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66강(마24:39-4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2. 10:00

마태복음 강해 제166(24:39-4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415()

 

만민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24:32-35, 3:16-17), 그러나 절반만이 구원을 받는데 그치고 있는 이유(24:39-42, 30:18-20)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성도들이 세상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흔한 질문 두 가지가 있습니다; (2) 공평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왜 누구는 구원해주고 누구는 구원해주지 아니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사람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2) 그렇게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애초부터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완전하게 조치를 할 수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를 못한 것을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와 똑 같은 의문을 가지고 동일한 질문을 할 수가 있는 대목이 바로 본문의 중간구절입니다; “분명히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또 한 사람은 버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24:40-41). 그런데 그 앞과 뒤의 구절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아야만 합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24:39),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24:42).

도대체 사람들이 무엇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기에 그와 같은 오해를 하고 있다는 말일까요? 이제부터 한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에게 애타는 심정으로 한결같이 한 가지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부디 자신의 인생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그리고 심판의 주님이 오시기 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한번뿐인 인생살이 가운데 복음을 깨닫고 영원한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24:39, 42). 그렇게 호소를 하고 있는 이유는 복음을 받아 들이고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일이 세상사람 당사자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억지로 굴레를 씌우고 고삐를 끌어서 드디어 구원의 시냇물을 마시도록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왜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살이 가운데 반드시 구원의 길로 가지 아니하면 아니 되도록 강제적으로 만들지 아니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근본적인 이유가 창세기에 다음과 같이 밝혀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1:26-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 living soul)이 되니라”(2:7). 알기 쉽게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사람이 창조가 되고 있습니다(1:26-27). 구체적으로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 하나님”(3:14)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자들이 바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판단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가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더구나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기운을 직접 받아들이고 있습니다(2:7). 그러므로 비록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그 속에 귀하고도 귀한 영혼을 담고 있습니다.

(2)  그렇게 인간만이 유일하게 영육합일체’(靈肉合一體, spirit and flesh in one body)로 만들어진 결과 독특하게도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는 영적인 기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지, , 의라는 세 가지 혼적인 기능이 작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기능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한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만약 사람에게서 그 귀한 자유의지와 선택의 권리를 빼앗아버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의미가 전부 사라진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비록 복음을 깨닫고 주님을 영접하느냐 아니하느냐 하는 것이 전적으로 사람의 선택과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을 지시고 사람들에게 해주셔야만 하는 일이 하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완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복음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셔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정보를 주고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모든 사람에게 차별하지 아니하고 빠짐없이 기회를 똑같이 제공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며 긍휼입니다.

세상만민에게 구원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넷째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는 귀한 인간들이 모두 구원의 자리에 나아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모두가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구원하기를 원하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하나님이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6-17).

끝으로, 예수님의 복음은 히브리정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의 본뜻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24:44-45). 모세오경 가운데 마지막 책인 신명기의 끝부분을 보게 되면 그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절묘하게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19-20).

풀이를 해보자면, (1)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에게 그 인생살이 가운데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쌍쌍으로 보내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노아의 방주에 동물들을 쌍쌍으로 나아가도록 만든 것과 같습니다(6:19-20). (2)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사자 자신의 선택이며 그 자유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아있는 사람이 스스로 선택을 하도록 끝까지 지켜보고 계십니다. (3) 그러나 은연중에 만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이 절실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세의 입을 통하여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말씀을 준행하여 하나님 안에서 장수의 복을 누리라”(30:19-20)고 진심으로 권면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대신하여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부디 사망 대신에 생명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곧 생명을 얻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이 바로 그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장수하는 길’(30:20)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산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