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21강(민5: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9. 5. 19:58

민수기 강해 제21(5: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0 27()

 

선민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심으로 동남서북에 4개의 진영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안에 거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별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5:1-4)

 

모세가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여호와의 명령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관련하여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있다고 보고서 그것을 천국복음으로 모든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자 하시며(5:43-48, 12:38-42, 15:21-28, 8:28-34, 28:18-20, 1:8) 선민 유대인들이 부정한 자와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5:27-32, 6:27-37, 19:7).

(2)  둘째, 본문에서 모세는 그러한 부정한 자를 선민 이스라엘의 진영 바깥으로 내치라고 하는 것이 여호와의 명령이라고 적고 있습니다(5:1-4). 그 격리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나병환자, 유출증이 있는 자,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입니다(5:2).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은 그것이 아닙니다;

1)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병환자와(5:12-14) 온갖 병자 그리고 장애자들을 고쳐 주십니다(4:40, 6:17-19, 7:21).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빠져나가서 혈루병 여인도 고쳐주고 있습니다(8:43-48).

2)    예수님께서는 겉으로 부정한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그 속이 더러운 것이 진짜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11:39-41). 그것은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복음이 서로 상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같은 취지라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본문에 기록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의 취지를 깊이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명제를 먼저 생각해봅니다;

(1)  첫째, 격리의 목적은 선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목자가 찾아갈 때에도 나머지 99마리의 양을 가장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고서 움직이고 있습니다(15:4, 7, 10:27-30). 99마리의 안전이 확보가 되어 있지 아니한 상태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겠다고 마냥 헤매고 있는 목자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그 다음에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시는 그리스도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선지자 이사야가 벌써 예언하고 있습니다(19:22-25).

(2)  둘째, 구약시대의 격리의 대상과 신약시대의 격리의 대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시대에 있어서는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가 없는 나병환자, 혈루병자, 죽음의 균을 가진 자들이 모두 격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격리의 대상은 그렇게 오염이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오염시키고 있는 그 원인을 제거하고자 합니다(3:15).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격리가 되고 있는 것은 죄와 사망으로 인간을 끌어가고 있는 사탄과 악한 영들입니다(8:21-22, 9:8-17, 8:1-2).  

(3)  셋째, 구약시대에 격리가 된 자들의 마지막 소원은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입니다. 불치의 병자와 장애자들이 온전한 고침을 받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대속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인생들이 애타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속자를 보내어 주시기만을 앙망하고 있습니다(8:56). 히브리서 저자의 기록에 의하면 구약시대의 믿음의 선조들이 그러합니다(11:16, 26). 그와 같은 사실을 욥이 정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19:23-27).

(4)  넷째,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얻는 시간은 사람이 인생을 살고 있는 그 시간에 한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를 앙망하느냐? 또는 영접하느냐? 하는 것이 당사자의 영생의 구원을 확정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습니다(23:42-43, 6:37-40, 11:25-26, 1:24). 예수님께서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를 통하여 정확하게 그 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16:29-31).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환자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5:1-2);

(1)  이스라엘의 진영은 성막을 중심으로 하여 배치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진행을 멈추게 되는 것은 성막의 위에서 함께 진행을 하고 있던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더 이상 움직이지를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40:34-38).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행렬이 멈추어 서고 그 자리에서 레위인들이 성막을 다시 조립하여 세우게 됩니다. 그러면 그 동쪽 입구에 모세의 지휘본부가 설치가 되고 레위인들이 사면경계에 들어갑니다(3:23-38). 그리고 그 주위 사방에 이스라엘 12지파가 4개의 진영으로 나누어서 텐트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2:2-25).

(2)  24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함께 행진을 하거나 텐트를 치고서 야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염병이 급속하게 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에 대비하기 위하여 강력한 조치가 마련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불치의 병으로 불리고 있는 나병과 유출병에 대해서 적극 대응을 합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나병환자와 유출병자를 발견하는 즉시 제사장들이 확인을 하고서 곧바로 진영 바깥으로 격리시키는 것입니다(13:1-3, 5:2a). 그리고 각종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가진 자를 남녀노소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두 진영 바깥으로 내보내어 그들끼리 따로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5:2b).

