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43강(민9:6-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18. 02:02

민수기 강해 제43(9:6-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1122()

 

유월절 어린양의 제사가 거류민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리고 부정한 자이거나 정결한 자이거나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9:6-14)

 

유월절 어린양의 제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본문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훗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의 의미를 미리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1:29, 36, 5:13). 그러므로 그 대속의 제사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나 차별이 없이 적용이 됩니다. 또한 부정한 자이거나 정결한 자이거나 상관이 없이 그 속죄의 제사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적용의 무차별성은 어째서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이시며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1:1-2, 4:24). 여호와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돌보시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 공의의 정신을 이 세상에서 자신을 대속물로 바쳐서 실천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11:4-5, 3:13-17, 6:37-40).

그렇다면, 본문에서 모세는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부정한 자들의 요청에 대하여 여호와로부터 어떠한 지시를 얻어 내고 있는 것일까요? 다음과 같이 그 대략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니다;

(1)  첫째로, 유월절은 그 시작이 이방 땅 애굽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 바깥으로 내보내어 여호와를 섬길 수 있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애굽의 황제인 바로가 계속 거절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마지막 재앙이 그날 밤 애굽 땅에 임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간단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고 그 집안에서 어린양의 고기를 구워 먹으며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장자의 죽음이나 가축의 초대생의 죽음이 임하지를 않습니다(12:1-14, 21-23). 그 반면에 그러한 행사를 치르지 아니하고 있던 사람들 특히 애굽 사람들에게는 그날 밤에 장자의 죽음과 가축의 초태생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동시에 발생한 것입니다(12:29-30). 여기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그 대문에만 뿌려져 있으면 이스라엘 자손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사실이 중요합니다(12:23-24, 38, 9:20).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수를 미리 선보여주고 있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애굽에서 유월절 밤에 발생한 여호와의 그 심판 및 구원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마음속에 새기는 작업은 출애굽한 모든 백성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죽음에서 구원을 얻게 된 것이 모두 자신들의 의로움이나 공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얻은 해방과 구원은 오로지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의 대가이며 그 제물의 피를 대속의 피로 인정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부정한 자이거나 정결한 자이거나 차별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희생의 피가 유월절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방과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고 있는 여호와의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셋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 행사를 처음 가지려고 할 때에 약간의 논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함을 입게 된 백성들이 과연 유월절 행사에 참여할 수가 있는가? 하는 논쟁입니다. 모세는 그 질문을 가지고 여호와의 답변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 결과 중요한 여호와의 말씀을 얻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9:10). 한 마디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정결함과 부정함의 인식이나 거리적인 멀고 가까움이 유월절 해방과 구원의 감격을 다시 누리는데 있어서 조금도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부정하기 때문에 유월절 구원의 은혜를 얻지를 못한다고 함부로 예단하지를 말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그 마음속에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모든 족속들에게 다같이 풍성하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4)  넷째로, 선민 유대인이라고 하여 유월절의 은혜를 만끽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혜택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정결하기도 하고 여행 중에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 죄를 담당할지며, 만일 타국인이 너희 중에 거류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규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거류민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9:13-14).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살고 있는 본토인 곧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라고 하여 유월절의 은혜를 만끽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특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의 대가는 이방인 출신인 모든 거류민에게도 개방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어린양의 피가 대문에 뿌려져 있으면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이 없이 모두 죽임을 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유월절 행사에 참여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여김을 받고 있다거나 전염병 등으로 격리가 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먼 나라에 여행 중이어서 어린양을 구해서 유월절 행사를 그곳에서 같은 날에 지낼 수가 없는 경우 등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부득이 양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경우가 아니라고 하면 누구나 유월절 행사에  참여를 해야만 한다고 하는 여호와의 강력하신 말씀입니다.

3)    셋째, 신앙생활이란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스스로 여호와의 은혜와 그 대속의 사랑을 마음속에 새기고자 하는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누구나 자원하여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고 그 어린양의 피를 뿌리고 그 고기를 먹고자 하면 그것을 금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자원하는 마음을 참으로 기쁘게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를 너무나 반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때에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날에 모세와 아론 앞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었거니와, 우리를 금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심은 어찌함이니이까?”(9:6-7);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함을 입은 자들이 있습니다(6:7-9, 9:6). 그리고 나병이나 유출병을 가진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 진중에서는 격리의 대상입니다(5:1-4). 그들 가운데 일부가 광야에서 처음 거행이 되는 유월절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격리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이 이미 있었기에 그들을 이스라엘 진중에 들어오게 할 수가 없습니다(5:2-3). 불치의 전염병과 죽음의 기운이 이스라엘 진중에 퍼지게 되는 것을 용인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그들이 유월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는 불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다음날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찾아가서 그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9:6). 자신들에게도 유월절을 지키고 헌물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9:7). 그렇다면, 자원하는 마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고 싶은 그들의 마음이 여호와의 율법에 의하여 끝까지 외면을 당하게 될까요? 아니면 또 다른 구제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일까요? 모세는 그 답변을 여호와로부터 얻고자 합니다(9:8-9).

