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사사시대 초엽 베냐민 지파의 잘못과 그와 전쟁을 벌인 기타 11지파의 문제점(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1. 11:03

제목; “사사시대 초엽 베냐민 지파의 잘못과 그와 전쟁을 벌인 기타 11지파의 문제점”(19:22-20:35)

설교일; 주후 20238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1일 화요일 작성)

 

주전 1,4464월에 모세와 아론은 200만명이 훨씬 넘는 이스라엘 자손과 온갖 잡족을 이끌고 창조주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감격스러운 출애굽 해방을 맞이합니다(12:37-42). 그들은 시나이반도 시내 광야에서 일년을 머물면서 성막도 짓고 시내 산 정상에서 모세가 계시 받은 여호와의 말씀을 신정국가를 운영하는 기본적인 율법의 형태로 배우게 됩니다(40:2, 1:1, 9:1-5, 10:11-12).

출애굽 이듬해인 주전 1,445년 봄에는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의 남쪽 국경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신(Zin) 광야와 황량한 바란 광야의 경계지점에 이르고 있습니다(12:16). 그곳에서 그나마 물이 풍성한 가데스 바네아에 진을 치고서 북진하여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자 합니다(13:26, 1:19-21).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 각 지파 지휘관들의 반대로 모세는 일단 가나안 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원주민들의 생산력과 군사력을 은밀하게 파악하고자 합니다(13:2, 1:22-25). 40일간의 염탐을 끝내고 돌아온 12명 가운데 10명의 정탐꾼이 강력하게 전쟁불가론(戰爭不可論)을 주장합니다.

요컨대, 헤브론 지역에서 그곳에 살고 있는 거인 아낙 자손을 보았는데 그들에 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메뚜기와 같이 연약하기 그지 없다는 것입니다(13:33). 따라서 전쟁을 치기 위하여 북진하게 되면 이스라엘군이 패배할 것이며 백성의 전멸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두명의 정탐꾼 곧 갈렙여호수아는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넉넉하게 승전할 수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만 열패(劣敗)의식에 사로잡힌 백성들의 격분만 사게 됩니다. 성난 군중 앞에 모세와 아론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론을 모으고 있습니다; “자신을 잘못 인도한 모세와 아론을 버리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에서 온 길을 되돌아가자. 그동안 보아온 약한 족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이 더 낫다”(14:4절 의역).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 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불신앙에 빠진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40일간 정탐한 날을 40년으로 계산하여 출애굽한지 40년만에 기성세대를 전부 광야에서 멸절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14:22-35). 다만 여호와신앙을 파수한 여호수아와 갈렙, 모세와 아론, 그리고 제사장들만 예외가 되고 있습니다(14:24, 30, 38, 20:12, 24:33).

가데스 바네아에서 남진하여 다시 시나이 반도에 들어와서 이스라엘 자손과 잡족들은 38년을 지냅니다. 마침내 출애굽 40년에 들어서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백성들을 인도하여 다시 가네스 바네아로 북상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기성세대가 광야에서 죽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짐으로써 기존의 열패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자 그 옛날의 샘물들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물을 발견하지 못한 백성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20:2-5). 그것을 보고서 여호와께서 나타나십니다(20:6). 그리고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20:7).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20:8).

여호와의 뜻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모세와 아론이 속으로는 절망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대교체가 되어 다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러 가나안 땅 점령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백성들이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을 불신하고 여호와가 세운 지도자를 원망하는 그 습성에는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세가 여호와의 자비로운 뜻을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하지 아니하고 그만 백성들에게 진노하고 있습니다; “세대교체가 되었지만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을 믿지 아니하고 지도자에게 불평 불만을 퍼붓는 그 버릇은 변함이 없구나. 이와 같이 악한 백성들을 위하여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사용하여 바위에서 샘물이 터져 나오게 하는 기적을 시현하고 싶지가 않다”(20:10절 의역).