(3)  그 점에 대하여 오늘날 복음서를 읽고 있는 성도들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모세 당시 그 옛날이라고 하더라도 선민들이 창조주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믿고 있었다고 한다면 어째서 여호와 하나님께 강하게 기도하여 그 불쌍한 불치의 병자를 모두 치유해 달라고 요청하지 아니하였을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모두 치유해주는 복음사역을 하셨는데 어째서 모세의 시대에는 그러한 조치가 전혀 취해지지 아니하고 무조건 격리만 시키고 있는가? 과연 그것이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인가?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과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것이므로 그것이 진리라고 증거하십니다(14:16-20, 26, 15:26-27, 16:13-15).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해주고 있다고 수차례 강조하십니다(5:30, 8:28-29, 10:30). 그런데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적으로 달리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4)  그 의문에 대하여 답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진영의 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진영의 중심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성막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여 그들의 진영이 곧바로 천국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들의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그대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그들을 들여보내 주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성막에 임재하고 계십니다(2:23-25, 3:6-12, 25:8-9, 33:14, 40:34-38).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영생의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신앙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그토록 염려하던 일이 발생하고 맙니다(8:11-20, 9:6-21).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적인 땅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이 세상에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만이 여호와의 복을 계속 누리는데 역점을 두고서 종교생활을 하다가 여호와를 떠나고 제 마음대로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삶을 살아가고 만 것입니다(2:10, 21:25, 왕상12:28-33, 왕하20:16-19).

(5)  그러므로 이스라엘 진영 안과 그 바깥에 대한 구분의 의미가 영생의 구원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에 따라 선민의 진영에 머물고 있는 자나 그 바깥에 있는 자나 모두가 대속자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구체적으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몸이 건강한 자이거나 불치의 병자 또는 장애자이거나 상관이 없이 누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자인하고 회개를 함으로써 비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어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5:3);

(1)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진영 안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불치의 병자와 죽음의 병균에 전염이 된 자들을 전부 진영 바깥으로 격리를 시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진영의 중심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에 그들을 진영 바깥으로 쫓아내고 있는 것일까요? 선민들은 전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본문의 뜻을 새겨보자면 후자입니다.

(2)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율법에 대하여 그것은 자신들을 축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10:12-13).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인 율법으로 잘 지키면 신명기 제28장 앞부분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엄청난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적인 복을 얻을 수가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28:1-14). 그러나 그것은 절반도 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축복의 내용에 이어 어김없이 두려운 저주의 내용이 더 크게 기술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만약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축복보다 여러 배에 이르고 있는 엄청난 여호와의 저주와 진노를 역사적으로 만나도록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28:15-68). 그러므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언제나 여호와 앞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 수험생과 같습니다. 그들이 그 시험에 합격을 할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모세의 마지막 권면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19-20).

(4)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진영 안에 불치의 병자나 죽음의 병균을 지닌 자를 두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은 여호와의 거룩한 임재 때문입니다. ,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생명과 치유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분 앞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가 모조리 물러가야만 합니다(1:4-5, 21:22-22:5). 그 앞에 그러한 병균과 오염이 된 자를 그대로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천국에 지옥의 것들을 둘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과 계시지 아니하고 있는 음부 사이에는 예수님의 비유 그대로 건너갈 수 없는 큰 구렁텅이가 있는 것입니다(16:26).

(5)  그러므로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경의 주제는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면 선민 이스라엘의 진영 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선민이거나 불치의 병자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입는가 하는 것입니다;

1)    한 마디로, 전자와 같은 시각은 유대교의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구원을 얻자면 선민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할례와 율법 그리고 제례의식과 안식일을 모두 지켜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이 선민 유대인처럼 신앙생활을 하지 아니하면 결단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2)    후자와 같은 시각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선민과 이방인이라고 하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만 합니다.

(6)  요컨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천국복음을 들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고 지상명령을 실천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는 그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22:28-30, 1:12-13, 3:16-18). 그 반면에 성막 주위 그 선민의 진영 안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진영 바깥에 내친 바가 되어 있는 자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구원하고자 하는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아니하는 자들은 지상의 예루살렘성과 함께 멸망으로 인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8:11-12, 19:41-44).

셋째로,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그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행하였더라”(5:4);

(1)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염병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나병과 혈루증과 같은 것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만진 자에게는 죽음의 병균이 옮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모두를 진영의 바깥으로 격리하고 싶어합니다(5:2). 그러한 소원을 모세에게 말하여 여호와의 허락을 받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선민들은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얼른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5:4).

(2)  그 대목에서 한가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그들 불치의 병자들과 부정한 자로 분류가 되고 있는 자들을 전부 고쳐 주시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 진영 바깥으로 내쫓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시고 계시는가?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조치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과 병고침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5:20-26, 7:47-48, 14:2-4). 그리고 죽음에서 백성들을 잠시 살려 주시는 것과(7:14-16, 8:52-56, 11:40-44) 예수님 자신의 영생의 부활에 성도들이 참여하는 것을 구별하고 계십니다(22:28-30, 24:44-49).

결론적으로, 그렇다면 사람들이 100년 안팎의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 과연 병 고침과 장수함을 이 세상에서 마냥 누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질병과 죽음이 없는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답변이 다음과 같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또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 “(3:10-12).

그러므로 아무쪼록 선민의 진영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천국의 영생에 참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