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42강(민9: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18. 02:00

민수기 강해 제42(9: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1 21()

 

시내 광야에서 맞이하고 있는 첫번째 유월절 행사와 이스라엘 12지파가 각각 군대를 조직하고 그들의 사령관을 가지게 된 사건은 시간적으로 어느 것이 먼저 발생한 일인가?(1:1-4, 9:1-5) 어째서 모세가 그 기록의 순서를 바꾸고 있는가?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의 유월절 사건에 즈음하여 그들의 달력이 바뀌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에서 430년간 살아오면서 애굽의 달력을 사용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달 열 나흘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 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사르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12:1-11). 그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그때가 태양력으로 4월 봄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정월로 삼으라고 달력의 변경을 지시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시간 개념을 애굽인들과 달리하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이 있는 그 달이 바로 한해를 시작하는 첫달이 됩니다. 따라서 유월절 사건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머지 11달과 한해라고 하는 세월이 여호와 앞에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하겠습니다(17:1).

(2)  둘째, 유월절의 핵심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대문에 뿌려서 죽임을 면하고 출애굽의 해방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약속입니다. 그렇지만 그 유월절의 언약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방인들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동일한 혜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대문에 발려 있는 집안으로는 일체 죽음의 천사가 방문을 하지 아니하고 그 집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날 밤 그 집에서 쫓겨나지만 아니하게 되면 역시 장자의 죽임을 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출애굽을 할 때에 많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여호와를 섬기기 위하여 세상의 제국 애굽을 떠나는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12:38).

(3)  셋째, 유월절 사건은 하나의 규례가 됩니다(12:24-27). 이스라엘 자손들은 대대로 그 옛날 조상들이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을 무교병과 함께 먹던 그 절기를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년 행사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면하고 구원을 받은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대속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먼 훗날 영원한 대속의 어린양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는 은혜가 임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매년 절기의 행사로 반복이 된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큰 효과를 대대로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대가 달라지고 사는 환경이 달라지게 되면 그 옛날의 기억과 은혜를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할 때까지는 광야생활의 연속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도우심이 아니면 생존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그들의 진 가까이 내려 주시지 아니하시면 꼼짝 없이 굶어 죽을 지경입니다(16:12-18). 그리고 그들의 군대가 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지휘를 받아 강한 적들과 싸우지 아니하면 안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17:8-16).

그러나 일단 요단 강 서편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그것을 12지파가 자신들의 영토로 분할하여 분배를 받은 이후에는 달라집니다. 그때부터는 자신들의 군대의 힘으로 적들을 물리치고 지파의 번영만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구태여 여호와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더라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풍요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시대를 통하여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유월절 행사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2:10, 17:6). 그러한 시대가 왕정국가에 들어와서도 몇 차례의 종교개혁의 기간을 제외하게 되면 대체로 그러합니다(왕하23:21-23).

그러므로 결론은 하나입니다. 하나의 절기와 규례로 전승이 되고 있는 유월절 행사보다는 스스로 자원하여 여호와를 섬기며 그 말씀에 따라서 인생을 살고자 하는 그 마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모세는 민수기를 기록하면서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1월달에 있는 유월절 행사와(9:1-5) 2월 이후에 발생한 12 사령관들의 헌물의 순서를 서로 바꾸는 것입니다(1:1-4, 7:1-11).

현실적으로, 12지파의 군대를 자신들의 군대로(2:4, 6, 8) 지휘하고 있는 12사령관들이 군부의 실세이며 이스라엘의 권력자들입니다. 그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오고 있습니다(7:2-3). 성막의 이동과 레위인들의 수고를 돕고자 수레와 소를 헌물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7:3-10).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주신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속죄의 제사와 화목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고 있습니다(7:1183).

그것은 12사령관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여호와께 충성하는 자세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들 사령관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하여 전진하고자 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신정국가의 최고지도자인 모세의 말을 따르고 제사장들을 돕고자 합니다. 그것이 규례화 되고 있는 유월절 행사보다는 더 중요하다는 것이 민수기의 내용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더욱 드러내고 있는 것이 민수기 제6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나실인의 법입니다. 레위인이 아니지만 12지파의 백성이 일정기간 서원을 하고서 레위인처럼 여호와를 섬기고자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 주고자 나실인에 관한 율법을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규례가 여전히 광야에서 지내게 된 유월절 행사보다 먼저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행사보다는 그 자원하는 마음이 먼저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해 첫째 달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9:1-2);

(1)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들어 그의 형 아론과 함께 애굽 제국의 황제인 바로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바로에게 전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5:1). 바로는 코웃을을 치게 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여호와라고 불리는 신이 애굽 제국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호신이라고 합니다. 그 백성을 보면 그 수호신의 능력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죽 힘이 없고 능력이 없으면 자신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백 년 이상 노예생활을 하도록 내어버려두고 있는 것일까요?

(2)  바로가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는 신 중의 신입니다. 유일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만한 세상 제국의 황제 바로에게 본때를 보여 줍니다. 10가지 재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애굽 땅 애굽인들에게 밀어 닥친 것입니다. 그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바로 장자의 죽음과 가축의 초태생의 죽음입니다(12:29-30).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그 달 14일 저녁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대문에 칠한 집에는 일체 죽음의 천사가 방문을 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12:6-13). 그 피를 보고 죽음이 건너 뛰어가버렸기에 그 날을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3)  그와 같은 기적이 신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사전에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유월절 어린양을 준비하여 그날에 그렇게 조치를 하라고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대로 지킨 집에서는 구원의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징계와 예언에 대하여 반신반의했던 애굽인들은 더 이상 견디지를 못하고 그 재앙덩어리를 애굽 바깥으로 떠나 보내고 맙니다(12:31-34). 그러한 기적의 역사가 바로 유월절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유월절의 감격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것을 절기로 정하여 대대로 규례로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12:14). 그리고 특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유월절을 더욱 확실하게 지키라고 강조하십니다(12::24-25).

