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78강(마26:20-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8. 23:58

마태복음 강해 제178(26:20-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54()

 

유월절 만찬에 참석하고 있으나 천국의 혼인잔치자리에는 결코 들어갈 수가 없는 비극의 주인공(22:9-14, 26:20-21)

 

마지막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만찬을 함께하고 있습니다(26:18-20). 이제 만찬이 끝나게 되면 그날 밤에 체포를 당하시고(26:57) 다음 날 금요일에는 유월절 양이 되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게 됩니다(27:26). 그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26:1-2) 마음이 바쁘고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러므로 만찬석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유월절 만찬자리에는 함께 참석하고 있으나 천국의 혼인잔치자리에는 결코 들어갈 수가 없는 자가 한 사람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26:21). 예수님을 팔아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 있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말씀과 더불어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천국의 혼인잔치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예복을 갖추어 입어야만 합니다(22:11-13). 먼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선택을 받은 민족을 들라고 한다면 당연히 선민 유대인들입니다(19:3-5). 그러나 그들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지를 못했습니다(19:6). 제사장나라가 되자면 이방민족을 위하여 대속의 제사를 드려주어야만 하는데 그 일을 전혀 행하지 아니한 것입니다(1:3, 4:1-5, 1:5, 42:6). 이기적인 신앙 나아가서 집단이기주의에 물든 선민들의 신앙생활이 결국 제사장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거듭 지적하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동족들에게 부르짖고 있는 예수님마저 죽음의 위기에 처하고 있습니다(26:1-5). 그러므로 선민이 버림을 받고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 사회로 넘어가게 됩니다(11:11). 하지만 천국의 혼인잔치자리에 참석을 할 수 있는 자격은 변함이 없습니다.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만민구원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예물로 올려드려야만 합니다(66:20-21). 공생애를 사시면서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예복을 입고 있습니다(28:2-30, 6:20). 그 제자들인 성도들도 동일한 일을 행함으로써 제사장의 예복을 입고서 천국의 잔치자리에 들어가야만 합니다(22:11-14).

둘째로, 말로만 하는 믿음생활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생활을 하는 자라야 천국의 잔치자리에 들어갑니다(7:21). 말로만 하는 믿음생활의 예를 들어보자면 바리새인들의 신앙생활을 참조하면 됩니다. 그들은 히브리정경에 밝으므로 말씀이 논리정연하고 유창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들의 말은 들을 만 하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23:3a).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신앙생활이 이중적이며 외식적이라는 것입니다. 말만 하고 그대로 행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23:3b).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영위하지 말라고 예수님이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셋째로, 주님을 이용하고 배신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26:21). 가룟 유다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유다 지방 남쪽의 벽촌 가룟의 출신입니다. 머리가 영리한 그는 출세를 하고자 청운의 꿈을 안고서 대도시 예루살렘으로 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가진 것 없는 시골출신이 소비도시 예루살렘에서 입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막막합니다. 유일한 출세의 방법이 선지자의 생도가 되어서 장차 이름을 떨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나사렛 예수의 제자가 되었으며 열심히 노력하여 스승의 신임을 얻고 재정까지 맡아보게 됩니다(12:6).

하지만 예수님이 유대교지도자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죽음의 위기에 내몰리게 되자(26:1-5) 유다는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26:14-16). 자신의 이익과 출세를 위하여 말을 갈아타려고 합니다. 주님을 버리고 세속적인 종교지도자와 손을 잡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최후의 만찬에는 참석을 하지만 천국의 잔치에는 참석하지를 못하는 주인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끝으로, 세례 요한처럼 신랑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한 신앙생활을 영위해야만 합니다(3:29).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스스로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승이신 세례 요한이 나사렛 예수에게 요단 강가에서 물세례를 주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3:13-17).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스승이 예수님보다는 더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더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 일행에게 몰려가서 물세례를 받고 있습니다(4:1-2). 따라서 그들이 스승인 세례 요한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3:26).

그러나 세례 요한의 대답이 제자들의 기대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3:28-30). 세례 요한의 답변은 주님의 일을 행하는 제자들과 성도들 그리고 선지자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와 같이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라야 넉넉하게 천국의 혼인잔치 자리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