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유다 사건과 다윗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7. 12:30

제목; “유다 사건과 다윗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38:24-30, 삼하11:1-5, 15-17, 27, 12:1, 9-15)

설교일; 주후 2023813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7일 월요일 작성)

 

창세기의 내용 가운데 강해설교의 대상으로 선택이 잘 되지 아니하고 있는 대목이 현실적으로 제38장에 수록되어 있는 유다 사건입니다. 그 이유가 크게 보아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이스라엘로 불리고 있는 야곱의 아들 유다가 친정에 가 있는 과부 며느리 다말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만나 그녀와 하룻밤을 지냄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얻게 된다는 심히 수치스러운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어째서 그와 같은 비윤리적인 내용이 버젓이 율법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거룩한 책 모세오경의 첫머리인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창세기 제38장의 유다 사건은37장과 제39장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내용으로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17세의 청소년 요셉(37:2) 이복 형들의 배신으로 이스마엘 상단에 노예로 팔려서 애굽으로 끌려간 이후(37:28) 이복 형들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있는 39세의 아우 요셉을 다시 만날 때까지(42:6-9) 22년 동안 그들이 가나안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유일하게 창세기 제3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  둘째,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어째서 요셉의 이복형 10명과 부친 야곱 그리고 친동생 베냐민 등의 가나안에서의 22년 동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단지 유다 사건을 기록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그들의 삶의 내용을 대표할 수 있는 기록이라고 한다면 그 내용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 성도들은 그 기록에서부터 어떠한 교훈을 얻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와 같은 궁금증에 대하여 한가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이야기가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사서인 사무엘하 제11장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 사건입니다. 그 이유를 제 나름대로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이스라엘제국의 완성단계에서 다윗대왕은 마지막 전투에 참여하지 아니한 채 예루살렘 왕궁에 남아서 삶의 여유를 즐기고 있습니다(삼하11:1). 그때 자신을 돕고 있는 장수 가운데 하나인 우리아(삼하23:39)의 아내 밧세바(삼하11:3) 자기집 뜰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우연히 내려다보게 됩니다(삼하11:2). 성적인 호기심이 발동한 다윗이 그녀를 왕궁으로 불러서 대화합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부정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목욕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영리하게도 그녀가 불가임 기간임을 알고서 밧세바와 동침합니다(삼하11:4). 그러나 그 결과는 다윗대왕의 인식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 일로 말미암아 밧세바가 다윗의 아기를 임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삼하11:5).

(2)  둘째, 밧세바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세상에서 불가능한 일이 역사적인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사건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어떠한 교훈을 사건의 당사자와 성도들에게 주고자 발생하고 있는 사건일까요? 

그 점을 살펴보기 위하여 오늘은 강해설교의 본문으로 창세기 제38장의 관련구절과 사무엘하 제11장과 제12장의 관련구절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세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다음과 같은 4가지 말씀을 먼저 드려 두고자 합니다;

첫째로, 창세기 제38장에서 친정에 돌아가 있는 며느리 다말의 임신소식을 전해 듣게 된 족장 유다는 고대사회의 율법정신에 따라 행음한 그녀를 화형에 처하라고 명령합니다(38:24, 20:10). 그러나 그녀가 자신과 관계한 남자의 신분을 증명하고 있는 증거품을 보내오자 그것을 보고서 족장 유다는 고민에 빠집니다(38:25);

자신의 며느리인 줄 모르고 길가에서 만나 하룻밤 동침한 여자가 바로 다말이며 그 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다는 그녀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38:15-18). 그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만약 그 사실을 자신이 인정하지 아니하게 되면 다말과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기들은 전부 화형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반대로 그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게 되면 자신의 족장으로서의 권위는 크게 손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선택은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38:26). 자신의 희생과 수치를 감수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다는 것입니다(3:4). 그 결과 다말이 낳게 되는 아들 가운데 한사람이(38:29) 다윗의 조상이 되며 그 줄기에서 메시아가 이 세상에 나타나는 가문이 탄생하고 있습니다(1:1-3).

