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롯의 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에이나임과 레브의 문제(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8. 22. 13:01

제목; “롯의 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에이나임레브의 문제”(13:1-18, 참고구절은 삼상16:7, 33:12-20, 28:19-22절임)

설교일; 주후 2023827(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22일 화요일 작성)

 

주전 21세기초에 족장 데라는 장남 아브람 부부 및 장손 의 가족과 함께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여호와 하나님이 지시하시고 있는 서부 변방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먼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11:31a);

여기서 말하고 있는 갈대아인의 우르는 고대문명의 최초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중심부입니다. 그 옛날 아람족속의 한 갈래인 갈대아인들이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서 남하하여 바벨 땅을 포함하고 있는 시날 평지를 차지하고서(10:10) 그 이름을 자신들의 우르 곧 갈대아인의 우르라고 부른 것으로 보입니다(11:31a).

그러므로 족장 데라가 미개한 서쪽의 변방지역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는 자연히 두가지를 원주민들에게 전해주게 됩니다; 하나는, 조상 셈과 아르박삿 때부터 그의 가문에 전해지고 있는 여호와 신앙입니다(9:26, 11:10-24). 또 하나는, 고대사회의 최고 선진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인 것입니다.

창세기의 기록을 따르면 시날 평지 바벨에서 정복자인 함족(10:8-12) 원주민인 셈족(10:22-25) 동원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였으며 그 탑이 주전 24세기에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붕괴가 되고 있습니다(11:7-9). 바벨탑의 붕괴는 마천루를 건설함으로써 제국의 영광을 온 세상에 떨치고자 시도한 지배자 함족의 고대제국의 멸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지배하에 있던 원주민 셈족들이 해방을 맞이하자 그후 동서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습니다(11:7-9). 가장 먼저 멀리 동방으로 이주하고 있는 가문에 대하여 창세기 제10장에서는 아르박삿의 후손인 벨렉의 아우 욕단과 그의 자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0:26-30). 그 시기가 빠르면 주전 24세기 중엽입니다.

그런데 벨렉의 후손인 족장 데라가 뒤늦게 주전 21세기 초엽에 서쪽으로 이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상들의 동방진출보다 250년이나 늦은 시점입니다. 그와 같은 연대계산이 가능한 이유는 창세기 제5장과 제11장에서 셋의 후손인 의인들이 아들을 몇 살에 생산하였는지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열왕기상 제61절에서는 출애굽한지 480년이 지나자 솔로몬대왕이 예루살렘성전 건설하기를 시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가 역사적으로 주전 966년경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의 해가 주전 1,446년이고 야곱이 자손들과 함께 애굽으로 이주한 해가 주전 1,876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46:5-7, 12:40-41).

기타 의미가 있는 연도가 두루 계산이 됩니다. 예를 들면, 바벨탑의 붕괴가 아르박삿의 후손인 벨렉이 태어난 해인 주전 2,357년이고(10:25, 11:8-9), 노아의 홍수가 그의 나이 600세인 주전 2,458년에 발생하고 있습니다(7:11). 나아가서 아담의 탄생시기가 주전 4,114년이며 아브라함의 가나안 행이 그의 나이 75세인 주전 2,091년에 발생하고 있는 것 등입니다(12:1-4).

족장 데라는 고대사회에서 최고의 문명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여호와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아르박삿의 후손입니다(10:10-24). 더구나 그가 큰 부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또한 창세기 제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족장 데라는 나이 70세가 되자 아내 3명으로부터 3명의 아들을 한꺼번에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11:26a);

그 가운데 장남의 이름이 아브람이고 차남이 나홀이며 막내가 하란입니다(11:26b). 같은 해에 태어난 3명의 아들은 나이가 같지만 태어난 달이 서로 달라서 형과 아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해에 아내들이 3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면 남녀의 성비(性比)가 비슷한 점을 감안하면 족장 데라는 그해 자녀를 낳은 6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대략 2년 마다 자식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적어도 족장 데라는 12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는 큰 부자입니다. 그 많은 수의 부인과 처자식을 모두 먹여 살릴 수 있는 그의 재력이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친 데라의 그 막대한 부의 상속을 포기하고서 장남 아브람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남행하고 있습니다(12:1-5). 그 다음 순서의 상속자가 하란에서는 데라의 장손인 입니다. 그도 백부 아브람과 함께 가나안으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 역시 조부의 큰 재산에 대한 상속을 포기하고서 남행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과 마찬가지로 역시 믿음의 조상이 될 수가 있는 자질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와 달리 족장 데라는 처음에는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서쪽 변방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하였지만 도중에 유프라테스 강 상류지역에서 좋은 땅을 발견하자 그만 그곳에서 도시를 건설하여 떼돈을 벌 욕심으로 향년을 맞이할 때까지 무려 60년 세월을 허비하고 맙니다(11:31b-32).