모세가 화가 나서 지팡이로 그 반석을 치고 맙니다. 여호와께서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20:8)고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자신의 지팡이로 반석을 치면서 백성들에게 야단을 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반석에서 지하수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20:11). 그것이 모세와 아론의 생각을 뛰어넘고 있는 거룩하신 창조주 여호와의 변함없는 긍휼과 사랑 그리고 영광입니다(20:13).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과 영광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모세와 아론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그것이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들 역시 광야에서 생을 마치고 만다는 것입니다(20:12). 그리고 모세는 시종인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라는 것입니다(27:18-21).

모세는 단지 주전 1,407년에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요단강 동편에서 6개월간 정복전쟁을 수행합니다(21:21-35, 2:31-3:11).  그는 아모리 족속의 남왕국과 북왕국을 정복한 후에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고 모압 평지 느보산에서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34:5-8).

따라서 가나안 땅의 정복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앞장을 서서 7년간 수행하게 됩니다. 그 결과 주전 1,400년경에 요단강 동편과 서편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분배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11:15-23).

 당시의 여호수아와 갈렙의 나이가 90세 정도입니다. 여호수아가 110세에 가나안 땅에서 향년을 맞이합니다(24:29-31). 그런데 여호수아의 후계자가 결정이 되지 못하고 이스라엘 12지파는 자신들의 기업만 보전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통합군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여 주변 이방군대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민족의 지배가 길어지게 되면 여호와께서는 대사사를 세우고 적들을 물리쳐 주시지만 문제는 기본적으로 각자 자신들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기적인 행태 때문에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의 영광이 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안타까운 시대가 이른바 사사시대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사사기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17:6, 21:25). 그러한 사사시대의 특징이 여호수아 시대에 함께 활동한 대제사장 엘르아살이 죽은 후 그 뒤를 잇게 된 대제사장 비느하스의 시대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24:33, 20:28);

그것이 이름하여 베냐민 지파가 기타 11지파와 전쟁하여 거의 인종청소를 당하게 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20:46-48). 그 사건의 비극성은 한마디로, 레위인을 제외하고 이스라엘 군대를 각기 보유하고 있는 12지파의 군대 가운데 용맹한 베냐민 지파가 사라지고 그 이상의 피해가 기타 11지파에 발생하였다는 참혹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엄청난 피해가 바로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를 여호와께서 세우시는 것을 이스라엘 12지파가 원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자기 지파만의 군대를 가지고 집단이기적으로 살아갔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사시대 초엽 대제사장 비느하스 시대에 발생한 그 사건을 성령님의 뜻에 따라 의도적으로 사사기 기록의 말미에 수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0:28).

오늘은 그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상당히 길지만 본문말씀으로 19:22-20:35을 전부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선 전체적인 맥락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베냐민 지파의 잘못과 기타 11지파의 문제점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조주 여호와의 뜻이 담겨 있는 11제도를 버리고 제멋대로 첩을 들이고 있는 레위인의 잘못(2:20-25, 6:1-3, 19:1).

(2)  자신이 살겠다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만 첩을 악한들에게 내어준 레위인의 잘못(19:25);

(3)  레위인은 첩의 시신을 잔인하게 12토막을 내어 여러 지파에 보내고 있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원한을 갚겠다고 지파 간의 불화를 충동질하고 있는 것임(19:29-30).

(4)  기브아 주민의 잘못을 시정하고자 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전체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벌이겠다고 준비하고 있는 기타 11지파의 지나친 생각(20:8-11).

(5)  기브아 주민의 잘못을 감싸기 위하여 전면전을 불사하고 있는 베냐민 지파의 무모함과 오만함(20:13-16).

(6)  40만 대() 26이라는 수적 우세만을 믿고서 전투에 임하고 있는 11지파의 오만과 오판(20:2, 15, 21, 25).

(7)  베냐민 지파를 징벌하기 전에 자신들의 여호와신앙을 되돌아보지 아니하고 있는 기타 11지파의 문제점(19:30).

