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52강(민11:16-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24. 02:31

민수기 강해 제52(11:16-2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123(주일)

 

모세에게는 그를 보좌하는 관료들이 있으며 12지파의 사령관들이 있는데 어째서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을 해소하는데 있어서 그들이 도움이 되지를 못하고 있는가?(11:16-20)

 

본문에 들어오기 직전에 모세는 백성들이 자신들의 진중(陣中)에서 종족별로 모여서 울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11:10). 그들은 작년에 맛을 보았던 그 메추라기 고기를 다시 먹고 싶어합니다(16:12-13, 11:4-6).

당장 모세의 생각으로는 한두 달만 더 광야에서 고생을 하게 되면 계속 북진을 하여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설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한두 달을 참지를 못하고 백성들의 불만과 원망이 터져 나오고 그 때문에 여호와께서 불심판을 내리시는 것을 모세가 중보 기도하여 겨우 멈추게 한 것입니다(11:1-3).

하나님의 뜨거운 맛을 본 백성들이 한동안은 잠잠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거주하고 있는 이방 족속들이 충동질을 하자 그만 그 불만이 묘한 방법으로 표출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11:4).

노골적으로 여호와에게 악평을 하거나 원성을 내비칠 수는 없습니다(11:1). 그 대신에 마치 어린아이가 젖을 달라고 보채는 것처럼 서로 모여서 모세의 귀에 들리도록 칭얼거리고 울면서 원망의 시선을 보내는 것입니다(11:10). 그 작전이 주효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속내를 알면서도 그 마음이 불편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철이 없으며 떼만 쓰고 있는 그들 백성들을 언제 성숙한 신앙인으로 양성할 수가 있을까요?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11:12).

그리고 그 황량한 광야에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써는 도저히 백성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어디에서 그 많은 고기를 구할 수가 있겠습니까?(11:13) 그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짊어지고서 그들을 이끌고 도저히 북진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11:14).

절망에 빠진 모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여호와께 차라리 백성들이 여호와를 계속 원망하다가 멸망 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자신이 먼저 죽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기도로 아뢰고 있습니다(11:15).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말에 어떻게 응답을 하시고 그를 다시 위대한 신정국가의 지도자로 세우시는 것일까요? 그 방법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의 영을 장로와 족장들에게 임하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11:16-17);

1)    첫째, 모세는 자신의 손발이 되고 있는 관료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상당히 유능한 재판관들이며 지도자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조금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미디안 광야의 호렙 산에 당도를 합니다(3:1, 12, 17:6, 18:5). 그는 여호와의 율법으로 백성들의 송사를 듣고 판결을 하느라고 매우 분주합니다(18:13-18). 그 광경을 유심히 바라본 그의 장인이며 미디안 족속들의 제사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혼자서 그 많은 송사를 담당하지를 말고 재판관을 양성하여 그들에게 그 일을 분담을 시키라고 조언을 합니다(18:19-26). 그에 따라 모세를 돕고 있는 관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3)    그러나 관료들이 당면한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드는데 있어서 그들의 인간적인 지혜와 경험이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지혜와 능력을 얻어서 백성들을 영적으로 돌볼 수 있는 선지자를 이제부터 세우고자 하십니다(11:16-17).

4)    둘째, 12지파의 사령관들도 속수무책입니다. 아무리 자파의 군인들을 단속을 한다고 하더라도 고기가 먹고 싶어서 울고 있는 그들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그 황량한 광야에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군인정신으로 밀어 붙인다고 하더라도 보다 나은 삶과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가 없습니다.

