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69강(민14:33-3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0. 4. 01:11

민수기 강해 제69(14:33-3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1222()

 

20세 이상 기성세대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과 미성년자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은 어떻게 다르며, 기성세대의 자녀들은 장차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에서 어떠한 참상을 경험하게 되는가?(14:33-35)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사건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처리를 하십니다;

(1)  첫째로, 10정탐꾼의 악평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그 언약을 불신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징계를 하십니다(14:29, 32). 반면에,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과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그 은혜와 능력을 믿고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전진하자고 주장한 갈렙과 여호수아에 대해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14:30).

(2)  둘째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최고지도자인 모세와 대제사장인 아론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14:29-32).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그들의 미래가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1)    모세와 아론은 훗날 가데스의 므리바에서 계속 물을 달라고 떼를 쓰는 백성들에게 몹시 화를 내게 됩니다(20:1-5, 10). 그래서 조용히 반석에게 명령하여 목마른 백성들에게 마실 물을 내주라고 명령하시는 여호와의 지시를(20:8) 그대로 따르고자 하지를 않습니다(20:10-11).

2)    그들은 그래도 선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여호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족들을 반역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반역하는 너희들을 위하여 므리바의 물을 내어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치게 됩니다(20:10-11).

3)    그 순간 그들이 의도하지 아니한 기적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므리바의 반석에서 다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20:11, 13).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용서와 긍휼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분노한 모세와 아론의 행동에 대해서는 징계를 하십니다. 그 내용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20:12).

4)    그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광야생활이 끝나는 그 마지막 해에 연장자인 대제사장 아론은 123세를 일기로 호르 산에서 죽게 됩니다(20:22-29, 33:38-39). 몇달 후 모세는 홀로 느보 산에 올라가서 요단 강 서편의 가나안 땅을 모두 내려다 본 다음에 눈을 감게 됩니다(34:1-6). 비록 모세가 육체적으로는 정정하지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34:7-8).

(3)  셋째로, 가데스 바네아 반역사건의 본질은 12지파 군대의 사령관들이 거인 아낙 자손들이 버티고 있는 가나안 땅을 정벌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3:31-14:3). 그들 지휘관들의 두려움이 60만 병사들에게 그대로 누룩처럼 번지고 맙니다(14:1-2). 결국 60만 대군이 모두 북벌에 나서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북벌을 주장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을 버리고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서 온 길을 되돌아 가고자 한 것입니다(14:4). 그러므로 여호와의 심판은 그들 모두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광야생활을 계속하다가 황량한 벌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14:29-32).

(4)  넷째로,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군대에 속하지 아니하고 있는 20세 미만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 자녀들에게 가나안의 원주민과 거인족을 두려워하는 공포의 누룩이 번져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그 누룩을 차단하는 방법이 광야생활 가운데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문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 그 40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14:33-35). 그 의미를 일단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20세 이상 어른들의 불신앙 때문에 그 자녀들이 장차 40년 동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른들의 반역에 대한 죄짐을 자녀들도 광야생활을 통하여 함께 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14:33).

2)    둘째, 광야생활의 어려움이 향후 40년간 더 계속이 되는 이유는 40일간 정탐한 기간을 40년으로 계산한 것입니다(14:34a). 40년 동안에 가나안 원주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북벌에 나서고자 아니한 장정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3)    셋째, 어른들이 여호와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40년 동안에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자녀들의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적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은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게 되면 받게 되는 그 징벌인 것입니다(14:34b).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에 따라 인생이란 죽고 마는 것이라는 사실을 똑똑하게 깨닫게 됩니다(14:35).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군대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장차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총 진군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14:33);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14:33a);

1)    적군의 강함을 두려워하고 미리 겁을 집어 먹은 자들은 이스라엘 12지파의 군대입니다. 그들은 60만명이 넘는 군사로 구성이 되어 있는 대군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창조주 여호와께서 버티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으며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을 시켜버린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14:26-30). 그리고 신출내기 이스라엘 장정들이 광야의 약탈자인 아말렉 족속을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쳐부수게 해준 바도 있습니다(17:8-16).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장정들은 가나안 원주민들과 그곳의 아낙 자손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13:32-14:2). 그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하시는 여호와의 언약을 믿지 않고 애굽 길로 되돌아가고자 합니다(14:3).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인 모세와 아론마저 불신임하고 있는 것입니다(14:4).

3)    그 결과 이스라엘의 장정들과 20세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적들을 두려워한 이스라엘의 어른들을 모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믿고서 북벌을 감행하자고 주장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훗날 새로운 세대를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벌하게 됩니다.

4)    그런데 어른들이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될 때까지 그들의 자녀들도 전부 광야생활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도대체 미성년자들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그러한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본문에서는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14:33a)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어른들의 잘못이 그 자녀들에게도 전가가 될 수 있다는 표현입니다. 자녀들이 기성세대의 잘못으로부터 온전히 자유스럽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20:5, 14:18)고 하는 십계명의 취지설명에서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5)    그렇다면 여기 본문에서는 무엇을 통하여 그 죄가 대를 이어오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적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전이되어 오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낙 자손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른들을 자녀들이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그 독특한 처방이 이제부터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2)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14:33b);

1)    향후 40년의 세월을 광야생활에서 더 지내게 됩니다. 그 사이에 20세 이상의 어른들이 모두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장례를 치르게 될까요? 그들의 자녀들입니다. 자녀들은 40년 세월을 광야에서 고생을 하면서 부모님들의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광야에서의 죽음은 가나안의 적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을까요?

