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37강(민7:84-8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15. 04:30

민수기 강해 제37(7:84-8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1 15()

 

12지파 군대의 사령관들이 하루씩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봉헌물을 바치는 의식을 모두 마치자 모세가 지성소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무엇을 보고하고 어떤 음성을 듣고 있는가?(7:84-89)

 

본문 바로 앞에서 12지파 사령관들이 하루씩 여호와께 제물과 헌물을 봉헌하는 의식을 모두 끝내고 있습니다(7:78-83). 제사장들이 그들을 도와서 번제와 속죄의 제사를 드렸으며 화목의 제사까지 모두 마친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언약궤와 속죄소에 임재하여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12 사령관들이 12일간 바친 봉헌물에 대하여 본문 제84-88절의 내용과 같이 보고를 드리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7:84-88).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미처 모세가 말하기 전에 그에게 무언가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7:89). 어째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보고를 듣기도 전에 한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은밀하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그 깊은 내용을 나름대로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이는 곧 제단에 기름 바르던 날에 이스라엘 지휘관들이 드린 바 제단의 봉헌물이라. 은 쟁반이 12이요, 은 바리가 12이요, 금 그릇이 12이니, 은 쟁반은 각각 130세겔 무게요, 은 바리는 각각 70세겔 무게라. 성소의 세겔로 모든 기구의 은이 2,400세겔이요”(7:84-85);

(1)  열두째 날에는 납달리 자손의 지휘관 아히라가 여호와께 제물과 봉헌물을 드리는 순서가 진행이 됩니다(7:78-83). 그 일정을 마지막으로 12지파 12사령관들의 순서가 전부 끝나게 됩니다. 지난 12일 동안 매일 제사장들이 차례로 12사령관들로부터 제물과 헌물을 받고서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번제와 속죄제 그리고 화목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제 모든 순서가 끝났으므로 마무리를 해야만 합니다.

(2)  그 마무리의 일환으로 전체적으로 본문에서 세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제단에 거룩한 기름을 발라서 그 제단이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에 12사령관들이 제물과 헌물을 그 제단을 통하여 여호와께 바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7:84a, 88:b).

2)    둘째, 그들이 바친 제물과 헌물에 대한 통계를 내고 있습니다(7:84b-88a).

3)    셋째, 모세가 최종결과를 보고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임재하여 계시는 여호와 앞으로 들어가게 됩니다(7:89).

(3)  첫째 사항에 대하여 그 말씀의 뜻을 여기서 먼저 묵상해봅니다;

1)    무엇보다도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성의가 없이 제멋대로 바치고 있는 제물과 헌물에 대하여 기쁜 마음으로 가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이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새로이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사람들이 준다고 하여 무조건 받아들이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제물과 헌물을 기쁘게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전제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 전제조건이 바로 그 제단이 먼저 거룩하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7:84a, 88b).

2)    따라서 여호와의 종들은 자신들을 먼저 거룩하게 만들어야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부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주님의 제자답게 거룩해져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복음의 일꾼으로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화에 한층 힘써야만 하는 것입니다.

(4)  둘째 사항은 12지파의 사령관들이 지난 12일 동안 바친 제물과 헌물의 종류와 내용에 대하여 다시 말하고 그 통계치를 적고 있는 것입니다;

1)    먼저 여기 본문에서는 은 그릇에 대하여 통계치를 말하고 있습니다(7:85).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언뜻 보면, 은의 무게가 모두 2,400성소 세겔이므로 그 값어치가 대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1성소 세겔을 오늘날 임금기준으로 800불에 해당한다고 보면, 2,400세겔의 은은 192만불이나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은 그릇의 값어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2)    여호와께서 보시는 것은 그 은 그릇에 담겨 있는 내용물입니다. 말하자면 그 은 그릇에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워서”(7:79) 여호와께 바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그 곡식가루를 여호와께 소제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풍성한 추수가 있도록 도와 주신 창조주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그러한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지 아니하게 되면 모든 것이 자신의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인 줄로만 알게 됩니다. 그러한 잘못과 무신론적인 불신앙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    곰곰이 생각해보면, 땅을 주시고 종자를 주시고 비를 주시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열매를 거두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호와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 예물을 참으로 기쁘게 받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기록이 그러하며 요한복음 제4장에 적혀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러합니다(66:20, 4:34-42).

