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39강(민8:5-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15. 09:20

민수기 강해 제39(8:5-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1 17()

 

제사장의 위임제사, 나실인의 환속을 위한 제사, 12사령관들의 충성을 맹세하는 제사 등과 비교할 때 레위인을 여호와께 바치는 제사는 어떻게 다른가?(8:5-13)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애굽의 황제인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키라는 자신의 뜻을 전하게 하십니다(5:1). 그 뜻에 불응하고 있는 바로와 그의 신하들을 10차례의 재앙으로 굴복시키고 드디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노예해방과 출애굽의 역사를 선물하십니다(12:29-42). 그리고 홍해까지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바닷물속에 수장함으로써 애굽 제국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떨쳐내게 합니다(14:13, 26-31).

그렇지만 그것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하게 세상의 제국인 애굽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육체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는 애굽의 영향에서 벗어났지만 영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는 애굽에서의 우상숭배와 세속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그들입니다. 그 결과 광야생활 40년을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뿌리를 박고 있는 노예근성과 열패(劣敗, 열등감과 패배감) 의식 그리고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청산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시내 산 언약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출애굽한지 3개월이 되던 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만나고자 시내 산 정상에 강림하십니다. 그곳에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인 선민으로 삼고 있습니다(19:4-5). 그리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19:6). 그런데 과연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제사장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간 것일까요? 그렇지가 못하다는 사실이 훗날 이 세상에 하나님말씀에 대한 계시자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여지없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추어보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선민만의 구원이나 현세적인 이스라엘 제국의 영광을 원하시고 계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복음사역과 대속의 십자가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정확하게 선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말하자면, 제사장나라는 선민만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백성은 자신들만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거룩하지 못한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여호와의 뜻을 받들어 남은 인생을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선민들이 모두 선지자가 되고 중보의 기도자가 되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와 같은 깊은 하나님의 복음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출애굽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 제사장의 위임제사와 민수기에 기록이 되고 있는 나실인의 환속의 제사 그리고 12사령관들의 헌물과 제사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 다음에 본문에 기록이 되고 있는 레위인들의 제사를 함께 생각해봅니다. 그 결과 당장 얻을 수 있는 사실들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제사장의 위임제사는 7일간 자신들의 죄를 먼저 여호와 앞에서 속죄하는 제사를 제사장들이 드린다는 것입니다(29:1, 9-30, 37);

1)    그 속죄의 제사가 먼저 있어야 제사장들이 여호와 앞에 제사장으로 설 수가 있으며 백성들의 속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위임은 세상권력자들의 위임과는 다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죄를 먼저 제사를 통하여 사함을 받아야만 남을 위하여 제사장 노릇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복음을 들고 세상 끝까지 나아가게 되는 성도들도(벧전2:9) 불신자들과 이방인들의 속죄의 제사를 드려 주기 위하여 자신의 죄를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는 그 절차를 거쳐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죄 사함과 칭의의 절차가 있어야 제사장 노릇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나실인의 환속의 제사는 12지파의 백성이 레위인처럼 살아보고자 맹세하고 그 서원의 기간동안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6:10-21);

1)    이제 한시적인 서원의 기간이 만료가 되고 있습니다. 머리털을 밀지 아니한다거나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구별된 삶을 떠나 세속의 삶으로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나실인의 체험을 가지기 전과는 다른 삶이 되어야만 합니다. 비록 더 이상 육체적으로는 나실인의 구별된 삶을 계속하지 아니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여호와를 섬기는 거룩한 삶을 계속하고 싶은 것입니다.

2)    그러한 간구를 담아서 풍성한 제물로 여러가지 제사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실인의 새로운 각오를 밝히고 있는 환속을 위한 제사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이방인의 땅으로 나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영적인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각별하게 요청하는 기도가 더욱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 12사령관들의 헌물과 제사는 자신들의 군대와 백성들을 위하여 그 대표자로 드리고 있는 충성의 맹세와 그 제사의 의식입니다(7:10-18);

1)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가 모세이며 대제사장 아론을 비롯하여 여러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들을 보좌하는 원로 훌과 12지파의 장로와 족장들이 즐비했습니다(17:12, 24:1). 그러나 12지파가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하게 됨에 따라 그러한 민간인 출신 지도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12지파의 군대를 자신의 군대로 지휘하고 있는 12사령관들이 실세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2:3-4).