5)    셋째,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선택하고 계시는 대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옛날 백성들의 지도자였던 장로와 족장들을 다시 소집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11:16-17).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백성들을 나누어서 직접 신앙지도를 하도록 합니다. 그들은 관료가 아니며 군사지휘관이 아닙니다. 그들은 민간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이 선지자가 되어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외치고 가르쳐 줄 때에 백성들의 믿음의 성숙이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로, 여호와께서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장로들과 족장들에게 임하게 하여 민간 지도자로 세우시는 방법 외에 당장은 한 달 동안 백성들이 실컷 먹도록 하늘에서 고기를 내려주겠다고 하십니다(11:18-20). 그 자초지종을 다시 살펴봅니다;

1)    첫째, 갓 출애굽을 하여 한달이 지나 양식이 떨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원망하고 모세에게 크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16:1-3). 먹을 것이 없으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하늘 곳간을 여시고 새벽에는 이슬처럼 만나를 내려 주시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진중에 떨어지게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16:4-8, 13). 한동안 고기 맛을 실컷 보게 되자 메추라기는 더 이상 내리지 아니하게 됩니다(11:6-7).

2)    둘째, 일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자 본문에서 백성들은 다시 그 고기 맛을 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입니다(11:4-6). 약속의 땅 가나안에 당도하게 되는 그 마지막 한두 달을 참지를 못하고 백성들의 불만과 원성이 다시 터져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심판으로 그 불신앙을 다스리고자 하시지만 모세의 중보의 기도로 멈추십니다(11:1-3). 그렇지만 이방출신인 동행자들이 먼저 고기 맛을 탐하고 있으니 그 탐욕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누룩처럼 전염이 되고 맙니다(11:4).

3)    셋째, 직접 여호와 앞에 불만을 토로할 수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귀에 들리도록 서로 모여서 울면서 고기 맛을 보았으면 한이 없겠다고 넋두리를 하고 있습니다(11:10). 그러한 백성들의 속셈을 모세가 정확하게 알고서 그 심정이 상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심히 노여워하십니다. 그렇지만 다시 불심판을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그들에게 진노해 보아야 그 결과가 신통하지가 않다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차선책을 선택하십니다. 그것은 고기가 질린 정도로 한번 실컷 원없이 먹게 해주는 것입니다(11:18-20). 그것이 여호와께서 본문에서 선택하고 계시는 방안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70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11:16);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마치 노예처럼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는 그들에게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장로와 족장들이 있었습니다(4:29, 12:21). 이스라엘 12지파에 있어서 평균 6명의 장로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들은 각 지파의 종족이나 가문을 이끌고 있는 족장들 가운데서 선출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 70명이 모세와 아론을 도와서 출애굽의 역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24:1, 9).

(2)  그 외에 고센 땅 중노동의 현장에서 기록원으로 일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습니다(5:14-15, 19-21). 그들은 애굽의 글자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젊은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들이 애굽인 감독들의 지시를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업을 할당하고 그 성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후에는 그들 기록원 가운데 상당수가 모세를 도와서 재판일 등을 하고 있는 관료들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18:21-26).

(3)  이스라엘의 민간 지도자인 장로 70인은 12지파의 군대 사령관들이 득세를 하고 나자 그 존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1:1-4, 16-17, 7:1-3, 11). 이제 모세의 관료들이나 12지파의 사령관들이 당면하고 있는 백성들의 불만을 제대로 해소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적 지도자인 모세의 과중한 책임을 덜어 주기 위하여 영적으로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지자들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일으키고자 하십니다. 그 대상으로서 그 옛날에 존재하다가 사라진 이스라엘 70인의 장로들을 다시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11:16). 물론 그 옛날 족장이나 장로 정도의 인망과 능력으로는 당면 문제의 해결에 큰 도움이 못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회막 앞에서 부여해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둘째로,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11:17);

(1)  회막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여 임재를 하시고 모세와 대화를 하십니다. 그 모습을 모세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모세가 회막으로 들어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33:7-11).

(2)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정국가의 최고지도자로 군림을 할 수가 있는 이유는 그가 여호와의 임재 가운데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자이기 때문입니다(19:19:20, 24:1-3, 33:9, 11, 34:10). 모세의 영적인 권위는 거기서부터 출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청원을 받아 들여서 모세의 영적인 무거운 짐을 여러 장로들이 나누어 질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고자 하십니다(11:14). 그 방법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만 영적으로 임재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장로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를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11:17).

