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22강(마20:1-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9. 18:43

마태복음 강해 제122(20:1-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33()

 

포도원의 품꾼들의 시간 이야기(20:1-12)

 

구약의 기록에서는 포도원을 선민 이스라엘이라고 보고 있습니다(5:1-7, 27:2-6). 그 개념을 확대하여 예수님은 포도원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농부가 되어 가꾸고 계시는 메시아의 나라라고 보고 있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하여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15:1-2). 그렇다면 예수님과 함께 메시아의 나라에서 복음사역을 할 수 있는 제자들은 마치 포도원의 품꾼과 같습니다. 그들은 언제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포도원 품꾼을 각각 다른 시간대에 부르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아침 일찍 집주인이 품꾼을 모집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있습니다(20:1-2). (2) 유대인 시간으로 제3시 곧 오늘 날 오전 9시에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을 품꾼으로 모집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20:3-4). (3) 6시 곧 정오에도 그러하고 제9시 곧 오후 3시에도 그러합니다(20:5). (4) 11시 곧 오후 5시에도 집주인이 장터 인력시장으로 나가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하루가 거의 지나가도록 일감이 없어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20:6-7a). 포도원주인이 그들도 품꾼으로 삼아 포도원으로 들여보내고 있습니다(20:7b).

그런데 하루 일과가 끝나고 그날의 품삯을 지불하는 자리에서 문제가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1) 포도원주인이 이상하게도 나중에 와서 일을 한 일꾼들부터 일당을 받도록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20:8). 따라서 오후 6시에 일과가 끝났는데 오후 5, 3, 정오, 오전 9시 순서로 모집이 되어와서 일을 한 사람들에게 차례로 일당이 지불이 되고 있습니다.

(2) 그들이 받고 있는 품삯이 모두 동일하게 1데나리온입니다. 예를 들면, 그날 오후 5시에 일하러 와서 마감시간 오후 6시까지 겨우 1시간만 일을 한 일꾼에게도 동일하게 1데나리온이 지불되고 있는 것입니다(20:9, 12).  

(3) 아침 일찍 모집이 되어 하루 종일 일을 한 일꾼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후 늦게 와서 일을 한 사람이 1데나리온을 받았으니 자신들은 얼마나 많은 품삯을 받을지 기대감이 큰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신들에게도 하루치의 품삯 1데나리온만이 지불되고 있습니다(20:10).

(4) 기대가 컸기에 배신감이 큽니다. 그래서 포도원주인에게 일찍부터 일한 일꾼들이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20:11). 어떻게 오후 5시에 와서 저녁마감시간까지 한 시간밖에 일을 하지 아니한 사람이 똑같이 하루치의 일당을 모두 받아갈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20:12).

왜 똑같이 1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번 강해에서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시간대별로 일꾼을 모집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도 베드로가 시간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루가 천 년같이 길었던 시간대가 과연 언제일까요?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시던 바로 그때입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제3시 곧 오전 9시에 못이 박혔습니다(15:25). 그리고 제6시 곧 정오가 되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시 곧 오후 3시까지 계속이 되다가 드디어 운명하시게 됩니다(27:45-50, 15:33-37). 그 시간대가 본문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시간대가 제3시부터 제9시까지라고 한다면, 구약에 해당하는 시간대는 제3시 이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꾼으로 사용하시고자 구약의 시대에도 사람을 부르시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아침 일찍부터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사역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반면에 예수님의 임종 시간 제9시 그 다음 시간대에 부름을 받고서 복음사역의 일꾼이 된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를 들자면, 오후 5시에 포도원 일꾼으로 불려가서 한 시간만 일을 했지만 하루치의 임금 전부를 받게 되는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 날 교회시대의 성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3시부터 제9시까지 곧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의 시간대에 포도원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 했던 제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3 6개월 동안 함께 먹고 마시면서 전도여행을 같이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뜻을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통하여 복음으로 이해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창조주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인정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고백 그대로 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6:16).

넷째로, 하나님 나라와 공의를 추구한 사람들은 구약의 시대에도, 예수님 당시에도,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교회의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게 된 시간대는 하루의 길이를 가지고 말하자면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1) 3시 이전인 이른 아침(20:1-2), (2) 3시부터 제9시까지(20:3-5), (3) 9시 이후인 제11시 늦은 시간(20:6-7) 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특이하게도 그들에게 지급이 되고 있는 일당이 모두 같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이며 은혜입니다. 어느 시간대에 태어나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든지 하나님께서 구원사역의 일을 시키시고 모든 것을 책임져주신다는 메시지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구약의 시대와 예수님의 공생애 시대는 선민 이스라엘이 구원역사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그러나 제11시로 기록이 되고 있는 늦은 시간대에 일꾼으로 부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적은 시간 일하고서도 같은 상급을 받게 되는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1:2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