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54강(민11:26-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25. 01:07

민수기 강해 제54(11:26-3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125()

 

하나님의 영의 중요한 특징 2가지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와의 생각의 차이에 대하여(11:26-30);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영을 모세와 70인의 장로들에게 임하게 하시는데 그 가운데에는 2가지 중요한 특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점을 먼저 살펴봅니다;

(1)  첫째, 그동안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인 모세에게만 하나님의 영이 임재를 하셨는데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삼기 위하여 선택된 70인의 민간인 장로들과 족장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나누어서 임재하시기를 시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11:24-25);

1)    그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나누어져서 한꺼번에 임재를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지난 번 강해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가지 보충적으로 첨언을 하자면, 그러한 사실을 훗날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역사서인 사도행전 제2장에서 다음과 같이 더욱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1-4).

2)    그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얼마든지 나누어져서 모든 사람들에게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을 독점하고 자신 또는 자신들의 집단만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생각은 여호와의 뜻과 능력을 전혀 모르고 있는 인간들의 이기적인 사고방식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둘째,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영이십니다(1:1-2, 3: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은 시공간을 초월하십니다. 피조물들은 시간과 공간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지만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영은 그러한 구애를 받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인 민수기 제11장 제26-27절의 내용입니다; “그 기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11:26-27).  

그 소년의 보고를 누가 먼저 듣고 있을까요? 모세가 아니라 모세의 시종인 여호수아입니다(11:28). 그는 그것이 참으로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의 차이가 어째서 발생하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수아는 그 보고를 듣고서 참으로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너나 없이 족장과 장로라고 하여 함부로 예언을 하게 된다면 신정국가 이스라엘에 뱃사공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정책의 결정에 있어서 혼란이 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2)  사실 하나님의 영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갑자기 사람이 예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사실 70명의 장로들이 한꺼번에 예언을 하고 있는 광경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더구나 회막 앞에 함께 참석하지 못한 장로 가운데 두 사람이 자신들의 장막 안에서 갑자기 예언을 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공간을 뛰어 넘어서 동시에 그렇게 역사를 하시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3)  따라서 여호수아는 그것만은 막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회막 앞에서가 아니고 다른 곳에서 예언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므로  그 진위여부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더 많은 족장과 장로들에게서 여러 가지 예언이 다양하게 터져 나오게 되면 그 뒷감당이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살펴봅니다;

1)    첫째, 그동안 모세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이 백성들에게 들려 왔는데 이제 그러한 영적 권위의 체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만약 장로들이 자신들도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경험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으로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영적인 권위를 내세우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그 예언이 진짜 하나님의 영의 임재의 역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작위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예언들의 뜻이 서로 충돌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느 쪽의 예언의 말씀을 따라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 혼란을 여호수아가 미리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여호수아의 결론은 예언의 남발을 막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안이므로 여호수아가 최고지도자 모세에게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다음과 같이 허락을 받고자 합니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11:28).

(5)  그러나 모세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는 자신과 장로 70인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도 직접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경험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깨닫아 한평생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선지자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1)    그와 같은 신앙의 성숙이 없기에 항상 어린아이와 같이 투정하고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 모세로서는 참으로 큰 부담입니다(11:10-14). 만약 영적으로 신앙의 성숙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실족할 것만 같습니다(8:11-20).

2)    여호와 하나님께서 매일같이 만나를 내려 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를 해주어도 그렇게 불만이 많고 여호와를 원망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몇 번이나 그들을 징계하시고 아예 모두 멸망시켜버리려고도 작심하십니다(32:8-10, 11:1).

3)    그럴 때마다 모세 자신이 생명을 걸어 놓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큰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생각은 모든 백성들이 모세 자신을 통하지 말고 직접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 음성을 듣고 믿음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여호와의 영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6)  모세는 여호수아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릴 일이 아니라 사실은 권장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모세의 결론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11:2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기명된 자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11:26);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기명된 자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11:26a);

1)    여기서 기명이 된 자라고 하는 의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인 중에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의 이름을 적었는데 그 명단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11:16, 11:26aa). 그러므로 70인의 장로 가운데 그 명단에 들어 있는 두 사람 엘닷과 메닷은 모세가 회막 앞으로 오도록 지시를 했을 때에 그 자리에 가는 것이 옳습니다(11:24, 26ab). 그런데 그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11:26ac).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    두가지로 짐작이 됩니다; ①하나는 마침 몸이 불편하여 부득이 그 자리에 참석하지를 못한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마음이 불편하여 그 자리에 고의로 참석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 두가지 가능한 사유 가운데 아무래도 후자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두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진중에서 예언을 하였다고 하는 보고를 받고서 모세의 시종인 여호수아가 아주 좋아하지를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1:27-28). 아무래도 그 두사람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편이 아니라 반대편에 서 있는 백성들의 족장이나 장로라고 하겠습니다.

(2)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11:26b); 회막에 나아오라고 하는 모세의 지시를 어기고서 자신들의 장막에 머물고 있던 두 사람의 장로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똑같이 임하고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은 두가지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이미 선택이 된 사람들은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그 사정을 통찰하시고 그들이 있는 장소에 임하셔서 역사를 하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적인 역사에 있어서 공간의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2)    둘째, 만약 그 두 사람이 회막으로 나아오라고 하는 모세의 명령에 반대를 하고 있는 소위 모세의 반대파에 속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임하게 하지 아니하는 조건이 되지를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요? 그것은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선민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방인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3)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편과 그를 지지하고 있는 백성들만 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의견의 차이 때문에 모세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그들을 성령의 사람으로 만들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선민만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자인 이방인들의 구원까지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둘째로,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메닷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11:27-28);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메닷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11:27);