둘째로, 이스라엘제국의 완성단계에서 다윗대왕은 스스로 크게 만족하면서 자신의 위대성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그러한 생각의 일환이 남들 보기에 물증만 나타나지 아니하면 대왕인 자신의 권력으로 어떠한 일이라도 행할 수가 있다고 하는 자신감과 오만함입니다(삼하11:4). 그것은 고대사회에 있어서 일종의 왕자무치’(王者無恥, 만인의 주군인 왕에게는 부끄러운 일이 있을 수가 없다. 무슨 일이든지 행할 수가 있다)사상이며 나아가서 자신 위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교만의 극치입니다;

 어떻게 하면 다윗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가 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개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불가임 기간 중에 밧세바에게 임신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삼하11:5).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을 당하면서도 다윗대왕은 그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개입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하여 충신 우리아를 선봉장으로 내세워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삼하11:17). 그리고 과부가 된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리고 와서 자신의 아내로 삼고 있습니다(삼하11:27). 모든 물증이 사라졌기에 다윗은 제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두 보시고 마침내 여호와의 명령으로 나단 선지자가 다윗 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삼하12:1).

셋째로, 나단 선지자의 지적으로 마침내 다윗대왕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삼하12:13). 다윗은 그 순간 여호와 앞에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 뿐인 회개에 그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용서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징계를 면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삼하12:22-23);

따라서 그는 자신의 죄악 때문에 남은 인생 가운데 두번의 왕자의 난과 한번의 다른 지파의 반란에 직면하지만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삼하18:33). 그리고 자신의 죄악을 거듭 생각나게 하지만 밧세바를 버리지 아니하고 계속 자신의 아내로 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다윗의 확실한 회개가 있게 되자 훗날 밧세바가 다윗에게 낳아준 솔로몬 왕자가 다윗의 제국을 이어받고 있습니다(왕상1:33-35).

넷째로, 유다 사건과 다윗 사건의 공통점은 그 일을 통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뛰어넘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인생에 개입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점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유다의 경우에는 길가에서 만난 창기가 사실은 친정에 가 있는 과부 며느리 다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경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족장의 체면을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그녀에게 살길을 마련해주고 그 뱃속의 아기를 살리는 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뜻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대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훗날 목수 요셉이 약혼녀 마리아의 아기를 자신의 호적에 장남으로 등재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1:20-25, 2:1-7).

(2)  다윗의 경우에도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자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고 계시는 위대하신 여호와의 손길을 새로이 발견하고 있습니다. 유다와 달리 다윗대왕은 그 깨달음이 무척 늦습니다. 하룻밤의 잘못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는 간음죄와 살인교사죄를 모두 행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외적인 물증을 전부 없애려고 발버둥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회개한 다윗은 남은 인생을 통하여 그 징벌을 모두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교훈들을 다음과 같이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24. 석 달쯤 후에(배가 불러오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고대사회 율법정신에 따라)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도장과 그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약속을 어기고 살 길을 마련해주지 아니하였음) 하고 다시는 그(다말)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쌍둥이).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38:24-30);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24. 석 달쯤 후에(배가 불러오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고대사회 율법정신에 따라)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도장과 그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38:24-25);

1)    당시 족장 유다가 거처하고 있는 곳은 아둘람에서 10리 정도 서쪽에 떨어져 있는 거십입니다(38:1, 5). 그리고 과부가 된 며느리 다말이 친정에 가서 살고 있는데 그곳이 딤나입니다(38:11-13). 거십에서 북쪽으로 50리 정도 올라가야 딤나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그 넓은 지역에 마름을 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양을 키우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족장 유다는 굉장한 부자입니다;

2)    상처(喪妻)를 한 유다가 오래간만에 아둘람에 살고 있는 자신의 친구이자 마름인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38:12). 왜냐하면 그곳에서 자신의 양을 맡아서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양털을 깎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을 듣자 친정에서 수절하고 있는 다말은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살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입니다.