그 땅을 한꺼번에 사들인 족장 데라는 그 땅의 지명을 자신의 일찍 죽은 아들 하란으로 부르고 있습니다(11:28, 31-32). 그리고 자신을 하란에 버려 두고 장남과 장손이 가나안으로 떠나버리자 그는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는 차남 나홀을 하란으로 불러 들입니다. 그 결과 그 성읍이 차남에게 상속되어 훗날 나홀의 성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24:10).

그와 같은 사실과 관련하여 훗날 집사 스데반은 성령의 감동으로 고별설교를 하면서 족장 데라는 아브람과 함께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땅 가나안으로 끝까지 남하하지 아니하였기에 영적으로 그때 죽은 자가 되고 말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7:4);

만약 데라가 하란 땅에 머물지 아니하고 아들 아브람과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면 그 역시 믿음의 조상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인 족장 데라는 세상적인 이익을 추구하기에 급급하여 그만 그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족장 데라에게 지시한 내용과 그 아들 아브람에게 지시한 내용에 중요한 차이가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데라에게는 목적지가 가나안 땅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11:31) 아브람에게는 단지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12:1)고만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족장 데라가 하란에서 남행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왔다고 한다면 그는 그곳에서 향년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람과 롯의 경우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지가 가나안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당장 애굽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12:9-10).

그리고 이 백부인 아브람과 함께 동행하고 있기에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12:1)고 하시는 여호와의 명령은 롯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은 아브람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고(12:4-5) 곧 이어서 백부를 따라 고대사회 제2의 문명을 자랑하고 있는 애굽제국에도 들어간 것입니다(12:10, 12:1, 13:1).

아브람은 아내 사래 덕분에 애굽의 황제인 바로에게서 손위 처남으로 여김을 받아 큰 재물을 얻게 됩니다(12:13-16). 그 재물을 출애굽을 한 다음에 장조카인 에게도 분배하여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예루살렘 북방 50리 지점인 벧엘과 아이 사이의 목초지에서 함께 방목을 하고 있을 때에 서로의 소유가 너무 많아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13:2-7).

아들이 없는 아브람은 아내 사래가 불임이며 벌써 65세의 노인이기에(11:30, 12:4) 이제는 장조카 을 양자로 여기고 그에게 사전에 재산도 나누어 주고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13:1-6). 하지만 두사람은 재물이 너무 많아서 동거하기에는 불편하기 그지 없습니다. 자신들이 부리고 있는 목자들이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브람은 차제에 가나안 땅에서 서로 목축장소만 조금 변경하고 싶어합니다. 그러한 심정으로 백부인 아브람이 장조카인 에게 먼저 제안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이주할 것인지 내게 먼저 말하라. 내가 너의 결정을 존중하마!”(13:8-9의역);

그런데 고대 목축사회는 그 특징이 가부장 사회이며 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젊은이 사이의 서열)의 구별이 뚜렷합니다. 어른이 그와 같이 점잖게 제안을 하면 젊은이는 도리어 아닙니다. 어른께서 먼저 결정하시면 제가 그대로 따르겠습니다!고 말하는 것이 전통사회의 관례이며 아랫사람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재물이 넘쳐나고 있는 부자 은 차제에 도시로 나아가 제 나름대로 인생의 향락을 누리면서 돈을 마음껏 써보고 싶어합니다. 그 결과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은 결코 백부 아브람에게 먼저 양보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13:9-11).

