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7. 17. 05:56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3(손진길 소설)

 

2. 직장 김유진(金維珍)과의 만남

 

호조(戶曹)에서 종7직장() 벼슬을 하고 있는 김유진(金維珍)이 갑자기 한성부에서 종8품 봉사로 일하고 있는 허굉필()의 방문을 받고 있다. 때는 조선의 헌종이 즉위한지 12년이 지나고 있는 184648일이다;

김유진은 갑자기 한성부의 관료인 허굉필이 자신을 방문하자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따라서 수인사가 끝나자 허봉사에게 질문한다; “어째서 저를 방문하신 것입니까? 저는 한성부에 별로 볼일이 없는 사람입니다만…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애써 웃음을 띄면서 대답한다; “그렇지요. 호조의 관리이신 김직장님을 제가 만날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지난 41일 밤에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였기에 참고인으로 진술을 좀 받고자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김유진이 급히 허굉필에게 자리를 옮기자고 말한다. 여러 관료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 옆에 별도로 직장인 김유진이 홀로 사용하고 있는 방이 있다. 7품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높은 벼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시 호조는 돈과 권세가 대단한 모양이다. 일개 직장에게 별도의 방을 제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허굉필이 생각하면서 그 방에 들어섰더니 회의용 자리를 권하면서 김유진이 말한다; “이 방은 중요한 고객이 왔을 때에 개인상담을 할 수 있도록 호조에서 직장 이상의 관료들에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지요. 작년에 종7품인 직장으로 승차하자 저도 이러한 방을 하나 얻게 되었지요… “.

그것은 나름대로 겸양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한성부의 봉사인 허굉필이 사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호조에서 직장 벼슬을 하고 있는 김유진은 그 배경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허굉필 자신보다 2년 먼저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다. 3년전에 호조에서 종8품 봉사로 관직을 시작한 김유진이 벌써 2단계를 승진하여 종7품 직장이다.

그 이유는 그가 잘 생기고 능력이 출중한 이유도 있지만 더 무시할 수가 없는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김유진은 조정에서 실세로 꼽히고 있는 호조판서 김형술(金亨述)의 자제이다. 안동 김씨인 김형술은 파벌의 돈주머니를 관리하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니 호조에서는 김유진의 상관들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앞으로 그는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며 부친의 뒤를 이어 언젠가는 호조의 수장인 호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물을 직급도 낮은 한성부의 일개 봉사인 허굉필이 전격 방문하여 직접 참고인 조사를 받겠다고 하니 그것은 겁도 없는 일로 보인다.

하지만 김유진은 자신보다 약간 젊어 보이는 상대방에게서 무시할 수가 없는 선비의 기개를 보고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부드럽게 말한다; “허봉사님, 지난 41일 밤에 발생한 사건이란 것이 무엇이지요? 어째서 제가 그 일에 관련이 되고 있는 것인지요?... “.

상대방이 진실로 그 사건에 대하여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예조에서 은퇴한 최광요(崔光饒) 참판이 그 사건에 대하여 호판 김형술 대감에게 말해주지 아니한 것이리라. 그와 같이 짐작하고서 허굉필이 설명을 시작한다;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날 밤에… “.

허굉필은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안색을 살피면서 조리 있게 설명한다; “종로골목에서 최참판의 3향옥 낭자가 3명의 괴한에게 보쌈을 당하다가 겨우 위기를 모면한 일이 발생했지요. 우리 한성부의 무관이 그 뒤를 추격했지만 그만 놓치고 말았어요. 그런데 향옥 규수가 김직장님과 한창 혼담이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되어 이렇게 참고인 조사를 하고자 방문한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유진이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리고 신중하게 대답한다; “처음 듣는 불상사입니다. 감히 그 어느 누가 조정에서 참판을 지내고 물러난 대신의 딸을 겁도 없이 보쌈을 한다는 것입니까? 우리 안동 김씨가 조정에서 일하고 있는 이상 그것은 있어서는 아니되는 일입니다!... “.

그 말에 허굉필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김직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는 안동 김씨가 세도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슬며시 말하고 있다. 그의 의중은 안동 김씨 일문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이 사건을 한성부에서 조용히 묻으라고 하는 일종의 협박인 것이다!... “.