(8)  전쟁에서의 승리만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결과 베냐민 지파를 인종 청소하고 있는 기타 11지파의 잘못(20:43-48).

(9)  끝까지 회개함이 없는 베냐민 지파의 참패로 겨우 600명의 용사만이 살아남게 되다(20:47);

(10)    초기 대제사장 비느하스 시대에 발생한 이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끝까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제멋대로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12지파의 문제점을 되돌아보라고 하는 의미에서 이 사건을 사사기의 기록 말미에 수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임(19:22-21:2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말씀을 한 구절 씩 간략하게 풀이하여 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19:5), 23. 집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19:8),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레위인)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려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려져 있더라. 27.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밤새 레위인은 바깥을 살피지 아니한 것임. 참으로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인물임)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려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19:1,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돌아가서,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12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전대미문의 대사건이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19:22-30);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핵심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19:5), 23. 집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19:8)”(19:22-24);

1)    베들레헴에서 첩을 데리고 북쪽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한사람의 레위인이 객지 기브아에서 그만 날이 어두워지자 친절한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 유숙을 하고 있습니다. 밤중에 마치 그 옛날 소돔처럼 동네남자들이 떼로 몰려와서 나그네 레위인 남자를 불러내어 욕을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22). 그것은 남색을 좋아하는 베냐민 지파 성읍 기브아 주민들의 성적인 타락상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2)    집주인 노인은 여호와를 섬기는 레위인을 보호하고자 자신의 소유로 여기고 있는 미혼인 두 딸과 레위인의 첩을 불량배들에게 내주고서 봉변을 피하고자 합니다(23-24). 그러나 그것은 2가지의 잘못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딸과 첩을 남자의 소유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여자의 희생도 불사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3)    노인이 보호하고자 하는 그 레위인도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잘못을 다음과 같이 범하고 있는 자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정하신 일부일처제도를 어기고서 첩을 데리고 살고 있는 레위인의 타락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둘째,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서 할당을 받은 레위인 성읍은 세겜, 게셀, 깁사임, 벧호른 등 4개 성읍입니다(21:20-22). 그런데 그 레위인은 자신의 성읍을 떠나 제멋대로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고 있습니다(19:1). 그만큼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있는 자인 것입니다.

(2)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레위인)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려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려져 있더라. 27.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밤새 레위인은 바깥을 살피지 아니한 것임. 참으로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인물임)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려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19:1,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돌아가서”(19:25-28);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레위인조차 얼마나 잘못된 생활을 사사기 시대에 영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얼른 강제로 첩을 바깥사람들에게 내주고 있습니다(25a). 둘째, 밤이 새도록 동네 불량배들이 그 여인을 능욕하고 있는데 그것을 레위인은 모른체하고 그저 그 밤이 무사히 지나가기만 바라고 있습니다(25b & 27a). 셋째, 밤새 욕을 당한 여인이 기진맥진하여 그래도 남편이 있는 그 집으로 기어와서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26, 27b). 넷째, 그것을 새벽에 보고서 레위인은 시신을 나귀에 싣고 자신의 거처가 있는 북쪽 에브라임 산지로 출발하고 마는 것입니다(28);

(3)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12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전대미문의 대사건이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19:29-30); 레위인은 자신이 잘한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거나 고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 대신에 그가 선택하고 있는 방안은 자신의 원한을 풀기 위하여 전체 이스라엘 지파들을 선동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그 불쌍한 첩을 위하여 장례를 잘 치러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시신을 12조각으로 쪼개어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기타 11지파와 레위인들에게 보내는 것입니다(29).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베냐민 지파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에 대하여 격분하고 있습니다(30). 그에 따라 바야흐로 전대미문의 비극이 더 큰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사사기 시대의 대()참상입니다.