그는 아브람을 외로이 가나안 땅에 남겨두고서 제 욕심을 이루고자 향락과 탐욕의 도시 소돔으로 떠나버리고 맙니다(13:10-13). 그에 따라 은 백부 아브람과 함께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훗날 야곱이 여호와에게 서원한 장소 벧엘로 남행하지 아니하고 그 반대로 가나안의 대도시 세겜을 선택하여 그곳으로 북진한 것과 같습니다(28:18-22, 33:16-20). 그리고 예수님의 예화 탕자의 비유에 따르면 부친의 재산을 사전상속한 차남이 대도시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아간 것과 같습니다(15:12-16).  

좀더 깊이 창세기 제13장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 의 두 눈이 염해 주위에 형성되어 있는 부자 도시국가인 소돔고모라, 아드마스보임, 더 멀리 소알 성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13:10a, 29:23). 그곳이 심히 아름답고 문명이 화려한 지역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13:10b).

백부 아브람을 따라 함께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기 위하여 조부 데라의 막대한 재산상속까지 포기했던 그 놀라운 인물 이 그만 부자가 되자 그 마음이 변하고 만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사람의 중심을 보고 계시는 여호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삼상16:7);

이 소돔과 고모라 등지의 부와 화려함 그리고 향락과 사치라는 겉모습만 보고서 그곳을 선택하여 발걸음을 옮긴 것이 참으로 비극이라는 사실을 본문에서는 13. 소돔 사람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13:13)고 정확하게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극악한 성적인 타락이 성경에서는 남색(男色)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19:5, 23:17, 19:22-23, 1:27-2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간략하게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을 다음과 같이 함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애굽의 바로에게서 많은 재물을 얻었으므로, 12:16)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사막성 광야인) 네게브에서부터 (북쪽으로) 길을 떠나 (예루살렘 북방 50리 지점인) 벧엘에 이르러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12:8a), 4.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12:8b). 그가 거기서 (영생하시는, 4:26, 21:33)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최초의 원주민) 가나안 사람과 (다수인 가나안 족속과 더불어 다니고 있는 작은 족속인)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34:30)”(13:1-7);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애굽의 바로에게서 많은 재물을 얻었으므로, 12:16)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13:1-2);

1)    아브람 부부가 롯의 가족과 함께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풍요로운 나일강 유역 애굽제국으로 들어간 시점이 주전 2,091년경입니다. 당시 아브람이 75이고 아내 사래가 10살 연하인 65입니다(12:4, 17:17). 65세의 사래이지만 그 외모가 젊은 미인으로 보이고 있습니다(12:11, 14).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함족의 땅 애굽에 들어온 히브리인이기에 아브람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2)    특히 미인 아내를 가지고 있기에 사내인 자신을 죽이고 사래를 빼앗아 갈 것만 같습니다(12:12). 따라서 아브람은 고민을 하다가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래가 결혼하기 전에 자신의 이복 누이임을 기억하고서 그녀를 자신의 누이동생이라고 애굽인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20:12, 12:13).

3)    중동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미인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동양계와 서양계가 혼혈이 되어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함족이 볼 때에는 사래야 말로 천하의 미인입니다(12:14). 그 소문이 널리 퍼지자 바로가 자신의 후궁으로 삼고자 입궁을 시키고 있습니다(15);

그리고 손위 처남으로 알려지고 있는 아브람을 후대하여 많은 재물을 보상으로 주고 있습니다(16).

4)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사래의 몸을 깨끗하게 보전하고자 하십니다. 그 이유는 훗날 약속의 아들 이삭을 생산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18:10-14, 21:1-2). 애굽의 바로와 그 집에 엄청난 재앙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내리고 있습니다(12:17). 재앙의 연유를 알게 된 바로는 사래를 아브람에게 되돌려주면서 속히 출애굽을 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12:19). 물론 아브람에게 이미 준 재물은 그대로 가지고 애굽을 떠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12:20, 13:2). 그것은 약 600년후에 발생하게 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사건의 전주곡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12:35-42).

5)    1절에서 이 백부 아브람 부부와 함께 출애굽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a). 그로 미루어 보아 롯은 백부와 함께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왔으며 그 땅의 흉년을 피하여 같이 애굽으로 들어간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아브람이 바로로부터 많은 재물을 얻어서 출애굽하고 있습니다. 그들 일행은 가나안 남부 ()사막성 광야인 네게브를 지나 이제는 북진하고 있습니다(1b). 아브람의 재산이 엄청납니다(2). 그렇다면 동일한 고생을 한 의 경우는 어떠한 것일까요?...

