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11강(마18: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7. 4. 18:19

마태복음 강해 제111(18: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221()

 

예수님이 모든 것을 바쳐서 건설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성전세를 내는 사건과(17:24-27) 어린아이 비유를(18:1-6) 통하여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미 설명한 그대로 성전세를 내는 사건은(17:24-27) 성도의 삶에 있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는”(22:21) 온전한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사람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황제도 만족시키고 동시에 영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도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불가능합니다(8:3a).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가능합니다(8:3b). 그 점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바로 물고기의 입 속에서 한 세겔의 동전을 찾아내도록 만들고 있는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하겠습니다(17:27).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21세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유전자 조작에 관한 논쟁에서도 쉽게 엿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류의 먹거리 해결과 복지의 증진을 위하여 유전자 조작을 적극 활용하고자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창조해놓은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함부로 유전자를 조작해서는 안됩니다. 두 가지 견해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답을 제시한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도우심을 얻는 방법을 예수님이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공의를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6:33). 그 약속이 믿을 만 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로써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8:3c-4). 환언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또한 보여주고 있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공생애의 끝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자면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그 결심을 제자들 앞에 두 차례나 밝히고 있습니다(16:21, 17:22-23). 예수님이 다시 확인하고 있다는 것은 변개함이 있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결심을 몰라주고 있는 수제자 베드로를 심하게 야단을 치고 있습니다(16:22-23). 그리고 제자들에게 심각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스승인 예수님처럼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부인하고 스스로 자신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자가 참된 제자라는 것입니다”(16:24-26).

그리하면 반드시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아울러 약속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활 승천하시는 예수님이 다시 이 세상에 하늘의 왕권을 가지고 와서 보상을 해줄 것입니다(16:24-28). 둘째, 남은 인생 가운데 세상의 것을 더하여 주는 은혜가 제자들에게 풍성할 것입니다(6:33). 그 약속을 믿을 수가 있을까요? 믿음을 주기 위하여 이미 성전세를 기적적인 방법으로 내어주는 방법을 보여준 것입니다(17:27). 그리고 나서 본문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를 동원하여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18:1-6).

예수님의 설명은 한 사람도 실족시키지 아니하는 모범답안을 얻자면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를 해야만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서지를 않고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조차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불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선과 악을 구별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매사를 하나님께 의지하고 물으며 그 답을 구하여 실천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3:5-6).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고 불완전한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고 있는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아담과 하와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옷깃을 여미고 서서 그 말씀을 듣고서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완전한 해법을 가진 인생입니다. 함부로 하나님의 의견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선과 악을 재단하고 행동을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린아이임을 모르고 있는 것 그것이 불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설명이 다음과 같이 다채롭습니다; (1)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서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18:3). (2)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서 신앙생활을 한 자가 천국에서는 큰 자가 된다(18:4). (3)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순전한 믿음의 사람을 제대로 영접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대접하라(18:5). 그 보답을 주님께서 해주실 것이다. (4) 반면에 무시하고 실족하게 만들면, 교만한 사회 악한 세상을 만든 죄과를 틀림없이 치르게 될 것이다(18:6, 1:8-12, 42:7-10). 결론적으로, 그렇게 역사를 섭리하시겠다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하겠습니다(11:32-36).