2)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자신들의 최고지도권 확립에 있어서 절실한 문제입니다. 그 고충을 아시는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12사령관들에게 명령하십니다; “12지파의 사령관들은 여호와 앞에 충성을 맹세하는 헌물을 바치고 자신들의 군대와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고 화목을 구하는 제물을 제사장 앞으로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7:10-18). 그러므로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위정자들과 군부의 실세들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그 권력을 제멋대로 사용하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창조한 백성들을 위하여 사용하는지를 위와 같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4)  넷째, 레위인들의 제사는 독특합니다(8:6-16). 레위인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그날 밤에 죽임을 면한 이스라엘의 장남들을 대신하여 성막에서 여호와를 전적으로 섬기고 있는 자들입니다(8:14-17). 그러므로 그들의 제사는 스스로를 속죄의 제물로 여호와께 드린다고 하는 성격을 지니게 됩니다;

1)    그러한 점을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안수하게 한 후에,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에게 여호와께 봉사하게 하기 위함이라”(8:9-11). 백성들의 죄짐을 대신 짊어지고 가는 여호와의 종의 모습이 제사장보다는 레위인들의 모습에서 더 잘 엿보이고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먼저 바치고 있는 레위인들의 제사가 훗날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의 원형이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도 레위인의 제사가 바로 자신의 제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의 봉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데려다가 정결하게 하라. 너는 이같이 하여 그들을 정결하게 하되, 속죄의 물을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에게 그들의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하게 하고”(8:5-7);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레위인들을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꾼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먼저 정결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8:5-6). 그리고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방법은 인간의 영과 목숨과 육체와 옷을 전부 정결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여기서는 우선 육체와 관련이 되는 목숨과 몸과 옷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첫째, 물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8:7a). 그것은 속죄의 물을 레위인에게 뿌리는 의식입니다. 제사장들이 성소와 번제단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 물두멍의 물로 손과 발을 먼저 씻어 자신을 정결하게 합니다(30:19-20). 수족을 그 물로 씻지 아니하고 제사를 드릴 때에는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30:21). 그러므로 레위인들에게 제사장들이 물두멍의 물을 속죄의 물로 뿌려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여호와를 섬기면서 레위인들이 목숨을 빼앗기지 아니하는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훗날 세례 요한의 회개의 물세례로 그 개념이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3:3).

(3)  둘째, 온몸의 털을 전부 삭도로 밀라는 것입니다(8:7b). 나실인이 서원의 기간 중에 죽음의 영에게 지배를 당하게 되어 더 이상 거룩한 삶을 계속할 수 없을 때에 그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에 머리털을 밀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6:9). 그것은 그의 머리속에 침투하여 온몸으로 퍼지고 있는 죽음의 공포를 밀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레위인의 몸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죽음의 공포에 오염이 된 털을 전부 삭도로 밀라는 것입니다.

(4)  셋째, 몸을 감싸고 있는 의복을 깨끗하게 빨아서 입으라고 합니다(8:7c).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여 새 옷처럼 입는 것이 어째서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데 중요할까요? 그 이유는 빨래를 한 옷을 햇빛에 말리고 또한 바람에 말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햇빛에 소독이 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 옷으로 생기와 면역력이 인간의 육체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더러운 옷에 세균이 전염되어 오는 것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겜을 탈출하여 벧엘의 하나님을 찾아가는 야곱일행이 의복을 깨끗하게 바꾸어 입습니다(35:2). 그리고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여호와를 뵙기 위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입고 있는 것입니다(19:10-11).

둘째로,또 그들에게 수송아지 1마리를 번제물,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그 소제물로 가져오게 하고, 그 외에 너는 또 수송아지 1마리를 속죄제물로 가져오고”(8:8); 죄를 범한 사람들의 영을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만들 수가 있을까요?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피의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17:11). 그러므로 죄를 범한 인간의 영을 살리기 위하여 그 대신에 가축을 제물로 삼아 그 피로써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죄가 무겁기 때문에 그 제물로 값비싼 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번제물로 수송아지 1마리 그리고 속죄의 제물로 또 수송아지 1마리를 여호와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8:8a&c). 그리고 부디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토지의 생산도 계속되게 해달라고 하는 의미에서 기름을 섞은 고운 가루로 소제를 함께 바치고 있습니다(8:8b).