(2)  3. 그가 (,,사막성 광야인) 네게브에서부터 (북쪽으로) 길을 떠나 (예루살렘 북방 50리 지점인) 벧엘에 이르러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12:8a), 4.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12:8b). 그가 거기서 (영생하시는, 4:26, 21:33)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13:3-4);

1)    지리적으로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는 시온산성에서 북쪽으로 19km 진행하면 벧엘에 도착합니다(3a). 그러므로 벧엘의 위치를 예루살렘 북방 50리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편에는 황폐한 지역 아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3b). 아브람이 그곳에 오자 여러 달 전에 가나안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기억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12:8).

2)    아브람은 지체하지 아니라고 그곳에 다시 제단을 쌓고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13:4). 그 의미는 자신에게 주신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을 그대로 베풀어 주시고 그 언약을 지키는 자신의 발걸음이 되도록 앞길을 인도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장조카인 의 가족도 그 행사에 참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3)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최초의 원주민) 가나안 사람과 (다수인 가나안 족속과 더불어 다니고 있는 작은 족속인)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34:30)”(13:5-7);

1)    벧엘과 아이 사이의 거리를 대략 3KM정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벧엘과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목초지는 3kmX3km에 이르는 면적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900ha 2,250acre입니다. 보통 1에이커(acre)의 초지에 소 1마리 또는 양 10마리가 풀을 뜯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이 라고 하면 2,250마리 또는 이라고 하면 22천 마리 정도가 그 초지에서 살 수가 있습니다.

2)    그러나 현지에는 원주민인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또한 목축을 영위하고 있습니다(7b). 그러므로 아브람과 롯의 가축의 수를 소인 경우에는 1천마리, 양인 경우에는 1만마리 정도라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규모라고 하면 고대사회에서는 엄청난 부자라고 하겠습니다;

3)    그런데 아브람의 소유인 가축의 규모가 그 이상입니다(6). 따라서 초지를 서로 차지하고자 숙질(叔姪, 숙부와 조카)의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 사이에 심각한 분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7a). 그와 같은 일은 자식이 없는 아브람이 장조카 을 양아들로 여기고 출애굽을 하자 사전에 재산상속을 해주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5).  

둘째로,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눈에 보이는 크고도 넓은, whole) 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 왼쪽)하면 나는 (, 오른쪽)하고 네가 하면 나는 하리라. 10. 이에 롯이 (두개의) 눈을 들어(‘에이나임을 가지고 세상의 겉모습을 보는 것, 삼상16:7)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삼상11:2), 여호와께서 소돔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19:23-24, 29:23) 여호와의 동산 같고(2:9-10), 애굽 땅과 같았더라(41:47-49). 11. 그러므로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백부에게 먼저 양보하지 아니하고)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도시 소돔에 들어가서 저택에서 살았더라, 19:4). 13. 소돔사람은 (사람의 중심인 레브를 보시는, 삼상16:7)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18:20-21, 19:5)”(13:8-13);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눈에 보이는 크고도 넓은, whole) 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 왼쪽)하면 나는 (, 오른쪽)하고 네가 하면 나는 하리라. 10. 이에 롯이 (두개의) 눈을 들어(‘에이나임을 가지고 세상의 겉모습을 보는 것, 삼상16:7)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삼상11:2), 여호와께서 소돔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19:23-24, 29:23) 여호와의 동산 같고(2:9-10), 애굽 땅과 같았더라(41:47-49). 11. 그러므로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백부에게 먼저 양보하지 아니하고)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13:8-11);

1)    가까운 친족인 숙질 간에 목초지를 서로 차지하고자 분규가 발생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리고 있는 목자들 사이의 분쟁이 숙질 간의 갈등으로 번지지 아니하도록 백부인 아브람이 그 처방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눈에 보이는 크고도 넓은, whole) 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 왼쪽)하면 나는 (, 오른쪽)하고 네가 하면 나는 하리라”(13:8-9). 그것은 한마디로 가나안 땅의 넓은 초지를 두고서 서로 경계를 침범하지 아니하도록 목초지를 사전에 배분하자고 하는 선의의 제안입니다.

