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206강(마28:18b)(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23. 15:41

마태복음 강해 제206(28:18b)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63()

 

창조주 하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경영과 심판과 구원의) 모든 권세를 위임하시다(28:18b).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의 한 산으로 11명의 남자제자들을 모두 불러모아 공식적인 상견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신 제일성’(第一聲, 제일 첫 마디의 말)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28:18b). 주님의 그 말씀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왜 준 것이냐에 따라서 그 말씀의 의미가 특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이나 청중을 염두에 두고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 이른바 5W1H’(who, when, where, what, why, how)를 먼저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나?를 속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말이나 글을 다듬어 갈 때에 의사전달이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님이 공식적으로 제자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의 뜻을 더욱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이미 말씀 드린 그대로  5W1H라는 견지에서 한번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부활하신 후 예수님이 남자제자 11명을 모두 불러모아 공식적인 모임을 하고 있는 자리에서 선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셨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을 얻고 있습니다. 거룩한 고난과 고통의 대가가 개인적으로는 부활의 영광을 예수님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8:17-18). 육체에 갇히어서, 곧 시공간의 제약을 받으면서, 이 땅에서 인생을 살고 계시던 인자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보상을 통하여 이제는 시공간을 초월하는(20:19) 영적인 부활의 몸을 입고서 승천까지 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있습니다(20:17).

40일 후 베다니에서 승천을 하시게 되면(24:50-51)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 있는 오른 쪽의 보좌에 앉게 되실 것입니다(48:14, 25:31, 2:34-36). 그 오른 편 보좌는 일찍이 다윗 대왕이 나의 ()이라고 부르고 있던 자리입니다(110:1). 따라서 한 마디로 줄이자면, 인자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창조주의 한 위격이신 독생자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1:14). 곧 모든 인생과 보이는 세상을 전부 구원하는 그리스도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3:16, 2:36, 8:18-25).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람의 아들인 인자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성자로서의 신분을 다시 회복한 다음에 제자들에게 정식으로 주고 있는 첫 마디입니다. 이에 따라 보이는 세상의 주인으로서의 권세가 다음과 같이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28:18).

둘째로, 부활이 이루어진 가까운 예루살렘이 아니라 구태여 그 먼 변방 갈릴리의 특정한 한 산으로 모두 불러모아 그 자리에서 선언하고 있는 첫 마디입니다. 부활직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11제자를 이미 두 차례나 만난 적이 있습니다(20:21-29). 그러나 그 만남은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고 개인적인 만남입니다. 3일간 서로가 헤어져 있는 사이에 신상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서 육신적인 죽음을 맞이한 후 다시 살아났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멀리 가지를 못하고 예루살렘 어느 뒷골목으로 숨어 들었습니다(24:33). 겁이 나므로 똘똘 뭉쳐서 한 방에서 지내고 있습니다(20:19). 그들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차례나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갈릴리의 한 산에서 모이고 있는 경우는 다릅니다. 그것은 11제자들과 다시 40일간 함께 지내시면서 지난 36개월 공생애 기간에 가르쳐준 복음의 내용을 총정리하고 복습하는 기간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고 온 세상을 복음화하는 사도행전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시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제는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신분변화에 대하여 먼저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단순히 스승으로 대하지를 말고 온 세상을 구원한 그리스도이며 모든 인생과 보이는 피조세계의 주인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이제부터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세상의 경영과 그 미래지사 곧 종말적인 심판과 구원의 문제가 전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선언입니다.  

셋째로, 아직 육신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11명의 남자제자들에게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육신이라고 하는 것은 시공간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육신의 눈으로 보고 인식하며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아닙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라고 지칭이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이 볼 수 있는 범위로 한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하늘은 보이는 하늘 창공(sky)’이 아니고 보이지 아니하고 있는 천국(heaven)’으로 번역이 되고 있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게 되면 천국에 가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좌정하시게 되는 권세를 얻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과 보이는 땅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대화에서 언급이 되고 있는 것이므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제약성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1) 인간이 인생 가운데 거주하며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범주에 머무르게 됩니다. (2) 보이는 세상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권세를 전부 위임하신 것입니다(3:16-17). 예수님이 천국에서 이 세상으로 와서 하신 일이 그것입니다(3:13-15).

