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62강(마24:3-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30. 00:34

마태복음 강해 제162(24:3-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410()

 

주님 자신의 재림과 세상종말의 징조에 대하여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설명을 시작하시다(24:3-14)

 

예루살렘 성전을 벗어나 한적한 감람 산에 도착을 했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24:1, 3). 그들이 알고자 하는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1)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대인들의 회복의 때, (2) 주님이 재림하실 때의 징조, (3) 세상 끝의 징조 등입니다(24:3). 그 가운데 첫째 질문에 대해서는 지난 번 강해에서 다루었습니다. 이제는 둘째와 셋째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처음 답변하신 부문에 대하여(24:4-14) 그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두 가지 사건이 성행을 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십니다; (1) 주님이 곧 재림하신다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일이 많아지고(24:4), (2) 자칭 재림예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날 것임을(24:5) 예고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예언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굉장히 구체적인 징조들을 제자들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장차 성도들이 당할 미혹을 사전에 철저하게 예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4:29-30). 하늘이 캄캄해지고 천체가 크게 흔들리는 현상이 먼저 발생을 할 것이기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면 주님의 재림의 때인지 아닌지 식별이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또한 자칭 재림예수라고 주장하고 있는 자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들의 미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만 할까요?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초림’(初臨, first coming)재림’(再臨, second coming)이 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림은 모태에서 아기로 태어나신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림은 다릅니다. 하늘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지상으로 임하시게 됩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24:27). 그러므로 예수님의 예언을 신뢰한다면 사실은 헷갈릴 이유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세상의 끝 곧 종말과 관련하여 발생할 징조에 대해서는 일곱 가지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1) 난리나 전쟁과 같은 인재(人災, man-made disaster, 24:6-7a) (2) 기근과 지진 등의 천재(天災, natural disaster, 24:7b) (3) 박해(24:9) (4) 배교(背敎, 24:10) (5) 거짓선지자의 극성(24:11) (6) 불법성행(24:12) (7)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음을 접하게 되는 것(24:14) 등입니다. 그 가운데 좀더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난리나 전쟁과 같은 인재가 많이 발생하고 기근과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도처에 발생을 하겠지만 그것은 재난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24:8). 세상 모든 사람이 함께 당하는 고통과 고난이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국한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강하게 포함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밀어 닥치고 있는 종말론적인 재앙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인 박해이며 배교의 성행입니다(24:9-10). 그리고 교회 내에 불신과 증오가 팽배해지는 것입니다(24:10).

(3)  거짓선지자가 발생하고 있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그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거짓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더 많이 미혹을 한다는 것입니다(24:11). 그러므로 정확한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생활화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복음에 비추어서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지 아니하면 치우친 발췌와 편집에 의한 엉뚱한 말씀풀이에 현혹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습니다.

(4)  총체적인 부정부패가 사회적으로 만연되고 있다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옛날부터 세상이 말세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불법의 성행과 더불어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있다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실로 종말적인 징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24:12).

 셋째로, 말세가 될수록 사랑이 식어지고 있다는 대목과 관련하여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20세기 말엽부터 전세계적으로 보급된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용 통신장비의 문제점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첨단 개인용 전자기기의 보급으로 말미암아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대인관계(對人關係, personal relationship)가 크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처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현저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개인 단말기를 통하여 서로가 정보를 주고 받고 있기에 직접 대면할 필요성이 없게 된 것입니다. 함께 모여서 토론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던 방식은 옛날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화상’(畵像, 화면의 영상)을 통하여 서로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집단의 조직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결재방식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가급적 서로 만나지를 아니하고 인터넷을 이용하여 결재를 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공생애를 지냈던 복음서의 기록, 그리고 제자들이 전도여행과 선교여행을 통하여 초대교회를 건설했던 사도행전의 기록은 성경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낡은 이야기로 치부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예배조차 사이버 공간에서 드리고 헌금을 인터넷 뱅킹으로 처리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스승과 제자 사이에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생활을 하고 전도여행을 하는 이른 바 고전적인 공생애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서로간의 땀과 체취와 체온을 맡으면서 하나님신앙을 전수해주는 기회가 자꾸만 희귀해지고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신앙과 복음생활에 있어서 사람의 냄새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를 본문에서는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있는 것으로(24:12) 표현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 less)인간적인 가치가 지배하고 몰인정한 사회가 형성되는 만큼 세상의 종말에 그만큼 가까워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끝으로, 천국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질 때까지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끝까지 인내하고 전도와 선교에 열심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24:13-14).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세상의 멸망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3:16-17, 6:39-40). 만민의 생명을 살리는 한편 세상만물이 창조의 이치대로 운행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 인류에게 생명의 복음을 끝까지 전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그러한 성도의 사명이 끝나는 지점에 두 가지가 있게 될 것입니다; 첫째가 복음을 접하게 된 사람이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선택에 따라 영생’(永生, eternal life)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로 나누어질 것입니다(25:45-46). 그 둘째가 자신의 사명을 인내로써 끝까지 감당한 성도가 이 땅에서 자신의 육체적인 종말을 영생의 소망 가운데 행복하게 맞이할 수가 있게 됩니다. 주님이 개인적으로 그 성도에게 재림하여 부활과 영생의 길로 함께 동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대신하여 자신의 종말과 주님의 오심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의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긴 호흡으로 음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사도 바울이)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1:23-24), “(성경의 기록을 마무리하면서 사도 요한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2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