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68강(마25: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3. 14:34

마태복음 강해 제168(25: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417()

 

마태복음 제21장에서 제28장에 이르기까지 사도 마태가 보여주고 있는 체계적인 사건의 배열과 기록에 대하여

 

마태복음의 특징을 파악하자면 그 저자가 되고 있는 사도 마태의 경력과 능력에 대하여 먼저 이해를 해야만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나 되는데 다른 제자들을 제쳐두고 왜 사도 마태가 주후 60년대에 발행된 3권의 공관복음 가운데 1권을 저술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당시 헬라어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도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30년의 세월이 더 지나면 사도 요한이 노년에 헬라어를 배워서 제4복음서를 저술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둘째, 마태복음 제21장부터 제28장까지의 기록을 보면 얼마나 정치(精緻, 정밀하고도 치밀함)하게 체계적으로 저술이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와 같은 체계적인 일련의 사건의 진술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도 마태의 경력의 특징을 감안할 때 비로서 이해가 가능해진다고 하겠습니다.

사도 마태는 갈릴리의 가장 큰 도시 가버나움에 위치하고 있는 세관(稅關, custom office)에서 젊은 시절 한 사람의 세리(稅吏, 세금을 거두는 관리)로서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9:9). 일반 세무서와 세관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세무서가 국내세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면 세관은 관세를 거두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세무서의 세리가 본토 유대인들만을 상대하는 공무원이라고 한다면 세관의 세리는 국제적으로 수출입을 하고 있는 무역업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공무원입니다. 그 결과 세관원은 국제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본토 히브리어는 물론 이웃 시리아어나 국제적으로 통용이 되고 있는 헬라어에 대해서도 밝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물품에 대한 공부와 경제의 흐름에 대한 안목도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야 비로서 수출입물품의 가격을 판단하고 합리적인 관세를 부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점을 생각할 때에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사도 마태가 특별한 제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는 헬라어에 익숙하고 경제의 흐름과 수치에 밝은 자입니다. 나아가서 국제적인 넓은 안목을 가지고서 대상물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판단하고 분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자입니다. 그와 같은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사도 마태는 예수님이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공식적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때부터 발생한 모든 사건을 그의 복음서 제21장에서부터 마지막 장인 제28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그 기록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21장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성전청결사건을 기록합니다. 그 결과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과의 갈등이 다시 크게 발생하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2) 22장에서는 예수님이 벌이신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 23장에서는 유대인 백성들의 평소 신앙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기관들과 랍비들의 이중적인 신앙행태에 대하여 강하게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4) 24장에서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고 세상의 종말이 시작이 된다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에 주님이 심판주로 오신다는 예언까지 하고 있습니다. (5) 25장에서는 그러므로 제자와 성도들이 자신의 인생과 세상의 종말을 대비하기 위하여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는지를 비유와 더불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6) 26장은 예수님의 체포과정과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의 심문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7) 27장은 유대교지도자들이 교활하게도 이방인인 로마총독의 손을 빌려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과정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8) 28장에서는 사도 마태가 예수님의 무덤 속 부활과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고 있는 지상명령을 기록함으로써 그의 복음서를 드디어 마감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5처녀와 슬기로운 5처녀가 상징하고 있는 것(25:1-5)

 

첫째로, 사도 마태는 제24장 말미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악한 종에 대하여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적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주인의 명령을 평소에 충실하게 수행을 하다가 주인의 눈에 들어서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되는 큰 복을 얻게 됩니다. 반면에 악한 종은 종말론적인 처벌을 면하지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2) 종들의 평소 근무태도를 점검하기 위하여 주인이 불시에 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진실된 면모를 알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불시에 근무태도를 점검함으로써 외식적이고 가식적인 종의 잘못을 가려내어 처벌을 하는 한편 진실되고 정직한 종을 발굴하여 큰 일을 맡기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와 같은 두 가지 종의 모습이 제25장에서 두 가지의 비유와 하나의 이야기로 거듭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1)   10처녀 비유’(25:1-13)에서는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 가운데 5명은 미련하고 5명은 슬기 있는 자”(25:1-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슬기로운 처녀는 혼인잔치 자리에 들어가고 미련한 처녀는 들어가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25:10-12).

(2)   달란트 비유’(25:14-30)에서는 각자의 재능대로 주인으로부터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은 종들이 훗날 주인과 결산을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열심히 일하여 2배를 남긴 종게을러서 전혀 이익을 남기지 아니한 종으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게으른 종은 달란트를 빼앗기고 내어 쫓겼으며 2배를 남긴 종들은 주인의 칭찬과 더불어 더 많은 소유의 위탁을 받고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였다는 결론입니다(25:21, 23, 28, 30).

(3)   인자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25:31-46). 심판의 기준은 먹을 것이 없는 자, 나그네 된 자, 헐 벗은 자,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 등 사회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 살고 있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도움을 준 자가 이며 오른 쪽으로 분류되어 천국에 들어갑니다(25:33-34). 반면에 도움을 주지 아니한 자는 염소이며 왼쪽으로 분류되어 지옥으로 들어갑니다(25:41). 여기서 심판의 대상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집단적인 민족을 대상으로 하여 양과 염소로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25:32-33).

끝으로,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구분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신랑을 맞으러 나가면서 그들이 공통적으로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등을 들고 간 것입니다(25:1). 등은 불을 켜기 위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밤길을 갈 때에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이 등불입니다. 보름 달이 두둥실 떠 있으면 길이 하얗게 보이지만 그믐달이면 아예 캄캄합니다. 등불을 켜야 길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밤중에 혼인잔치에 참석을 하고자 신랑이 먼 곳에서 오는데 마중을 가는 처녀들이 등불을 들고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2)  그런데 문제는 기름이 계속 공급되지 아니하면 등불이 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이 언제 도착을 할지 모르고 있는 형편이므로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마중을 나가고 있는 10처녀가 등과 더불어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5처녀는 신랑이 곧 올 것으로 지레 짐작을 하고서 그만 예비용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하고서 마중을 나가고 있습니다(25:3). 그 날 따라 신랑의 행차가 더딥니다. 생각보다 신랑의 도착이 늦어지고 있으므로 비상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3)  비상대책은 별 것이 아닙니다; 일단 기름을 아끼기 위하여 등불을 끕니다. 그리고 모두들 희미한 달빛아래 겨우 보이고 있는 전방의 길만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더욱 늦어지고 있으므로 긴장이 풀어져서 졸거나 자고 있습니다(25:5). 바로 그와 같은 때에 호령소리가 들려옵니다. 신랑이 행차를 하고 있으므로 신부측 처녀들이 마중을 하라는 신호입니다(25:6).

(4)  바로 그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등불을 켰는데 그만 등잔에 이미 들어 있던 기름이 바닥이 나고 있습니다. 예비용 기름을 가지고 온 5처녀들만이 등불을 밝히고 있습니다(25:4). 예비용 기름을 미처 준비하지 아니한 나머지 5처녀는 큰 일이 났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나누어 사용을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25:8). 하지만 거절을 당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정도의 기름밖에 없으므로 나누어줄 수 있는 여분이 없는 것입니다(25:9). 그 결과 미련한 처녀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여기서 기름은 성령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등불은 주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고 있는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으로 주변을 비추면서 인생길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복음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전파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령충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와 같이 행하는 자가 바로 슬기로운 5처녀와 같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