(3)  그렇게 되면 장로들이 선지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간접신앙이 아니라 여호와께 직접 기도를 드리고 그 응답을 얻을 수가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렇게 영적인 깨달음을 얻고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를 하게 되면 영적인 권위가 생기게 됩니다. 그 영적인 권위로써 백성들에게 신앙지도를 하여 영적인 성숙함을 이루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모세의 무거운 짐을 덜어 줄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이 된다고 하겠습니다(11:17).  

셋째로,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11:18);

(1)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이나 놀라운 기적의 현장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제35장의 말씀을 참조하면 야곱일행이 벧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러 갈 때에 이방신상을 땅에 파묻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며 의복을 깨끗한 것으로 바꾸어 입고 있습니다(35:1-4). 모세는 미디안 땅 호렙 산에서 불꽃 가운데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때에 그 발에서 신발을 벗고 있습니다(3:5).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서 예배하기 위하여 3일간 그 몸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깨끗하게 빨고 있습니다(19:10-11).

(2)  그러므로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하늘 곳간을 열어서 내일 고기를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하루동안 너희 몸을 거룩하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18). 그것은 단순하게 고기를 얻기 위하여 자신들을 거룩하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기와 더불어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임재를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어째서 여호와께서 그 자리에 임재를 하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울면서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원망과 불평을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께 들리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두가지 조치를 취하고자 하십니다; ①하나는 배가 터지도록 입에서 신물이 날 정도로 실컷 고기 맛을 보도록 해주는 것입니다(11:19-20). ②또 하나는 그 불평불만의 주동자를 가려내어 엄벌에 처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11:33-34). 그렇게 두려우신 여호와이심을 기억하면서 본문과 그 다음 대목의 말씀을 계속 묵상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넷째로,하루이틀이나 닷새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11:19-20);

(1)  창세기 제18장을 살펴보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주민들을 임박한 불심판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6차례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18:23-32); ①첫째, 그 성중에 의인 50명만 있어도 그 성에 멸망이 임하지 아니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18:23-26). ②둘째, 그 수를 45명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③셋째, 40명으로 다시 줄여서 간청합니다. ④넷째, 30명으로 다시 줄여서 매어 달립니다. ⑤다섯째, 20명의 의인만 있어도 성의 멸망을 취소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⑥여섯째로,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망이 아니라 그 성을 구원해 달라고 중보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18:32).

(2)  그와 똑 같은 수사학적인 표현이 본문에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밉상스럽게 고기 맛을 볼 수 있도록 계속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메추라기 고기를 공급해 주시지만 그 마음이 영 불편하십니다. 그래서 그 표현이 다음과 같습니다; “하루이틀이나 닷새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11:19-20). 무려 여섯 차례나 메추라기 고기를 맛보는 날을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매일 같이 고기 맛을 보게 되면 다시는 메추라기 고기를 보기도 싫을 정도가 되고 말 것입니다.

(3)  그것이 그토록 여호와를 원망하면서 고기를 먹게 해 달라고 울고불고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하시는 처방이 결코 아닙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실컷 깨닫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그 처벌이 끝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더불어 여호와께서는 그 주동자를 색출하여 엄벌에 처하는 것으로 후술이 되고 있습니다(11:33-34).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인 백성들과 성도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아니하도록 빨리 불신앙의 길에서 자신을 돌이키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계속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게 되면 여호와께서는 부득이하게 그 철없는 백성들의 소원을 당장은 들어 주십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반드시 징계의 수단이 강하게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사실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종이 주인을 모시는 것이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인의 말씀과 그 뜻이 무엇인지를 항상 명심하고 자신을 살펴야만 합니다. 그러한 신중함과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면 주인의 뜻을 종이 자신의 뜻에 굴복시키고자 하는 오만한 행태를 보이게 됩니다.

때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러한 소원마저 어쩔 수 없이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종이 더 조심을 해야만 합니다. 빨리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게 되면 당근이 아니라 채찍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본문의 뜻을 아무쪼록 명심하시고 종의 자세를 끝까지 견지하시는 훌륭한 신앙인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