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8강(민2:25-3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30. 17:10

민수기 강해 제8(2:25-3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0 12()

 

4대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는 단 지파와 단 진영에 포함이 되고 있는 두 지파에 대하여(2:25-31);

 

지금까지 각 진영의 리더로 선택이 된 지파들은 제1대의 유다, 2대의 르우벤, 3대의 에브라임 등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야곱인 이스라엘의 적자의 집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들어오게 되면 달라집니다. 서자의 집안 가운데 맏이가 되고 있는 단의 후손들이 제4대의 리더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의 지파의 군대가 아셀 지파 그리고 납달리 지파의 군대를 선도하면서 하나의 진영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단의 진영이며 행진에 있어서는 가장 후미를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진을 멈추고 성막을 다시 세웠을 때에는 북쪽을 수비하는 진영을 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 지파에 대하여 먼저 생각을 좀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어째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단 지파를 눈여겨보시고 그들을 중용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단지 서자 가운데 맏이 집안이기 때문에 그러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그 역사적인 측면을 조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단 지파가 유다 지파 다음으로 번성하고 있습니다. 자손의 번성이라고 하는 것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섭리라고 생각하게 되면 단 지파가 두번째의 축복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12:2). 그 이유는 유다 지파의 장정의 수가 7 4,600명으로서 첫째인데(2:4) 단 지파의 장정의 수가 62,700명으로서 둘째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2:26). 유다 지파는 인위적으로 타 족속을 통합하고 같은 지파로 흡수하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경우에서 보듯이(32:12) 그 몸집을 키우고 전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지파는 그러한 포용정책과 개방정책을 사용하지 아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병력의 수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단 지파에 대한 자손의 번성은 유다 지파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단 지파가 훗날 분배 받게 되는 가나안에서의 땅이 가장 고통스러운 지역입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족속들이 살고 있는 해변의 땅 그 북쪽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고 있는 약속의 땅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는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 포함이 되고 있는 해변지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옥한 지역의 남부를 힘이 센 혼혈민족인 블레셋이 5개의 도시국가를 형성하면서 전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북쪽 해변의 땅까지 차지하기 위해서 계속 정복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세력을 방어해야만 하는 지파가 바로 단입니다. 그러므로 사사시대를 통하여 단 지파는 블레셋 족속과의 수 없는 전투를 통하여 자꾸만 그 힘이 약해지게 됩니다. 그 안타까운 모습을 역설적으로 단 지파의 영웅인 삼손의 최후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16:25-31). 여호와의 도우심과 다른 지파의 원조가 아니면 단 지파의 존속이 위태롭습니다. 하지만 그 두가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나중에는 가나안 땅의 가장 북쪽으로 일부 살아남은 단 지파가 이동을 하여 두로와 시돈의 동쪽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18:28-31).

(3)  셋째, 단 지파가 사사 시대에 백 년 이상 강력한 블레셋 족속의 북상을 억제하면서 고군분투를 하지만 다른 11지파들이 결코 원군을 보내어주지를 않습니다. 단 지파야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망하든지 말든지 자신의 지파만 건재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래 12지파에게 독자적인 군대를 양성하라고 하신 여호와의 뜻이 아닙니다. 각 지파가 자신들의 장정을 징집하고 군사훈련을 잘 시켜서 독자적인 지휘체계를 갖추지만 적어도 3지파가 진영을 형성하여 합동작전을 펼치라고 한 것인데 그러한 전략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나서는 완전히 깨어져버린 것입니다. 12지파가 아니라 완전히 12개의 부족국가가 가나안 땅에서 서로 견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양새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한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진 결과 이스라엘 12지파는 자꾸만 약해지고 맙니다. 결국에는 요단 강 동편의 르우벤, ,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모압과 암몬 그리고 미디안과 아람 등의 공격을 받아서 사라지게 됩니다. 요단 강 서편 가나안 땅에서도 블레셋의 공격으로 단 지파가 먼 북쪽의 변방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맙니다.

(4)  넷째, 그와 같은 이스라엘 12지파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분열의 모습에 대하여 사사기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2:10),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25); 출애굽의 하나님, 가나안 땅을 주신 언약의 여호와의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린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파의 이익만을 위하여 살아갔으며 다른 지파의 곤경에 대하여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 결과 12조각으로 분열된 이스라엘은 외적의 침입으로 수탈의 역사만을 당한 것입니다. 그것이 사사시대의 비극이며 그들이 외면으로 일관했기에 블레셋을 방어하고 있던 단 지파가 거의 사라지고 그 일부만이 북쪽으로 떠나가고 만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북쪽에는 단 군대 진영군기가 있을 것이라. 단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6 2,700이며”(2:25-26);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북쪽에는 단 군대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2:25a);

1)    모세가 민수기의 기록을 시작한 때는 시내 광야의 끝에 도작한 때입니다(1:1b). 그때는 출애굽후 제2 2 1일입니다(1:1a). 이제 북쪽으로 계속 진행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곳의 원주민들과 전쟁을 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금 조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군대는 북진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북쪽에서 쳐 내려오고 있는 적들을 방어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북쪽에 진영을 구축하고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방어해야만 하는 단 진영의 임무가 사실은 중요한 것입니다(2:25aa).

