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7. 21. 09:39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4(손진길 소설)

 

그날 외부인이 없는 자리에서 허굉필이 수하인 강천무 별장과 최선미 다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전직 예조참판 최광요(崔光饒) 영감의 3녀인 향옥 낭자와 혼담이 오가고 있는 김유진 직장을 어제 저녁에 기방에서 만났어요. 그 자리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한 김직장으로부터 한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었지요. 그것이… “.

잠시 말을 끊고 허봉사가 강별장과 최다모의 안색을 살핀다.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들이다. 허봉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설명한다; “운종가의 큰손인 거부 오칠성(吳七星) 대방이 김직장을 사위로 삼고 싶다고 하여 매파를 보내오고 있다고 해요. 그것이 좀 이상해요. 아무리 거부라고는 하지만 중인계급인 오대방이 양반이며 세도가인 호판의 자제를 사위로 삼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

허굉필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오대방의 막내딸이 김직장을 연모하여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매파를 보내오고 있다고 김유진이 취중에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향옥 낭자의 납치사건이 그 일과 무관하지 아니한 것 같아요. 두사람의 생각은 어때요?... “;

눈을 깜빡이고 있던 최다모가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현직 호조판서의 자제와 퇴직한 예조참판의 딸 사이에 혼담이 오가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지요. 그렇게 되면 거부인 오대방은 헛물을 켜게 되는 셈이지요. 따라서 저는 오대방 측에서 사람을 보내어 향옥 규수를 납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 말을 듣고서 허봉사가 고개를 끄떡인다. 그때 최다모 옆에 앉아 있던 강별장이 목소리를 낮추어서 말한다; “41일 밤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 저는 3명의 괴한의 뒤를 맹렬하게 추격했지요. 그들을 도중에서 제가 놓쳐버린 것은 사실이기에 그렇게 일단 보고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말씀드리지 아니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

허굉필 봉사와 최선미 다모가 돌연 숨소리를 줄여가면서 귀를 기울인다. 그들에게 강별장의 설명이 들려온다; “운종가 골목에서 그들이 열심히 도망을 쳤지요. 부자들이 살고 있는 종로 주택가에서 그들의 종적이 홀연 사라지자 나는 조심스럽게 그 부근을 수색했어요.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5대의 가마가 어느 큰 집에서 나와 밤중에 남대문을 통과하여 마포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요. 참으로 괴이한 광경이기에 은밀하게 그 뒤를 계속 미행했어요. 그 결과… “.

별장 강천무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새벽에 마포 나루터에서 큰 배가 그들을 태우고 하류로 떠나갔어요. 날이 밝았기에 나는 그 배가 청나라로 가는 상선임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저택이 바로 운종가의 큰손인 오칠성 대방의 집인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고요. 그 일이 아무래도 이번의 사건과 묘하게도 관련이 되는 것 같아요”;

강별장의 정보를 듣자 허봉사가 빠르게 결론을 맺는다; “그렇군요. 오대방의 상선이 움직이는 시점에 납치 건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하면 향옥 낭자가 강제로 그 배에 실려서 청나라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고 판단이 되는군요. 좋습니다. 이제 다음과 같이 수사를 압축합시다!... “.

두사람을 주시하면서 허봉사가 지시한다; “먼저 강별장은 그 가마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를 확인해주세요. 오대방의 객점에서 일하고 있는 자를 물색하여 은밀하게 접촉하세요. 수사비는 내가 지원할 겁니다. 그리고 최다모는 오대방의 막내딸이 누구인지 확인하시고 그 성품이 어떠한지를 파악해주세요. 그러면 우리 3일후에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허굉필은 자신의 돈에서 일단 수사비를 두사람에게 지원해준다. 나중에 상부에 보고하고 정산을 받을 생각이다. 당장은 확실한 수사결과가 없기에 상부보고를 뒤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3일이 지나자 두사람의 수사결과가 나타난다. 먼저 강별장이 자신이 얻은 고급정보를 말한다; “혹시 처녀를 납치하여 청나라로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오대방의 심복을 중심으로 정보수집을 했어요. 그 결과 청나라에 다녀와서 큰 돈을 만지고 있는 상단의 호위무사 하나와 친구가 되어서 술을 한잔 하면서 취중에 중요한 정보를 얻었지요. 그것은 가장 큰 이익이 바로 인신매매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혹시가 역시입니다!”.