2)    사실 더 두려운 것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적들만 두려워하고 정작 여호와의 언약과 말씀을 두려워하지 아니한 반역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모두 처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살길은 하나뿐입니다. 광야에서의 생죽음을 면하자면 목숨을 걸어 놓고 여호와의 약속을 믿고서 한 마음으로 가나안 땅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광야생활을 통하여 그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깨닫게 된 새로운 사실입니다. 그 깨달음과 새로운 각오가 그들을 기성세대의 죄악으로부터 단절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14:34);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14:34a);

1)    여호와의 계산방법이 참으로 독특합니다. 12정탐꾼이 적진을 탐지한 날수가 40일인데 그것을 하루에 1년씩 계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형량을 결정하는데 그러한 계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저 편의적인 발상일까요? 아니면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요? 그저 편의적인 발상에 그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2명의 정탐꾼들이 40일간 적진을 살피고 그 실정을 파악하는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며 인도하셨는지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되면 쉽게 그렇게 말할 수가 없게 됩니다.

2)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의 원주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도록 동행하시며 도와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헤브론 북쪽의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메고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13:23-25). 만약 정탐의 길에 동행하신 여호와를 발견하는 안목을 그들이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면 결코 그러한 불신앙에 가득 찬 정탐보고를 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13:31-33).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십니다. 지난 40일간 그들을 적극 보호하여 준 그 진심이 철저하게 외면을 당한 것입니다. 그 결과 여호와의 진노의 무게가 1일이  1년이라는 등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3)    참고로, 그와 같은 영적인 계산법을 예수님께서는 1만 달란트와 100데나리온의 비유’(18:21-35)에서 보여주십니다. 이 땅에서 100일치 임금 빚진 자를 탕감해주는 것이 하나님나라에서 1만명이 평생 일하여 벌 수 있는 그 정도로 막대한 자신의 빚을 탕감 받을 수 있는 비결이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대충 60만배에 이르는 엄청난 탕감의 계산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1일을 1년인 365일로 계산하는 중징계의 계산법은 약소한 처벌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죄를 탕감해주시는 여호와의 은혜의 크기에 비하면 백성들의 불신앙을 다스리시는 그 징계는 작은 것이며 그 최대치가 40년 한 세대에 그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14:34b);

1)    고대사회에 있어서 평균연령이 40년이라고 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40년간 광야를 헤매다가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고 하는 여호와의 징계는 한 세대가 완전히 멸절이 되는 기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비록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에서의 탕감의 은혜가 이 세상의 것에 비해서 60만배로 큰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세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여전히 자신이 한평생을 살게 되는 현세에 대한 것입니다.

3)    그러므로 그 한평생 40년이 광야생활의 징벌로 모두 소진이 되고 만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징계라고 하겠습니다. 요컨대, 여호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불신앙의 모습을 가데스 바네아에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나라하게 보임으로써 그들은 그와 같은 중벌을 당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14:34b).  

셋째로,나 여호와가 말하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14:35);

(1)  이 대목은 여호와께서 이미 하신 말씀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그 뜻을 음미해보면 두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14:35a)라는 문장에서 백성들의 지도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분노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20세 이상 기성세대에 대한 광야에서의 멸절은 이제 변개할 수가 없는 결정사항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240만명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규모를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회막을 중심으로 하여 회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240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이며 지도자급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신정국가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 그리고 제사장들입니다. ②둘째, 군부의 지도자인 12사령관과 600여명의 천부장들입니다. ③셋째, 민간지도자로서 70인의 장로들과 기타 족장들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를 못하고 백성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지 못하여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진노는 그들에게 먼저 내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4:35a).

(3)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기성세대를 40년의 광야생활을 통하여 모두 멸절시킨다고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명분이라도 있으면 그들의 징계를 경감시켜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불신앙과 죄악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눈물을 머금고 40년 광야생활과 멸절을 최종판결로 확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14:35b)는 여호와의 판결문 가운데 진하게 배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10정탐꾼의 말만 듣고 이스라엘 군대의 사령관들과 천부장들은 가나안 원주민들과 전투를 해보지도 아니하고서 벌써 패배감에 젖어 있습니다. 정신전력면에서 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면에서는 철저하게 여호와의 언약과 능력을 불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적들에 대한 공포와 여호와에 대한 불신풍조가 확산이 되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만연이 되게 되면 참으로 큰일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악한 누룩의 퍼짐을 단절하고자 하는 여호와의 방책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1)  첫째, 기성세대가 여호와의 징계를 받아 예언의 말씀 그대로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다가 모두 죽고 맙니다.

(2)  둘째, 그 광경을 자녀들이 생생하게 보면서 부모님의 장례를 자신들의 손으로 치르게 됩니다. 자신들의 목숨과 인생도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3)  셋째, 악한 누룩을 단절하는 방법은 비록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장대하고 거인의 후손인 아낙 자손들이 공포의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생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큼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는 하나같이 광야생활을 빨리 끝내고 가나안 땅으로 북진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그 마음으로 평생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