짧은 순간에 그와 같이 판단한 허굉필이 다음과 같이 요령껏 말한다; “허허, 혼사를 앞두고 그와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여 저희들도 조심스럽습니다. 따라서 저희 한성부에서도 가급적이면 조용하게 처리를 하고 말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

허굉필이 잠시 쉬었다가 말을 잇는다; “비록 요식행위이지만 향옥 규수와 혼담이 오가고 있는 김직장님을 한번 방문하여 참고인 조사를 하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제가 온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전혀 아시는 바가 없으므로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오늘 진솔한 답변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물러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김유진이 만면에 미소를 띄면서 말한다; “허봉사님, 이것도 인연인데 나중에 저와 함께 술을 한잔 하시지요. 제가 별도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편히 돌아가십시오. 그때 뵙겠습니다. 허허허… “.

역시 세도가의 자제 답게 여유가 있는 대응이다. 그때 허굉필은 그저 젊은 관료의 치기로만 알았다; ‘인사치레로 그렇게 술 한잔을 하자고 말한 것이리라… ‘.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며칠이 지나지 아니하여 그로부터 기별이 오고 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종로의 기방으로 나오라고 하는 것이다;

허굉필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떠한 정보라도 더 얻게 되면 수사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기방에서 김유진을 만나 사담을 하고  보니 그가 자신보다 한 살이 많다. 그리고 멀리 영남지방에서 벼슬길에 나선 허굉필 자신에 대하여 굉장히 호의적이다.

그날 밤 술이 어느 정도 취하자 허굉필이 슬쩍 김유진에게 말한다; “허허, 한 살 연상이시니 제가 이제부터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래 형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혼사가 늦어지고 있습니까? 23살이 되도록 총각으로 지내고 계시니 적적하지 않습니까?... “.

그 말에 술이 상당히 취한 김유진이 솔직하게 대답한다; “오늘 한성부의 허봉사를 나의 아우로 맞이하니 나는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이곳 한양에서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방을 출입할 수가 있지요. 그러니 적적하면 이렇게 벗들과 술을 마시고 기방에서 회포를 풀면 되지요. 하하하… “.

그 다음에는 호탕하게 말한다; “권력과 돈만 있으면 참으로 살기 좋은 낙원이 바로 이곳 한양이지요. 그러니 이미 출사한 아우님도 한번 그 맛을 즐겨보세요. 만약 돈이 부족하면 주저 말고 이 형에게 말해요.  내가 얼마든지 도와 줄게요. 앞으로 우리 그렇게 어울려서 한세상 살아가도록 합시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허굉필 역시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껄껄 호기롭게 웃는다. 그리고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까지 듣게 된다; “나는 그 어려운 대과에서 차석을 한 드문 인재 허봉사를 나의 아우로 삼게 되어 오늘 참으로 기분이 좋아요! 하하하... “.

그렇게 기분이 좋은 그에게 허굉필이 슬쩍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본다; “형님같이 미남자에 벼슬이 높으니 여러 집안에서 매파를 보내어 왔겠습니다. 그것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하는 호조판서의 자제분이니 말씀입니다… “.

자신의 든든한 집안배경을 알아주고 있는 것만 같아서 김유진의 마음이 한껏 즐겁다. 그래서 주저없이 말한다; “그렇지요. 여러 집안에서 사위로 삼겠다고 나섰지요. 그런데 한양에서 거상으로 소문이 난 오대방도 매파를 보내어 왔지요.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은 술이 확 깨는 느낌이다. 그래서 얼른 말한다; “거부라고 하면 혼사가 될 법도 합니다, 형님!”. 그 말에 즉시 대답이 들려온다; “그러나 그 집안은 돈을 빼고 나면 별로이지요. 중인 집안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 집의 막내딸이 계속 조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나를 언제 보았는지 그렇게 마음에 든다고 말입니다. 하하하, 내가 미남자로 한양에 소문이 나서 그런 모양이지요. 하하하 “.

다음날 일찍 출근을 한 허굉필이 강별장과 최다모를 불러 모은다. 그리고 모종의 지시를 한다. 과연 그 내용이 무엇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