더구나 위임을 받은 권세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제약을 지니고 있습니다; “위임을 해준 아버지 하나님의 권한이 더 큽니다. 위임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의 권한은 그 최대치가 그 범위 안에 있는 것이며 아울러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에게 선포하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더욱 제한적입니다. 비록 전권을 위임한다고 표현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성경이 인생과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내용을 적어서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책이므로 필요한 그 한도만큼 축소가 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람을 위해서 사람의 손을 빌려서 사람에게 주고 있는 성경의 내용이므로 자연히 인류의 거주공간과 사유의 한계만큼 한정적입니다. 따라서 성경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조차, 예를 들면 하늘과 땅의 의미나 권세의 의미도 독자나 청중의 한계에 적합하게 그만큼 제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창조주 하나님의 거주공간과 활동의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3:12-13).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아니고 하늘에 올라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는 인물들이 성경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에녹(5:24), 모세(34:6, 1:9, 17:3), 엘리야(왕하2:11, 17:3) 등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휴거, 승천, 또는 천사장에 의하여 그 시신이 옮겨져서 과연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요? 아직 하나님의 보좌 앞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백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이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21:1-2, 7, 26-27).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와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6),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12:2-4).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과 낙원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국이 모두 때로는 heaven으로 표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낙원셋째 하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국은 더 높은 차원의 하늘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역시 모든 논쟁의 끝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유일한 해석의 권위를 보유하고 계시는 완전한 계시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11:27).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3).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한번 눈을 감고 상상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의 세계가 영적으로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넷째로, 왜 그 자리에서 그 말씀을 먼저하고 계신 것일까요? 한 마디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세상 곧 천하의 권세를 위임을 받았으므로 앞으로 이 땅에서 새로운 제사장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대대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건설하시겠다고 하는 정식 선언입니다. 그 중차대한 일이 11제자에 대한 복음의 재교육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비록 겨자씨같이 조그마하고 미약한 시작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자라게 되면 많은 새가 깃들일 수 있는 무성한 나무가 될 것입니다. 갈릴리의 산에서 시작된 복음의 세계화의 역사가 그러합니다.

다섯째로, 그러므로 그 말씀의 뜻은 어떻게 풀이가 되고 있는 것일까요? , 그 말씀의 특정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미 설명을 드린 그대로, 이제부터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세상의 경영과 그 미래지사 곧 종말적인 심판과 구원의 문제가 전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선언입니다. 구체적으로, 세상의 주인께서 그 제자들을 복음의 일꾼으로 보내어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입니다. 그 일이 가능하도록 장차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천하의 권세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예를 들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나라와 민족에 대해서는 그 역사를 바꾸도록 할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민족과 나라에 대해서는 달리 살 길을 마련해나갈 것입니다. 그 일 끝에 주님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발을 맞추어서 이 세상에 대한 전면심판과 전체적인 구원이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종말입니다.

끝으로, 앞으로 그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라는 것입니까? 제자들은 남은 인생 가운데 항상 명심하고 실천을 해야만 합니다. 한평생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의 제자를 길러낸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노릇입니다. 그때마다 본문말씀에 대하여 생각을 하고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천하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명령하시고 항상 지켜보고 있는 복음사역입니다. 온 세상을 복음화하는데 주님께서는 자신의 권능을 모두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미약한 종의 뜻과 능력으로 모두 처리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전능하시고 권세가 막강하신 주님의 도우심을 철저하게 의지를 해야만 합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영적으로 그 일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끝까지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성도들은 매일같이 먼저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님께서 세상살이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영적인 평안과 승리의 기쁨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만물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 든든하게 뒷받침을 해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28:18-20, 1:18-23). 그 영적인 충만함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을 끝까지 수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