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12강(마18:6-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4. 18:20

마태복음 강해 제112(18:6-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221()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를 귀하게 보시고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18:6-14)

 

본문의 내용은 언뜻 보면, “주님을 어린아이와 같이 믿는 자를 실족하게 하는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에 대한 설명으로 보입니다(18:6-9).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내용은어린아이같이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 따라 살아가는 성도를 끝까지 보호하시고 챙기시는 하나님의 모습”(18:6-14)에 관한 기록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한번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영벌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18:6-9)라는 취지의 말씀을 웅변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찾고 의지하듯이 창조주를 찾고 전적으로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 성도의 순수한 신앙을 보호해주지 아니하고 오히려 핍박하거나 넘어지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엄청난 심판을 받고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18:7, 8b, 9b).

(2) 영혼조차 영원한 불 심판을 받게 되는 그 형벌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차라리 맷돌을 목에 감고 깊은 바다에 빠져서 죽거나(18:6), 범죄한 손이나 발을 스스로 찍어버리거나(18:8), 범죄한 눈이라면 차라리 빼어버리는 것이(18:9) 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3) 결국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는 말씀을 상기시켜주고 있는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정직한 신앙을 가진 성도를 하나님께서 두텁게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1)  그러한 성도에게 하나님은 수호천사를 보내어서 항상 지켜주십니다. 수호천사와 하나님 사이에는 일종의 ‘hot line’이 설치가 되어 있습니다(18:10).

(2)  실족하여 길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에는 다시 순전한 신앙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끝까지 인생길에서 찾으시고 도와주십니다(18:12-14).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비유가 소위한 마리 잃어버린 양의 비유’(18:12-14, 15:1-7) 또는 탕자의 비유’(15:11-32),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비유’(15:8-10) 등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주님은 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생활을 하라고 유대인들에게 강조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이 순수하거나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순수하지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동기가 불순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가 마음에서 멀다는 의미입니다. 왜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인들이 그와 같이 순수하지 못하고 마음이 담기지 아니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을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앙생활의 순수한 동기는 구원과 영생을 얻어서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동거하며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교인들은 창조주와의 동거나 동행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을 유지하고 부유해지며 권력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섬긴 것입니다.

(2)  종교생활에 있어서 율법의 준수가 기준입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것이 남의 눈을 통하여 확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진심으로 지키려고 하는지 아니하는지 그 마음은 평가와 관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그 행동이 기준입니다. 자연히 외식적인 율법생활에 빠져들어 있습니다.

(3)  참된 신앙생활과 거짓된 신앙생활의 판정을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있는 하나님의 법정이 아닙니다. 특히 대 공회는 히브리정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 말씀의 뜻을 만민구원의 맥락에서 살피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선민 유대인의 구원과 해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집단이기적이며 민족우월적인 신앙생활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세적인 복을 얻기에 급급하고 있으므로 순수하지 못합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니 그것은 위선적인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영생의 복은 선민 이스라엘에게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컨대,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드러내고 있는 예수님의 만민구원의 복음사상과 반대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사랑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정직한 것인데 유대인들은 그러하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교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르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순수하고 정직한 신앙을 회복할 수 있도록 유대교를 정화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개방도 하여야 합니다. 만약 끝까지 이상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어린아이를 실족시킨 죄를 면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와 같은 강력한 요구와 주장이 본문에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