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34강(마21:18-2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15. 01:34

마태복음 강해 제134(21:18-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315(주일)

 

무화과나무의 비유와 포도나무의 비유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임하는 재앙(21:14-22, 15:1-8)

 

과일나무는 그 열매를 여름이나 가을에 생산합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자연의 이치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때는 4월 중순 유월절이 가까워지고 있는 봄철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무화과나무를 보시고서 열매가 없다고 하여 저주를 하고 있습니다(21:18-19a). 그 결과 무화과나무가 말라서 죽게 되는 이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21:19b-20). 도대체 그 이변 가운데 담겨있는 영적인 진리가 무엇일까요? 먼저 그와 같은 이변이 발생하게 되는 상황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베다니에서 일박을 하신 예수님은 일행을 데리고 아침 일찍 감람 산을 넘어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오시고 있습니다(21:17-18). 아직 아침식사도 하지 아니하신 것으로 사도 마태가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21:18). 의사 누가가 모은 정보에 의하면 예수님 일행의 전도여행을 물질적으로 크게 도와준 여인들이 제법 있습니다(8:1-3). 그리고 예루살렘 성내의 여관과 달리 그 동쪽 교외에 자리잡고 있는 시골 베다니의 민박집은 숙박비가 저렴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일행의 숙박비 재정은 넉넉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왜 아침 식사도 하지 아니한 채 예루살렘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마음이 급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고 있는 여인들의 향유부음 사건을 복음서가 기록하면서 유월절 2일 전 또는 6일 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6:2, 14:1, 12:1). 그러므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그 시기가 그때쯤이거나 아니면 그 보다 약간 빠른 시점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유월절 명절의 시작을 일주일이나 열흘쯤 남겨놓은 시점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마음이 바쁘기 그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에게 전해주어야만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의 본 뜻은 엄청나게 많은데 그것을 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장애자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깨우쳐주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으며 역시 시간마저 부족합니다.

(3)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영적인 진리를 알지도 못하면서(3:3-12) 하나님 앞에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앞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서 그저 자신들의 유대교리가 옳다고만 주장하고 있습니다(10:2-3). 그들은 단지 사람들 보기에 율법을 잘 지키고(15:8-9) 의로우면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딱한 노릇입니다. 그들은 이미 사람의 마음중심을 살피고 계시는 하나님을(삼상16:7)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4)  유대교지도자들과 선민들은 하나님 말씀의 본래의 뜻조차 파악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1:9-11). 예수님이 아무리 말씀의 본뜻을 복음으로 드러내어주어도 전혀 받아들이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있는 예수님은 마음이 급합니다. 자신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빨리 그들을 회개의 자리로 끌어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기간 동안의 예수님의 행적이 극단적이며 그 가르치심이 더욱 강경해지시고 있습니다; “여기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아 말라버린 이변과 제23장에 실려있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엄청난 꾸중, 그리고 제24장에 나타나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과 종말에 대한 예언 등이 모두 그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그 대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 요한의 복음서 기록이 참고가 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15:1-2). 열매가 없는 자는 제거의 대상이며 그 가운데에는 유대교지도자들이 포함이 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얻고자 하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시장하신 예수님이 얻고자 하는 것도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아침식사 전에 오리 길을 걸어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21:17-18, 11:18). 빈속에 길을 걸었으므로 물론 시장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배고픔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시장함이 더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서 그리고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서, 나아가서 유대교지도자들에게서 영적인 열매를 얻고자 하십니다”.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책임지고 구원의 복음을 전해줄 수 있는 제사장다운 면모를 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19:6, 벧전2:9). 그런데 그들은 요지부동입니다. 마치 그 옛날 요나 선지자와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자신들의 선민의 전통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1:1-3, 4:1-5, 10-11). 그저 유대인들은 사람들 보기에 율법을 잘 지키고 선민의 영광을 이 세상에 떨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해주거나 구원해줄 필요가 전혀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이 그들에게 어울린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유대인들은 더 이상 세상을 구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열매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둘째로, 이제는 선민과 이방인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는 구원의 열매를 맺는 자와 그러하지 못한 자로 구별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듯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21:19). 그러면 아직 봄철이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계절이 아니라고 변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열매는 일년사철 추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4:35). 따라서 저주를 받게 되면 더 이상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고 말라서 죽어버리고 맙니다(21:19-20).

셋째로,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죽게 한 사건은 문맥상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행위를 꾸짖은 다음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도 마태가 예수님의 행적과 교훈을 그와 같은 순서로 배치하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사도 마태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은 교권을 지키기 위하여 정치적인 술수를 부리지 말고 나아가서 예수님의 행동을 비난만 하지 말고 부디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의 뜻을 다시 생각하라는 요청입니다. 만약 그와 같은 회심이 없이 끝까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저버린다고 하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주를 받아 말라 죽게 될 운명이 되고 말 따름입니다”.

넷째로,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는 유대교지도자들이 복음전파에 있어서 큰 방해꾼들입니다. 그들이 계속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엄청난 저주 가운데 들어갈 것이라고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의 사건을 가지고 엄중하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장차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방해꾼들이 등장을 한다면 동일한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 있었던 역사가 언제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재등장할 것임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1:21-22).

결론적으로, 그 말씀 그대로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유다의 땅이 초토화됨으로써 유대교의 총본산이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전파를 방해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고 한다면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제자와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바다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역사섭리의 방향성이라고 하겠습니다(28:18-20, 8:37-39, 11:3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