3)    참고로, 고대 목축사회의 전통인 수혼제도’(嫂婚制度)에 따르면 아들이 없이 과부가 된 며느리는 시동생과 합방하여 아들을 낳아야 비로소 그 아들의 이름으로 남편의 재산을 상속하여 경제적으로 살길을 마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부(媤父, 시아버지)가 막내 시동생 셀라를 자신에게 주지 아니하여 그녀는 그만 살길이 막막합니다(38:11, 14).

4)    따라서 다말은 시부의 씨앗이라도 얻어서 살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그 일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도박입니다. 만약 시부가 자신의 씨임을 부인하게 되면 비록 아들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수절하지 못한 간통죄로 죽음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38: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말은 동네 어귀에서 창녀로 가장하여 시부를 유혹하여 하룻밤을 지내고 기적적으로 임신을 하게 됩니다(38:15-18).

5)    예견된 위험이 다말에게 다가옵니다. 3개월이 지나자 그만 수절 과부인 다말의 배가 불러오고 있습니다(24b). 족장 유다에게 충성하고 있는 딤나의 소작인들이 그 소식을 50리나 떨어진 거십의 지주집에 알려오고 있습니다(24a). 유다는 차제에 간통한 며느리 다말을 화형에 처함으로써 집안의 화근을 제거하고자 합니다(24c). 그렇지만 아무리 고대 율법사회에서 그것이 허용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를 섬기는 집안의 인물 유다가 어째서 그토록 가혹한 조치를 실시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6)    그 점에 대하여 일부 주석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말에게 둘째 아들 오난을 주었더니 그만 여호와에 의하여 죽고 마는 비극이 집안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38:9-10). 유다가 막내 아들 셀라를 그녀에게 줄 경우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유다는 대가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족장 유다는 그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고자 한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풀이라고 하겠습니다.

7)    그렇다면 다말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녀는 자신이 시집에서 경험한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는 시부 유다의 신앙 양심에 한번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그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족장 유다의 신물인 도장 그리고 지팡이입니다(25b). 하룻밤 객지에서 창녀를 만나 객고를 풀 때에 그녀에게 신물로 준 것들입니다(38:18). 그것을 다말이 인편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시부 유다에게 보내오고 있습니다(25a).

(2)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약속을 어기고 살 길을 마련해주지 아니하였음) 하고 다시는 그(다말)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쌍둥이).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38:26-30);  

1)    며느리 다말이 인편으로 보내온 신물들을 보고서 족장 유다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만약 유다가 그 사실을 부인하게 되면 자신의 체면을 살릴 수는 있지만 여호와신앙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다말과 뱃속의 아기는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거짓이며 위선적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족장 유다는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서 옳은 것은 옳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고자 합니다;

2)    따라서 족장 유다는 다말의 말이 옳다고 판정하면서 그녀의 생명을 살려주고 있습니다( 26a). 그의 의로운 행위는 훗날 예수님의 가르침과 합치가 되고 있습니다;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3:4).

3)    요컨대, 안식일 율례보다 더 귀한 것이 생명을 살리는 절대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훗날 예수님께서는 간음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8:11).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무엇인지 족장 유다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똑 같은 잘못을 재범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다말)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26b).

4)    세월이 흘러 다말이 해산을 합니다(27a). 쌍둥이입니다(27b). 그런데 기이하게도 먼저 손이 나온 맏이가 그만 손이 들어가고 나중에 출산이 되고 있습니다(28-29a). 두번째로 태어나지만 그 손에 홍색 실이 매어 있어서 첫째인 것으로 구별이 되고 있습니다(30a). 따라서 그 이름을 홍색을 의미하는 세라’(זָֽרַח)라고 짓고 있습니다(30b).