셋째로,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안수하게 한 후에,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에게 여호와께 봉사하게 하기 위함이라”(8:9-11);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8:9); 레위인의 서열이 여기서 정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레위인들을 회막 앞에 세우고 그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모으도록 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8:5, 9). 여호와 보시기에 레위인들이 기타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보다는 앞 서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서열이 앞서게 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더 가까이에서 섬긴다고 하는 것이 엄청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그 다음에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2)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안수하게 한 후에”(8:10);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에 있어서 여호와의 앞에 서게 되는 자는 그 뒤에 서게 되는 일반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져야만 한다는 희생정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호와께 헌신한다고 하는 의미가 본래 그러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의 죄짐을 대신 지고 여호와께 사죄하는 자가 아니면 결코 백성들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 곧 12지파의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 서 있는 레위인들에게 자신들의 죄짐을 떠넘기는 안수를 하고 있습니다.

(3)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8:11a);

1)    마치 속죄양처럼 레위인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희생의 제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인신제사(人身祭祀, 사람을 죽여서 그 몸을 바치는 제사)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단지 흔들어서 여호와께 바치는 요제물로 삼으라고 지시를 하십니다(8:11a). 그 목숨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2)    레위인들의 피를 백성들의 제물로 대신 흘리게 만들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역사적으로 유일하게 사람의 피로써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단 한번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7:27-28). 그것이 완전한 제물이신 하나님의 아들 유월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29, 5:13). 그 제물도 여호와께서 직접 스스로 준비하신 것입니다(22:13-14).

3)    그 대속의 희생의 장소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어린양이 준비가 되어 있기에 그 옛날 아브라함 시대에도 이삭이 번제물로 끝까지 바쳐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22:10-12).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서 준비하신 그 숫양이 대신 바쳐지고 있는 것입니다(22:13-14). 따라서 레위인들에 대한 완전한 속죄 역시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실현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4)  이는 그들에게 여호와께 봉사하게 하기 위함이라”(8:11b); 레위인들을 단지 요제로 사용한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장남들을 대신하여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도록 선택이 된 사람들입니다(3:12, 41). 그러므로 제사장들을 도와서 남은 평생을 성막과 성물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3:6-9).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부터는 성전에서 물품을 관리하고 문을 지키며 또한 백성들에게 종교교육을 겸하여 찬양을 가르쳐서 여호와를 영광스럽게 하는 사명까지 맡게 되는 것입니다(대상6:31-48, 9:17-34).

넷째로,레위인으로 수송아지들의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네가 그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려, 레위인을 속죄하고”(8:12); 레위인들이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서는 제사장들처럼 먼저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29:1-14). 그 방법이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를 하여 자신들의 죄짐을 지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그 제물을 도살하여 번제로 그리고 속죄의 제사로 여호와께 바칩니다. 그 제사로 말미암아 레위인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의 삶이 아니라 여호와를 섬기는 거룩한 봉사자의 인생입니다.

다섯째로,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로 드릴지니라”(8:13);

(1)  제사를 드릴 때에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앞에 세워지는 것은 제물입니다. 그런데 레위인들이 그 제물이 되고 있습니다. 어떠한 제물일까요? 그것은 누가 레위인들에게 안수를 하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죄를 전가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가축인 제물에게 안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4). 그러므로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위한 제물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8:10).

(2)  그런데 레위인들은 인신제사의 제물로 여호와께 번제로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속죄양의 경우에는 번제로 바쳐지지만 여기서는 요제(搖祭)로 드려지고 있습니다. 요제라고 하는 것은 제물을 흔들어서 여호와께 바치는 시늉만 하고 그 목숨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축을 요제로 드리는 경우에는 도살을 한 후에 일정한 부위를 흔들어서 요제로 드리고 나머지 살코기는 제사장이 삶아서 식용으로 사용합니다.

(3)  여기서는 제사장이 레위인을 제단 앞에 세워서 요제로 드린 다음에는 성막에서 계속 여호와의 일꾼으로 봉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8:11). 예수님의 경우에는 레위인의 제사와 다릅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요제가 아니고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레위인의 제사도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삶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봉사자로 한평생 헌신한다는 요제의 제물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제사장의 직분 뿐만 아니라 레위인들의 헌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레위인들이 12지파 장남들을 대신하여 성막에서 전적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본문에서는 백성들의 죄를 대산 짊어지는 안수를 받고서 스스로 요제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는 레위인들의 성막에서의 봉사의 의미가 일반백성들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책임이 무겁습니다. 마찬가지로 먼저 믿고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도 그 책임이 무겁습니다. 백성들의 죄짐을 모두 한 몸에 짊어지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아니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다음 두 구절을 함께 음미해보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그러므로 아무쪼록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성취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