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56강(민12:1-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26. 19:10

민수기 강해 제56(12:1-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127()

 

이스라엘 자손에게 탐욕을 불어넣고 있는 자들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불러 일으키고 있는 엄청난 비극에 대하여(12:1-10, 11:4, 33-35);

 

본문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인식이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1)  첫째로, 시간적으로 출애굽후 제2220일에 시내 광야 북쪽에서 출발하여 바란 광야에 들어온 이후에 발생하고 있는 사건입니다(10:11-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후 제211일에 시내 산 앞에서 성막을 완성하여 건립을 합니다(40:17). 그러자 여호와께서 영광 가운데 그 성막에 임재하시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40:34). 그리고 그 성막 위에는 구름기둥이 떠 있습니다. 그때부터 구름기둥이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게 되면 성막을 분해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북쪽으로 이동을 실시하게 됩니다(40:36). 그 결과 21일에는 시내 광야 북쪽에 다다르게 되고 그때부터 모세는 민수기의 기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1:1-4).

(2)  둘째로, 공간적으로 바란 광야에서 여호와의 산이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10:33). 일부 학자들은 바란 광야에 있는 그 여호와의 산이 시내 산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가설입니다. 왜냐하면, 시내 산 앞에서 성막을 처음으로 건립해보고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하여 북진을 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란 광야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는 그 여호와의 산은 카르콤 산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바란 광야에 위치하고 있는 다베라, 기브롯 핫다아와, 그리고 하세롯의 위치는 시내 산의 동북면인 시나이 반도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란 광야의 북단인 가데스 바네아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는 지명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하세롯이라고 하는 의미가 마을들이라고 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곳이 여럿 있을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무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의 베다니가 유대 땅에서 두 군데나 있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3)  셋째로, 시내 광야와 미디안 땅은 모세에게 있어서 익숙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시내 광야에 있는 시내 산과 미디안 땅에 있는 호렙 산의 위치를 혼동하여 글을 적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    첫째, 모세는 40세에 애굽에서 도망을 칠 때에 시나이 반도를 거쳐서 미디안 땅으로 들어온 것입니다(2:15).  미디안 땅에서 40년간 양치기 생활을 하다가 80세에 모세는 호렙 산에서 여호와를 만났으며(3:1-6)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호렙 산으로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철저하게 이행을 하고 있습니다(3:12, 17:6).

2)    둘째, 미디안의 제사장인 장인 이드로가 미디안 땅 서북면인 르비딤 광야의 호렙 산으로 모세를 방문하여(17:1, 6, 18:2-6) 그가 가지고 온 예물로써 푸짐하게 잔치를 베풀면서 부디 미디안 땅을 떠나 달라고 간청한 것으로 보입니다(18:12). 그곳에 계속 머무르게 되면 미디안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전쟁이 발생할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3)    셋째, 그에 따라 모세는 여호와의 새로운 지시를 받아 르비딤 광야 호렙 산에서 회군하여 시내 광야의 남단인 시내 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19:1-2). 그곳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이 시작이 되고 여호와께서는 시내 산 정상에 강림을 하시게 됩니다(19:4-20). 그와 같은 연유로 모세는 미디안 땅과 시내 광야를 잘 알고 있습니다.

4)    넷째, 하지만 시내 광야가 끝나고 그 북쪽에 나타나고 있는 바란 광야는 처음입니다. 새로운 환경을 만나자 모세는 불안합니다. 따라서 그곳 지형을 잘 알고 있는 겐족 출신인 처남 호밥에게 계속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10:29-32). 그렇지만 떠돌이 집시생활에 익숙한 호밥이 동행을 거절하고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5)    다섯째, 그러자 모세는 백성들의 눈을 피하여  바란 광야의 높은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를 단독으로 만나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더욱 도와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10:33). 그 산이 카르콤 산으로 보이며 여호와께서 그곳에서 모세를 만나 주셨기에 그 또한 여호와의 산이라고 모세가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0:33). 행진을 시작하고 마칠 때에는 언약궤 앞에서 모세가 절실하게 여호와의 동행하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모세가 앞날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여섯째, 바란 광야와 같은 생소한 환경을 만나자 이스라엘 자손들도 역시 불안합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고 모세를 불신하게 되는 엄청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11:1, 4-10, 33, 12:1).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모세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12:1);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12:1a);