둘째로,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령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9:8-10);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령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9:8); 모세의 신앙자세가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는 종인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주인이신 여호와의 견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율법에 의하여 격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하여 모세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를 않습니다. 신정국가의 주인이신 여호와께 말씀을 드려서 그 답을 구해서 알려줄 터이니 기다려 달라고 현명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종의 자세는 성도들에게 귀감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9:9-10);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선적으로 유월절 행사의 원칙에 관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선민 이스라엘과 그 자손들은 어떠한 경우에 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앞에서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속에 여호와의 뜻에 따라 유월절 어린양의 대속의 피를 얻고 동시에 구원을 감사하는 헌물을 여호와께 바치고 싶으면 그것을 금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원하여 유월절에 참여하고 구원의 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 원칙에는 하나의 제약이 부차적으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지혜가 놀랍게 나타나고 있는 대목입니다.   

셋째로,둘째 달 열 넷째 날 해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9:11-12);

(1)  유월절 밤은 본래 유대인의 달력으로 정월 14일입니다(12:2-6). 그래서 광야에서도 그날 밤에 유월절 행사를 지내게 됩니다(9:5). 그렇지만 그때에는 이스라엘 진중에서 격리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참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전염성이 있는 불치의 병자 곧 나병환자와 혈루병자들이기 때문입니다(5:2a). 그리고 시체를 만지거나 보고서 그 죽음의 기운에 영향을 크게 받아 부정하게 된 자들입니다(5:2b).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서 진중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2)  그렇다면 그들도 어떻게 하면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고 여호와께 헌물을 바칠 수가 있게 되는 것일까요?(9:6-10) 그 방법이 바로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한달 후입니다(9:11). 그리고 장소는 그들이 환자촌과 정착촌을 이루고 있는 그곳입니다(17:11-12). 그렇게 시공간이 달라진다고 하여 유월절의 모든 율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 마디로, 출애굽기 제12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처음 유월절의 행사를 그대로 재현하라는 것입니다(9:11-12). 특히 그 가운데 유월절 어린양의 다리뼈를 꺾지 아니하는 것은 훗날 골고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신의 다리뼈를 꺾지 아니한 사실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라고 하겠습니다(19:33, 36).

넷째로,그러나 사람이 정결하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의 죄를 담당할지며”(9:13);

(1)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삼상16:7). 그러므로 여호와를 기뻐하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스스로 그 말씀을 따르려 하는 자를 좋아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을 결정하실 때에도 그러하시고 제물과 헌물을 받으실 때에도 그러하십니다(25:2, 36:3, 1:13, 16-17).

(2)  그렇게 바람직한 신앙의 자세를 지니고 있는 자는 세상사람들이 부정하다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진심을 살피시는 여호와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9:6-7). 그리고 여행중이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해도 된다고 하는 조항에 상관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그 절기를 지키고자 합니다(9:10).

(3)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바람직한 신앙의 자세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행 중에 있기 때문에 예외조항에 의하여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할 수도 있다고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9:13a 그 속에 내포가 된 의미의 해석임). 그렇다고 하여 그들을 성도의 자리에서 여호와께서는 내어쫓지를 아니하십니다. 다만 여호와께서 용서하지 아니하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외조항에 해당하는 그러한 정당한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유월절 행사를 건너 뛰고자 하는 자들입니다(9:13a).

(4)  그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정결하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의 죄를 담당할지며”(9:13). 실제로 선민들이 유월절을 정당한 사유가 없이 지키지 아니한 경우 그러한 역사적인 심판이 임하고 있는 것일까요?(9:13b)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역사가 여호와에 의하여 그렇게 섭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역사서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5)  모세와 여호수아가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는 유월절 행사를 지내고 있습니다(9:4-5, 5:10-11). 그러나 사사시대에는 그러하지를 않습니다(2:10-15). 왕정국가 시대에 있어서 유월절의 행사가 있게 되는 경우는 종교개혁의 시기에 국한이 되고 있습니다(왕하23:21-23, 대하30:1-5). 따라서 북조 이스라엘 왕국과 남조 유다 왕국이 모두 외세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17:4-6, 25:2-7). 그러한 역사가 유월절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이 세상의 역사에 있어서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다음 구절에서 그 답을 얻고자 합니다.

다섯째로,만일 타국인이 너희 중에 거류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율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거류민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9:14);

(1)  선민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을 위하여 주어지고 있는 성격이 강한 유월절 행사입니다(12:1-14). 그렇지만 자원하여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는 온갖 족속들에게 유월절 행사에의 참여는 열려 있습니다(9:20, 12:21-23, 38, 49). 그것은 이스라엘 진중에서 격리가 되어 있는 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조치에서 분명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9:10, 14).

(2)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피조세계의 구원을 위하여 육신을 입고서 이 세상에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사건은 그 적용의 범위가 광대합니다. 선민 이방인 차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선민 유대인들의 사회만 역사적인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들도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영접하고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만약 그러하지 아니하면 세상의 종말과 함께 역사적인 심판 가운데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 골고다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맞이하게 됨에 따라 인류의 역사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개인적으로 영생의 구원이냐? 아니면 영벌의 심판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오로지 영생의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서 거듭난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성도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영원한 멸망과 처벌 가운데로 들어가고 맙니다. 그러한 미래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곧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및 새 예루살렘성의 강림으로 인류의 역사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65:17-18, 21:1-2).

그러므로 아무쪼록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새로운 창조를 바라보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