2)    고대사회에서는 보통 어른이 먼저 그러한 제안을 하는 경우 젊은 사람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 상례이며 예의범절입니다; “저는 아직 어립니다. 어른이신 백부께서 먼저 가는 방향을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다른 방향을 선택하여 가축을 몰고서 옮겨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백부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사전에 상속받은 셈입니다. 이제는 그 큰 재산을 가지고 대도시에 들어가서 세상의 안락과 사치 향락을 한번 즐겨보고 싶습니다.

3)    마침 이 두 눈을 들어 멀리 동쪽 염해 주변을 살펴보니 부자도시 소돔고모라, 아드마스보임 그리고 작은 성읍 소알까지가 확대가 되어 들어오고 있습니다(19:22-23). 그것은 훗날 다윗대왕이 예루살렘성에서 멀리 민가를 내려다보다가 목욕하고 있는 여인을 달빛 아래서 정욕적으로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삼하11:2). 인간의 문명이란 그 속과 겉이 다릅니다. 겉으로 외부를 보게 되면 참으로 화려하고 물질문명이 풍성합니다. 마치 롯이 바라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가 에덴동산과 같고 애굽과 같은 문명국으로 보이는 것입니다(10).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면 그 중심에는 약육강식과 육체적 성적인 타락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23:27).

4)    그러므로 정욕과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의 두 눈은 겉모습의 화려함과 향락 및 사치만을 보고 있지만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그 점이 사무엘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육신적인 두 눈으로, עֵינַ֔יִם 에이나임)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인간의 심령 속) 중심(내부인간, לֵּבָֽב 레브)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7);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부자가 되자 마음이 변한 이 그만 백부를 떠나버리고 맙니다. 백부에게 일체 양보하지 아니하고 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 아브람을 홀로 가나안 땅에 남겨두고서 자신은 식솔과 재물을 이끌고 그만 부자도시 소돔성으로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11);

이제 롯은 어떻게 되며 가나안에 홀로 남겨진 아브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2)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도시 소돔에 들어가서 저택에서 살았더라, 19:4). 13. 소돔사람은 (사람의 중심인 레브를 보시는, 삼상16:7)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18:20-21, 19:5)”(13:12-13);

1)    가나안 벧엘에서 동남진하여 염해 근처로 오게 되면 가장 먼저 소돔성에 다다르게 됩니다. 롯은 자신의 가축을 목자들에게 맡겨버리고 소돔성에 들어가서 큰 저택을 구입하여 살게 됩니다(12b). 그 반면에 아브람 부부는 양자처럼 생각했던 장조카 롯의 배신으로 가나안 땅에 남겨지고 맙니다(12a).

2)    그런데 소돔성에서 살아가고 있는 은 후회막급입니다. 그 이유는 겉으로는 물질문명이 화려하고 향락과 사치가 대단하지만 주민들이 성적으로 타락하고 탐욕과 퇴폐에 찌들어 있기 때문입니다(13). 더구나 약육강식의 죄악이 만연된 소돔성입니다. 그곳에서 롯의 가족은 자꾸만 타락된 물질문명에 물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19:8, 26).

셋째로,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홀로 남은 믿음의 조상 후보인, 4:11-12)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메소포타미아에서 온 길을 되돌아보라). 15. (옛날에 밟아보았으나 지금은 그저)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지금은 일점 혈육이 없지만 훗날에는, 11:30)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12:2),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천천이나 만만으로, 삼상18:7) 세리라(15:5).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내가 그것을(여호와의 명령으로 직접 밟아본 땅을, 12:1-9) 네게 주리라(15:18-21, 3:8).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훗날의 갈렙 장군 처럼, 14:6-14)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13:14-18);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홀로 남은 믿음의 조상 후보인, 4:11-12)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메소포타미아에서 온 길을 되돌아보라). 15. (옛날에 밟아보았으나 지금은 그저)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지금은 일점 혈육이 없지만 훗날에는, 11:30)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12:2),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천천이나 만만으로, 삼상18:7) 세리라(15:5)”(13:14-16);