4)    참고로, 금 그릇에 담겨 있는 거룩한 향에 대해서는 다음 절인  86절에서, 그리고 셋째 사항에 대해서는 나중에 제89절을 풀이할 때에 각각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둘째로, “향을 채운 금 그릇이 12이니, 성소의 세겔로 각각 10세겔 무게라. 그 그릇의 금이 모두 120세겔이요”(7:86);

(1)  금 그릇 10개는 그 무게가 성소의 세겔로 120세겔입니다. 금은 은의 15배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성소의 세겔로 은 1,800세겔입니다. 1성소세겔이 800불이라고 보면 그 값어치는 모두 144만불입니다. 그것은 큰 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귀한 금 그릇에 채워서 여호와께 올려 드리고 있는 그 거룩한 향이 더욱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그 거룩한 향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4생물과 24장로들이 그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5:8). 한 마디로, 선민과 이방인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그 영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그 금 그릇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3)  그러한 성도의 기도가 있을 때에 그 금 그릇이 제 구실을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정금과 같이 단련이 된 성도라고 하더라도 대속의 십자가를 증거하고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가 있을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으며 또한 값진 예물을 바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번제물로 수송아지가 12마리요, 숫양이 12마리요, 일 년 된 어린 숫양이 12마리요, 소제물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가 12마리이며”(7:87);

(1)  12지파의 사령관들이 자신들의 군대와 또한 자기 지파의 백성들을 대표하여 번제물과 소제물 그리고 속죄의 제물을 여호와의 제단에 바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번제와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또한 소제물을 태우고 있습니다. 그 번제와 속죄의 제물의 양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의미는 중요합니다.

(2)  그 의미는 한 마디로, 이스라엘 12지파의 군대가 여호와의 군대로 거듭나기 위하여 먼저 충성을 맹세하는 번제를 드리고 또한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를 드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제물의 의미에 대해서는 은 그릇에 담겨 있는 내용물인 소제물 설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부연설명을 하자면, 그것은 12지파 백성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여호와께 감사를 드려야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제사라고 하겠습니다.

넷째로,화목제물로 수소가 24마리요, 숫양이 60마리요, 숫염소가 60마리요, 일 년 된 어린 숫양이 60마리라. 이는 제단에 기름 바른 후에 드린 바 제단의 봉헌물이었더라”(7:88);

(1)  화목의 제사와 제단을 거룩하게 하는 절차를 연결하여 생각해보도록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 그 두가지가 모두 제단을 거룩하게 하는 절차와 관련이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제단에 관유를 발라서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주님의 대속의 보혈의 의미를 깨달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거듭 감사함으로써 다시 거룩한 성도가 된다고 하는 뜻입니다.

(2)  그러므로 주님의 대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혜가 없으면 자신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는 죄 많은 자라고 하는 자기인식이 먼저 신앙고백으로 있어야만 합니다(7:21-8:4). 그러한 인식이 없으면 영적인 괴물이 되고 맙니다. 마치 자신이 의인이며 언제나 거룩한 존재라고 하는 확신이 지나쳐서 하나님의 뜻도 저버리고 종의 위치에서 이탈하며 상대방을 무시하고 얕보게 되는 이상한 영적 권위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18:9-12, 14).

다섯째로,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7:89);

(1)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최고책임자가 모세입니다. 그는 수시로 지성소에 들어가서 언약궤와 속죄소에 임재하고 계시는 여호와와 대화를 하게 되는 무상의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25:22, 33:9-11, 34:10). 이제 12지파의 사령관들이 하루씩 여호와께 제물과 헌물을 봉헌하는 절차가 모두 끝났으므로 그 사실을 공식적으로 보고하기 위하여 모세가 지성소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2)  그런데 막상 자세한 내용을 보고하려고 하니까 갑자기 언약궤와 속죄소에서 여호와의 음성이 먼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모세는 여기서 그 내용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의 의도는 위의 본문의 내용을 깊이 묵상해보면 그 내용을 넉넉하게 알 수 있을 것이기에 구태여 이중적인 기록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3)  또 하나 여기서 모세가 보고를 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공식적인 보고를 제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12지파 12사령관들이 제물과 헌물을 봉헌하고 있는 광경을 유심히 보시고 그들의 충성심을 벌써 파악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중적인 공식보고를 생략하도록 조치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다음 3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은 그릇보다는 그 내용물인 소제물이 더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그해 수확한 곡식의 가루를 바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과 자연환경을 주시고 또한 노동할 수 있는 튼튼한 몸을 주셨으니 그 모든 수확이 여호와의 것이라고 하는 감사의 소제인 것입니다.

(2)  둘째, 금 그릇보다는 그 속에 담겨 있는 거룩한 향이 훨씬 중요합니다. 성도들의 중보의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 있는 거룩한 향이라고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금과 같은 여호와의 선지자라고 자랑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고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여 함께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중보의 기도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  셋째, 제단에 관유를 발라서 거룩하게 하는 날에 사령관들이 제물과 헌물을 여호와께 바치고 있다고 두 차례나 강조하고 있습니다(7:84, 88). 제단을 거룩하게 하기 전에는 헌물을 바칠 수가 없다고 하는 풀이가 됩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하는 성화에 힘을 써야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으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예물로 올려드릴 수가 있다고 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깊은 말씀의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