1)    모세는 젊은 시절 40세가 될 때까지 애굽의 황궁에서 자라고 생활한 사람입니다(2:10, 7:21-23). 당시는 모세라고 하는 왕의 성을 사용하고 있는 상이집트의 바로가 천하를 통치하고 있던 통일 신왕국의 시대입니다. 그 전에 분열왕국의 시대에는 동쪽에서 쳐들어온 힉소스인들이 하이집트를 차지하고서 천하를 호령했습니다. 그에 따라 상이집트로 밀려난 애굽의 귀족들이 재기의 기회를 수백 년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력을 규합하기 위하여 나일강 중류와 상류에 흩어져 있는 여러 족속들과 연합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중류의 누비아인을 비롯한 수단인들은 물론 상류의 구스인들과도 관계가 좋았습니다. 그들이 천하를 재통일한 이후에도 모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단인들은 물론 구스 사람들과도 친했습니다. 그러한 연고로 모세가 구스 여자를 좋아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2)    모세가 바란 광야에서 처남인 겐 족속 호밥을 떠나 보낸 때 그는 81세입니다(7:7, 10:11, 29-32). 친정동생인 호밥이 모세의 절실한 요청을 뿌리치고 떠나버리자 모세의 처인 십보라는 남편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따라서 처족에게 실망한 모세가 젊은 구스 여자를 두번째 아내 또는 첩으로 맞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로서는 애굽에서 익숙한 대로 구스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에 대하여 별로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다민족 사회에 대한 거부감이 나름대로 상당하며 지나친 선민의식까지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그들과 함께 출애굽한 이방 족속들에게 그 책임을 크게 묻는 버릇을 지니고 있습니다(11:4, 34). 그러므로 그 이슈를 두고서 최고지도자인 모세와 그를 보좌하고 있는 친족들 사이에 갈등이 야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12:1b);

1)    애굽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모세는 그 결혼에 있어서 개방적입니다. 그러므로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고 있습니다(2:21-22). 그리고 처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모세는 젊은 구스 여인을 또 아내로 얻고 있습니다(12:1a).

2)    그렇지만 애굽의 동북부 고센 땅에서 400년 이상 히브리사상을 가지고 살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단일민족사상이 강합니다. 그리고 시내 산에서 유일한 선민으로 인정을 받게 되자 그때부터 집단 이기적인 선민우월사상을 지니게 됩니다. 이방인들은 멸망의 대상이고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만이 구원의 대상이라고까지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있으며 함께 동행하고 있는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그 시선이 곱지가 못합니다.

3)    따라서 여호와를 험담하고 원망하는 일에 있어서도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탓이 아니고 함께 거하고 있는 이방 족속들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4). 그렇게 이상한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는 선민사회에서 모세가 이방인 출신 젊은 구스 여자를 새로이 아내로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나인 미리암이나 형인 아론의 시선이 곱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모세도 별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신정국가에서의 모세의 무상의 권위마저 폄하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에서 영적인 권위의 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태를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12:2-4);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12:2);

1)    모세가 단일민족의식과 선민우월사상을 지니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정서를 무시하고서 젊은 구스(이디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자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라고 하는 모세가 이방여인의 아름다움을 탐하고 있는 속물이라고 하는 비판이 나타나게 되고 급기야는 모세가 지니고 있는 영적인 권위마저 도전을 받게 됩니다.