둘째로, “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길르앗 땅에서 나아와, 회중(會衆, 한 장소에 모인 무리들로서 congregation)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2.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40만명이었으며, 3.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니, 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는 집을 에워싸고 나를 (성욕의 대상으로 삼은 후에) 죽이려 하고, (내가 강제로 그들에게 던져준)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사실은 개인적인 원한을 갚고자 온 이스라엘에 갈등과 분란을 조장한 것임). 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어다 하니라(나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하는 의미임). 8.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이르되, 우리가 한사람도 자기 장막에 돌아가지 말며, 한사람도 자기집으로 들어가지 말고(위험한 전체주의 사고방식임), 9. 우리가 이제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를 뽑아서 그들을 치되, 10.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100명에 10, 1,000명에 100, 10,000명에 1,000명을 뽑아(사사시대에 어울리지 아니하는 방식으로서 11지파의 군대를 각기 내어 통합군을 만들어),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군량미)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베냐민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가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11.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외적의 침입에 대하여는 대동단결하지 아니하던 지파들이 어떻게 내전을 일으키는 일에는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일까?).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자기 편의 악행까지 감싸고자 하는 것을 볼 때 베냐민 지파 전체가 이미 그러한 악행에 물들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임), 14.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15. 그때에 그 성읍으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26천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7백명인데, 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700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17.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40만명이니 다 전사(戰士, warrior).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성막이 있는 실로가 아니고)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베냐민 자손과 전쟁을 해야만 하는지 그 타당성을 묻지 아니하고 무조건 선봉장을 누구로 세울지를 묻고 있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자손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22천명을 땅에 엎드려뜨렸으나,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20:1-22); 다음과 같이 4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길르앗 땅에서 나아와, 회중(會衆, 한 장소에 모인 무리들로서 congregation)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2.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40만명이었으며, 3.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니, 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는 집을 에워싸고 나를 (성욕의 대상으로 삼은 후에) 죽이려 하고, (내가 강제로 그들에게 던져준)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사실은 개인적인 원한을 갚고자 온 이스라엘에 갈등과 분란을 조장한 것임). 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어다 하니라(나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하는 의미임) ”(20:1-7);

1)    여기의 미스바는 본래 베냐민 지파의 땅입니다. 그런데 기타 이스라엘 11지파가 그곳에서 큰 대회를 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예루살렘 북방 30리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미스바가 당시에 에브라임의 땅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1-3). 그리고 미스바는 사건이 발생한 진원지 기브아에서 상당히 가까운 곳입니다. 따라서 기타 11지파의 대표들이 미스바에서 큰 회합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베냐민 지파에게 있어서는 심리적인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2)    먼저 장로들의 요청에 의하여 그 레위인이 신상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중심적으로 사건의 경과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베냐민 지파의 악행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첫째, 나그네인 나를 끌어내어 해치려고 했다(5a). 둘째, 목숨의 위협을 느꼈기에 그들을 달래고자 나의 첩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셋째, 그들은 나의 첩을 욕보이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말았다(5b). 넷째, 불쌍하게 희생이 된 그녀의 시신을 쪼개어 증거로 각 지파에 보내어 기브아인들의 악행을 널리 알리고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한다(6). 부디 나를 도와달라(7).

(2)  8.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이르되, 우리가 한사람도 자기 장막에 돌아가지 말며, 한사람도 자기집으로 들어가지 말고(위험한 전체주의 사고방식임), 9. 우리가 이제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를 뽑아서 그들을 치되, 10.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100명에 10, 1,000명에 100, 10,000명에 1,000명을 뽑아(사사시대에 어울리지 아니하는 방식으로서 11지파의 군대를 각기 내어 통합군을 만들어),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군량미)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베냐민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가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11.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외적의 침입에 대하여는 대동단결하지 아니하던 지파들이 어떻게 내전을 일으키는 일에는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일까?) ”(20:8-11); 기타 11지파의 장로들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군대의 수가 40만명에 이른다고 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2). 반면에 베냐민 지파의 군사는 그 수가 3만명이 되지 않습니다(15). 그러므로 충분히 베냐민 지파를 공략하거나 협박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쉽게 관철할 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자신 있게 외치고 있습니다; “첫째, 11지파가 일치단결하여 통합군을 형성하고 베냐민 지파를 치도록 하자(8-9a). 둘째, 선봉장에게는 군사의 10분의 1을 줄 것이다(10a). 그리고 군량미도 충분하게 지원하겠다(10b). 누가 먼저 베냐민을 치러갈 것인가? 제비를 뽑아서 결정하도록 하자(9b)”.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들은 그 기세가 대단합니다(11).  

