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4강(민1:47-5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27. 20:13

민수기 강해 제4(1:47-5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0 7()

 

레위 지파가 하나님의 지파가 된 이유 그리고 그들이 국방의 의무 대신에 지고 있는 의무는 무엇인가?(1:47-54)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레위 지파의 장정은 군 병력으로 계수를 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1:47-49). 그 이유에 대하여 그들 레위 지파의 장정들은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며 성막을 관리하고 운반하며 또한 성막의 주위를 지키는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십니다(1:50-53).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1:54).

그런데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애굽 제국에서 백 년 이상 오랜 세월 중노동에 시달리며 노예와 같은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해방시키고 출애굽시키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10가지 재앙을 애굽 인들에게 내리십니다. 그 마지막 재앙이 유월절 사건입니다. 그날 밤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대문에 뿌려져 있지 아니한 애굽 인들의 집안에 죽음의 천사가 방문하여 애굽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을 모두 전멸시켜 버립니다(12:29-30). 반면에 그날 밤 모세가 전해주는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뿌린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재앙을 면하고 있습니다(12:21-24).

(2)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모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똑같이 돌보시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이른바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유월절 사건으로 말미암아 크게 훼손이 되고 있습니다. 유월절 사건이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해방과 구원의 사건이지만 그 반면에 애굽 인들에게는 참으로 비극적인 모든 장자의 죽음과 가축의 초태생의 살해가 발생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불균형을 장차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바로 잡으실까요? 그 조치가 다음과 같이 히브리정경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첫째,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을 모두 여호와의 것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13:1-2). 그들은 공의의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유월절 그날 밤에 애굽 인들의 장자 및 가축의 초태생과 마찬가지로 전부 죽임을 당해야 공평합니다. 다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회개를 해야만 하는 죄인들인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13:2-5, 3:9-12). 비록 애굽 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강제노역에 처하고 노예와 같이 백 년 이상 부려먹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애굽 인들의 모든 장자들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한꺼번에 죽임을 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동일한 역사가 정복자와 피정복민이 함께 살고 있는 그 후의 수많은 제국의 역사에서 다시는 신위적(神威的, 하나님의 위력에 의한)으로 발생하고 있지 아니함을 보더라도 분명 그러합니다.

2)    둘째, 모세의 기록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과의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설득력이 약합니다(2:23-25).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의 선지자로 이방 땅에서 살아간 의인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벌써 430년 전의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1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애굽을 점령한 셈족인 힛소스 인들과 더불어 애굽의 고센  땅에서 좋은 시절을 함께 누린 바가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의로우면 애굽 인들보다 얼마나 더 의로운 것일까요?(18:9-14) 과연 애굽 인들에게 그토록 참혹한 장자의 죽음을 재앙으로 임하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해낼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아무리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자의 마음이며 불가피한 재앙의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심한 불균형인 것입니다. 따라서 유월절 사건으로 구원을 받은 것들에 대하여 모두 여호와의 것으로 삼는다고 하는 특단의 조치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3:1-2).

3)    셋째, 비로소 불균형에 대한 시정이 막 시작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이스라엘 자손의 장자는 제멋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를 주인으로 섬기며 그 종으로 한평생 살아가야만 합니다. 마치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이방인들의 땅에서 그들에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큰 복을 나누어 주는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12:1-3). 이스라엘 자손들 특히 그들의 장자들은 하나같이 그러한 여호와의 종의 의무에 충실해야만 합니다. 그러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유월절 밤의 애굽 인들의 장자들처럼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4)    넷째, 그와 같은 여호와의 뜻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유월절 행사로 대대로 기억이 되도록 만들고 계십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그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13:11-16).

5)    다섯째, 그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예 출애굽시킨 이스라엘 자손들을 전부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 모두에게 하나의 사명 곧 세상의 온갖 족속과 나라들을 전부 하나님의 말씀과 속죄의 제사로 구원하는 선민의 의무를 맡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 자세한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리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19:4-6). 제사장은 자신의 죄 사함을 위하여서는 일주일간의 위임제사와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29:35-37). 그리고 나머지 세월은 전부 다른 사람들의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직분을 감당합니다. 그러므로 선민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속죄를 위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주는 역할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 성읍의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께 6번이나 간청을 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중보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18:23-32). 그렇게 아브라함처럼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하나님의 선지자이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6)    여섯째, 그렇다면 유월절 밤에 초상집이 되어 버린 비극의 나라 애굽의 백성들에게 언제 구원의 날이 찾아올까요? 그 점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19:22-25). 만민을 구원하시고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이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여기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일에 선민 이스라엘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이스라엘 12지파의 모든 장자들이 여호와의 것이므로 성막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속죄의 제사를 드려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 모세는 12지파의 장정들을 동원하여 지파별로 군사훈련을 시키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군을 해야만 합니다. 그 두가지 일이 상충하고 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결하시는 것일까요? 그 방법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장자 대신에 하나의 지파 곧 레위 지파의 장정들을 선택하여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전적으로 성막에서 섬기는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3:12, 41-51). 그에 따라 레위 지파의 장정들은 군대의 자원으로 계수가 되지를 않습니다(1:47-49). 그들이 맡아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따로 1:50-53’절에서 상세하게 지시하십니다. 그 지시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충실하게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1:5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나 레위인은 그들의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1:47-49);

