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31강(마21:4-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14. 10:27

마태복음 강해 제131(21:4-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313()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통하여 두 차례나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21:4-13)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이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합니다. 그때 유대교의 상징인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이 불타버리고 맙니다(왕하25:9). 그 후 70년만에 예루살렘의 성전은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페르시아 제국 황실의 도움을 받아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헌신으로 재건이 됩니다(3:8, 6:13-18). 하지만 그 후의 역사 가운데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이 재건이 된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그날까지도 그러합니다(21:4-11).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전 140년경부터 약 80년 동안 레위인 제사장 마카비의 자손들이 하스모니안 왕조를 이루어 예루살렘을 통치한 적이 있지만 유다 지파 다윗 왕조의 나라는 아닙니다. 따라서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중시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여전히 다윗의 후계자가 유대인의 왕으로 유대 땅에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27:11, 37). 그것이 뿌리깊은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입니다. 이에 따라 예수님 당시에도 예루살렘 성전에 둥지를 틀고 있는 산헤드린 대 공회의 유대교지도자들은 메시아가 빨리 와서 다윗 제국과 솔로몬 성전의 영광이 유대 땅에 재현이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영 다릅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의 염원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오랜 세월 선지자조차 유대 땅에 나타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 요한이 요단 강가에 나타나서 백성들에게 회개의 물세례를 베풀 때까지 430년 동안이나 걸리고 있습니다. 참고로, 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의 뜻을 깨달아서 백성들에게 전하는 자입니다(6:1-8, 1-2). 그러한 선지자가 없는 시대이므로 율법에 열심이 있는 레위인들이 히브리정경을 자체적으로 연구하여 주석을 만들어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일에 헌신한 사람들이 율법선생인 랍비이며 바리새인들입니다(3:10). 그들 가운데 율법학자로서 명성을 얻은 자들이 예루살렘 산헤드린 대 공회에 진출을 하고 있습니다. 교법사 또는 서기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가말리엘 등이 그러한 자들입니다(3:1, 19:38, 5:34).

광야에서 고행과 금욕생활을 계속하고 있던 세례 요한이(1:80) 30세의 청년이 되자 요단 강가 오아시스 마을에 나타나서 메시아가 곧 오실 것이므로 회개를 하고 그 길을 예비하라고 외쳤습니다(3:2-7). 유대교지도자들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처럼 승천한 바 있는 엘리야가 다시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4:5-6). 그러나 허무하게도 그는 갈릴리의 분봉 왕 헤롯 안디바에게 체포를 당하고 몇 달 후에는 그만 처형이 되고 맙니다(14:3-11). 그 다음에는 나사렛에서 예수라는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헤롯 안디바의 심기를 건드리지 아니하고 무사히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가 혹시 메시아가 아닌지 유대교지도자들이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램은 예상 밖의 예수님의 행적으로 말미암아 급속하게 실망과 배신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안식일 율법을 예사로 어기는 것을 필두로 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권능이 동등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10:30). 유대교지도자들이 볼 때에는 분명히 이단입니다(10:33). 그런데 그 능력이 탁월하여 불치의 병자나 장애자를 쉽게 고치고 있습니다. 때로는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려내기도 합니다(11:43-44). 그 옛날 광야시대에 경험했던 하늘양식까지 내리게 하고 있습니다(14:19-21, 15:35-37). 그러자 갈릴리의 백성들이 나사렛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삼고자 의논하고 있습니다(6:15). 이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크게 환호하고 있습니다(21:7-11). 이에 따라 유대교지도자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나사렛 예수가 지금이라도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부활시켜준다고 하면 문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 동안 등을 돌리고 있던 유대교지도자들도 타협의 여지를 가지고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그럴 의사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거나 타협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4:10, 16:23a). 그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 그 사명의 완수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16:23b-24). 따라서 백마를 타고 천사를 동원하고 지휘하여 적을 섬멸하고 있지를 않습니다(19:11-21). 그 대신에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서 소위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고 있습니다(21:7).

그리고 본문에서는 또 다른 행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의 정책이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있다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면서(21:12, 2:15)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유대교지도자들인) 너희는 (헤롯 왕가와 타협하여)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21:13).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성전청결사건으로 불리고 있는 이 대목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루살렘 성전의 뜰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56:7, 왕상8:41-43). 만민이라고 하는 것은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잡족이라고 하더라도 예루살렘 성전에 입장을 할 수가 있습니다(12:38). 하지만 그들은 소위 이방인의 뜰’(제사장, 이스라엘, 여인, 이방인 용으로 4구분이 된 마지막 뜰임)에 머물면서 기도만 할 수가 있습니다. 할례를 받고서 이스라엘 인처럼 되지 아니하는 이상 유대인들의 절기에 참여를 할 수가 없습니다(12:44). 물론 할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방인출신이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성소와 지성소에는 결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적용하고 있는 유대교의 특징입니다.

(2)  예루살렘의 뜰은 이방인들에게 중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에게 이방인들이 유일하게 기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공간을 유대교지도자들이 달리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아예 이방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서 장사하는 장소로 만들고 있습니다. 유월절 명절을 맞이하여 국내외로부터 50만명 이상의 수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물을 사기 위하여 환전을 하고 있습니다. 장사꾼들이 성전의 뜰에서 환전장사도 하고 제물장사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익이 막대합니다. 상당부분을 상납하고 있습니다. 그 돈을 받아서 헤롯 왕가가 예루살렘 성전을 증축하는 비용으로,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이 산헤드린 대 공회를 운영하는 경비로 일부 충당을 하고 있습니다.

(3)  그와 같이 유대교지도자들이 헤롯 왕가와 결탁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대제사장의 임면과 크게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속국입니다. 따라서 로마의 황제는 로마의 총독과 헤롯 왕가에 유대 땅을 다스리도록 위임하고 있습니다. 단지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독특한 유일종교인 유대교를 유지할 수 있는 종교적인 자치권만을 허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내부적으로는 유대교의 최고지도자인 대제사장을 로마에서 임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헤롯 왕가와 로마총독의 말을 대제사장이 듣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종교적인 자치권을 향유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구속을 받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따라 헤롯 왕가가 예루살렘 성전을 증축하는데 막대한 자금이 들자 대제사장을 압박하여 성전의 뜰을 장사꾼들의 이권으로 내놓게 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대제사장이 차제에 뜻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4)  만민에게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아예 무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그 공간을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사꾼들에게 성전의 뜰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는 이권을 주고서 돈을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돈을 거두어서 헤롯 왕가는 유대인들에게 잘 보이고자 정치적인 목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증축하는 일에 경비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대교지도자들은 산헤드린 대 공회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5)  세상을 심판하는 대신에 만민을 구원하고 영생을 주고자 독생자를 그리스도로 이 땅에 보내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3:16-17).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뿐만 아니라 천지만물까지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8:21, 21:1). 그러므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약 끝까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회개를 하지 아니하면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은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24:1-2). 그래서 한편으로는 장사치를 몰아내고자 채찍을 휘두르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멸망의 참상을 예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계십니다(19:41-44).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성전으로 자신을 깨끗이 하여(고전6:19-20) 하나님 아버지의 만민구원의 뜻을 받드는 거듭난 자로 살아가지를(28:19-20) 아니한다고 하면 장차 당하게 될 심판의 그날을 생각하시면서 주님께서 다시 우리들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