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7. 16. 06:02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2(손진길 소설)

 

허굉필이 한성부 야경담당 부서의 봉사(奉事)로 재직하고 있는 때에 업무상 만나게 되는 인물들이 다음과 같다; 첫째가 당시 한성부의 수장이 김윤갑(金潤甲) 대감이다. 한성부 판윤인 그는 품계가 정2품이므로 그 벼슬이 6부의 판서에 해당한다.

따라서 대감으로 불리고 있으며 대전에서 열리는 조정회의에 참석하는 당상관이다;

 물론 어전회의에는 역시 당상관으로서 2품인 참판과 정3품인 참의도 참석하고 있지만 그들은 대감이 아니라 영감으로 불리고 있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그와 같은 품계의 구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서열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같은 정1품인 정승이라고 하더라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라는 서열이 엄격하며 그것이 일종의 계급구조인 것이다.

50대 중반인 김윤갑 대감은 세도가인 안동 김씨이지만 나름대로 포용력이 있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한성부 관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굉필은 안동 김씨라고 하여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서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둘째로, 야경담당 부서를 총괄하고 있는 인물이 44세의 주부 오창명(吳昌明)이다. 그는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종8품 봉사로부터 관직을 시작한 인물이다. 8년만에 종6품 주부의 벼슬에 올랐지만 나이가 적지 아니하므로 부하의 수가 많은 야경담당 부서의 총책을 맡고 있다.

한성부의 밤거리를 순찰하고 있는 순라군(巡邏軍)은 본래 병부와 포도청에 소속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양의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한성부에서 야경업무를 외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순라군과 함께 야경업무를 담당하도록 일종의 야경꾼을 두고 있다.

왕궁을 제외하고 4대문 안을 야간에 순찰하는데 그 수가 100명 내외이다. 그러므로 한성부에서는 야경꾼을 관리하도록 종6품인 주부 1명과 종7품인 직장 1명 그리고 종8품인 봉사 2명을 두고 있다. 100명이나 되는 많은 인력을 책임지고 관리하자면 나이가 제법 든 인물이 부서장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40대 중반의 주부인 오창명이 적임자인 것이다.

그렇지만 매일 밤 10시 이경부터 새벽 4시 오경까지 잠을 자지 못하는 고된 업무이므로 책임자인 오창명 주부로서는 고역이다. 따라서 그는 이틀에 하루만 밤샘 근무를 하고 나머지 하룻밤은 부책임자인 직장 하대수(河大洙)가 맡도록 조치하고 있다.

셋째로, 봉사인 허굉필이 같은 봉사인 한우진(韓宇進)과 함께 야경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우진은 허굉필 자신과 같은 해에 등과한 인물이다. 그리고 나이도 같다. 자연히 두사람은 좋은 벗이 되고 있다. 그들은 매일 밤에 한성부에서 숙직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야간업무가 그들의 통상업무이기 때문이다.

봉사가 두사람이므로 그들은 하루 씩 번갈아 가면서 내근과 외근을 한다. 예를 들면 홀수일에는 허굉필 자신이 외근을 하고 짝수일에는 한우진이 외근에 나서는 것이다. 외근업무는 순라를 돌고 있는 야경꾼을 멀찍이 따라가면서 그들을 도와주는 업무를 말한다.

한양 도성에는 4대문이 있다. 야경꾼은 순라군과 함께 4대문에서 각 성문마다 2개조씩 밤 이경에 중심을 향하여 출발한다. 야경꾼의 각조에는 12명의 인원이 소속되어 있는데 그들은 동시에 출발하여 도중에 2명씩 다시 6개조로 나누어진다.

21조가 되어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그들은 발 밑을 비추는 조족등(照足燈)과 박달나무로 만든 짝짝이를 제각각 들고서 도성내의 골목길을 누빈다;

 물론 도둑을 잡기 위해서 육모방망이도 허리춤에 차고 있다.

야경꾼이 순찰을 돌 때에는 언제나 짝짝이로 먼저 소리를 낸다;

그 이유는 사전에 도둑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그러하지 아니하고 곧바로 도둑이나 강도를 만났을 경우에는 야경꾼이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 범죄자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미리 경고하여 도망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것이다.

넷째로, 봉사인 허굉필이 외근에 나서는 때에는 그를 보좌하는 인물이 두사람이다. 한사람이 무관으로서 종9품인 별장 강천무(姜天武)이고 또 한사람이 한성부의 관비로서 다모(茶母)최선미(崔善美)이다;

 강별장은 허봉사를 보호하는 무관이고 최다모는 여성범죄자를 다루는 일을 맡고 있다.  

그 밖에 허굉필()은 업무상 한성부 서고(書庫)에서 근무하고 있는 계급이 같은 봉사 심한수(沈漢水)와 친하고 또한 성문의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봉사 윤일윤(尹日潤)과도 친하다.

물론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봉사인 한우진(韓宇進)과도 잘 지내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과 같은 해에 대과에 급제하고 다같이 한성부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고 있는 소위 과거동기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한성부의 4군자라고 서로들 부르고 있다.

그런데 1846년 봄에 허굉필은 기이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 그가 한성부에서 봉사로 근무한지 반년이 겨우 지난 시점이다. 마침 41일이 홀수일이므로 밤 이경이 되자 그는 별장인 강천무 그리고 다모인 최선미와 함께 야경꾼의 뒤를 보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

허굉필의 일행이 동대문에서 출발하여 종로통을 한창 돌고 있을 때이다. 그때 밤 삼경이 되자 갑자기 멀지 아니한 골목길에서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한밤중에 골몰길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소리이기에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짐작하고서 세사람이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그러자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장정 세사람이 자루를 하나 남겨놓고서 재빨리 도망치고 있다. 허굉필은 별장 강천무가 그들을 추격하는 것을 보면서도 당장은 그 자리에 다모 최선미와 함께 서서 그 자루부터 풀어본다;

자루 속에서는 아름다운 처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최선미가 울고 있는 그녀를 위로하고 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괴한들이 도망을 쳤으니 안심하세요. 울음을 그치시고 어디에 살고 있는 누구인지 신분을 말씀하세요”.

잠시 울음을 그치고 그 여인이 대답한다; “저는 최참판댁의 셋째 딸인 향옥입니다. 잠을 자고 있다가 이와 같은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저를 집으로 좀 데려다 주세요!... “. 그 말을 듣자 최선미와 허굉필은 괴이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두사람은 마주보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과부도 아니고 어엿한 참판집의 규수이다. 어째서 야밤에 괴한들에 의하여 납치를 당하고 있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수상한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구나!...’.

허굉필은 판단이 예리하고 결정이 빠른 편이다. 당장 그 자리에서 다모 최선미에게 지시한다; “비록 여기서 최참판 댁이 가깝다고는 하지만 그냥 그 댁으로 모실 수가 없어요. 우선 수사부터 해봐야 합니다. 그러니 최다모는 향옥 낭자를 데리고 우리 한성부로 가세요. 필요한 자초지종을 전부 조사하여 기록하고 그 다음에 나에게 보고하세요”.

과연 그 일이 어째서 발생한 것일까? 22세의 젊은 봉사 허굉필이 이제 그 문제에 개입이 되고 있다. 앞으로 한성부에 그리고 그의 인생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오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