(3)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자기 편의 악행까지 감싸고자 하는 것을 볼 때 베냐민 지파 전체가 이미 그러한 악행에 물들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임), 14.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15. 그때에 그 성읍으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26천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7백명인데, 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700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17.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40만명이니 다 전사(戰士, warrior)”(20:12-17);

1)    병법 가운데 최선의 것은 싸우지 아니하고 적의 굴복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방법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 레위인의 첩에게 악행을 행한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색출하여 베냐민 지파가 순순히 기타 11지파의 대표들에게 넘겨주면 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먼저 제안하고 있습니다(13a). 둘째, 베냐민 지파의 동의를 확실하게 끌어내기 위하여 두루 베냐민의 여러 성읍에 대표를 파견하여 설득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12).

2)    그러나 베냐민 지파의 여론이 강경합니다. 그들은 기브아에 대한 기타 11지파의 압력이 부당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13b). 객관적으로 볼 때 남색에 물들어 나그네를 욕보이겠다고 하는 무리들의 행패는 그 옛날 여호와의 불심판으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의 비극을 다시 보는 것과 같습니다(19:5, 24-25).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의 모든 주민들이 기브아 주민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이미 베냐민 성읍에 그러한 잘못된 관행과 성적인 타락이 만연되어 있다는 비참한 사실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초록이 동색이듯이 이제는 감히 기타 11지파에게 대항하여 전쟁을 불사하려고 작심하고 있습니다(14). 그것은 한마디로 중과부적이라고 하더라도 능히 악이 선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세속적인 잘못된 사고방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15-17);

(4)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성막이 있는 실로가 아니고)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베냐민 자손과 전쟁을 해야만 하는지 그 타당성을 묻지 아니하고 무조건 선봉장을 누구로 세울지를 묻고 있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자손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22천명을 땅에 엎드려뜨렸으나,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20:18-22);

1)    기타 11지파의 선봉부대는 든든합니다. 그 이유는 일단 10배나 되는 후방부대가 자신들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전쟁의 승패는 일단 전투를 해보아야 압니다. 언제나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1지파의 대표들은 영리하게도 안전한 후방 벧엘에 다시 모여서 제비뽑기가 아니라 여호와께 묻고서 신탁을 받아 선봉부대를 결정하고자 합니다(18a). 그 결과 유다 지파의 군대가 선봉부대가 되고 있습니다(18b).

2)    유다의 선봉부대는 마치 여호와로부터 승리의 말씀을 들은 것처럼 착각하여 베냐민 지파의 군대를 만만하게 보고서 그대로 기브아로 쳐들어갑니다(19-20). 그것이 그들의 패착입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베냐민의 군대에게 가볍게 패배를 당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전사자의 수가 무려 22,000입니다(21). 맹수의 왕인 사자는 한 마리의 약한 사슴을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지혜가 없는 유다 지파 군대의 대패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과 같은 인해전술(人海戰術)을 되풀이하고자 하는 미련한 유다 지파의 군대입니다(22).