2)    모세와 함께 출애굽의 지도자로 활약한 그의 형 아론과(6:13, 7:20) 누나 미리암마저(15:20-21) 모세를 비판하고 나섭니다(12:1b). 선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이방여인을 아내로 취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면서 설혹 모세가 여호와의 허락을 받은 일이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은 하나님의 선지자인 자신들도 함께 듣고 있는데 그러한 취지의 말씀은 없다는 것입니다(12:2a, 33:52, 55).

3)    그 속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심정상 모세의 변명보다는 그의 형인 아론과 누나인 미리암의 말이 더 마음에 와 닿고 있습니다. 그대로 그 사태를 방치하게 되면 신정국가의 영적인 권위체계와 질서가 깨어질 것만 같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유심히 지켜 보십니다(12:2b).

(2)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12:3);

1)    그러한 신정국가의 존립의 기반인 영적인 권위의 붕괴 위기 가운데 서있으면서도 모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의 형이며 누나이다 보니 어떻게 처리를 하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우유부단한 모세의 성품은 일찍이 그의 양어머니인 핫셉수트가 여자 바로의 자리에서 실각을 당하는 때에도 유감없이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2)    주전 1,48620세가 된 투트모세3세가 회군을 하여 자신의 섭정자이지만 여자 바로로 행세하고 있는 핫셉수트를 몰아내고 자신의 권력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때 애굽 제국의 제2인자였던 40세의 모세는 아무런 반격도 가하지를 못하고 홀로 고센 땅으로 피신하고 만 것입니다(2:11, 7:23-24). 그와 같은 성품의 모세가 여기서는 자신에 대하여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12:3)고 스스로 아름답게 표현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12:4); 모세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를 못하자 그것을 보시고 신정국가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을 하십니다. 회막 가운데 성막에 임재하신 여호와께서는 갑자기 모세와 아론 그리고 여선지자인 미리암 모두 회막 앞으로 나아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의 영적인 위계질서를 다시 제대로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정국가를 여호와의 뜻에 맞게 제대로 움직이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수순입니다.

셋째로,여호와께서 구름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12:5-7);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구름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12:5a);

1)    여호와께서는 모든 행진을 멈추게 합니다. 구름기둥이 갑자기 운반 중에 있는 성막의 위로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12:5aa).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행진을 멈추고 하세롯 마을 근처에 진영을 설치합니다(11:35). 물론 가장 먼저 성막을 조립하여 회막을 건립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형하여 회막 문 앞에 서십니다(12:5ab). 그리고 아론과 미리암을 가까이 부르시는 것입니다(12:5ac).

2)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 옛날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의 장막 앞에 인간의 모습으로 여호와께서 두 천사와 함께 나타나신 적이 있습니다(18:1-2). 그때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현신임을 알아채고서 달려나가 엎드려 간청을 합니다(18:3-5). 부디 종의 장막에 들어오셔서 식사를 하시고 쉬셨다가 가시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러한 좋은 분위기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비록 현신하셨지만 그 형형하신 눈으로 아론과 미리암을 노려보시면서 가까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들 두 사람은 모골이 송연합니다.

(2)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12:5b-6); 얼마 전에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장로 70명에게 하나님의 영을 임하게 하시고 예언을 하도록 역사하신 적이 있습니다(11:24-26). 그때 70인의 장로들이 선지자가 됩니다. 그 전에는 여호와께서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말씀도 하시고(4:15, 7:8) 여선지자인 미리암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찬양도 하게 하십니다(15:20-21). 그렇게 72명이 선지자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여호와를 영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표현이 여기서는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12:5b-6)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환상 가운데 보거나 꿈 속에서 보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 모두 영적인 만남이라고 하겠습니다.

(3)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12:7);

1)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다른 72명의 선지자는 그 격이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12:7a). 그 주요한 차이가 72명의 선지자들은 자신의 동족인 선민 이스라엘의 이익만 추구하고 있지만 모세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유일하게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을 섬겨서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공의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12:7b, 12:38). 그렇게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모세의 마음가짐이 바로 여호와를 올바로 섬기는 종의 충성이라는 말씀입니다.

