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73강(마25:31-3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6. 04:02

마태복음 강해 제173(25:31-3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42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특징과 민족심판의 특징(25:31-33)

 

첫째로, 사도 마태는 이제는 구원주가 아니라 심판주로 이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특징을 평소 예수님의 말씀을 빌려서 다음과 같이 절묘하게 한 구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25:31). 간단한 문장 같지만 참으로 많은 성경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는 구절입니다. 한번 다음과 같이 간편하게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인자가 다시 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25:31a). 그리스도가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요? 하나님의 진면목을 개방하면서 오실까요? 아니면 역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실까요? 전자가 아니고 후자라고 하는 의미가 인자’(人子, son of man)라는 표현 속에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25:31a). 물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자신을 일컬어 인자라고 자주 호칭했기 때문에 여기서도 평소 습관대로 말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하지만 그 옛날 아브라함이나 모세 그리고 여러 선지자 앞에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이 드러내실 때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진면목을 개방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18:1-2, 33: 20-23, 12:8, 6:1, 1:26, 10:5-6). 그리고 사도 요한도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부활 승천하여 하늘에서 교회를 돌보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인자 같은 이”(1:13)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친숙하게 인자의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3)  사람들에게 친숙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다시 이 땅에 오신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자기 영광’(25:31b)이 강조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한 위격이신 독생자의 자기 영광은 모든 피조물을 벌벌 떨게 만드는 창조주의 영광입니다(1:1-3, 14). 그 앞에 서게 되면 인간은 한갓 피조물에 불과하며 모두가 죄인입니다(3:9). 마치 사도 베드로처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주님이 심판주로서 재림하시는 것이기에 그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4)  그런데 성자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그대로 지니시고 이 땅에 오신다고 하는 구절은 아브라함의 깨달음 한 구절을 가지고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24:3). 아브라함은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하나님으로 구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하늘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사람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고(11:13-16, 26)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시고 이 땅의 하나님으로 강림하시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5)  이 땅의 하나님으로 강림하시는 것이기에 당연히 천군천사(天軍天使, heavenly army and angels)들이 빈틈없이 호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말이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온다’(25:31c)는 것입니다. 그 천사의 수가 어느 정도일까요? 일찍이 예수님께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26:53)하신 말씀을 참조하면 그 수는 실로 엄청나다고 하겠습니다.

(6)  그 정도로 많은 천사들이 하나의 보좌를 옹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그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 점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다”(25:31d)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 가운데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감회가 새로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변화산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다음과 같이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17:2-3),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17:8). 그 보좌에는 모세와 엘리야도 앉을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그 영광의 보좌의 주인이십니다. 혹시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참칭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차제에 제정신들을 차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재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한 마디로,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각 민족 별로 심판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특이하게도 그 보좌 앞에 모든 민족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25:32a). 세상에는 많은 민족들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님께서 강림하셔서 그때까지 기도하고 있던 120여명의 성도들에게 각기 다른 방언을 주셔서 120개 이상 외국에서 온 교포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 행하심을 증거하게 하신 일이 있습니다(2:1-11). 그 사실로 미루어보면 당시 중근동과 유럽 땅을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제국 내에 약 120개 이상의 민족이 살고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날은 전 세계적으로 200이 넘는 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민족들을 재림하신 주님께서 천사들을 동원하여 모두 끌어 모으고 계십니다. 그것이 진실로 왕중왕’(王中王, king of kings)의 모습입니다.

(2)  그리스도는 단지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하여 보좌 앞에 수백의 민족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각 민족 별로 모두 심판하기 위해서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방법이 굉장히 단순합니다. 각 민족을 단지 둘로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소 목자가 행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칠 때에 제일 먼저 양과 염소로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25:32b). 그와 같은 방법으로 둘로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성육신하여 33년을 사시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굉장히 잘 알고 계십니다. 직접 인간이 되셔서 함께 살아보고 체험을 해보셨으니 당연히 그러합니다. 그 노하우가 그대로 심판의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아주 손쉽게 각 민족의 행한 일이 목자의 말을 잘 따르고 있는 온순한 양인지 아니면 버르장머리가 전혀 없이 제멋대로 행하고 있는 염소인지를 분별하신다는 것입니다.

(4)  그 다음에 양은 오른 쪽으로, 염소는 왼쪽으로 분리하여 세우고 있습니다(25:33). 오른 쪽은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25:34). 반면에, 왼쪽은 영원한 진노의 처벌을 받는 길입니다(25:41). 그 판결을 먼저 민족 별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를 해야만 합니다. 흔히 사회야 어떠하든지 내 민족이야 어떠하든지 간에 나 개인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정직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은 각 민족 별로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법정에서는 설 자리가 전혀 없습니다. 너의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네가 어떠한 인생을 살아갔는지를 묻고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세상의 정의와 다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정의’(正義, justice)는 공동체 내에서 정치적으로 또는 법정에서 법적으로 선포가 되고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는 하나님의 창조의 정신에 비추어서 하늘의 법정에서 선포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늘의 법정이 이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 땅으로 내려와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정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에 비추어서 각 민족 별로 주님의 심판이 실시가 되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민족은 오른 쪽으로, 거역한 민족은 별도로 왼쪽으로 세워집니다. 그 오른 쪽으로 분류가 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righteousness)를 만족시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민족이 가는 곳은 왼쪽입니다. 그 점을 쉽게 조어(造語)를 만들어서 설명하자면, 하나님을 거역하여 왼쪽으로 분류가 되고 마는 그것이 바로 ‘lefteousness’일 것입니다.

(7)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하나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최종적으로 판결을 하시는 분이 오로지 재림하시는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설혹 이 땅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미움을 받거나 세상의 법정에서 정의가 아니라고 정죄가 되어 감옥살이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최종적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세상의 판결은 재림하시는 주님 앞에서 공의로운 최종심판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혹시 세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면 주님의 복음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가올 주님의 공의로운 판결을 기다리면서 많은 위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는 두려우신 심판주의 모습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그때는 개인적인 심판을 하기에 앞서서 민족 별로 먼저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 혼자 신앙생활을 잘 영위하면 된다고 자신해서는 안됩니다. 내 골육과 내 민족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혈육과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마치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열심히 중보의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18:23-32, 19:29, 32:32). 혈통적으로 유대인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얼마나 동족들을 끔찍하게 생각하고(11:35-36, 9:3) 그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했던가를 생각하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