셋째로,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속죄의 제사가 없이 단지 전쟁의 승패만을 묻고자 여호와의 신탁 받기를 원하고 있는 행위에 불과함)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동족상잔의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치라 하시니라(승패를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단지 신탁의 말씀만 주신 것임). 24.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18,000명을 땅에 엎드려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속죄의 의미로) 번제 (12지파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그 전에는 언약궤도 그곳에 없었다는 의미임), 28.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이것은 사사시대의 초창기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특별한 대목임).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베냐민 자손을 형제라고 부르면서 내전임을 말하고 있는 것임)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시는지라. 29. 이스라엘 자손이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30. 이스라엘 자손이 셋째날에 베냐민 자손을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에 맞서 전열을 갖추매, 31.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매복군이 있는 줄 눈치를 전혀 채지 못하고)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 길 곧 한쪽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쪽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30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32. 베냐민 자손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33.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들의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서 전열을 갖추었고, 이스라엘의 복병은 그 장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여러 물웅덩이에 매복한 것으로 보임) 쏟아져 나왔더라. 34.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10,000명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치열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신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25,100명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참고로, 25천명이 죽고 600명의 베냐민 용사만이 살아남고 있다고 뒤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음, 46-47. 하지만 그것은 애초 베냐민 용사가 267백명이라고 하는 수치보다는 적은 것임, 15. 그리고 베냐민 자손이 살고 있는 땅에서는 인종청소가 실시되고 있음도 첨언하고 있음, 48)”(20:23-35);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핵심내용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3. 이스라엘 자손이 (벧엘에)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속죄의 제사가 없이 단지 전쟁의 승패만을 묻고자 여호와의 신탁 받기를 원하고 있는 행위에 불과함)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동족상잔의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치라 하시니라(승패를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단지 신탁의 말씀만 주신 것임). 24.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18,000명을 땅에 엎드려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20:23-25);

1)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비느하스의 시대에 성막은 실로에 있습니다. 그런데 벧엘은 그 남쪽에 떨어져 있는 성읍입니다. 어째서 유다의 군부는 실로의 여호와의 성막으로 가지 아니하고 벧엘에서 다시 여호와의 뜻을 묻고 있는 것일까요? 본문에서 두가지의 잘못을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2)    하나는,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의 군대에게 패배한 것이 분하여 즉시 보복공격을 감행하고 싶기 때문입니다(23a,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그러므로 더 먼 실로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    또 하나는, 실로의 성막에서는 대제사장 비느하스가 여호와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큰 성읍 벧엘에서도 사사(judge)가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벧엘의 사사를 찾아가서 간단한 여호와의 뜻을 물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치라 하시니라”(23b).

4)    여호와의 신탁의 말씀을 들었다고 사기 백배하여 유다의 선봉부대가 기브아로 쳐들어갑니다(24). 그렇지만 결과는 허무하게 이번에도 대패입니다. 전사자 수가 자그마치 18천명에 이르고 있습니다(25). 지금까지 11지파의 군사 4만명이 베냐민 군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21절과 25). 그 규모는 큰 지파 하나의 군대가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2)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속죄의 의미로) 번제 (12지파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그 전에는 언약궤도 그곳에 없었다는 의미임), 28.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이것은 사사시대의 초창기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특별한 대목임).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베냐민 자손을 형제라고 부르면서 내전임을 말하고 있는 것임)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시는지라. 29. 이스라엘 자손이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하니라”(20:26-29);

1)    연속패배의 충격으로 울고 있던 11지파 군대의 장들이 드디어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26a). 전쟁의 승패는 수의 우세가 아니라 여호와의 뜻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재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겸손하게 여호와 앞에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2)    첫째, 하루동안 금식을 합니다(26b). 둘째, 실로에 있는 언약궤를 벧엘로 잠시 모시고 오며 동시에 대제사장 비느하스를 모시고 옵니다(27-28a). 셋째, 자신들의 교만과 오만을 속죄하기 위하여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립니다(26c). 넷째, 형제 베냐민 지파를 징벌하지만 그 결과가 화목으로 나타나도록 화목제를 올립니다(26d);

3)    그 결과 여호와 하나님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11지파에게 예언으로 주시고 있습니다(28b). 그와 같은 여호와의 예언에 이어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브아 들판 웅덩이에 은밀하게 군대를 매복하는 비밀작전인 것입니다(29).