2)    참고로, 시내 광야의 북쪽에는 바란 광야가 있습니다. 그곳의 북단에 가데스 바네아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신 광야가 펼쳐집니다. 그 초입에 호르 산이 있습니다. 그곳은 에돔 들의 서편입니다. 북진하여 신 광야를 지나가게 되면 드디어 가나안 남부 네게브 지역에 들어서게 됩니다. 네게브 지역이란 브엘세바에서 헤브론까지 펼쳐지고 있는 반(, half) 사막성 기후의 광야를 말합니다. 그러한 지형을 먼저 살펴보는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금 북진을 하고 있는데 그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미리 상상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 12지파가 머무르게 되는 장소의 중심부에는 항상 성막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그 동남서북에는 3개의 지파들의 군대가 하나의 연합군을 형성하면서 진영을 구축합니다. 그 진영의 이름을 주장이 되고 있는 지파의 이름을 사용하여 유다 진영, 르우벤 진영, 에브라임 진영, 단 진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지파의 사령관들이 상의를 하여 자신들의 진영의 군기를 결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2:25ab).

(2)   단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6 2,700이며”(2:25b-26); 단 지파의 군대의 사령관의 이름은 제1장 제12절에서 이미 말한 대로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입니다. 그리고 그가 지휘하고 있는 군인의 수도 이미 제1장 제39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6 2,700명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본문에서 다시 한번 말하면서 이제 다른 두 지파와 함께 연합하여 그 수가 어떻게 증가하게 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그 곁에 진 칠 자는 아셀 지파. 아셀 자손의 지휘관은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요,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4 1,500이며”(2:27-28); 단은 야곱의 서자 가운데 맏이입니다(30:6). 그리고 아셀은 서자 가운데 막내입니다(30:13). 그러므로 아셀 지파가 단 지파와 연합을 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더구나 주장이 되고 있는 단 지파의 군인의 수가 6 2,700명이므로 그 보좌역인 아셀 지파의 군인 수 4 1,500명보다는 월등히 많습니다. 따라서 심히 자연스러운 편제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납달리 지파. 납달리 자손의 지휘관은 에난의 아들 아히라요,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5 3,400이니”(2:29-30); 단의 친동생이 납달리입니다(30:6-8). 그러므로 단 지파의 군대가 주장(主將)이 되고 납달리 지파의 군대가 그 부장(副將)이 되는 것이 모양새가 좋아 보입니다. 납달리 지파의 군인의 수도 적지가 않습니다. 5 3,400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 군대의 지휘권은 여전히 납달리 지파의 사령관이 쥐고 있습니다. 단 지파의 사령관이 주장이라고는 하지만 아셀 지파의 사령관 그리고 납달리 지파의 사령관과 합의를 하여 전략을 수립하고 전투를 수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지파의 병력을 말할 때에는 반드시 (각 지파의 사령관)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0000명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30).  

넷째로,단의 진영에 속하여 계수함을 받은 군인의 총계는 15 7,600명이라. 그들은 ()를 따라 후대로 행진할지니라 하시니라”(2:31);

(1)  단의 진영이란 단 지파의 군대와 아셀 및 납달리 지파의 군대를 모두 합하여 연합군을 형성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연합군의 군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광야생활 40년을 함께 보냈기에 그들의 관계는 참으로 돈독합니다. 그들 세 지파의 군대의 규모는 흩어 놓으면 단 지파가 6 2,700, 아셀 지파가 4 1,500, 납달리 지파가 5 3,400명에 불과하지만 하나로 연합하여 그 규모를 따지게 되면 무려 15 7,600명이나 됩니다. 그것은 엄청난 규모의 군대입니다.

(2)  그런데 훗날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그러한 연합을 고려하지를 않습니다. 12지파가 서로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기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지파 별 이기주의를 극대화하지 아니하고 각 진영 세 지파가 오랜 전우의 관계를 생각하여 서로의 단결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가나안 땅을 4분하여 진영을 구축하고 방어체계를 형성했더라면 사사시대의 비극은 사전에 막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북에서부터 남으로 4등분을 하여 유다 진영, 르우벤 진영, 에브라임 진영, 단 진영 등으로 나누어 주었더라면 사사시대의 비극은 물론 초대 왕 사울 시대의 시행착오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단 지파가 사사시대에 블레셋과의 오랜 전투로 쇠약해지고 맙니다. 주위에 도움을 청해도 당장 달려오는 인접 지파가 없습니다. 얼마나 고립무원(孤立無援, 도움을 받을 수가 없는 외톨이 신세)의 처지였으면 역발산(力拔山, 산을 능히 뽑아서 옮기는 큰 힘을 말함)의 힘을 가진 삼손이 홀로 여호와의 능력을 마지막으로 빌려서 기둥을 무너뜨리고 장렬하게 죽고 말았을까요? 그것은 블레셋의 최후가 아니라 단 지파의 최후를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단 지파의 일부가 살아남아서 북쪽으로 이주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도와주지 아니한 다른 가까운 지역의 지파들을 떠나서 멀리 북쪽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옛날 광야에서 함께 전투를 했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아셀 지파의 동쪽에 그리고 납달리 지파의 북쪽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요컨대, 이기주의와 현세적인 이익에 너무 빠져서 살지를 말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는 최소한 세 지파가 하나의 진영으로 단결하여 적들과 싸우라고 그렇게 편제를 만드십니다. 그 뜻을 생각하면서 적어도 세 사람의 성도가 연합하여 전도와 선교에 나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성도님들의 아름다운 동역의 삶에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