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55강(민11:31-3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25. 01:09

민수기 강해 제55(11:31-3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126()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기 먹기를 소원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메추라기를 제공하여 주시며 동시에 탐욕을 퍼뜨린 주모자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계시는가?(11:31-35)

 

본문은 여호와께서 사용하시는 당근과 채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반드시 데리고 들어가고자 하십니다(15:13-14, 46:3-4, 50:24, 2:24-25, 3:7-8).

그렇지만 미숙하기 그지 없는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끌고 들어가기에는 시행착오가 너무나 많습니다(32:1-14, 11:115).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시고 다듬어 가시는 여호와의 방법을 광야생활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그 방법이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당근과 채찍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1:31-35);

(1)  첫째, 240만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한달 동안 실컷 먹을 수 있는 엄청남 양의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진영 사방에 날라다 주십니다(11:31-32).  그것이 일종의 당근입니다.

(2)  둘째,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을 선동하여 모세에게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고기반찬을 달라고 울면서 떼를 쓰도록 만든 그 주모자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하십니다(11:33-35). 그것이 여호와의 채찍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당근과 채찍으로 일일이 고쳐가면서 과연 미숙한 백성들을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영생의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이르도록 만들 수가 있을까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는 그 과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민수기를 위시한 성경의 기록이라고 하겠습니다(11:23, 29).

그와 같은 의미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다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주이시며 육신이 아니고 영이십니다(1:1-2, 3:13-15, 65:17-18, 4:24). 그러한 속성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일이 가능합니다;

(1)  첫째, 육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처럼 시공간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꺼번에 통찰하시면서 의사결정을 하십니다. 그것도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기적인 인간들의 정의가 아니라 창조주의 공의를 실현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2)  둘째, 하나님의 의사결정의 내용을 믿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의사결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를 못하고 또한 올바르게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3)  셋째,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가 진행이 되도록 섭리를 하십니다(11:33-36). 필요하다면 새로운 창조의 능력을 사용해서라도 그러한 시대를 열어 가시는 것입니다(48:6-7). 그러한 모습을 모세오경에서는 모세의 후계자가 되는 여호수아의 선택과 그 세움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27:18-23, 31:7-8). 훗날에는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과 복음사역에서 그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1:11-16, 3:13-17).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그 부활의 사건이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8:33, 24:44-4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바람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2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11:31);

(1)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증이 날 정도로 한달 동안 실컷 먹을 수 있는 메추라기를 주실 것이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11:19-20). 그 말씀 그대로 실행을 하십니다(11:31).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여호와에게서 바람이 나타나고 있다고 모세가 기록하고 있습니다(11:31a). 그 의미는 바람으로 상징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이 이 세상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3:8, 2:1-4).

2)    둘째, 하나님의 능력이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오고 있다고 모세가 적고 있습니다(11:31b). 히브리정경에서 바다는 먼 나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11:11, 10:1).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작도 할 수가 없는 그 먼 곳에서부터 메추라기가 그들의 진영 바깥으로 몰려와서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11:31b).

3)    셋째, 바람에 실려온 그 메추라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 사방에 쌓이고 있습니다(11:31c). 어느 정도로 많은 양인지를 모세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2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11:31d);

4)    이스라엘 백성들은 높이 앞서가던 구름기둥이 운반 중에 있는 성막과 성물 가까이 내려오게 되면 행진을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성막을 다시 조립하여 세우고 그 사방에 군대와 백성들이 머물 수 있는 진영과 장막을 설치합니다. 그런데 그 바깥 사방에 메추라기가 바람에 실려와서 쌓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양을 측정해보니 땅 위에 90cm나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메추라기가 쌓여 있는 면적이 대충 백성들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의 온 들판입니다. 평지로 볼 때 그 길이가 적어도 10km이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3)  그렇게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요? 온 세상의 모든 메추라기를 전부 바람으로 실어온 것일까요? 그래도 그 정도의 양이 되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가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먼 나라 바다 저편에서 바람으로 실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메추라기들입니다. 단지 바람에 실려온 것으로 자연스럽게 보이게 했을 따름입니다”.

(4)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란 광야에서 그 많은 메추라기를 수거하여 말리며 대부분 요리를 해먹을 때까지는 꼼짝 못하게 됩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는 그들의 욕심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11:1-20). 더 이상 북진을 하지도 못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에 족쇄가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양새는 그 옛날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가 북부 시리아 하란 땅을 탐내어 그곳에 도시를 건설하여 돈을 버느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11:31-32, 24:10).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탐욕을 부리게 되면 어떠한 처벌이 있게 되는 것일까요? 당근에 이어서 나타나고 있는 여호와의 채찍에 대하여 후술이 되고 있습니다(11:33).  

