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91강(마27:15-2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17. 01:31

마태복음 강해 제191(27:15-2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519()

 

세 가지 놀라운 일; 첫째, 빌라도가 예수를 살리려고 하는 진짜 이유(27:18) 둘째, 살릴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의 동원(27:15-17) 셋째, 빌라도와 유대인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역사적인 심판에 대하여(27:19-26).

 

첫째로, 로마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를 살리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 마태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었더라”(27:18). 그 대목은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를 자신에게 끌고 와서 죽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시기입니다. 마태가 젊잖게 시기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그 뜻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나사렛 예수는 탁월한 존재입니다. 모세오경만 공부하고서 유대교의 제례(祭禮)와 산헤드린 대 공회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두개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차원의 지혜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제지간에 대를 이어가면서 히브리정경만을 연구하여 율법선생이며 학자라고 칭송을 받고 있는 바리새인들로서도 사실은 예수님의 명쾌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설명과 그 놀라운 하나님 능력의 발현에 대해서는 니고데모처럼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들고 있는 형편입니다(3:1-10).

(2)  그렇게 영성과 능력이 뛰어난 나사렛 예수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만민구원의 복음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유대교의 기반이 되고 있는 선민우월사상이 아니고 반대로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등장으로 유대교의 교리적인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결국 유대교지도자들은 모두 합심하여 예수를 종교법으로 처단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3)  그런데 그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를 선지자 나아가서 메시아로 믿고 있는 유대인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26:5). 지난 3년반 동안 예수일행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백성들에게 수없이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를 처단하는 책임을 딴 곳으로 돌려야만 합니다. 결국 로마군정의 힘을 빌려서 그를 처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로마의 반역자로 밀어 부쳐서 십자가에 처형을 시키고자 합니다(19:12).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지금 로마총독인 빌라도 앞에 와 있습니다.

(4)  빌라도가 여기까지의 경과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유대교내에 큰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조기에 수습을 하고자 로마총독의 권력을 빌리고자 하는 시도임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순순히 유대교지도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냉철하게 로마총독으로서 정치적인 득실을 따지기 시작합니다.

둘째로,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얻은 결론은 예수를 살리는 것입니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현실적인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1) 유대교 내부의 교리적인 분쟁에 대하여 로마총독이 개입을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은 이미 유대인들에게 종교적인 자치(自治)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괜히 개입을 하게 되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형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되돌려 보내는 것이 상책이며 가장 편한 방법입니다. 따라서 빌라도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예수)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18:31a).

(2) 대질심문을 시행한 결과 예수에게 전혀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무죄한 자는 석방을 시켜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총독이 유대교지도자들의 말만 듣고서 로마의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예수를 처형할 아무런 실익(實益, 실제적인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예수)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19:4).