최다모의 보고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오대방의 막내딸 이름이 오찬미(吳贊美)인데 그녀는 그 동네에서 유명해요. 시기와 강짜가 심하고 자기 고집대로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해요. 그래서 별명이 진돗개입니다. 게다가 너무 대범해서 만약 남자로 태어났으면 오대방의 뒤를 너끈히 이었을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어요. 문제는 그녀가 직접 나섰는지 아니면 오대방이 관여를 했는지 그것이지요. 나리, 이제 어떻게 하실 요량이십니까?... “;

조용히 두사람의 보고를 듣고서 허굉필이 결론을 내린다; “그 정도 수사결과이면 이제 내가 직접 나서야지요. 은밀하게 판윤 대감에게 보고를 드리고 3일후에 다시 이방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한성부 판윤 김윤갑(金潤甲) 대감은 종8품에 불과한 야경담당 봉사 허굉필이 직접 면담을 요청하자 기이한 생각이 먼저 들고 있다; ‘세도가인 안동 김씨도 아닌 자가 어째서 한성부의 수장인 나를 직접 만나겠다고 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재작년 가을에 대과에서 차석을 한 수재가 바로 허굉필이기에 한번 만나보기로 한다.

판윤 대감의 집무실에 들어서면서 허봉사가 60도로 인사부터 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김판윤이 회의실의 의자에 앉으라고 지시한다. 자리를 잡자 허굉필이 조용히 말한다; “판윤 대감께 은밀하게 한가지 수사내용을 보고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것은 호판 자제분의 혼사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듣자 김윤갑 판윤이 갑자기 크게 관심을 가지고 말한다; “호판 김형술(金亨述) 대감 댁과 관련된 사건이란 말이지. 그래 그 내용이 무엇인가?”. 허봉사가 목소리를 낮추어서 보고한다; “호판의 자제인 김유진(金維珍) 직장이 혼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신부감이 은퇴한 예조참판 최광요(崔光饒) 영감의 3녀인 향옥 낭자인데 그녀가 한밤중에 그만 종로 골목에서 납치를 당할 뻔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은밀하게 수사한 결과가… “.

김윤갑 판윤이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조정에서 안동 김씨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김형술 대감의 자제와 관련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의 귀에 허봉사의 설명이 들려온다; “그 집에 매파를 보내고 있는 운종가의 큰 객주 오대방의 일꾼들이 그 일을 도모한 것으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담하게도 한양의 처녀를 납치하여 청나라에 인신매매를 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판윤 대감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

김윤갑 판윤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한참 생각을 하던 그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허굉필에게 지시한다; “정말 자네가 큰 수고를 하고 있구만. 내게 먼저 보고를 은밀하게 주어서 고마우이. 내 생각에는 오대방이 주도적으로 인신매매를 하기 위하여 그 규수를 납치하다가 그만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결론을 내어주면 고맙겠어. 호판의 위신에 손상이 가지 아니하도록 자네가 좀 도와주게나. 그 일에 대한 넉넉한 수사비 지원과 논공행상은 내가 책임지고 해주겠네!... “;

허굉필은 한성부의 수장인 김윤갑 판윤의 말을 믿고서 그 정도의 선에서 수사를 진행하기로 결심한다. 이튿날 김판윤을 직접 모시고 있는 정5심원익(沈元翼) 교리가 야경담당실로 허굉필 봉사를 찾아온다. 그가 허봉사와 함께 마당으로 나서서 보는 눈이 없는 자리임을 확인하고서 입을 뗀다; “허봉사, 나는 판윤대감을 모시고 있는 심교리입니다. 보는 눈이 많아서 바깥으로 불러내었어요… “.

허굉필이 깎듯이 예를 표하자 그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내게 이 돈을 은밀하게 전달하라고 지시했어요. 그리고 수사결과는 판윤 대감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말씀하셨어요.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얘기해주세요. 우리 판윤 대감을 한번 잘 모셔보도록 합시다!... “.

그 말을 하면서 심교리가 허봉사의 손을 정답게 쥐고서 흔든다. 마치 좋은 친척 형님을 만난 것만 같다. 허봉사도 빙그레 웃으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과연 허굉필은 그 수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