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23강(마20:8-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10. 04:40

마태복음 강해 제123(20:8-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34()

 

늦게 와서 일한 일꾼들에 대해서도 포도원주인이 똑같이 하루치의 임금 1데나리온을 지급하자 일찍 온 일꾼들이 집주인을 원망하다(20:8-16)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아니하는 비유의 말씀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사회에서는 통상적으로 새벽 6시 먼동이 틀 때부터 저녁 6시 날이 저물 때까지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한 일꾼에게 하루치의 임금 1데나리온을 지급하는 것이 관례입니다(20:2). 그런데 포도원주인은 오후 5, 3, 정오, 오전 9시에 각각 늦게 와서 일한 포도원일꾼들에게도 똑같이 하루치의 온전한 품삯 1데나리온씩을 지불한 것입니다(20:8-10).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일꾼들 가운데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와서 일한 자들은 모두 의아해하며 동시에 속이 상합니다(20:10-12). 그 이유는 세상적인 계산법에 따라 상대적인 박탈감이 찾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20:10).

오후 5시에 제일 늦게 와서 일한 일꾼들이 단 한 시간만 일을 하고서도 먼저 1데나리온의 품삯을 받고 있는 광경을 보고서 나머지 일꾼들은 가슴이 뛰었습니다(20:9-10a). 자신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 노동을 하였으므로 오늘은 정말 몇 곱절의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노동한 시간의 길이에 전혀 상관없이 하루치의 임금 1데나리온만이 일꾼들에게 똑같이 지급되었기 때문입니다(20:10b).  그래서 집주인의 온당하지 못한 임금의 지급에 대하여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20:11-12). 그러자 포도원주인이 자신의 권리와 지급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로, 애초 포도원주인과 일꾼들 사이의 계약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품꾼들에게 하루 1데나리온의 품삯을 주기로 약속하고 있습니다”(20:2, 13). 그렇게 1데나리온씩 주겠다고 약속한 이유는 그 금액이 하루치 식구들의 생활비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포도원주인의 관심사항은 일거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자들에게 노동을 시키고 하루치의 임금을 받아서 생계를 꾸려가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도원주인 또는 집주인으로 묘사가 되고 있는 자는 창조주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제15포도나무 비유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있는 농부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시라고 정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5:1).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물을 만드실 때에 그들에게 먹고 살며 번식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해주셨습니다(1:22, 28-31).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축복의 내용입니다. 악하거나 선하거나 불의한 자이거나 의인이거나 상관하지 아니하시고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복을 똑같이 기본적으로 주셨다는 의미입니다(5:44-45).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공의의 내용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노동한 시간에 상관없이 식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1데나리온씩을 지급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왜 가장 늦게 모집이 되어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못한 일꾼부터 1데나리온의 하루치 임금을 먼저 받아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조치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20:8-9)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날 오후 5시에 해당하는) 11시에도 (포도원주인이 장터 인력시장에) 나가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20:6-7).

보통 인력시장에서 일꾼을 모집할 때에 튼튼하고 기술이나 기능이 있어 보이는 사람부터 뽑습니다. 그러므로 별 능력도 없고 튼튼하지도 못한 사람은 하루의 일감을 구하지를 못하고 기다림에 지쳐서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포도원주인이 장터 인력시장에 오후 5시쯤 나가보니 여전히 자신들을 고용해줄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를 못하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며칠 동안 일거리를 얻지 못하여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일거리를 찾지 못하면 또 식구들이 하루를 더 굶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하루 해가 지기 1시간 전까지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서럽고 불쌍한 처지를 포도원주인이 알아채고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한 시간 동안 일을 시키고 떳떳하게 일당을 받아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고 있습니다(20:8-9). 요컨대, 굶주리고 있는 식솔들을 생각하여 가장 먼저 임금을 지불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33:19, 7:9-11).

셋째로, 세상적인 계산법에 따르면 하루 12시간을 일하고서 하루치의 품삯 1데나리온을 받게 되는 경우 1시간만 일한 자는 12분의 1데나리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1데나리온을 지급하고 있습니다(20:9). 그 광경을 보고서 일찍 와서 더 많은 시간 노동을 한 일꾼들은 포도원주인과의 당초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일찍부터 포도원을 위하여 일하였으므로 그 노동시간에 비례하여 몇 곱절의 품삯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포도원 이야기가 단순한 비유가 아니고 내용상 이스라엘 선민들의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임을 눈치챌 수가 있습니다.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부름을 받게 되는 일꾼 가운데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가 있습니다(20:16). 이미 전번 강해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 이른 아침에 모집된 자는 구약시대의 선민들입니다. (2) 3시부터 제9시까지에 모집이 된 자는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한 제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의 시간대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11시에 모집이 되어 한 시간만 일하고서 크게 은혜를 입은 자들은 신약시대 교회로 들어온 이방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원망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20:12). 그 원망은 마치 탕자의 비유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첫째 아들의 불평과 같습니다(15:22-32). 실제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이 되어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구성원이 되자 그들은 이방인 교회에 대하여 유대주의적인 입장을 강조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선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민의 상징인 율법준수, 할례, 성전문화에 참여를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위 예루살렘 총회의 의제였습니다(15:1-21).

오늘날 교회생활 가운데에서도 위와 같은 모습이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믿은 자들이 나중 믿은 자들을 업신여기거나 은근히 무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많이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적게 헌신하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자기의 율법적인 의로움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리새인과 죄인과의 기도의 비유를 재음미하게 합니다(18:9-14).

넷째로, 포도원에서 일하고 있는 자들은 주인을 위하여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생각과 뜻을 따라서 일을 해야만 합니다. 주인의 권리와 주권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일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점에 대하여 의사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17:6-10).

요컨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죄인이며 무익한 종이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과 헌신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을 얻은 것임을 명심하고서 창조주의 주권에 철저하게 순종을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을 신실하게 존중해야 합니다(20:14-15).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33:19).

끝으로, 포도원에서 계속 일을 하자면 주인과 자신과의 계약이 무엇인지를 항상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애초 하루 일을 하고서 1데나리온을 받도록 되어 있으면 그 언약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20:13). 포도원주인이 다른 일꾼에 대하여 어떠한 계약을 맺고 있는지 신경을 쓸 일이 아닙니다. 설혹 나중 된 자가 더 진급을 하여 윗자리에서 일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문젯거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20:16). 그것은 하나님과 그 사람과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시종일관 일꾼의 선택과 발령 그리고 대가의 지불이 모두 주인의 판단과 뜻에 달려있습니다(20:15). 그러므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의 언약에 신경을 쓰지 말고 다만 자신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충실하여 주인이 시키는 일을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변함없는 종의 자세라고 하겠습니다(20:14, 1:1,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