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67강(마24:37-5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3. 14:33

마태복음 강해 제167(24:37-5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416()

 

역사심판과 종말심판의 차이에 대하여(24:37-42)

 

하나님의 심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역사적인 심판, (2) 종말론적인 심판입니다. 역사적인 심판은 전면적인 심판이 되었든 아니면 제한적인 심판이 되었든지 간에 인류의 역사가 계속이 되는 심판입니다. 창세기에서 예를 들어보면, 노아 6002월에 임했던 홍수심판이 전면적인 역사심판에 속합니다(7:11). 그리고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아드마와 스보임 등 네 개의 도시국가에 임했던 유황불 심판이 제한적인 역사심판에 해당이 될 것입니다(19:24-25, 29:23).

역사적인 심판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역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계속이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 등 4개의 성읍에 불 심판이 임했지만 다른 성읍에는 그러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노아 시대의 홍수가 전면심판이라고 하더라도 노아와 그의 아내, 세 아들과 세 며느리 등 8명의 인류가 살아남았습니다(6:18, 7:7, 13, 8:18). 그렇게 4명의 남자와 또 4명의 여자가 방주를 타고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홍수 후에 인류의 역사와 문명이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9:18-19).

그런데 종말심판은 역사심판과 비교할 때 닮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1) 우선 닮은 점은 남자 1명과 여자 1명이 데려감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4:40-41). 그렇게 한 쌍으로 구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방주구원과 닮아 있습니다. (2) 다른 점은 역사심판의 경우에는 인류의 역사와 문명이 계속이 되고 있지만 종말심판의 경우에는 그러하지를 못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심판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시게 되면 인류의 역사는 완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면서 세상권력을 휘두르던 자들과 추종자들이 모두 영벌의 심판에 처해지게 됩니다(20:2-15). 또한 아직 세상에서 살고 있는 자들은 휴거를 당할 것이며(살전4:17) 이미 죽어 있는 자들은 모두 부활하여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5:28-29, 살전4:16, 20:4-6, 12). 그것은 구원주이자 심판주가 되시는 주님의 판정에 의하여 영생이냐 영벌이냐로 그 운명이 최종적으로 판가름이 난다는 뜻입니다(3:16-17, 5:22). 그리고 그때를 분기점으로 하여 기존 인류의 역사와 문명은 모두 사라집니다(20:11). 그때부터 전혀 새로운 창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핵심내용은 창조주 하나님과 주님의 보좌 앞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귀함을 받으며(21:7) 그 명령을 따라 세상을 다스리는 자리에 영원히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19:28, 22:30). 그것이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마침내 맞이하게 되는 이른 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적인 새 예루살렘의 역사입니다(21:1-7).

참고로, 그와 같은 의미를 가장 알기 쉽게 기록하고 있는 구절이 이사야 선지서와 사도 요한의 계시록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65:17-20),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21:1-5).

 

사람들이 생각하지 아니한 때에 주님이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24:42-51, 1:3-15, 2:1-4, 2:28-32)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아니한 때에 그들의 주인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24:42). 그 말은 다음 세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주인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주인님이 종에게 맡긴 일에 대하여 심판을 하고자 반드시 한번 방문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 방문의 때는 사전예고가 전혀 없이 불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왜 사람들이 생각하지 아니한 때에 그들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다시 오시게 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만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주님의 재림의 때가 사람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55:8-9). 그렇게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피조물인 사람과 창조주인 하나님이 존재하며 역사하고 있는 차원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은 물질적으로 시공간이라는 4차원에 갇혀서 살고 있는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영이십니다(1:1-2, 4:24).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역사하심의 차원을 인간이 인식하고 있는 4차원으로 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창조가 되어 있습니다(1:26-27). 창조주께서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만드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영으로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2:7). 그 덕택에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바로 서 있게 되면 4차원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미래의 창조의 역사를 어느 정도 예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자를 성경에서는 선지자 또는 선견자 또는 지혜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0:7, 삼상9:9, 12:9).