1)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노년의 아브람 부부가 외로이 남겨지고 있습니다(14a). 마치 양아들처럼 든든했던 장조카 이 사전에 재산상속을 해주자 그만 도시문명을 동경하여 멀리 소돔성으로 떠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브람 부부는 그 뒤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염해 주변으로 가라고 전혀 말씀하고 계시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2)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고 노후가 복되도록 그 옛날에 주신 축복의 언약을 다시 구체적으로 확인하여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와 같은 간절한 기도가 있었기에 여호와로부터 예언의 말씀이 다시 주어지고 있습니다(14b). 정확하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지경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15). 또 하나는, 스스로의 발로 걸어가는 그 지경을 당대에 아브람에게 주겠다는 약속입니다(17).  

3)    먼저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주시는 그 땅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까요? 아브람 부부는 자신들이 족장 데라를 하란에 남겨 두고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남하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장래 그들의 자손들이 유프라테스 강 서편부터 애굽 땅 입구까지 이르는 넓은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15:18). 그 예언이 훗날 다윗대왕이 건설한 이스라엘제국의 영토로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삼하8:1-14).

4)    그렇다고 하면 이제 남은 문제는 자식이 전혀 없는 아브람 부부가 아들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 부부는 후계자를 얻게 되는 것일까요? 당장은 그들 앞에 실현되고 있지 않지만 그들 자손의 번성이 대단할 것이라고 미리 창조주 여호와께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계십니다; “. 16. 내가 네 자손이 (지금은 일점 혈육이 없지만 훗날에는, 11:30)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12:2),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천천이나 만만으로, 삼상18:7) 세리라(15:5)”(13:16).

(2)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내가 그것을(여호와의 명령으로 직접 밟아본 땅을, 12:1-9) 네게 주리라(15:18-21, 3:8).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훗날의 갈렙 장군 처럼, 14:6-14)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13:17-18);

1)    사람은 일평생 자신의 눈으로 본 그 모든 것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여호와께서 그의 자손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씀만 하셔도 그것은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평생에 가질 수 있는 땅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요? 그것을 여호와께서는 직접 자신의 발로 밟게 되는 그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7).

2)    그것은 한마디로, 자신의 거처가 있는 그 일대의 땅입니다. 따라서 아브람 부부는 아주 신중하게 자신의 거처를 가나안에서 결정하고자 합니다. 그 장소가 바로 남부의 풍요로운 성읍 헤브론입니다. 당시에는 아모리 호족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14:13). 그 가운데 아브람 부부는 호족 마므레에게서 좋은 땅을 사서 자신들의 거처로 삼고 있습니다(18a);

3)    상수리 나무가 잘 자라고 있으며 물이 좋은 땅입니다(18b). 그곳을 얻게 된 그들은 무엇보다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18c). 그것은 비록 장조카 이 그들을 떠나버렸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시기에 이제는 외롭지 않으며 그들의 남은 생이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버지 데라를 하란에 두고서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남행한 아브람 부부입니다. 자식이 없는 그들은 자손의 번성과 창대함을 주시겠다고 하는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을 믿고서 독자적인 이방선교의 길을 떠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장조카 의 가족이 동행하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든든합니다. 따라서 애굽제국을 떠나올 때에 부자가 된 아브람에게 그 큰 재산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만 불행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된 이 그 재물을 대도시 소돔에 가지고 가서 원 없이 한번 사용하겠다고 결심하고서 아브람 부부를 가나안에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외로움과 설움을 달랠 길이 없어서 아브람 부부는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에 자기 부부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을 구체적으로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내용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브람 부부가 눈으로 본 모든 지경을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또 하나는, 아브람 부부가 거처로 정하고 있는 그 일대의 땅을 당대에 그들에게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당장 아브람 부부는 가나안 남부의 풍요로운 고장 헤브론으로 가서 호족 마므레에게서 좋은 땅을 구입하여 자신들의 거처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디 자식이 없는 그들 부부에게 약속의 아들을 달라고 하는 간구의 제단입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의 언약을 믿고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 부부에게 있어서 더 이상의 인간적인 외로움과 배신감은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됩니다. 남아 있는 인생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성취하시는 그 일을 보고 즐거워하기에도 바쁜데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이 아무쪼록 이 세상에서 향년을 맞이할 때까지 전진 또 전진하시는 놀라운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