5)    그리고 먼저 터뜨리고 나오는 아들의 이름을 터짐이라는 의미에서 베레스’(פָּֽרֶץ)라고 짓고 있습니다(29b). 그가 바로 다윗의 직계 조상입니다(1:3-6). 요컨대 족장 유다의 용기 있는 여호와신앙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장남으로 등재가 되는 다윗의 집안이 이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6)    그와 같은 의미에서 족장 유다의 사건은 모든 형제들의 가나안 생활에 있어서 가장 모범적인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창세기 제38장에 수록함으로써 형제들의 가나안에서의 신앙생활의 가장 좋은 면모만을 볼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복형들의 여호와신앙에 있어서 모범이 되고 있는 족장 유다이기에 훗날 그가 애굽의 총리인 이복동생 요셉과 함께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44:18-45:15, 49:8, 24).

둘째로, “1. a. 그 해(이스라엘제국을 완성하는 해)가 돌아와 b. 왕들이 출전할 때(추수가 끝난 농한기)가 되매, 다윗(큰 누나의 아들로서 군사령관인) c.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d.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마지막 남은 왕성) 랍바를 에워쌌고 e.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평평한)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멀리서 달빛 가운데 보니)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가나안 원주민) 우리아(삼하23:39, 다윗의 37장수 중 하나)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월경이 끝나 목욕을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집으로 돌아가니라.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불가능한 일이 발생한 것임)”(삼하11:1-5);

(1)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된 지 7년반이 지나자 드디어 기타 11지파의 장로들의 요청으로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삼하5:3-5). 그는 먼저 여부스 족속의 시온산성을 정벌하여 다윗성을 건설하고 그곳 예루살렘으로 천도를 합니다(삼하5:7-10). 그때부터 다윗왕은 수년동안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주변의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연전 연승하여 마침내 이스라엘제국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삼하8:1-14). 여기 사무엘하 제11장에 기록되고 있는 다윗 사건은 바로 그때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제1절의 그 해가 한마디로, 이스라엘제국의 건설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1a).

(2)  이제 남은 전쟁은 요단강 동편 암몬 왕국의 왕도인 랍바 성을 점령하는 것입니다(1d). 그 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제는그해의 농한기가 시작되었으므로 예년과 같이 다윗왕이 친히 원정에 나서야 하지만(1b) 이번에는 그리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다윗대왕은 마지막 원정을 조카이며 군사령관인 요압에게 맡겨버리고(1c) 스스로 예루살렘성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1e). 그만큼 그는 자신의 크나큰 성공에 만족하면서 이제는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정신상태가 해이하게 되었을 때에 어김없이 사탄의 유혹이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3)  가나안 땅에는 비가 적고 건조합니다. 따라서 지붕이 편편합니다. 다윗의 왕궁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붕이 높지만 평평합니다. 따라서 서늘한 저녁에는 편편한 지붕에서 산책하기가 좋습니다. 늦은 가을날씨 그것도 저녁날씨가 쾌적합니다. 기분이 좋아진 다윗대왕은 침상에서 일어나 조용히 왕궁의 지붕위를 산책하면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도성의 백성들의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2a). 그때 그의 눈에 크게 확대되어 들어오고 있는 그림과 같은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달빛을 받아가면서 집 뜰에서 목욕하고 있는 매혹적인 장면입니다(2b).

(4)  예년처럼 가을철에 원정에 나섰다고 하면 결코 그러한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여유와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있는 바로 그때에 그 광경은 엄청난 유혹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윗대왕에게는 아름다운 처첩이 많이 있지만 그 고혹적인 광경이 주고 있는 극도의 아름다움과 심한 유혹은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유혹과 시험에 사로잡힌 다윗대왕의 행동은 거침이 없습니다. 위대한 정복 왕 다윗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자는 이스라엘제국에서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5)  따라서 부하가 그의 명령대로 그녀를 왕궁 다윗의 앞으로 대령하고 있습니다(4a). 그녀의 정체는 다윗왕이 미리 척후를 보내어 파악한 그대로 이스라엘 사람 엘리암’(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히브리 이름임)의 딸 밧세바입니다(3a).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다윗왕이 신임하는 37장수 가운데 한사람인 우리아입니다(삼하23:39). 우리아는 비록 가나안 원주민 헷 족속 출신이지만 크게 전공을 세워 군부에서 출세하여 아름다운 이스라엘 여인 밧세바를 아내로 두고 있는 것입니다(3b).

