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63강(마24:15-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31. 10:00

마태복음 강해 제163(24:15-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412(주일)

 

세상의 종말 직전에 발생하는 난리와 전쟁의 특징에 관한 예수님의 자상한 설명(24:15-21)

 

사도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일대기와 교훈을 적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공식적으로 입성하신 후부터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기록이 제21장부터 마지막 장인 제28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론적인 측면에서 흥미로운 부문은 제23장과 제24장입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의 문제점을 제23장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처형 후에 임하게 될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론적인 심판에 대하여 제24장에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마태복음 제24장 제15절부터 제21절까지의 본문말씀은 예수님이 다니엘 제9장 제24절부터 제27절 사이에 기록이 되고 있는 종말예언을 풀이해주시고 있는 대목입니다. 요한복음 제12장의 일부 내용도 관련이 되고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함께 묵상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본문 제15절에서 바로 인용을 하고 있는 다니엘 제9장의 해당 구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이레의 정복 왕)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9:27). 알기 쉽게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백성과 거룩한 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장차 70이레의 역사섭리가 있을 것임을 하나님께서 천사장 가브리엘을 통하여 다니엘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9:24a). ‘70이레에 상당하는 긴 세월이 필요한 이유는 세상사람들의 죄와 허물이 드러나며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되고 회개를 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9:24b).

(2)  70이레가운데 처음 7이레와 그 다음 62이레는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차례의 인간역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일어나서 일차 회복하는데 7이레, 그 다음에 다시 무너지고 다시 회복을 하는데 62이레가 또 걸린다는 계산입니다(9:25).

(3)  마지막 1이레의 시간이 종말에 해당합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사라지고 세상의 정복 왕이 지배를 하는 시대입니다(9:26). 전반기 절반의 이레 동안에는 철저한 종교탄압과 백성들의 유물론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공식적인 예배가 사라지게 됩니다(9:27a). 그러나 후반기 절반의 이레 동안에는 하나님의 역사심판이 종말적으로 임하게 될 것입니다(9:27b). 세상의 임금이 완전히 쫓겨나게 됩니다(12:31).

(4)  참고로, 세상임금이 쫓겨난다는 사도 요한의 자세한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12:28-31). 예수님을 두 번 영광스럽게 한다는 언급으로 미루어보아, 부활과 승천의 영광 그리고 종말론적인 주님의 재림의 영광을 모두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세상사람들이 선민사상과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다시 영위함으로 말미암아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배척하고 세상의 정복자를 왕으로 삼게 되는 마지막 이레그 비극의 시대에 대하여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9:27,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24:15-16).

참고로, 사도 마태가 이 글을 작성하고 있던 시대가 주후 60년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는 전쟁이 나면 백성들이 산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대군이 쳐들어와서 서로 전투를 하게 되면 전장(戰場, 전쟁터)이 주로 평지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게릴라 전투를 수행하게 되면 그때는 산성에서 싸우게 되겠지만 그것은 평지의 대전투에서 패한 후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근대에 들어와서 소위 빨치산전투의 개념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먼 훗날의 성도들을 위하여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피난방법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24:17-21). 그 자상(仔詳, 배려 깊은 상세함)한 내용을 나누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24:17-18). 이 구절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문이 창세기에 있습니다; “부분적인 역사심판이 그 옛날 아브라함 시대에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아드마와 스보임 등 네 개의 성읍에 하나님의 불 심판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천사의 손에 이끌려 겨우 성을 빠져 나온 자는 아브라함의 장조카인 롯의 가족뿐입니다. 그 가운데 롯의 아내가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불타고 있는 성을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으로 변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불타고 있는 자신의 재산이 아까워서 미련스럽게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19:16-26).

(2)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24:19). 1950 6월에 북한 인민군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파죽지세(破竹之勢, 대나무 밭을 짓이길 정도로 강력한 공격의 세력을 말함)로 남하한 북한군에 의하여 며칠 만에 서울이 점령을 당하게 됩니다. 당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시민들이 한꺼번에 한강철교를 건너서 남쪽으로 피난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그 참상은 한 마디로 아비규환’(阿鼻叫喚,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소리와 무질서가 마치 지옥과 같음)입니다. 그때 피난길에 가장 힘이 들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아이를 배고 있는 임산부들과 갓난아기를 업고서 젖을 물리며 피난길에 나선 산모들입니다. 자기 한 몸 살고자 도망하기에도 벅찬데 배가 무겁고 또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려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참상을 이미 아시고서 예수님이 긍휼의 마음으로 미리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3)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24:20-21). 가장 큰 환난은 언제 덮치는 것일까요? 상대가 방심한 틈을 노려서 기습적으로 찾아옵니다. 갓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탈하고자 그 옛날 광야에서 기습한 아말렉 족속의 공격이 그러합니다(17:8-16). 그들은 아라비아의 약탈민족입니다. 기마병으로 구성이 된 기습에 능한 마적단(馬賊團, 말탄 도적떼)입니다. 며칠 동안 정탐꾼을 내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의 동태를 면밀하게 파악합니다. 그 결과 가장 무기력하고 방심하고 있을 때를 골라서 기습을 한 것입니다. 이미 말씀 드린 한국전쟁의 발발도 그러합니다. 1950625일은 일요일이며 주일입니다. 주말이므로 많은 한국의 장병들이 휴가와 외박을 행하고 있습니다. 주일이므로 시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갈 준비를 하는 날입니다. 그때를 노려서 새벽에 유물론자인 북한의 군대가 남침을 감행한 것입니다.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적의 도발은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 옛날 광야에서 아말렉을 쳐부수신 하나님의 승리의 깃발이 다시 나부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7:14-16). 그러나 종말의 전쟁은 상상이상으로 전례가 없는 엄청난 비극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24:21). 그러므로 참상을 줄이기 위하여 성도들은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 가운데 안식일이나 피난하기 어려운 겨울철에 전쟁이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간구하는 내용을 반드시 포함시키라고 하는 주님의 권면입니다(24:20).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기에 그 기도를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게 되면 장차 많은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