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33강(마21:13-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15. 01:32

마태복음 강해 제133(21:13-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315(주일)

 

 

육체적인 장애자들을 고치는 것과 영적인 장애자인 외식주의자들을 고치는 것의 차이점에 대하여(21:13-17)

 

사도 마태가 나열하고 있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순서를 잘 들여다보게 되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로 배열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를 빌려서 절묘하게 나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특히 본문이 그러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을 할 때에 예수님 일행을 환영하는 인파와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 환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겉옷을 벗어서 나귀에 안장으로, 또는 도로에 포장으로 깔고 있습니다(21:7-8). 그리고 크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으니(21:9-11) 눈에 보이고 귀에 크게 들리게 마련입니다. (2) 그런데 전혀 귀에 들리지 아니하며 눈에 잘 띄지도 아니하고 있는 음모 형의 반대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도록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영적인 장애자들인데 자신들은 그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으로 치부하고서 아예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이웃의 눈을 절대적인 것으로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외식주의신앙생활입니다(23:1-36). 그들은 상대적인 의로움을 절대적인 의로 내세우고 있는 정신적인 불구자들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먼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유대교지도자들의 잘못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허용하신 기도하는 뜰을 그들은 달리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을 부각시키고 계십니다(21:12-13). 그들은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시는 예루살렘 성전조차 하나님의 뜻을 어겨가면서 제멋대로 이권사업의 현장으로 탈바꿈시켜놓고 있습니다.

셋째로, 그 다음에 사도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것은 육체적인 장애자를 고치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21:14). 요한복음을 참고하면, 예루살렘 성전 내에 있는 베데스다 못 가에서 낫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맹인과 장애자들이 예수님 앞으로 찾아온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21:14a, 5:1-3).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두 고쳐주고 있습니다(21:14b).

넷째로, 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21:15a). 그들은 어린이들까지 예수님을 환영하고 메시아를 보내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호산나찬송을 부르자 그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있습니다(21:15b).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청 화를 내고 있습니다(21:15c). 이를 보시고서 예수님께서는 정신적인 그리고 영적인 장애자들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온당하게 못한 처사에 대하여 한 말씀 날카롭게 지적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본 일이 있느냐?”(21:16). 요컨대, 어른인 유대교지도자들의 처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린아이만도 못하다는 질책입니다.

끝으로,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첫날의 일정이 끝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가가 비싼 예루살렘 성내에서 결코 숙박을 하지 않습니다. 일행을 데리고 함께 동쪽 감람 산을 넘어서 값이 싼 민박집이 모여있는 베다니 마을로 이동을 하십니다(21:17a). 그리고 그곳에서 마음 편하게 쉬시면서 하룻밤을 지내시게 됩니다(21:17b). 소시민들과 눈높이와 생활의 수준을 맞추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멋진 모습까지 사도 마태가 절묘하게 복음서의 독자들에게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위와 같이 전개가 되고 있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환영하는 백성과 반대하는 유대교지도자들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잘 어울리어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영적인 불구자인 유대교지도자들을 치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묘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장애자들을 치유하시는 장면 다음에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는 어린아이들까지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행태를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질책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남의 눈만을 의식하는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너희들은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하게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는 어린아이만도 못한 자들이구나!”(21:16). 지금도 그 질책이 저와 여러분들의 귓전을 때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