(6)  다윗왕은 밧세바에게 어째서 야밤에 집 뜰에서 목욕을 했는지에 관하여 하문하고 있습니다. 밧세바의 대답으로부터 다윗왕이 하나의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월경이 끝나서 몸을 깨끗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유혹입니다. 가임 기간이 아니므로 뒤탈없이 동침할 수가 있다고 하는 언질이기 때문입니다(4b). 그러한 정보를 얻게 된 다윗왕은 자신에게 수많은 처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마는 것입니다(4c). 새벽 일찍 밧세바가 은밀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모든 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잊혀지고 있습니다(4d).

(7)  그러나 은밀하게 다윗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고 계시는 전능하신 여호와의 눈을 속일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윗대왕의 위력에 눌려서 눈을 감고 지내고 있지만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눈을 부릅뜨고 계십니다. 따라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밧세바에게 다윗의 아기를 임신하게 만들고 마십니다(5). 월경을 막 끝낸 여인에게 임신이 찾아왔다고 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창조주의 역사 개입이므로 그것은 당연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 점을 자기도취에 빠지고 왕자무치 사상에 빠져버린 다윗대왕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호와신앙에서 자신도 모르게 멀어져버린 다윗의 무감각한 현실입니다.

(8)  따라서 엄청나게 놀란 밧세바가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임신사실을 알려오고 있지만 다윗왕은 그것이 어째서 발생한 일인지 전혀 감을 잡지를 못하고 오히려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이용하여 그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전선에서 예루살렘으로 특별 외출을 나온 장수 우리아는 전방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랄 뿐 전혀 아내와 동침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삼하11:6-13). 이제 다윗왕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하여 바야흐로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이는 최후의 악한 방법을 사용하고자 합니다(삼하11:14-15);

셋째로, “15. (다윗이 은밀하게)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살인교사) 하였더라. 16.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곳(강한 적군이 있는 곳)우리아를 두니, 17. (암몬의 왕성인 랍바)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27.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과부가 된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2차례 왕자의 난과 베냐민 지파 세바의 반란, 삼하15:12, 20:1-2, 왕상1:7-11),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삼하16:21-22),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영적으로는)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남은 평생에)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장에)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하11:15-17, 27, 12:1, 9-15);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5. a. (다윗이 은밀하게)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b.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c.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살인교사) 하였더라. 16.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곳(강한 적군이 있는 곳)우리아를 두니, 17. (암몬의 왕성인 랍바)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27.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과부가 된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11:15-17, 27);

1)    다윗왕이 군사령관인 조카 요압에게 장수 우리아의 전사를 구체적으로 사주하고 있습니다(15a); 암몬의 왕성 랍바 성을 공략함에 있어서 우리아를 선봉장으로 내세우라는 것입니다(15b). 그리고 엄호를 해주지 아니하여 그를 자연스럽게 전사하도록 만들라는 명령입니다(15c). 명백하게 살인교사(殺人)입니다.

2)    그런데 군사령관인 요압이 한 술 더 뜨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아를 확실하게 죽게 만들고자 적의 저항이 가장 강한 성문을 공격함에 있어서 우리아를 선봉장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16). 지원을 거두자 이내 우리아가 전사하고 마는 것입니다(17). 그것은 일종의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 남의 칼을 빌려서 해치우는 것)입니다.

3)    밧세바는 자신 때문에 남편 우리아가 억울하게 전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상을 치르면서 마냥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27a). 장례가 끝나자 다윗왕은 뻔뻔하게도 부하를 보내어 과부가 된 밧세바를 왕궁으로 들어오게 하고 자신의 아내로 삼고 있습니다(27b). 그녀의 뱃속에서는 다윗왕의 자식이 자라고 있습니다. 밧세바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4)    다윗의 궁궐에서 밧세바가 드디어 아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27c).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고 계시는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의 불신앙과 악한 권력의 행사에 대하여 어떻게 처벌할지를 이제는 강구하고 계십니다(27d). 자신의 죄악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둔감한 다윗, 권력욕에 사로잡힌 다윗대왕을 참회하게 만들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조치와 그 처벌의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2)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2차례 왕자의 난과 베냐민 지파 세바의 반란, 삼하15:12, 20:1-2, 왕상1:7-11),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삼하16:21-22),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영적으로는)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남은 평생에)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장에)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하12:1, 9-15);