(1)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12지파라고 하는 지파의 수 곧 12라고 하는 숫자를 좋아하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12제자를 특별히 ’12 사도로 발령하여 시종일관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함께하십니다(6:12-19, 6:66-71). 그 가운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자결을 하고 나자(27:3-10) 구태여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들과 상의하여 맛디아를 심지 뽑아서 12사도에 참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1:24-26). 그러므로 그 수 12에 대하여 잠깐 생각을 해봅니다;

1)    첫째,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수는 3으로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는 삼위일체가 그러합니다. 그에 비해서 사람의 수는 4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유한한 육신을 입고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은 시공간에 갇혀 있습니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을 흔히 춘하추동(春夏秋冬)이라고 하는 4계절로 인식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리고 공간의 개념 역시 우선적으로 동서남북이라고 하는 4방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하나님의 수인 3에 인간의 수인 4를 더하거나 곱하게 되면 의미가 있는 완전수가 만들어집니다. ‘7이라고 하는 수가 천지창조와 안식의 개념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2:1-3). 그 개념에 따라서 일주일이라고 하는 시간의 간격을 반복하여 인간들이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12라고 하는 것은 또다른 완전수입니다. 특히 한 사람의 상관이 직접 부하를 통솔할 수 있는 최대의 수치가 12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께서도 직접 가르치시는 제자로 그리고 자신을 수행하는 제자로 12사도를 선택하십니다(6:12-19).

(2)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12지파로 부르십니다. 12지파의 조상이 되고 있는 12명이 본래 야곱의 12아들입니다. 야곱이 여호와께로부터 얻은 새로운 이름이 이스라엘이므로(32:27-28, 35:10) 이스라엘 12지파는 그의 12아들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제7장에서는 그렇게 12지파의 이름이 야곱의 12아들의 이름으로 다시 등재가 되고 있습니다(7:4-8). 더구나 새 예루살렘성의 대문도 그들 야곱의 12아들이 조상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 12지파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21:12).

(3)  그런데 그 도중에 모세오경에서 변화가 약간 발생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요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막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의 지파를 따로 세우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으로 레위 지파가 선택이 되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에는 모세와 아론이 소속이 되고 있습니다(6:16-20). 레위 인들은 금송아지 우상사건을 처리할 때에 혈통적인 의미를 떠나서 여호와의 명령만을 받겠다고 결심하고서 칼을 휘두른 자들입니다(32:26-28). 그들 레위 지파가 12지파에서 빠지는 대신에 하나의 지파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48장에서 야곱이 요셉의 장남과 차남을 자신의 12지파의 조상으로 받아들인 바가 있는데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 레위 지파가 하나님의 지파로 빠져나가고 그 빈 곳을 요셉의 자손인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의 지파가 대신하여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1:32-35, 47-49). 그것이 민수기 제1장에서 드러나고 있는 큰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1:50); 레위 지파에게 부과되고 있는 업무가 세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1:50a); 레위 지파에게 맡겨진 첫번째 임무는 성막의 모든 성물과 건축물을 온전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만약 손상이 발생하면 그것을 보수하여 원상 복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막을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이유는 성막이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모시고 섬기는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만약에 성막이 크게 훼손이 되어 여호와께서 그 지성소에 임재를 하실 수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의 신정국가라고 부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으로서 행세를 할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1:50b); 레위 지파에게 맡겨진 두번째 임무는 성막을 운반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성막은 정착식이나 고정식이 아닙니다. 운반할 수가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동을 할 수가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물에는 고리가 만들어져 있으며 채를 꿰어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서 운반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25:12-15). 마치 유목민과 같이 광야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여 정착식 농업을 경영할 수 있을 때까지 성막은 백성들과 함께 이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1:50b). 그러한 의미에서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오늘날 성도들의 삶도 마치 유목민과 같으며 약속의 땅인 영생의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셔서 언제나 함께 움직이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14:16-20).