(3) 그렇지만 예수를 살리고자 하는 로마총독 빌라도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로마제국의 통치술(統治術)에 기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로마제국의 통치술에 따르면 예수를 당연히 살려주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제국(帝國, empire)이 속국(屬國, dependent country)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살려줌으로써 유대교 내부에서 계속 분쟁이 생기고 두 파로 갈라질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제국이 바라고 있는 견제와 균형입니다. 그 결과 로마총독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유대교지도자들을 통제할 수가 있게 됩니다. 양편 가운데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서 양쪽을 모두 간단하게 통제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로서는 예수를 살려서 계속 활동하도록 만들어 주고자 작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런데 유대교지도자들이 요지부동입니다. 전혀 빌라도의 말이 먹히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예수를 처단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19:6).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도저히 예수를 살리지 아니하면 안 되는 극단적인 방책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국사범(國事犯, 국가의 정치질서를 깨뜨리는 중요한 범죄)으로 체포되어 감금되어 있는 바라바와 예수 가운데 누구를 석방할 것인지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을 선택하라는 제안입니다(27:16-17). 석방의 명분으로 빌라도는 유대교 명절에 죄인 중 한 사람을 석방하는 관례에 따른 것이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27:15). 하지만 그것은 억지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에 무장투쟁을 한 바 있는 바라바와 같은 중 범죄자를 아무리 명절에 따른 특혜라고 하더라도 석방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석방해주기를 원하는가? 빌라도의 생각에는 당연히 유대인들이 예수를 살리고 바라바를 계속 감금하라고 의사표현을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라바야 말로 갈릴리 지방에서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고자 획책했던 무장독립세력의 주요인물이기 때문입니다(27:16, 15:7). 만약 유대인들이 바라바의 석방을 선택한다고 하면 모두가 로마에 반역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불온(不穩, 체제를 부정함)한 백성들이라고 의심을 살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그러나 유대교지도자들과 그들의 사주(使嗾)를 받고 있는 유대인들이 선택하고 있는 것은 바라바입니다(27:20-22). 그것은 로마총독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들은 바라바를 살려달라고 함으로써 설혹 로마황제의 눈밖에 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부담을 능히 감당하고자 합니다(27:22-25). 그만큼 로마군정의 힘을 빌려서 예수를 처형하는 것이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있어서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빌라도가 크게 당황해 하며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27:22a). 유대인들의 답변이 단호합니다;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27:22b). 이제는 도리가 없습니다. 로마총독으로서 빌라도도 자기 살 궁리를 모색해야만 합니다. 빠져나갈 방도가 필요합니다. 대의(大義)가 어그러지면 개인적인 면책이라고 하는 소기의 목적이라도 달성을 해야만 합니다. 갑자기 빌라도가 비겁한 결정을 하고자 합니다.

다섯째로, 이제는 로마총독 빌라도의 공식적인 결정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최종결정을 내리기 전에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철저하게 마련하고 있습니다; 첫째, 오로지 유대인들의 요구에 따라서 행한 일임을 명백하게 하고자 합니다(27:22-23). 둘째, 예수가 무죄라는 사실을 천명하면서 그 무죄한 자의 핏값에 따른 모든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떠넘기고자 합니다(27:24b-25). 셋째, 만약 불허한다면 민란(民亂, 백성들의 반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정치적인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고자 합니다(27:24a). 넷째, 자신은 로마황제에게 반역의 혐의가 있는 자를 도와주는 행위를 결코 행하지 아니하고 있는 황제의 충실한 신하라는 면모를 보여주고자 합니다(19:12-13).

여섯째로, 그러나 역사는 로마총독인 빌라도의 바람대로 전개가 되지를 아니합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까지 예수에게 불리한 일을 행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말을 하는데 그것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27:19). 그는 고작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신은 예수의 핏값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사실만을 선언할 따름입니다(27:24). 요컨대, 빌라도가 유대교지도자들이 동원한 유대인 무리들의 강력한 요구에 직면하자 로마제국을 위하여 예수를 살리고자 하는 대의명분을 상실하고 자신의 보신책만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 결과 천추에 한으로 남게 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맙니다. 그 사실을 마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15:15). 본디오 빌라도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나서 7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그는 총독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로마로 소환이 되고 맙니다. 장군출신인 그는 예루살렘 총독으로부터 시작하여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야망을 지닌 인물이었지만 그의 꿈은 좌절이 되고 맙니다. 다양한 보신책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대신에 오늘날까지 십억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악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끝으로, 빌라도를 정치적으로 압박하여(19:12-16)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하도록 만든 유대교지도자들은 더 큰 역사적인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만 처형하고 나면 자신들의 세상이 도래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철저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선민사상으로 똘똘 뭉친 유대교가 결국은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맙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처형한지 40년만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대 땅이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

구체적으로, 110만명 이상이 살해되고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이방 땅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예언이 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27:25-26), “그러므로 (예수)를 네(빌라도)게 넘겨준 자(유대교지도자들)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19:11).

결론적으로, 본디오 빌라도와 같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보신책을 마련하기 이전에 대의명분에 맞는 선택을 충실히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처럼 차도살인의 흉계를 꾸며서는 안됩니다. 또한 집단적인 이기심에 호소하고 있는 종교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신앙은 어디까지나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서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 마디로, 하나님사랑이며 이웃사랑의 실천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