둘째로,백성이 일어나 그날 종일(終日, 하루 낮 동안) 종야(終夜, 밤새도록)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든 자도 10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11:32);

(1)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장정만 60만명이므로 전체 인구는 240만명이나 됩니다. 그들 가운데 걸을 수가 있는 자들은 전부 들판으로 나아가 이틀 동안 메추라기를 모으고 있습니다(11:32a). 한달 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을 여호와께서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것을 모두 수거하고 보니 적게 거둔 자도 10호멜이나 됩니다(11:32b).

(2)  고대사회에서 1호멜은 나귀에 실을 수 있는 양식의 양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 부피로 220리터입니다. 곡식이므로 그것을 무게로 환산하면 대략 100kg정도입니다. 따라서 1인당 10호멜이면 1톤 정도 무게의 메추라기를 모은 것입니다.

(3)  그 많은 무게의 메추라기를 모두 나귀에 싣고서 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집집마다 나귀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고기를 들판에서 태양에 말려 육포로 만들고 있습니다(11:32c). 그리고 일년 가까이 고기 맛을 보지 못했기에 여러 날 정신 없이 메추라기를 구워서 먹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메추라기를 처분할 때까지는 전혀 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일정이 늦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11:33-34);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11:33);

1)    여호와의 당근과 채찍은 그 선후관계와 시간적 차이가 어느 정도일까요? 모세가 상세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11:33a). 그 시간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채찍보다는 당근이 먼저라고 하는 그 선후관계만은 분명합니다.

2)    고기는 씹어야 맛이 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일년만에 처음 만난 메추라기 고기를 맛보기 위하여 급한 김에 구워서 이빨로 씹고 있습니다. 씹으면서 그 고기의 맛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처 씹어서 그 맛을 느끼기도 전에 급보에 접하고 있습니다.

3)    여호와 하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11:33b). 심히 큰 재앙이란 죽음을 의미합니다. 1년만에 고기를 씹어서 그 맛을 보려고 하던 일부 백성들이 그 자리에서 급살(急煞, 급작스러운 죽임을 당함)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여호와께서는 인정사정 없이 죽음의 채찍을 휘두르신 것일까요?

(2)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11:34);

1)    상당히 많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진노로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급하게 판 큰 구덩이에 그들을 한꺼번에 매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1:34a). 그 뜻은 탐욕의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진노로 급살이라고 하는 채찍을 맞게 된 자는 두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광야생활을 통하여 여호와신앙이 성숙하여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광야생활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관문이며 훈련 기간이라고 하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3)    ②또 하나는 불평과 불만이라고 하는 누룩을 백성들에게 퍼뜨린 자들입니다. 그 점에 대한 모세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11:4-6),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11:34b).

4)    풀이를 해보자면, 여호와를 원망하는 시작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출애굽을 한 잡족들입니다(11:4, 12:38). 그렇지만 그 불평의 누룩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파한 주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의 노예생활 가운데에서도 고기 맛을 보고 살았다면서 여호와에 대한 원망을 백성들에게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11:5-6, 10). 그들 주동자들이 잡족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고 하겠습니다(11:34).

넷째로,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행진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11:35); ‘탐욕의 무덤이 바란 광야에 생기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휘두르시는 진노의 채찍을 보고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메추라기라고 하는 고기의 단맛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메추라기 고기가 황야의 강한 햇빛에 바짝 말라 육포가 되자 얼른 수거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도저히 우물쭈물하고 있을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부피가 크게 줄어든 그것을 챙겨서 얼른 북진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는 여호와께 고기 맛을 보여 달라고 울면서 떼를 쓸 수가 없습니다. 그 주동자들이 한꺼번에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행진하여 하세롯에 도착을 하고 있습니다(11:35a). 그곳에서 상당기간 체류를 하게 될 것입니다(11:35b).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을 통하여 애굽의 노예생활에 물들어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믿음의 용사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여간 어렵지가 않습니다. 종살이의 특징이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배를 굶지 않고 때를 보아 맛있는 것을 얻어 먹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버릇과 근성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면 당장에는 크게 기뻐합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고달픈 광야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호와께 온갖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란 광야에 들어와서도 두번이나 여호와께서 크게 진노하시는 사건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불심판을 행하고자 하셨던 다베라 사건과 탐욕자를 죽여버린 기브롯 핫다아와의 심판이 그것입니다.

미성숙한 신앙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워낙 울면서 여호와께 고기 맛을 보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으므로 당장은 메추라기 고기를 실컷 먹도록 조치를 하십니다. 그러나 그 맛을 채보기도 전에 탐욕에 불을 지른 주모자들이 한꺼번에 급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당근과 채찍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조련하시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현세라고 하는 광야생활을 통하여 성숙한 믿음의 일꾼으로 거듭나야만 하는 성도들은 이 대목을 눈 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채찍과 당근을 맛보기 전에 스스로 각성을 하여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믿음의 길에 정진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기브롯 핫다아와와 하세롯은 바란 광야와 가데스 바네아 사이에 있음; 그러므로 첫번째 화살표의 위치가 기브롯 핫다아와라면 두번째 화살표의 위치가 하세롯에 해당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