선지자 중의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종말과 재림의 때에 대해서는 완전히 하나님 아버지의 소관이라고 시종일관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4:36),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1:7). 요컨대,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은 그 시기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권적으로 결정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때를 주권적으로 결정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0:18). 절대선(絶對善, absolute good) 곧 모든 생명을 돌보고 살릴 수 있는 선함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고 있다는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피조물 전체의 형편을 한 눈에 두루 살피고 모든 생명을 최대한 구원할 수 있는 그 시간을 찾아낼 수 있으신 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 한 분밖에 없다는 표현입니다. 역시 창조주의 한 위격을 지니고 계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조차(1:1) 이 땅에 육신을 입고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1:14) 완전한 생명살림이라는 절대선을 구현할 수가 없다고 하는 실토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러하신데 하물며 그 제자들과 성도들은 더더구나 그 때를 짐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사람들이 사전대비를 할 수 없도록 마치 도둑과 같이 임할 것이라는 언급입니다(24:43). 외식과 가식을 배제하고 사람들의 신앙생활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하여 불시에 방문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흡사한 사례가 사도행전 제2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함께 모여서 기도에 전념함으로써 성령님의 강림을 맞이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24:49, 1:4-5). 그 말씀은 일찍이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한 것이므로(2:28-32)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 약 500여명이 함께 모여서 꿈과 환상과 예언을 사모하며 기도에 힘썼습니다(1:13-14,  고전15:6).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주지를 아니했습니다(1:7). 따라서 기도에 힘썼지만 점점 제자들이 지치기를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루어두었던 집안일 그리고 사업상의 일들이 그들을 기도의 자리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마침내 기도를 시작한지 열흘째가 되었을 때에는 120명 정도만이 남아서 소위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1:12-15). 바로 그때 갑자기 성령님이 강림하신 것입니다(2:1-3). 깨어서 그때까지 기도에 전념하고 있던 120명의 제자들에게만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이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로서 주어지고 있습니다(2:4).

넷째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과(24:45) 악한 종을(24:48) 구별하기 위하여 불시에 주인이 방문을 하시는 것입니다(24:50). 만약 주인이 방문일정을 사전에 예고한다고 하면 모두 사전준비를 철저히 할 것이므로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분류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의 종의 행실과 충성심을 외식이나 가식이 없이 파악하기 위해서는 불시점검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끝으로, 사도 마태는 불시방문의 효과에 대하여 예수님이 설명하신 부문을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4:44-51).

결론을 대신하여, 본문 24:44-51’절 가운데 들어 있는 몇 가지 개념을 다음과 같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주님의 종은 자기가 맡은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양식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영적인 양식을 풍성하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10:10, 6:4). 둘째, 생존을 위한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과부와 고아와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가 여기에 그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14:29, 25:34-401:27).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강도를 당한 자에게 좋은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10:30-37).

(2) 주인이 불시에 점검하여 주인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 충성스러운 종을 발견하게 되면 상급을 내립니다. 그 상급은 엄청난 것입니다. 주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39:3-6). 그와 같은 완전한 권세를 얻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28:18).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충실하게 지상명령을 수행해야만 합니다(28:19-20). 그리하면 하나님의 기업의 상속에 참여하게 되는 양자가 될 것입니다(25:34, 1:12-13, 8:15).

(3) 반대로 악한 종에게는 엄청난 심판이 임합니다. 여기서 악한 종은 네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주인이 더디 올 것으로 생각하고서 제멋대로 지냅니다(24:48). 둘째,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24:49a). 셋째, 주인의 재산을 술친구들과 함께 탕진을 하고 있습니다(24:49b). 넷째, 그러나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마치 충성된 종인 것처럼 경건하게 가장을 하고서 지내고 있습니다(24:51b). 그것이 외식적인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불시에 찾아와서 그 정체를 백일하에 밝혀버리고 강력하게 처벌합니다(24:50-51a). 결국 악한 종이 가는 곳은 영원한 벌을 받는 지옥뿐이라고 하겠습니다(24:51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