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210강(마28:20b)(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26. 09:25

마태복음 강해 제210(28:20b)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67(주일)

 

사도 마태가 깨닫고 있는 구원과 영생은 부활하신 예수님 곧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b). 사도 바울도 동일한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사도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끝내면서 가장 귀중한 깨달음을 성도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주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b). 주님의 그 말씀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어째서 복음신앙의 총 결론에 해당하고 있는지를 한번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도 마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산으로 11명의 제자들을 불러모아 공식적으로 경배를 받으시고 그들 모두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파송한 사실을 중시하고 있습니다(28:16-20). 의사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까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베풀고 있습니다(1:3). 그 내용은 복음신앙에 대한 진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내용을 사도 마태는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오로지 지상명령과 관련된 내용만을 그의 복음서에 마지막으로 등재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복음신앙의 모든 것이 28:16-20’절에 전부 담겨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사도 마태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제자들이 경배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8:9, 17). 마태복음에는 제자들이 그 동안 3년반의 세월을 스승과 함께 먹고 자고 전도여행을 같이하면서 지냈지만 예수님을 경배했다고 하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용어 경배는 오로지 하나님에 대해서 사용이 되고 있으며(4:10, 15:9) 유일한 예외는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를 동방박사들이 그의 별을 보고 찾아와서 예방을 할 때에 사용이 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2:2, 8, 11). 그러므로 경배의 대상은 아기 예수처럼 죄가 없으신 분(2:11), 아버지 하나님처럼 절대선을 지니고 있는 거룩하신 분(10:17-18), 그리고 천하의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에(28:17-18) 국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용어를 여기 28:17’절에서 사도 마태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제는 모든 피조물의 경배를 받을 수 있는 천하의 주인 곧 주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28:18).

(2)   창조주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천하의 권세를 위임하시고 모든 피조물의 주인으로 삼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모든 사람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3:16-17, 8:1-2). 이제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있는 주님의 보좌에 앉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곧 승천을 하실 것입니다(2:34-36).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하여 복음사역을 계속할 수 있는 사도로서 11제자를 임명하고 있습니다. 그 임명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28:19:20a).

(3)  승천하시게 되면 주님께서 천국의 보좌를 차지하시고 무엇을 하실까요? 그냥 안식만 취하고 계실까요? 아닙니다. 자신에게 위임이 되어 있는 천하의 권세를 가지고 사도들이 온 세상에 나아가서 복음사역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든든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먼저, 복음사역을 방해하고 있는 무리들을 무찔러주십니다. 따라서 세상의 권세를 잡았다고 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방해하고 있는 세상의 임금들이 주님의 섭리에 의하여 쫓겨나게 됩니다(12:31-32, 16:11). 다음으로, 사도들과 또한 사도들의 뒤를 이어서 복음전파에 나서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오늘날에도 충만한 능력을 공급해주시고 있습니다(17:17-26, 1:20-23).

(4)  마지막으로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사도들과 성도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영적으로 성령님 안에서 함께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는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사도 마태는 주님의 말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b)로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창조주의 한 위격이셨던 독생자께서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대속의 십자를 지시기 위하여 희생이 되셨습니다. 그 결과 그 대속의 현장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의 은혜를 간구하는 자는 모두 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 곧 거룩한 성도가 되었기에 그때부터 주님의 영이 임재를 하고 영원토록 동행을 하면서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하시게 됩니다(6:13, 고전6:19-20). 평생 지상명령을 수행하다가 임종을 하게 되면 주님께서 죽음의 잠을 깨워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5:28-29, 11:11). 그러므로 구원과 영생 사이에 지상명령을 주님의 영과 함께 실천하고 있는 성도의 남은 삶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23-24).

둘째로, 사도 마태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는 때는 주후 60년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 시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신 때로부터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후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고 열흘이 지나자 예루살렘에 모여서 끝까지 기도하고 있던 약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강림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2:1-4). 그들이 밖으로 뛰어나가서 성령의 능력으로 생사를 돌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큰 일 행하심에 대하여 증거를 하게 되자 그때로부터 초대교회가 출범하게 됩니다. 이제 교회가 건설되기 시작한지도 30년이나 됩니다. 여러 해 전에 예루살렘 총회가 열려서 이방인 선교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율법의 적용을 완화하기도 했습니다(15). 그 결과 로마의 그 넓은 영토와 인도에 이르기까지 복음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지난 30년의 세월을 오로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도의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살아왔던 마태는 60대의 노인이 되어서야 비로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대신에 스승이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그 생애에 대해서만 다시 한번 증거를 해주고자 결심을 하고서 이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복음서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사도 마태는 성도들에게 그가 깨달은 마지막 은혜를 전해주고자 합니다. 그 내용이 바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마태에게 있어서 주님의 그 마지막 말씀은 다음과 같은 개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의 분부대로 지상명령을 실천했더니 영적으로 주님의 임재와 동행의 역사가 풍성했다는 간증입니다. 사도 마태는 다른 서신서를 남기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어느 지역에 가서 어떻게 선교를 했는지에 대해서 권위 있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문건이 없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전승들이 남아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도 마태의 행적이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이 있으며 후속사도인 바울이 간증하고 있는 여러 서신서들이 정경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11사도들의 행적 곧 복음사역의 어려움과 그 극복의 과정 그리고 그들이 받은 주님의 은혜가 바울과 비슷했다고 간주할 수가 있게 됩니다. 세계선교에 나서고 있는 바울에게 주님의 임재와 동행의 은혜가 풍성했다면 그것은 11사도의 경우에도 동일하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그 사실은 구약을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창세기에 이스라엘 열두 조상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17세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37)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고(41) 39세에 부친과 형제들을 애굽에서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42-46) 22년간의 야곱 집안의 가나안에서의 이야기가 너무 빈약합니다. 단지 창세기 제38장에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의 이야기만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다른 10명의 형제들의 이야기를 모두 생략하더라도 유다의 경우만 가지고 모든 사례를 충분히 짐작을 하라는 것입니다.

(3)  성경기록에 있어서 대표성의 원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동일한 주님의 임재와 동행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태어나서 함께 공생애를 지내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육신의 눈으로 직접 무덤 속에서 부활하시는 예수님을 보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20:28-29).

(4)  따라서 사도 바울의 마지막 간증을 사도 마태의 간증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그러므로 사도 마태 역시 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그의 복음서 마지막에 기록함으로써 주님께서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시고 있음을 간증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여러 성도들께서도 권유하고 있습니다; “부디 의심하지 말고 주님께서 천하권세를 가지시고 끝까지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임재하시고 동행하신다는 약속을 믿고서 복음사역에 나서도록 하십시오”(28:17-29에 대한 의미적 해석).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그 구원의 은혜를 이웃과 함께 나누기 위하여 남은 평생을 사도들처럼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의 임재와 동행의 역사가 영원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 영원성은 육신을 입고서 활동하고 있는 시간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벗고서 부활의 몸을 입고 승천하게 되는 영광까지 약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보좌 앞으로 불려가서 그 옆에 서게 되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그 영생이라는 믿음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주님께서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자는 실제로 그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그 말씀은 사도 마태가 모든 성도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복음신앙에 대한 그의 총 결론이며 마지막 깨달음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