(4)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습성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하여 복종도 하고 아부도 잘 합니다. 하지만 그 초월적인 존재가 더 이상 별로 필요가 없다고 판단이 될 때에는 가차없이 버려버리는 배은망덕한 자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특성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므리바 다툼이며 맛사의 시험의 현장입니다(17:1-7). 출애굽의 신 여호와의 능력을 이미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광야에서 마실 물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5)  이제는 자신들에게 마실 물을 계속 제공해주면 여호와를 섬길 것이고 그러하지 못하면 버려버리겠다고 말합니다(17:7).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피조물의 교만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물을 제 때에 공급해주지 아니한다고 지도자 모세와 다투고 있습니다. 그러한 므리바의 현장에서 모세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광야생활 가운데 생존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해 주십니다. 더위와 추위가 극심하게 교체가 되고 있는 그곳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매일 공급하십니다. 적의 기습을 막아낼 수 있도록 대신 싸워 주시기도 하십니다.

(6)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너무나 빨리 그 고마움을 잊어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일년이 지나자 여호와께서는 출애굽 이듬해 1월달에 모세를 통하여 지시하십니다. 광야에서도 매년 빠지지 말고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9:1-2). 지금부터 강하게 훈련을 시켜 놓지 아니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배가 불러지면 유월절도 지키지 아니하고 아예 여호와신앙을 버려버릴 이스라엘 자손들로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8:11-20). 따라서 모세는 그 점을 염려하여 동족들에게 부디 여호와의 은덕을 잊어버리지 말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달려가라고 죽기 전에 유언삼아 신명기를 저술하면서 얼마나 간절하게 권면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29:18-29, 30:19-20).  

둘째로,정한 기일 곧 이 달 열 넷째 날 해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9:3);

(1)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다시 지시하시는 유월절의 규례와 율례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애굽의 고센 땅에서 한번 실천을 해본 그대로입니다. 어린양을 정월 10일에 마련하여 14일 저녁에 도살을 하면 됩니다(12:3-6). 그 피를 문인방과 양쪽 문설주에 우슬초를 붓으로 사용하여 바르면 됩니다(12:21-22). 그리고 그 양고기를 구워서 그날 밤 식구들이 함께 먹는 것입니다(12:8). 그 봄철에 나는 쓴 나물과 함께 먹습니다. 빵은 누룩이 들어가지 아니한 무교병을 사용합니다(12:15). 그러한 율례를 지키면 됩니다.

(2)  유월절 양고기는 그날 밤 하루만 먹지만 무교병과 쓴 나물은 7일 동안 먹습니다.(12:10, 15) 그것이 유월절로부터 시작하여 7일간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의 규례입니다. 누룩이 들어간 부드러운 빵은 삶의 풍요를 의미합니다. 반면에 누룩이 들어가지 아니한 무교병은 마치 건빵과 같습니다. 그것은 딱딱한 빵이며 군인들이 먹는 것입니다. 전투의 현장에서는 부드러운 유교병을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무교절의 규례는 그 옛날 그 출애굽의 긴박했던 날들을 기억하면서 하루하루를 여호와 보시기에 구원을 받은 자로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는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컨대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디 느슨해지지 말고 그렇게 여호와의 군인처럼 약속의 땅을 향하여 전진을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모세는 죽기 전에 그 약속의 땅이 가나안이 아니고 천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히브리서 저자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11:13-16, 26).

셋째로,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그들이 첫째 달 열 넷째  해질 때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행하였더라”(9:4-5);

(1)  출애굽한 이듬해 정월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정월 14일에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대문에 바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월달에 시행한 그 유월절 규례를 모세는 여기 제9장에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앞서 제6장에서는 나실인의 율법이 적혀 있고 제7장에선 이스라엘 12지파의 사령관들이 성막에 관유를 바르는 길일(吉日, 좋은 날)에 헌물을 여호와께 바쳤다고 적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으로 모세가 12지파의 장정들의 수를 세고 그들을 지휘할 사령관을 정하라고 지시한 시점이 출애굽 제2 2월달입니다(1:1-4).

(2)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민수기의 내용을 기록하자면 정월에 시행하고 있는 유월절 행사가 먼저입니다. 그 다음에 나실인의 법이나 12사령관들의 헌물 이야기를 적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의도적으로 그 순서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冒頭,  앞선 머리말)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딱딱한 율례나 규례를 억지로 지키는 것보다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동족들을 돕고자 하는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전한 믿음생활이라는 것입니다(2:5-11). 그러므로 그 순서를 민수기의 기록에 있어서 가장 앞세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다음 세가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딱딱한 유월절의 규례나 무교절의 율례를 지키는 것 보다는 자원하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여호와께 나아가서 그 말씀을 따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가치가 있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구애하지 아니하고 더 가치가 있는 기록을 앞세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광야생활에 있어서는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공하십니다. 생존에 필요한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전쟁에서의 승리 등이 모두 여호와에 의하여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생활 중에 여호와께서 주시고 있는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유월절 규례를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3)  셋째, 광야생활 동안 매년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풍요로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유월절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란 먹을 것이 풍족하고 군사력이 굳건하면 근심걱정이 사라져서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기가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유월절 규례를 잘 지키기가 힘이 듭니다. 훗날 사사기 시대나 이스라엘 자손들의 왕정시대의 역사를 보면 분명 그러합니다.

  참으로 인간을 정확하게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여호와를 섬기기를 먼저 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이 유월절 규례와 무교 절기를 빠짐없이 지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천성에 이를 때까지 그 두가지를 신실하게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