(3)  30. 이스라엘 자손이 셋째날에 베냐민 자손을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에 맞서 전열을 갖추매, 31.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매복군이 있는 줄 눈치를 전혀 채지 못하고)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 길 곧 한쪽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쪽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30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32. 베냐민 자손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33.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들의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서 전열을 갖추었고, 이스라엘의 복병은 그 장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여러 물웅덩이에 매복한 것으로 보임) 쏟아져 나왔더라. 34.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10,000명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치열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신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25,100명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참고로, 25천명이 죽고 600명의 베냐민 용사만이 살아남고 있다고 뒤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음, 46-47. 하지만 그것은 애초 베냐민 용사가 267백명이라고 하는 수치보다는 적은 것임, 15. 그리고 베냐민 자손이 살고 있는 땅에서는 인종청소가 실시되고 있음도 첨언하고 있음, 48)”(20:30-35);

1)    베냐민의 군부가 볼 때에 상대방의 공격작전에 있어서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30). 그러므로 안심하고서 기브아 성읍을 떠나서 그대로 상대방을 매섭게 추격하고 있습니다(31). 같은 작전이라고 하면 두번의 성공에 이어 다시 한번 승리를 맛보게 될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패착입니다. 그만 상대방의 유인작전에 걸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32).

2)    멀리 11지파의 군대를 추격하다가 뒤를 돌아보니 기브아 성읍에서 자욱하게 연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들판의 웅덩이에 숨어 있던 적군 1만명이 기브아 성읍에 쳐들어가서 산 것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만 것입니다(33b-34).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갑자기 바알다말에서 대기 중에 있던 이스라엘 11지파의 후방군대가 유다의 선봉부대와 합세하여 베냐민 추격군을 쳐부수고 있습니다(33a).

3)    그로 말미암아 하루동안 베냐민 군사 251백명이 전사하고 겨우 600명만이 도망을 치고 맙니다(35, 47). 그것은 한마디로, 베냐민 지파가 거의 인종청소를 당하는 결과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48).

결론적으로, 오늘의 본문에서 3가지 사항을 간추려서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레위인은 어째서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을 갚겠다고 무모하게 동족상잔의 전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일까요? 여호와를 진심으로 섬기는 최고지도자 여호수아와 대제사장 엘르아살이 향년을 맞이하고 노장 갈렙마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자 그만 12지파가 자신들에게 좋은 대로 이기적으로 군사활동을 전개하며 공익보다는 사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그러한 사사시대에 접어들고 맙니다;

 그러한 시대이므로 여호와를 섬기는 레위인마저 얼마나 타락하고 있는지를 본문에서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베냐민 지파는 어째서 기브아의 무뢰배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기타 11지파와 사생결단을 내고자 나서는 것일까요? 그것은 초록이 동색이기 때문입니다. 기브아의 주민 뿐만 아니라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 전부 그러한 영적인 타락과 성적인 타락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3)  셋째, 기타 11지파의 지도자들은 어째서 4만명의 전사자를 기록하면서도 베냐민 지파를 인종 청소하고자 나서고 있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군사력의 우세가 곧 정의라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11지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단합하여 통합군 체제를 이루면 용맹한 베냐민 지파의 군대라고 하더라도 능히 제압할 수가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무려 4만명에 이르는 병사의 참혹한 죽음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끝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생명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일까요? 여호와의 말씀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회개하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중보 기도하며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선민 이스라엘의 본분에서는(18:23-32, 20:7, 17-18, 19:4-6) 너무나 벗어나고 있는 잘못된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사건을 사사기 기록에서 말미에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사사기 시대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본문의 사건을 참조하여 충분히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형편이 그와 같다고 하면 먼저 여호와 앞에서 속죄하며 화목의 제사를 다시 올리는 성도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현대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오늘날 그와 같은 주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다시금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