(3)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1:50c); 레위 지파가 맡고 있는 세번째 임무는 세가지입니다; ①첫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모두 제사장이 되어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립니다(28:1). ②둘째, 성막의 모든 성물과 뼈대 그리고 부속품을 분해하고 운반하며 또한 그것을 보관하고 조립하는 일을 레위 지파의 다른 가문들이 맡고 있습니다(3:6-9). ③셋째, 성막의 가장 가까이에 레위 지파가 사면에서 진영을 배치하고 항상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2:17). 만약 다른 지파의 사람들이 실수로 성막에 접근하게 되면 죽임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19:12, 24, 3:10). 또한 다른 족속 이방인들이 침입하는 것을 막는 최후의 책임이 레위 지파에게 맡겨져 있는 것입니다(1:50c). 그 배치도에 관해서는 첨부한 그림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1:51); 레위인들의 일을 다른 지파의 사람들이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1:51a); 레위의 아들은 세 사람인데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입니다(6:16). 성막의 분해와 운반에 있어서 그들이 맡은 일이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그 가운데 모세와 아론의 조상이 둘째인 고핫입니다(6:18, 20). 따라서 고핫의 자손들이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도와서 모든 성물과 그 부속품을 분해하고 운반합니다(4:4-16).

2)    둘째, 게르손 자손들은 성막의 모든 휘장과 덮개 그리고 휘장문을 분해하고 운반합니다(4:24-27). 그 감독은 제사장 이다말입니다(4:28).

3)    셋째, 므라리 자손들은 성막의 뼈대인 널판들과 그 부속품 그리고 모든 기둥들과 그 부속품을 분해하여 운반합니다(4:31-32). 그들을 지휘하는 자 역시 제사장 이다말입니다(4:33).

4)    참고로, 아론의 4남인 이다말은 유능합니다. 그는 성막을 만들 때부터 필요한 재료를 계산하고 그 물품을 관리한 책임자입니다(38:21). 그러므로 제사장인 이다말이 레위인 장정들이 수행하고 있는 성막의 분해와 운반에 있어서도 전반적인 책임을 맡고 있다고 하겠습니다(4:28, 33).  

(2)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1:51b); 레위인들은 그들 가문이 수행한 성막의 분해와 운반의 임무에 따라서 그 조립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레위인 아닌 사람들이 성막에 손을 대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3:10, 38).

(3)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1:51c);

1)    성막을 분해하고 운반하며 그것을 다시 조립하는 모든 과정에 있어서 레위인들만이 성물을 어깨에 메며 기타 무거운 성막의 뼈대와 기둥 그리고 휘장과 덮개 등을 나귀를 이용하여 운반합니다. 레위 지파 아닌 사람들이 그 모든 과정에 참여하거나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이방인들이 성막과 성물 가까이 접근하게 되면 또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성물을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레위인들은 순교할 각오로 외적을 물리쳐야만 합니다(1:51c).

2)    훗날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무능하여 블레셋 족속에게 죽임을 당하고 언약궤를 빼앗기게 됩니다(삼상4:11). 이방인인 블레셋 족속에게서 언약궤를 다시 빼앗아 올 수 있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없습니다. 그때 언약궤가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 결과 언약궤가 머물게 되는 블레셋의 3도시국가에 여호와의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삼상5:3, 6, 11-12, 6:17, 19). 그에 따라 블레셋 족속들이 국경 가까이 살고 있는 기럇여아림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언약궤를 되돌려주고 맙니다(삼상6:21, 7:1-2).

넷째로,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1:52-53); 역시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1:52); 성막의 사방인 동서남북으로 나누어서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 12지파가 진영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성막의 문은 동쪽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쪽에 제1대가 포진하며 가장 실력이 있는 지파가 주장이 되어 지키고 있습니다. 장정의 수가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적자 집안인 유다 지파가 주장이 되어(2:3, 1:27, 7 4,600) 잇사갈 지파 및 스불론 지파와 함께 동쪽을 지키게 됩니다(2:5-9). 그들은 모두 야곱의 제1부인인 레아의 자손들입니다. 성막이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군기를 앞세우고 선두를 지킵니다. 그리고 성막이 다시 세워지게 되면 그 동쪽에 진영을 베풀게 됩니다. 그들은 언제나 외적이 쳐들어 오게 되면 전방과 동쪽에서 격퇴를 하는 것입니다.

