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35강(마21:19-2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15. 16:16

마태복음 강해 제135(21:19-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316()

 

성도가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 할 수 있는 것들(21:19-22)

 

예수님은 자신의 대속의 십자가 죽음과 삼일만의 부활이 예루살렘에서 발생할 것임을 알고 계십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유월절 어린 양으로 처형이 될 것임을 세 차례나 제자들에게 이미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16:21, 17:22-23, 20:17-19). 번연히 죽을 운명인 것을 잘 아시면서도 운명의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21:10). 죽거나 살거나 상관없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을 하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가짐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가는 길에 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와 시범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총 28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사도 마태의 복음서 가운데 제21장부터 마지막 장인 제28장까지가 전부 예루살렘 입성 이후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것은 전체 분량의 28%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입성 당일에 나귀 새끼를 타셨으며 성전청결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21:5-7, 12-13).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똑똑히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내에서 숙식을 하지 아니하시고 구태여 동쪽 감람 산을 넘어서 베다니로 이동을 하셨습니다(21:17). 그것은 가난한 자들의 마을에서 함께 지내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다시 감람 산을 넘어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십니다(21:18). 도중에 길가에 서있는 무화과나무에 접근하셔서 열매가 있는지 살피십니다(21:19a). 봄철이기 때문에 당연히 열매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없다고 하여 이제부터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1:19b). 그 말씀 끝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립니다(21:19c). 그 나무는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이 변한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아니하고 있는 예수님의 이상한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던 제자들이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21:20). 예수님의 답변이 상당히 비약적입니다. 믿음의 기도와 의심하지 아니하는 신앙적인 행동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로 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21:21-22). 도대체 왜 그와 같은 아리송한 동문서답(東問西答, 엉뚱한 답변)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 깊은 내용을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의도는 사실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열매를 얻고자 하는 것을 그렇게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관심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8:5-9). 따라서 예수님은 온통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 뜻과 마음을 깨닫고 그것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생애는 영적인 삶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고 있는 모습도 영적인 차원의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께서(1:14) 왜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법칙을 모르시겠습니까? 천지의 창조에 참여하신 당사자이시기에(1:3)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아직 봄철이기 때문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려 있지 아니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무화과나무의 열매 또는 포도나무의 열매로 비유가 되고 있는 것은 구원의 열매와 성화의 열매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구원의 열매와 성화의 열매는 언제 맺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육체를 입고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동안에 맺어야만 합니다(16:28-29, 1:24). 만약 이 세상에서 한번 사는 인생 가운데 그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면 살아 있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이미 죽은 목숨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북 시리아 하란 땅에서 계속 세상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데라의 인생에 대하여 집사 스데반의 증언을 통하여 이미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1:31-12:4, 7:4). 그 점을 본문에서 그리스도가 찾고 있는 영적인 열매가 없자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는 것으로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21:19-20).

그 점을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에서 또 설명을 하시고 있습니다(15:1-8). 비유의 내용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서 자양분을 공급받고 있는 동안에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열매를 많이 맺으면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양분을 공급하고 더 깨끗하게 만들어주신다는 내용입니다. 요컨대, 전도가 전도를 낳고 깨끗한 성도의 삶이 더욱 성화되는 인생으로 인도가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포도나무의 비유가 그대로 무화과나무의 사건에 적용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48:6-7). 그것이 성도가 남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체험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기적과 같은 모습으로 인생 가운데 만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21:21).

예수님의 말씀은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이 먼저 있어야만 기적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 믿음이 있더라도 현실생활에 있어서 의심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3) 그러나 그 믿음으로 의심을 이길 때에 비로서 자신이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산을 옮길만한 믿음, 무화과나무의 가지를 말라버리게 할 수 있는 엄청난 믿음을 어떻게 하면 소유할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능력으로 임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합니다(24:49, 1:8). 그와 같은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합니다. 구약시대 극소수 선지자에게 주어졌던 그와 같은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겠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좋으신 아버지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으니 그것이 복된 소식 곧 복음입니다.

(2)  흔히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옳다고 믿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잘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일이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이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탄과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오죽이나 세상일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으면 마귀가 자신이 마치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조차 거만하게 행동을 하고 있겠습니까?(4:8-9)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 말씀의 진리로써 사탄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10).

(3)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의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을 듣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4:4, 10, 5:24).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믿고서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교훈과 행적을 따라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이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와 부활 승천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14:16-17, 16:7). 성령님의 강림과 내주하심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2:1-4). 진리의 성령님께서는 성도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의심하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신뢰하고서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을 계속 공급해주고 계십니다. 그 결과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놀라운 기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이 모든 선지자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계승이 되고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12:1-3) 선지자와 성도들을 보호하는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삼상2:30). 그 말씀을 예수님은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며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고 바꾸어서 말하고 있습니다(16:18-19, 18:18-19)”. 본문에서는 그 점을 더 알기 쉽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1:22).

끝으로, 성도가 믿고서 의심하지 아니하고 기도하면 신앙생활 가운데 놀라운 기적이 발생을 합니다. 커다란 산과 같은 어려움이 떠나갑니다(21:21). 마음 속을 짓누르고 있던 태산과 같은 무거운 짐이 떠나갑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있던 의심과 세상적인 탐닉의 삶이 떠나갑니다. 그래서 점점 거룩하게 하나님 자녀로서의 형상을 이 땅에서 회복해나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화의 과정입니다.

결론적으로, 마지막 공생애를 앞두고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믿음생활을 영위하라고 간곡하게 비유로써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것이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