왕에게 사용한 동일한 방법입니다. 왕의 대로를 빌려 달라고 요청을 하게 되면 분명히 당사국의 왕은 화를 내면서 군대를 이끌고 싸우고자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방어만 하다가 적이 선제공격으로 나서게 되면 그때 자위력의 발동이라는 정당한 전쟁의 명분을 얻어서 한꺼번에 밀어 부치면 됩니다.

그것이 부끄러운 전쟁 유도의 책략이라는 사실을 모세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훗날의 역사를 의식하고서 아모리 시혼 왕에게 사신을 파견한 자를 모세 자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인 것처럼 꾸며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노를 참지 못한 시혼 왕이 먼저 군대를 끌고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를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한 사실을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그에 그치지 아니하고 모세는 신명기 제2장 제24절에서 헤스본 왕 시혼과 그의 영토를 이스라엘에게 붙이신 여호와의 뜻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제3장 제2절에서는 바산 왕 옥과 그의 땅까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정복전쟁의 정당성을 기록으로 영원히 남기고자 하는 모세의 생각입니다.

그와 같이 단지 그 땅의 주인이 바뀌는 정복전쟁으로 모든 인류가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가 있을까요? 더구나 모든 사람에게 영생의 구원을 주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질 수가 있을까요? 전혀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오경에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정복전쟁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시행착오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호와를 섬기고자 하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서는 살 만한 땅과 기업을 먼저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것으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도리를 하나님 앞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업을 주신 여호와의 뜻을 저버렸기에 결국은 제사장나라가 역사 가운데 훗날 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그와 같은 잘못이 반복이 되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전쟁을 통하여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들고서 세상 끝까지 나아가는 인생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