2)    둘째, 성막의 서쪽에는 야곱의 제2부인인 라헬의 자손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3대입니다. 요셉의 두 아들의 자손 가운데 에브라임 지파가 주장이 되고(2:18, 24) 므낫세 지파가 보좌를 하고 있습니다(2:20-21). 그리고 베냐민 지파가 역시 진영을 그곳에 설치하고 있는 것입니다(2:22-24).

3)    셋째, 성막은 북진을 하고 있습니다. 시내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진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북쪽에 강력한 제4대가 진영을 구축하고 있습니다(2:31). 그 주장이 비록 서자이지만 유다 지파 다음으로 장정의 수가 많은 단 지파입니다(2:25, 1:39, 6 2,700). 그 뒤를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가 따르고 있습니다(2:27-31).

4)    넷째, 성막의 남쪽에 진영을 설치하고 있는 세 지파가 이름하여 제2대입니다(2:16). 적장자인 르우벤의 자손들이 주장이 되고 용맹한 시므온 지파와 갓 지파가 그 뒤를 받치고 있습니다(2:12-16). 그들이 므낫세 지파와 더불어 모세의 영도 아래 가장 호전적인 전투력을 보이고 있는 지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요단 강 동편의 정복지를 르우벤, , 므낫세 반 지파 등이 먼저 배분을 받고 있습니다(32:33). 시므온 지파는 불행하게도 너무 많은 장정들이 전사를 했기에 나중에 유다 지파의 땅에서 자신들의 기업을 재분배 받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19:1).

(2)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1:53a);

1)    선민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하더라도 잘못 경계를 침범하게 되면 여호와께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이 그 경계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아예 레위인들이 성막의 주변에 포진을 하고서 자신들의 천막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2)    그것은 동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간접신앙의 형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와 가까이 하면 목숨을 잃어버리는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 두려워하여 옛날부터 모세에게 부탁하여 홀로 시내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배워오라고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20:18-21, 5:23-27).

(3)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1:53b);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대한 책임을 우선적으로 레위인들에게 묻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특히 성막을 직접 섬기고 있는 제사장들과 기타 레위인들에게 그 일차적인 책임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단 강을 건널 때에도 레위인들이 먼저 언약궤를 매고서 들어가야만 합니다(3:14, 17). 만약 물이 넘쳐서 죽게 된다면 먼저 희생양이 되어야만 합니다.

2)    그리고 외적이 침입할 때에도 성막과 성전을 지키다가 순교를 해야 합니다(왕하25:18). 그러한 희생과 헌신의 자세로 여호와의 전을 지켜야만 하며 그 말씀에 순종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레위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12지파가 다음과 같이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3)    첫째, 행진 중에는 제1대와 제2대가 진행을 하고 그 다음에 성막을 운반하고 있는 레위인들을 따라오게 합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스라엘의 제3대와 제4대가 호위를 해주는 것입니다.

4)    둘째, 오래 머무르기 위하여 성막을 조립하였을 경우에는 성막의 동서남북에 이스라엘 12지파가 진영을 설치합니다. 그리고 그 안쪽에 레위인들의 진영을 두도록 합니다. 그것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레위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진영의 배치입니다. 그 자세한 모습은 첨부하는 그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로,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1:54);

(1)  민수기의 내용은 두가지로 갈라질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대로 실천한 경우입니다. 그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를 않습니다.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이 그대로 실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고 모세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1:54).

2)    또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는 경우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언약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서 백성들이 그 실현가능성을 전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여호와께서 약속하셨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거인족들이 너무나 강대한 것입니다(13:28-33).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실망 끝에 절망을 하고 맙니다(14:1-10). 그 결과가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민수기의 주제입니다.

(2)  민수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은 쳐다보지도 아니하고 현실만을 바라볼 때에 불행에 빠지고 만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어림도 없는 약속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기성세대가 광야에서 전멸을 당하고 마는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14:26-38). 그것은 3,400년 전의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동일하게 시공간을 뛰어 넘어서 역사하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성막에서 직접 섬기는 지파로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지명하십니다. 그에 따라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후손들이 각각 독자적인 지파를 이루어 이스라엘 12지파를 성립시키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12지파의 군대에 편성이 되지 아니하는 대신에 성막을 지키는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하라고 지시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2지파의 군대가 성막과 레위인을 지키는 진영을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는 무엇보다도 성막이 중요하며 제사장 임무와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레위인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뜻을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잘 받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민수기의 시작은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란 광야에 들어가서부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다베랴와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여호와를 불신하게 되는 엄청난 사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를 공부하시면서 아무쪼록 타산지석으로 믿음의 성숙을 이루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성막을 중심으로 배치된 이스라엘 12지파의 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