1)    여기서 소년은 고대사회에서 병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4:23, 삼상14:1). 12지파는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1:1-4). 그런데 그 군대의 병정이 민간인 지도자인 족장이나 장로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습니다(11:27). 그것이 요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감찰의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민간인 지도자 가까이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2)    엘닷과 메닷이 진중 곧 그들의 장막에서 갑자기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을 하는 것을 듣고서 한 사람의 병사가 최고지도자인 모세의 회막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11:27). 그것은 그 병사의 독단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소년이라고 표기가 되고 있는 병사는 군대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지휘관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 보고를 천부장이 자기 지파의 사령관에게 즉시 보고를 합니다. 그 결과 사령관이 발이 빠른 전령을 최고지도자인 모세의 회막으로 보내어 정식보고를 드리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2)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11:28);

1)    여호수아에 대하여 모세는 여기서 택한 자 중 한 사람이라고 적고 있습니다(11:28a). 그 말은 민간인 지도자로서 70명의 장로와 족장을 선택할 때에 그 가운데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11:26, 13:8). 여호수아의 나이가 그렇게 많지가 아니한데 어떻게 백성들의 지도자의 반열에 설 수가 있을까요? 그 이유를 모세를 섬기는 시종여호수아라는 대목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33:11, 11:28b).

2)    그 뿐만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자입니다. 갓 출애굽을 했을 때 광야의 무법자인 아말렉 족속이 기습을 해옵니다(17:8). 그때 모세의 명령에 따라 젊은 여호수아가 사령관이 되어 이스라엘 장정들을 이끌고 용감하게 출전을 하여 승리를 얻은 것입니다(17:9-13). 그와 같은 경력과 전공을 지니고 있는 용감한 여호수아이므로 그를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으로서 일종의 비서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따라서 회막에 도착한 전령이 최고지도자 모세에게 올릴 보고를 모세의 비서인 여호수아에게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보고를 들은 여호수아는 크게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두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입니다;

4)    ①하나는 지금 회막에 모여 있는 68명의 장로 이외에 오늘 회막에 출석하지 아니하고 있는 두 사람의 장로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그들이 예언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여 회막에 모인 장로들이나 불순종하여 불참한 장로들이나 차이가 없게 됩니다. 그것은 지휘체계에 있어서 누수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막아야만 하는 사태입니다.

5)    ②또 하나는 진짜 몸이 아파서 불출석을 했다고 하면 병석에 누워있어야 하는 그 두 사람입니다. 그런데 멀쩡하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예언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꾀병을 부리고 고의로 모세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반대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예언의 능력이 주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그 두사람을 제어해야만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서 최고지도자 모세에게 보고와 더불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것입니다(11:28c)..

셋째로,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진중으로 돌아 왔더라”(11:29-30);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11:29a); 모세가 여호수아의 면전에서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11:29a). 그 말은 두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1)    하나는 여호수아가 최고지도자인 모세의 유일한 비서로서 제2인자로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막에 참석한 68명의 장로들에게 모두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동시에 예언을 함으로써 그들 모두가 모세를 보좌하는 막강한 민간지도자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2인자로서의 위치가 흔들리는 것 같아서 일종의 시기심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회막에 출석하지 아니하고 진중에 남아 있던 두 사람의 장로마저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예언을 했다고 하는 보고를 받고서 그것을 말리고자 진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여호수아가 최고지도자인 모세의 권력의 누수현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고 예언의 능력이 주어지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민간인 지도자들이 많이 생겨나서 영적인 성숙함을 이루고 백성들을 나누어서 말씀으로 양육한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반면에 그 부작용도 상당할 것임을 여호수아가 내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얻고 예언까지 하고 보면 어느 사이에 자신도 선지자이며 모세와 동일한 영적인 사람이라고 착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지파의 백성들 특히  자기 족속이나 가문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면 장로들이 장차 모세의 절대적인 권위에 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미리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여호수아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생각은 그 반대입니다(11:29b).

(2)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1:29b);

1)    훗날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 없이 창조주 여호와 앞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진심으로 대속의 십자가 앞에서 회개를 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28:18-20, 2:36-47, 11:19-21). 그리고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복음의 전파자로 살아가고자 할 때에 하나님의 영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을 얻게 됩니다(1:8, 2:1-4, 10:44-48). 그것이 간접신앙이 아니라 직접신앙으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원을 모세가 여기서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모세의 신앙고백은 모세오경 전체의 백미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훗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24:44-45). 하나님의 영의 임재로 모두가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있는 선지자가 바로 모세라고 하겠습니다(11:29). 그러한 모세이기에 훗날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특이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11:26).

(3)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진중으로 돌아 왔더라”(11:30);

1)    지금까지 68명의 장로들이 회막에서 하나님의 영의 임재와 예언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온 백성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모두가 신앙의 성숙을 이루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는 모세의 말도 잘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모세와 더불어 자신들의 진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들의 할 일이 많습니다. 백성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고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얻어 모두 선지자가 될 수 있도록 믿음의 성숙을 이루게 만드는 것입니다.

2)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민수기가 계속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들의 군사력으로는 도저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살고 있는 거인족을 이길 수가 없다고 하여 다시 애굽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극도의 불신앙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13:31-14:4).

결론적으로, 그만큼 신앙의 성숙을 얻기가 힘이 듭니다. 세상의 어려움이 몰려오고 적이 강해 보이게 되면 그만 낙담을 하고 불신앙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두 달이면 바란 광야에서 신 광야로 그리고 가나안 남부 네게브 지역으로 북진할 수도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무려 40년 동안 가나안 땅에 발도 디디지 못하게 되는 불신앙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그와 같은 안타까운 사연을 민수기에서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민수기의 기록을 읽으시면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이 왜 필요한지를 철저하게 깨닫게 되는 은혜가 저와 여러 성도님들에게 다시 생생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