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57강(마23:23-2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28. 06:20

마태복음 강해 제157(23:23-2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45(주일)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신앙생활의 현실과 진단 그리고 처방(23:23-28)

 

첫째로, 예수님 보시기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십일조 생활에 엄청 철저합니다. 십일조의 세칙에 박하’(mint), ‘회향’(dill), ‘근채’(cumin, 미나리과 향료임) 허브’(herb)의 십일조까지 바치도록 규정이 되어 있는데 그것조차 준수하고 있습니다(23:23b).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 지적하고 계시는 바와 같이 십일조보다 훨씬 중요한 율법의 기본정신을 잃어버리고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3:23c).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전심전력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이 동일하게 창조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는 율법의 정신은 정의, 긍휼,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3:23d). 이를 알기 쉽게 풀이를 해보면, 이웃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이웃을 (1) 차별하지 아니하고(정의의 실현),  (2) 최소 생계를 보장해주며(긍휼의 실천), (3) 하나님 신앙을 나누는 것입니다(믿음의 공동체).

이상과 같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신앙생활의 모순된 현실을 바라보시고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그들의 문제점을 한 마디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23:23a). ‘외식하는 행태’(hypocritical behaviour)가 어떠한 것인지 비유적인 설명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려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23:24).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엇인 지엽적이며 가벼운 것인지 무엇이 본질적이며 중요한 것인지 그 구분을 옳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의 문제점이 외식하는 행태’(hypocritical behaviour)로 진단이 되고 있으므로 이제 예수님의 처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23e). 율법의 기본정신을 버리지 말고 십일조생활도 철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기본정신을 버리고 십일조생활을 잘 한다면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위선적인 율법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기본정신을 잘 알고 있으면서 십일조생활을 엉터리로 한다면 그것은 언행의 불일치 또는 행동하지 아니하는 양심이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거룩합니다(23:25b).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거룩하지 못하고 탐욕적이며 방탕합니다(23:25c). 예수님 보시기에 그것은 개인적으로 외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23:25a). 그렇다면 그 처방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23:26). 청결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순서에 유의를 해야 합니다. 겉이 먼저가 아니고 안이 먼저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깨끗해져야 행동이 바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이 살아나야 마음이 변화가 됩니다.

김진홍 목사님의 젊은 시절 간증 한 토막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 청계천 빈민들을 돕기 위하여 활빈교회를 개척했을 때의 일입니다. 청년들을 모아서 함께 넝마주이를 했습니다. 저녁에 하루의 벌이를 모아 밀가루를 사서 생계가 곤란한 집을 골라서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형편이 조금도 나아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자립하는 생활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겠다. 그때부터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포장마차용 리어카를 제공했습니다. 원금은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조금씩 상환을 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원금을 갚지 않으려고 야반도주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투자금도 잃고 교인마저 잃어버렸습니다. 마침내 김진홍 목사님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을 살리자! 그것이 먼저이다. 자립된 신앙인이 되었을 때 비로서 생활의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바리새파 사람들은 입으로는 정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23:28a). 그러나 실제로는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23:28b). 사람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는 미사여구(美辭麗句, 아름다운 말이나 문장)로 정의사회(正義社會, society of justice)의 구현을 외치며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율법사회의 실현에 앞장을 서는 것으로 보입니다(23:27b). 그러나 그것은 가식에 불과합니다(23:27a).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돈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23:27c, 16:14, 20:47). 랍비의 사회도 돈이 있는 자가 존경을 받으며 바리새파 집단을 이끌어가는 리더로 설 수가 있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랍비의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불법과 탈선을 예방할 수가 있을까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사회적으로 투명성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검증기관이나 절차가 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시험을 마련해야 합니다. 종교적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부문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제도를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그러한 장치가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에는 그러한 사회적인 제도마련은 꿈도 꾸지 못할 때입니다.

(2)  그러므로 시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개입이 있어야만 합니다. 종교적인 지도자들의 외식과 불법을 철저하게 청산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의 차원을 넘어서는 시대적인 대 변화와 역사적인 심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대교지도자들에게 그러한 심판과 변화가 임박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살해한 그들이 예수님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자 40년 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 초토화되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자정(自淨, 스스로 정화함, self-purge)능력을 상실하게 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유대교가 역사적으로 버림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교를 개혁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모습으로 그리스도교를 출범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하여 목숨을 걸어놓고,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23:27-28)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태도의 변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앞당겨지고 있을 따름입니다(23:34). 그 결과 예수님에게는 부활이 찾아오지만 그들에게는 죽음과 멸망의 역사만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