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32강(마21: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14. 10:29

마태복음 강해 제132(2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314()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이 성전을 차지하고자 하는 자들에 대하여(21:13)

 

사도 마태는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신 예수님이 소위 성전청결사건을 벌이시면서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21:13).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는 두 가지의 다른 시선이 있습니다; 첫째는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메시아로 맞이하고 있습니다(21:7-9). 둘째는 선지자일지는 몰라도 유대교의 기반인 선민사상을 부인하고 있으므로 위험한 인물이라는 시선입니다(21:15-16).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고서 전혀 엉뚱한 소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른 바 성전청결사건입니다.

그 사건을 일으키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명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도록 해주기 위함입니다; (1) 그리스도는 선민 유대인의 정치적 해방을 위해서 오신 메시아가 아닙니다. (2)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성전을 차지하고서 백성들을 오도하고 있는 무리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본문의 뜻과 더불어 역사적인 심판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본문 21:13’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해석이 됩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겸손하게 기도하는 신앙생활에 힘쓰지 아니하고 마치 성전을 차지하면 하나님이 될 수가 있다는 식으로 종교적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교만하게도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그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버리고 성전만 차지하기를 원하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마치 강도와 같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21:13). 그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사용한 바 있는 도둑의 소굴’(7:11)이라는 용어를 더 강한 표현 즉 강도의 소굴’(21:13)이라고 바꾼 것입니다.

실제로 성전이 중요한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성전건물만을 차지하고서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욕심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그곳을 떠나버리십니다(6:3). 그 결과는 그들의 성전이 망하고 나라가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왕상9:7, 왕하21:11-13). 과연 그러한지 항목을 달리하여 역사적으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둘째로, 성전의 원형은 성막입니다. 그런데 성막이 필요한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산이 아니라 백성들의 진중에 함께 거처하시기 위한 것입니다(25:8). 성막에는 지성소와 성소가 있는데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 장소는 지성소입니다. 그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는 언약궤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25:22). 따라서 언약궤가 자리잡고 있는 그곳이 성막이며 성전이 세워질 수 있는 장소입니다.

셋째로,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건설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성막의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 속에 보관합니다(25:21). (2) 그의 시종출신인 여호수아는 그 언약궤를 앞세워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합니다(6:4, 6, 12). 그 후 에브라임 지파출신인 여호수아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실로에 성막을 짓고 언약궤를 보관했습니다(18:1). (3) 세월이 지나자 유다 지파출신인 다윗 왕이 자신의 왕도 시온 산성으로 언약궤를 옮겨왔습니다(삼하6:12).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에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언약궤를 지성소에 보관했습니다(왕상6:19, 8:6).

넷째로, 예레미야는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 말기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조국이 곧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것임을 예지하고 있습니다(26:1-9). 그러므로 왕과 귀족 그리고 백성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회개를 하지 아니하면 마지막 지상의 제사장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에브라임 지파출신 여로보암 왕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섬겼기 때문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사실을 직시하라는 것입니다(7:11-15, 왕하17:21-23).

여로보암은 솔로몬 시대에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을 듣고서 새 나라를 열고자 결심한 인물입니다(왕상11:29-40). 그는 예언 그대로 북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됩니다(왕상12:20).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됩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남쪽 예루살렘 성전으로 유월절을 지키고자 남하하는 백성들을 막게 됩니다(왕상12:26-27). 그 대신에 북쪽 과 남쪽 벧엘에 제단을 만들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섬기게 합니다(왕상12:28-30). 그 정책은 에브라임 왕조가 잇사갈 왕조로 바뀌고 잇사갈 내에서 왕가가 여러 번 바뀌지만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할 때까지 변함이 없습니다(왕상15:34, 16:26, 31, 왕하10:31). 그 결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문화에 젖어 든 백성에게 멸망이 찾아온 것입니다.

다섯째로,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을 할 때에 이미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며” (왕상9:6-7).

끝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주인이십니다(1:1, 2:28, 1:1-3). 그러므로 당연히 성전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주인을 몰라보고 마치 자신들이 성전의 주인인양 제멋대로 처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행태는 도적이 아니면 강도입니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 대신에(3:14) 사람이 만든 우상을 창조주라고 부르면서 섬기라고 합니다(32:4). 그리고 정치적 권력자와 종교적인 권력자들은 영원한 권세를 이 땅에서 누리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그와 같은 신앙적 일탈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용어를 인용하고 있는 것은 다분히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