2)    그와 같은 여호와의 언급에 따라서 선민 이스라엘과 그 지도자들이 잘못된 것은 모두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이방인 출신 여러 족속들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충동질하여 발생한 사건들이라고 스스로 변명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11:4).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선민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동시에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3:29).

넷째로,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12:8);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12:8a);

1)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신다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12:8aa).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면목인 얼굴로 모세와 마주 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피조물이 죽고 말기 때문입니다(33:20).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현신을 하신 것입니다. 마치 현신하신 여호와께서 그 옛날 헤브론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그를 만나신 사례와 같은 것입니다(18:1-5, 23-32).

2)    그와 같은 혜택은 아브라함과 모세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특혜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이방인을 가슴에 품고서 그들에게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선지자의 삶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아브라함과 모세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특하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선민들의 유익만 챙기고자 하는 선지자들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간접적인 만남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환상이나 꿈을 이용한 영적인 만남입니다. 그것을 여기서는 은밀한 말로 만나고 있는 것이라고 알기 쉽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12:8ab).

(2)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12:8b);

1)    육신을 가진 인간이 여호와의 형상과 영광을 보게 되면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게 될까요?(12:8ba) 비록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나타나신 여호와라고 하더라도 직접 대면하여 그 음성을 듣고 대화를 하게 되면 시내 산에서 내려온 모세처럼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타나게 됩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의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34:29-30).

2)    그러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너무 형제들과 친지들에게 인간적으로 잘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정국가의 운영에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앞장을 서서 모세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의 영적인 권위에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권위에 대한 그들의 비방이 영적인 하나님의 권위체계마저 붕괴시키고 있습니다(12:8bb).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차제에 그러한 못된 버릇을 확실하게 바로잡고자 하십니다. 그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요?

다섯째로,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12:9-10);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12:9-10a);

1)    여호와께서는 아론과 미리암의 잘못을 꾸짖으시고 진노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 버리십니다. 그러자 회막 위에 머무르고 있던 구름기둥마저 사라져버립니다. 그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낮의 태양으로부터 보호를 해주던 그 차폐막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처신을 해야만 여호와의 진노가 풀리게 될까요? 그리고 사라진 구름기둥이 다시 회막 위에 임재를 하게 될까요?

2)    그 숙제를 풀라고 하듯이 모세의 누나인 여선지자 미리암에게 갑자기 전신에 나병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암에게 내리신 여호와의 그 천벌이 사면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회막으로 돌아오시고 구름기둥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신호가 될 것입니다. 

(2)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12:10b);

1)    똑같이 모세를 비방했는데 어째서 대제사장인 아론은 나병에 걸리지 아니하고 여선지자인 미리암만이 나병에 걸린 것일까요? 그것은 여호와의 징계가 한시적인 것이며 사면을 받을 방도를 마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똑같이 괘씸하게 여겨서 대제사장인 아론마저 나병환자로 만들어버렸다면 누가 나병임을 진단하고 속죄의 제사를 드려줄 수가 있겠습니까?(13:2, 14:2-7) 대제사장 아론이 제사장들을 통솔해야만 그 일을 수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론이 밉기는 하지만 그를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게 되면 아론은 스스로 옷깃을 여미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누나 미리암에게 내린 그 천벌이 사실은 아론에게도 동일하게 해당이 되는 처벌이기 때문입니다(12:1, 8).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대속의 삶을 살고 속죄의 제사를 똑똑이 드리라고 하는 의미에서 아론에게는 직접 손을 대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아론이 모세에게 매어 달리게 됩니다. 부디 여호와께 간구하여 미리암을 용서하시도록 해달라고 간청하고 또 간청하는 것입니다(12:11-12).

결론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여호와의 뜻을 알아챈 대제사장 아론이 모세에게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부디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여 나병환자가 된 미리암의 신원이 회복이 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아론의 마음과 간구가 바로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신앙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왕 같은 제사장으로 끝까지 대속의 삶과 중보자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