1)    여호와의 방법은 무엇보다 나단 선지자를 다윗왕에게 보내어 그의 죄악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것입니다(1a). 참으로 친절하게도 예화를 동원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1b). 그것은 풍족한 자가 자신의 것을 아끼고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필요에 충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삼하12:2-4). 그 말을 듣자 다윗왕은 진노하면서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의 악한 행동을 한 그 부자는 착취를 당한 자에게 4배로 배상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5-6).

2)    그 말을 듣자 나단 선지자는 바로 그 사람이 다윗왕이라고 지적합니다(7a). 그리고 구체적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암몬 자손의 칼을 빌려서 죽이고 그 아내를 가로챘다는 다윗의 죄악에 대하여 언급합니다(9).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치리하기 위하여 남은 평생 칼날 위에서 살게 만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10);

그리고 남의 아내를 은밀하게 취하였기에 다윗의 아내는 백주에 남에게 넘겨지는 치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도 예언합니다(11-12).

3)    그제서야 다윗왕은 자신이 저지른 심각한 죄악에 대하여 인식하게 됩니다. 그는 겸손하게 참회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13a). 늦었지만 깨끗하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다윗왕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영적으로는) 죽지 아니하려니와”(13b).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징벌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4)    구체적으로, 다윗왕은 남은 인생 가운데 두차례 왕자의 난을 경험할 것이며(삼하15:12, 왕상1:7-11) 베냐민 지파 세바의 반란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삼하20: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대왕은 여호와의 처벌을 달게 받고 있습니다. 그 점 때문에 훗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예수”(13:22-23).

결론적으로, 족장 유다와 다윗대왕은 하룻밤의 외도로 아기가 생기고 있다는 희귀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약간의 차이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의 경우에는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임신이 창조주의 능력으로 밧세바에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족장 유다의 경우에는 가능성이 높지 아니하지만 그래도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하룻밤의 동침과 그에 따른 다말의 임신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족장 유다와 다윗대왕에게 있어서 여호와신앙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먼저 족장 유다는 영적으로 깨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결정을 정확하게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며느리 다말이 살아나고 그녀의 아들 베레스가 훗날 다윗왕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일이 역사 가운데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와 달리 다윗왕은 참으로 영적으로 둔감합니다. 그는 사울 왕으로부터 물려받은 작은 이스라엘왕국을 중동의 지역패권국 이스라엘제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도움이라는 사실을 다윗이 그만 깜빡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대왕은 자신의 위대성을 은근히 절대적인 권력으로 행사하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 일이 탄로나지 아니하도록 아예 장수 우리아를 암몬 자손의 칼을 빌려서 살해하고 맙니다. 더구나 초상이 끝나자마자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서 자신의 아내로 삼고 아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영적으로 둔감하고 악한 일을 자행하고 있는 다윗왕을 여호와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질책하시면서 강력한 징벌을 예언하게 합니다. 비록 다윗대왕이 뒤늦게 참회를 하지만 영적인 구원은 얻되 세상적인 처벌은 면하지 못한다는 여호와의 최종판결을 얻고 맙니다.

구체적으로 두차례의 왕자의 난과 베냐민 지파 세바의 반란을 직면하게 되는 다윗 대왕입니다. 요컨대, 인간적으로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지만 자신의 잘못임을 인정하기에 끝까지 다윗왕은 여호와의 처벌에 순종합니다. 그와 같은 다윗왕의 순종에 대하여 사도 바울의 평가가 후세에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성경 강해와 해석에 있어서 어려운 분야로 남아 있는 위의 두가지 경우에 대하여 본문의 내용을 참조하시어 귀중한 교훈을 깊이 얻으셔서 복음을 힘있게 증거하고 실천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